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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새벽 마사지
연기훈련은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어김없이 이어졌다.
서주환은 언제나처럼 연습실 바닥에 쓰러진 이채희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런 서주환을 보고 루시가 감탄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주인님은 다 계획이 있으셨군요?]
그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괜히 죽자고 훈련한 게 아니거든. 일단 채희 누나를 지치게 만드는 게 관건이었다 이 말이야.’
이채희에게는 일전에도 적당한 구실을 들어 마사지를 해준 적이 있었다. 그녀가 생리통에 시달려 죽어가고 있었다는 구실 말이다.
하지만 생리가 언제까지고 이어질리 없다. 그녀의 생리는 스캔들이 터지기 전 날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그 때문에 자연스럽게 마사지를 권유하지 못하게 되었다.
서주환은 새삼 스킬 특성을 살폈다.
【성스러운 손길(Rank: A+)】
▶ 효과1: 손으로 대상을 만지면 약간의 흥분도를 올릴 수 있다. 접촉 시간과 만지는 부위에 따라 흥분도가 증가한다.
▶ 효과2: 최상급 마사지 효과를 발휘한다.
▶ 효과3: 상급 치유의 손길을 사용할 수 있다.
▶ 효과4: 안정의 손길을 사용할 수 있다. 해당 손길은 사용자의 정력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
※ 스킬의 등급 외에도 상대방이 본인에게 가진 호감도에 따라 흥분도의 한계선과 치유의 효과가 달라진다.
하나의 스킬에 흥분, 마사지, 치유, 안정까지 네 개의 효과가 있다. 그가 지닌 여러 가지 스킬 중에서도 ‘성스러운 손길’은 유독 범용성이 좋은 능력이었다.
하지만 이 능력들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바로 신체접촉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일견 쉬워 보이지만 꽤나 까다로운 조건이었다.
‘남자랑 달리 여자는 가드가 두텁단 말이지.’
사내놈들 대부분은 고추를 제외하면 어딜 만져도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여자는 이성의 손끝만 닿아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많다. 하물며 마사지를 하겠답시고 몸을 멋대로 주물러대는 건 아무리 개방적인 여자라도 쉽게 허락할 리 없다. 이 때문에 접촉시간이 길수록 효과를 발휘하는 손길의 능력을 여성한테 제대로 사용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서주환은 우선적으로 이채희를 지치게 만들었다. 연기훈련을 도와달라는 명목으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때까지 체력을 방전시킨 것이다. 다행히 이채희는 진지하게 노력하는 사람을 좋아했고, 연기에 대한 욕심이 어마어마해서 먼저 빼는 법이 없었다.
서주환은 시체처럼 누워 있는 이채희의 상태창을 불러냈다.
<이채희>
성별: 여성
나이: 34살
키: 164cm
호감도: B+
현재 성욕: B
몸무게: 45kg
페티시: Autassassinophilia(中)
보유 재능: 연기(A+/A+), 카리스마(B/A+), 매혹(B+/B+), 상상(B/B+), 관찰(B/B+), 냉정(C+/B+), 직감(C/B+)
지난 시간동안 맹훈련을 한 게 유효했던 것일까. 어느덧 그녀의 호감도 수치가 B+에 이르렀다.
[지속적으로 주인님의 살기를 받은 게 효과적으로 작용했을 거예요. 더불어 감당하기 힘든 강도의 훈련량도 신체적인 착각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채희의 페티시는 생존기호증이라 하여 극한 상황에서 성적 흥분을 느끼는 증후군이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생명의 위협을 받거나 죽음의 공포에서 흥분을 느끼기도 한다.
지금까지 합을 맞추며 이채희에게 살기를 얼마나 흘렸던가. 혹시라도 놀라서 까무러치지 않도록 단계적인 강도 조절까지 하는 세심함을 기울였다.
지금까지의 모든 훈련은 바로 이채희의 호감도를 올리기 위함이었다.
[정말 그뿐인가요?]
루시가 의아함을 표했다. 이어서 걱정스렁누 투로 그를 나무랐다.
[단지 그것뿐이라면 ‘자각몽’에서까지 훈련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요. 현재 주인님의 신체는 고된 훈련으로 매우 지친 상태입니다. 주인님께선 좀 더 몸을 돌볼 필요가 있어요.]
‘헉. 이제 나한테 화도 내는 거야, 루시?’
[그게 아니라… 죄송합니다. 저는 다만 주인님이 걱정돼서…….]
‘농담이야, 농담. 뭘 죄송씩이나… 안 그래도 자각몽은 이제 사용하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그렇다니 다행입니다. 아무리 시스템의 능력을 이용하는 주인님이라도 점점 한계에 이르고 있었어요.]
확실히 요즘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강도 높은 훈련을 하긴 했다. 사실은 지금도 온몸이 다 결리고 눈꺼풀이 감기려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서주환은 몇 걸음 떨어져 있는 이채희의 옆으로 가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누나, 살아있어요?”
“…….”
아무 반응도 없다. 시체인 것 같다.
서주환은 픽 웃으며 연습실 바닥에 몸을 뉘였다. 그러자 금세 잠이 쏟아지려 했다. 바로 옆에 미모의 여배우가 있었음에도 덮치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을 정도로 지쳐버렸다.
‘루시 말대로 너무 무리했나.’
언제나 혈기왕성했던 아랫도리가 잠잠한 게 충격적이다. 일시적이라지만 자타공인 정력괴물인 그가 조금의 성욕도 동하지 않다니, 루시가 걱정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비로소 제대로 노력을 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서주환은 쏟아지는 수마 속에서 생각했다.
‘적어도 덜 부끄럽게…….’
그는 천재라 불릴 재능이 있고,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이는 모두 시스템의 힘으로 남들보다 쉽게 얻은 능력이다. 그래서인지 취미가 아닌 공식적인 자리에서 ‘나 이렇게 잘났소’ 하고 내보이기엔 꽤나 민망했다.
물론 이제 와서 고작 그런 이유로 시스템의 힘을 포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노력했냐는 물음에 최대한 덜 부끄럽도록 하고자 했다.
서주환이 진정 죽을 것처럼 훈련에 매진한 이유였다.
[편히 쉬세요, 주인님.]
그는 실로 오랜만에 자각몽을 사용하지 않고 달콤한 수면을 취했다.
*
꿈결에 목소리가 들렸다.
“주환아, 빨리 안 일어나면 덮쳐버린다?”
“헉!”
서주환은 반사적으로 눈을 번쩍 떴다. 그러자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채희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뭐야, 깼으면 일어나야지 왜 다시 자?”
“…….”
“일어나!”
서주환은 슬쩍 실눈을 뜨고 음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 일어나면 덮쳐준다면서요? 안 덮치고 뭐해요.”
“뭐? 얘가 진짜!”
기 막혀 하는 목소리. 이어서 짜악! 하고 가슴에서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서주환은 그제야 엄살을 부리며 몸을 일으켰다.
“어으윽. 덮쳐준다더니 왜 때려요? 어우, 손 매운 거 봐.”
“이게 건방지게 누나한테… 확!”
“어억! 귀! 귀 뜯어져요! 항복, 항복!”
“까불고 있어.”
이채희가 팔짱을 끼며 콧김을 내뿜었다. 언제 봐도 예쁜 얼굴과 상반되는 성격이다.
서주환은 쓰라린 귀를 매만지며 입맛을 다셨다.
‘아, 괜히 눈을 떠가지고.’
호감도와 성욕 수치를 보면 정말로 덮쳤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회사 연습실에서 그럴 리가요.]
‘아, 연습실이었지.’
자다 깨서 그런지 상황파악이 느렸다.
“누나, 얼마나 지난 거예요? 깜빡 잠들었네.”
“새벽이야. 3시 좀 넘었어.”
“네? 아니, 얼마나 잔 거야. 누나도 지금 일어난 거예요?”
“난 일어난 지 삼십분 정도 됐어.”
“그런데 왜 안 깨웠어요?”
“네가 너무 곤히 자서. 무슨 시체처럼 자더라.”
이채희가 쯧쯧 혀를 찼다. 본인이야말로 시체처럼 늘어져있던 건 모르고 말이다.
서주환은 아까운 시간에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푹 잔 게 효과가 있었는지 물 먹은 솜 같았던 몸이 꽤나 가벼워졌다.
이채희가 짐을 챙기며 말했다.
“일단 나가자. 배고파 죽겠다. 너도 밥 먹을 거지?”
“그래야죠. 뭐 드실래요?”
“음. 든든하게 국밥?”
“국밥 좋죠. 어, 그런데 누나는 나트륨 때문에 안 되지 않아요? 성근이 형이 알면 잔소리 할 텐데.”
“너만 비밀로 하면 돼.”
“으음. 나중에 들키면 제가 잔소리 들을 것 같은데요.”
짐짓 귀찮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이채희가 눈을 부라렸다.
“내가 배우생활만 29년 찬데 풋내기들이 누굴 걱정하는 거야?”
서주환은 더 반박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상태창으로 확인한 이채희의 체중을 보면 잔소리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한 달 전에 만났을 때보다 3kg가 더 빠져있었다.
“흐. 형한테 걸려도 전 모르는 일이예요.”
“알았으니까 따라오기나 해. 내가 새벽까지 하는 데 알아.”
“넵.”
이채희를 따라 새벽까지 하는 국밥집에 들렀다. 그런데 하필 오늘이 임시휴무일이었다. 이채희가 충격받은 얼굴로 탄식했다.
“아, 왜 하필 오늘!”
“포기해요. 대신 저쪽에 족발집 열려있던데 거긴 어때요?”
“얼큰한 게 먹고 싶은데…….”
이채희는 입맛이 좀 아재 취향이었다.
“요즘은 족발집에서도 국밥 팔지 않아요?”
“그렇긴 한데 저기는 족발만 맛있고 국밥은 맛없어.”
“다른 데는 없어요?”
“새벽이라 문 다 닫았지. 좀 더 나가면 있긴 할 텐데 거긴 사람이 많아서…….”
“배달 시키는 건 어때요? 아니면 차라리 제가 만들까요? 국밥은 아니어도 대충 얼큰한 찌개 정도는…….”
“오, 그럴래? 주환이 너 요리 잘하잖아!”
이채희가 반색하며 그를 돌아봤다. 그리곤 슬쩍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우리 술도 좀 마실까? 나 살 많이 빠져서 한두 병 정도는 괜찮은데.”
“한두 잔이 아니라요?”
“그걸 누구 코에 붙여? 차라리 안 마시고 말지.”
“그럼 그러던가요. 같이 마셔드릴게요.”
“어휴, 예쁜 자식!”
이채희가 활짝 웃으며 등짝을 팡팡 두드렸다. 한동안 닭가슴살에 풀떼기만 먹다가 맛있는 걸 먹으려하니 어지간히도 신이 난 모습이었다.
한편 서주환은 주변에 파파라치가 없는지 살피며 생각했다.
‘김치찌개만 먹긴 아쉬운데.’
운이 좋으면 오늘 다른 걸 먹을 수도 있지 싶었다.
그리 생각하기 무섭게 하나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성(性)에 관한 강력한 행운이 개입합니다.]
마치 그 생각이 정답이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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