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434화 (434/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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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참고로 본문에서 언급한 모 유명만화의 제목은 '엿보기 구멍'입니다.

명작이죠. 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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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확인을 안 했는데 후원쿠폰을 주신 독자님들이 계셨군요.

있지 님, 더케이즈 님, 더케이즈 님, 더케이즈 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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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크랭크인

이채희는 문득 정신을 차렸다.

‘피곤해…….’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언젠가 사극 촬영을 할 때가 떠올랐다. 햇빛이 푹푹 내리 찌는 뙤약볕에서 색동저고리를 입고 죽어라 뛰어다녔던 때다. 탈진으로 쓰러질 뻔했는데, 지금 몸 상태도 그때와 비교해서 부족하지 않았다.

‘일단 살아있긴 하네.’

익숙한 천장이 보이는 걸 보니 죽진 않은 모양이다.

그녀는 의식이 끊기기 전의 마지막 기억을 떠올렸다.

‘기어코 기절했구나.’

섹스를 하다가 성적인 쾌락을 못 이겨 기절을 했다.

이채희는 헛웃음을 흘렸다. 애당초 목표했던 바였지만 정말로 현실이 되니 새삼 어이가 없었다.

‘이게 되네?’

동영상에서나 보던 일을 자신이 겪을 줄은 정말이지 상상도 못했다.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그런 자극이라니. 정신이 아득해지는 그 느낌이 선명한 듯 멀게 느껴졌다. 마치 귀접이라도 한 것처럼 한바탕 야한 꿈을 꾼 것만 같았다.

그러나 다리 사이의 통증은 그것이 꿈이 아닌 현실이었음을 알려주었다.

“읏.”

격통에 신음이 나왔다. 그녀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자연스럽게 납득했다. 이미 예상했던 상황이기 때문이다.

‘힘든 게 당연하지.’

그만큼 무식하게 해댔는데 힘들지 않으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일일 터다.

‘혹시 문제 있는 곳은…….’

이채희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킨 후 몸을 점검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몸에 기운이 없다. 그러나 어디 상한 곳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체력이 떨어진 것뿐이니 서주환의 마사지를 받으면 금세 괜찮아질 것이다.

“아, 아. 흠흠.”

그렇게 소리를 질러댔는데 목 상태도 괜찮았다. 역시 성대는 튼튼하고 봐야한다. 그녀는 배우 생활을 하면서 성대에 불편함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다행이다.’

혹시라도 몸이 상한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멀쩡했다. 영화를 찍는 데 문제가 될 요소는 없었다.

가장 큰 걱정이 가시니 그제야 갈증이 느껴졌다.

이채희는 조심스럽게 침대를 내려와 발을 디뎠다.

휘청.

“헉!”

이채희는 무너지려는 몸에 힘을 줬다. 순간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주저앉을 뻔했다. 그렇게 똑바로 서자 가랑이 사이에서 무언가 흘러나왔다. 이내 덩어리진 액체가 철퍽, 바닥에 떨어졌다.

“하하. 미친…….”

바닥에 떨어진 액체를 확인하니 또다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황당한 심정과는 별개로 남은 정액은 계속해서 허벅지를 타고 미끄러졌다.

이채희는 쓰라린 두덩이에 손을 가져갔다. 손가락으로 질구를 벌리자 정액이 후두둑 떨어졌다. 징그러운 마음에 욕설이 절로 튀어나왔다.

“미친 정액괴물 새끼. 진짜로 섹스하다 뒈질 뻔했네.”

얼마나 해댄 건지 감이 안 잡힌다. 도대체 몇 번을 싸지른 건지도 모르겠다. 단언컨대 서주환과 결혼할 여자는 그의 정력을 못 버티고 죽거나 도망칠 것이 분명했다.

‘그나마 기절한 뒤에는 안 건드린 것 같으니 고맙다고 해야 하나?’

이채희는 비틀비틀 걸어서 정수기로 향했다.

“흐으으!”

시원한 냉수를 들이켜니 정신이 좀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제야 서주환에 대해 생각이 미쳤다.

“그러고 보니 얘가 어디 갔지?”

현재 시각은 오후 7시다. 아직 자정까지 시간이 꽤 남은 상황. 그 서주환이 시간을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갔을 것 같진 않았다. 샤워라도 하고 있는 걸까.

그때였다.

“@#!$!$#%&~!”

“…응?”

이채희는 어딘가 익숙한 듯 낯선 소리를 들었다. 손님방 쪽에서 난 소리다. 그 소리는… 그녀 자신이 오늘 하루 줄기차게 질러대던 비명과 매우 흡사했다.

끼익.

이채희는 비명이 들린 방문을 열었다. 그러자 과하게 밀착해 있는 남자와 여자 한 쌍이 보였다.

“너희, 뭐하냐?”

남자는 당연하게도 서주환이었고, 여자도… 그녀가 아는 사람이었다.

“어… 누나, 잘 잤어요?”

서주환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고.

“흐읏, 읏, 으읏, 흐오옥……!”

밑에 깔린 민선하가 바들바들 떨며 신음했다.

*

섹스가 끝나자 미뤄두었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민선하가 지닌 상위 세 가지 재능 중 한 가지를 무작위로 습득합니다.]

[잠재등급 A, ‘지휘’를 습득했습니다.]

[페티시, ‘Scopophilia(下)’를 수집하여 3,000LP가 지급됩니다.]

[업적, ‘속전속결’을 달성하여 1,000LP가 지급됩니다.]

새로운 재능을 얻었다. 하지만 애초에 탐내던 재능도 아니었고 유용하지도 않을 것 같았다. 얻은 포인트도 기껏해야 4,000LP정도다.

서주환은 거기에 실망할 틈이 없었다. 눈앞에서 다리를 꼰 채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이채희 때문이었다.

문득 이채희가 툭 내뱉었다.

“어떻든?”

“네?”

“나 자는 동안 내 친구 따먹으니까 어땠냐고.”

“…….”

입이 있어도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서주환은 난감한 표정으로 눈꼬리만 긁적였다.

이채희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내가 살면서 별의별 경험을 다해봤는데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 어이가 없다 못해 신선해. 응?”

“하하…….”

“뭘 쪼개. 죽을래?”

“죄송합니다.”

“선하랑 하니까 좋았냐?”

“…….”

“씹네?”

“아뇨. 뭐, 그냥…….”

서주환이 말을 흐리자 이채희가 고개를 돌려 민선하를 바라봤다. 민선하는 그와 마찬가지로 대충 옷만 걸쳐 입은 채 좌불안석인 상태였다.

“선하야, 얘가 너 그냥 그랬다는데? 선하 너는 어땠어?”

“아니, 제가 언제 그런 식으로…….”

“어, 주환이 셧 업. 그래서 선하야, 너는 어땠어?”

그 말에 민선하는 고개를 푹 숙이며 사과했다.

“미, 미안해, 채희야.”

“풋. 어땠냐니까 뭘 미안해? 미안할 거 없어. 사실 별로 화도 안 났고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아으으, 진짜 미안해! 죽을죄를 졌어! 내가 어떻게 됐었나봐! 미안해! 나, 채희 네 애인 뺏으려고 한 거 절대 아니야. 제발 믿어줘……!”

민선하가 뱅글뱅글 돌아가는 눈으로 폭풍처럼 말을 쏟아냈다. 그녀는 당장 무릎이라도 꿇을 듯 이채희에게 잘못을 빌었다.

반면 민선하의 말을 들은 이채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애인?”

“정말 미안해! 무, 무릎 꿇을게! 이미 다 해놓고 이런 말 하는 것도 웃기지만 나 진짜 너 둘도 없는 친구라고 생각해. 내가 뭐에 씌었었나봐. 하라는 거 뭐든지 다 할게. 미안해. 미안해, 채희야.”

“야야, 민선하, 잠깐 진정해볼래?”

“기분 풀릴 때까지 때려도 돼! 내가 어떻게 해야 될까? 정말, 정말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어. 내가 널 친구로 생각하면 그래서는 안 되는 건데. 아니, 그렇다고 친구로 생각 안 한다는 게 아니라……!”

민선하는 이미 무릎을 꿇은 채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오히려 이채희가 당황할 지경이다. 그녀는 민선하를 진정시키려 어정쩡하게 손을 내밀었다가 버럭 소리쳤다.

“아씨! 야! 혼자 스토리 쓰지 말고 닥쳐봐! 이게 또 망상증 도져가지고 혼자 뭐라는 거야? 애인은 누가 내 애인이야!”

“…어? 애, 애인 아니야?”

민선하가 물기어린 눈으로 이채희를 올려다봤다.

이채희가 코웃음을 치며 서주환을 손가락질했다.

“난 이런 난봉꾼 새끼 한 트럭을 갖다 줘도 필요 없거든?”

난봉꾼은 조금 억울했다.

‘자기도 나랑 신나게 떡쳤으면서. 내가 난봉꾼이면 자기는…….’

그때 불손한 눈초리를 감지한 이채희가 그를 째릿 노려봤다.

“너 방금 무슨 생각했어. 뒤질래?”

서주환은 슬쩍 시선을 피하며 투덜댔다.

“아니, 제가 뭔 생각을 했다고 계속 죽인대요.”

“어쭈? 이게 말대꾸를 하네? 죄인은 입이 있어도 말이 없는 거 몰라? 유구무언 이 자식아. 어? 나 자는 틈에 내 친구까지 따먹어놓고 뭐가 이렇게 당당해? 이 난봉꾼, 색마, 정력괴물 새끼. 온 세상 여자들의 적. 아무나 다 따먹고 다니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난에 서주환은 눈을 찌푸렸다.

‘이 누나 신나서 선 넘네.’

그가 보기에 지금 이채희는 화가 난 것보다 꼬투리를 잡고 갈구는 데 신난 모습이 더 컸다.

그 생각은 정답이었다.

실제로도 이채희는 별로 화가 나지 않았다. 서주환이 정말로 그녀의 앤인인 것도 아닐뿐더러 싫다는 민선하를 억지로 강간한 것도 아니었다. 그가 잘못을 한 거라면 일말의 매너도 없이 남의 집에서 마음대로 딴 여자와 섹스를 했다는 것이었는데, 사실 그 덕분에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으니 그녀로서는 손해 본 게 없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갈구는 이유라면.

‘내가 지 오나홀이야, 뭐야? 아니면 리얼돌이야? 사람을 자위기구처럼 써대고 있어. 콱 씨!’

새벽부터 시작해서 하루 온 종일 서주환의 손짓을 따라 굴러다닌 게 맺혔기 때문이었다. 어찌 그렇게 사람을 막 다룬단 말인가. 하마터면 보지가 찢어지는 줄 알았다.

사실 먼저 원하는 만큼 해보라고 말한 것도 그녀였고, 차라리 실신할 때까지 박아달라고 한 것도 그녀였지만, 본디 사람을 갈굴 때는 앞뒤 정황을 논리적인으로 따질 필요가 없는 법이었다.

“어? 주환이 너, 사람이 양심이 있으면 그럼 안 되는 거야. 알아들어?”

꼰채희는 연신 그를 나무랐다.

하지만 서주환도 마냥 착하기만 한 성격은 아니었다.

[특수능력, ‘위스퍼’를 활성화합니다.]

[상대방의 무의식에 말을 건넵니다.]

[상대방의 판단력을 저하시킵니다.]

[사용자의 말에 알 수 없는 신뢰가 깃듭니다.]

[루시가 주인님을 뻔뻔한 색마라고 매도합니다.]

서주환은 색마임을 인정하며 입을 열었다.

“누나, 좀 전에 저 같은 건 한 트럭으로 줘도 필요 없다고 했죠?”

“갑자기 그건 왜… 너 설마 상처받았니?”

이채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혹시 서주환이 자신에게 연애감정을 품었나 싶어서였다. 두 사람은 뒤끝 없이 깔끔하게 엔조이하는 관계였으므로 그래선 곤란했다.

서주환이 무슨 소리하냐는 듯 피식 웃었다.

“아뇨. 그냥 뭐, 누나가 저한테 애인할 생각 없냐고 했던 게 떠올라서요.”

“야, 그게 언제 적 일인데.”

“불과 한 달 전이죠, 아마?”

“얘가 갑자기 왜 이래? 그래서 우리가 지금 사귀어?”

어느덧 눈물을 그친 민선하는 두 사람을 흥미진진한 얼굴로 구경했다. 이채희의 애인과 섹스를 한 줄 알고 죄책감에 시달렸는데, 그게 아니라고 하니 이제 미안한 마음보다 흥미가 더 커졌다. 눈앞에서 막장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는 꼴이었으니 마음 같아선 팝콘이라도 뜯고 싶었다.

“아뇨. 안 사귀죠. 저랑 누나는 친한 누나와 동생이니까요. 말하자면 친구 사이?”

“그런데 뭐.”

“그냥 친구는 아니고 섹스 친구란 거죠.”

서주환은 거기까지 말한 후 입을 다물고 이채희를 지그시 바라봤다. 결국 애인도 아니고 섹스 프렌드인데 지금처럼 비난 받을 이유가 있냐고 묻는 눈이었다.

“와, 너, 우와…….”

이채희는 아예 서주환이 뻔뻔하게 나오자 말문이 막혔다.

서주환은 실실 웃으며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 누나, 한 가지 잊은 게 있는 것 같은데요.”

“잊긴 뭘……!”

“아직 자정까진 시간이 꽤 남았거든요?”

“?!”

“분명 약속했었죠? 오늘 하루는 제가 원하는 만큼 마~음대로 하라고.”

“…….”

입을 다문 이채희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분명 도의적으로 잘못한 사람은 서주환이 맞다. 한데 뻔뻔한 얼굴로 능글대고 있으니 약이 올랐다.

‘그런 약속 기억 안 난다고 해버려?’

그건 자존심이 상해서 안 되겠다. 아예 시작을 안 했으면 모를까 이미 보지가 쓰라릴 정도로 박힌 상태다. 그런데 하루를 불과 6시간 남겨두고 자존심을 접고 기억이 안 난다고 잡아떼라? 차라리 다 끝난 후에 좆을 물어뜯어버리고 말 테다.

이채희가 고민에 빠져서 부들부들 거리고 있자 서주환이 박수를 짝 치며 말했다.

“그, 일단 저녁 먹을까요? 제가 차릴게요. 누나들 두 분 다 배고프죠?”

“…….”

이채희는 입을 다물었고.

민선하는 그런 이채희의 눈치를 보며 허기진 배를 쓸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으, 채희야?”

“아오, 씨!”

“힉!”

“맛없기만 해봐라! 야, 민선하, 술 사 왔다고 했지?”

“으, 으응.”

“내놔!”

“그, 그래.”

이채희는 테이블에 앉아서 깡소주를 깠다. 일단 저녁을 먹는 게 시간을 줄이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민선하는 그런 이채희를 보며 작게 웃었다.

‘채희 얘가 주환이를 많이 아끼나 보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어설픈 말에 넘어가줄 리가 없었다. 겉으로는 화난 척하면서도 져주는 걸 보니 서주환을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았다.

‘하긴 그게 아니어도…….’

민선하는 문득 조금 전의 감각이 떠올라서 슬그머니 다리를 오므렸다. 자신이 그런 걸 하루 종일 당했다면 서주환의 말에 반항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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