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422화 (422/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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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오디션

서주환은 정당한 심사를 통해 김정민(살인마) 역에 만장일치로 캐스팅되었다. 그의 캐스팅에는 이채희와의 친분이나 리액트 엔터의 영향력이 일체 개입하지 않았다. 심사위원들은 오직 연기력만 보고 서주환을 뽑았다.

하지만 진실이 어떻든 대중의 생각은 다를 가능성이 높다. 십중팔구 인맥과 회사의 이름을 내세운 부정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할 터다.

그도 그럴 게, 서주환은 본디 배우가 아니라 웹소설 작가로 유명한 사람이다. 더불어 최근에는 이름 있는 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하고 문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 과정에서 멘부커상을 수상했던 김현영 작가의 문우라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사제(師弟)가 아닌 문우(文友).

김현영의 입을 통해 공인된 사실이다. 두 사람의 관계가 글벗이라는 사실로 밝혀지자 문학계는 조용히 요동쳤다. 보이지 않는 족보가 꼬여버린 탓이다. 심지어 그 대상이 평소 은근하게 낮잡아보던 웹소설 작가였다. 이는 문학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도 제법 흥미로운 가십거리가 되었다.

그 때문에 서주환의 이름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계속 유명세가 올라갔다. 그 과정에서 ‘휴가 나온 육군병장의 살인범 체포’, ‘웹소설 수익’, ‘스완 패션모델’과 같은 키워드로 과거의 기사들이 또 한 번 재조명되기도 했다.

‘그 덕분에 위튜브 구독자가 갑자기 늘어났었지.’

그의 위튜브 채널은 이제 구독자가 50만에 이르렀다. 웹소설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호기심에 검색했다가 그대로 구독을 했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시스템의 능력을 가진 그가 유명해지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문제는 바로 그 유명세다.

애당초 천천히 이름을 알리며 대학생활을 즐기려던 계획과 달리 벌써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적당히 능력을 보이며 조절한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유명세와 비례해 귀찮음이 커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러한 예상은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 민선하 감독 작품에 서주환이 나온다니 그게 무슨 개소리임?

수면 밑에서부터 서주환의 캐스팅 소식이 알음알음 퍼지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에는 그 말을 믿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소문은 점점 덩치를 키웠다.

- 이거 사실임. ○○시 ○○동 ○○○건물에서 오디션 있었는데 거기 서주환도 왔음

└ 서주환이 서환 작가 말하는 거 맞지? 웹소설 작가가 거길 왜 감?

└ 오디션 보러 갔겠지. 일단 얼굴은 좀 생겼잖아

└ 그런데 넌 그걸 어케 알았음?

└ 지인 통해서 들었음

└ 카더라네 씹

└ 자세히는 못 알려줌ㅅㄱ

꼬라지를 보아하니 내부에서 말이 샌 것이다. 어쩌면 오디션을 보러 왔던 배우들이 소문을 낸 것일지도 몰랐다.

- 그러고 보니 서주환 피팅촬영하다가 리액트 엔터에서 캐스팅 제의 받지 않음?

└ 그거 거절한 걸로 아는데

└ 영상 떠도는 거 보니까 명함은 받았더만. 아까워서 다시 연락했나 보지

-이 개소리 ㄹㅇ임? 연기 못하는 아이돌 새끼들 드라마에 나오는 것도 ㅈ같은데 웹소설 작가가 영화판에? 지랄도 풍년이네 썅!

└ 서주환 연기 잘함

└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데

└ 방송 초기에 후원 리액션으로 연기하던데 ㅈㄴ잘했음

└ 그거랑 영화랑 같냐 똘빡아!

└ 심지어 그거 연기가 아니라 성대모사잖아ㅋㅋㅋㅋㅋ

- 민선하가 반반감독이라고 불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ㅅㅂㅋㅋ 전작 흥행시키더니 이번 작품은 시작도 전부터 바로 진창에 꼬라박네ㅋㅋㅋㅋ

└ ㄹㅇㅋㅋ 대박 후 망작. 반반감독 법칙이자너

└ 여엄~병! 민선하 이 새낀 상업영화 한 번 흥행시켰으면 독립영화나 한 편 대충 찍어서 스택 좀 초기화시키고 오면 좋겠다

└ 아이디어 좋누 빨리 가서 알려줘라ㅋㅋㅋㅋ

- 이채희 열애설 부정하더니 서주환 바로 캐스팅! 타이밍 ㅈㄴ절묘하쥬?

└ 인맥으로 들어갔네ㅅㅂ

└ 심지어 이채희도 리액트. 인맥 캐스팅 빼박임ㅋㅋㅋㅋ

└ 열심히 노력하는 다른 배우들은 뭐가 되는지 참…….

- 서환 작가 요즘 방송도 안 켜고 위튜브도 안 올리더니 배우한다고 깝치는 중이라 그런 거였노ㅋㅋㅋㅋ

└ 뭐든 잘한다 잘한다 띄워주니까 진짜 지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봄

└ 나도 배우는 개짓거리라고 보지만 뭐라도 되는 건 맞지 않냐? 소설로 벌어들이는 수익 공개된 것만 월 억대던데

- 은아힐링 공지 떴다. 앞으로 하루에 두 편 씩만 올린다고 함. 이 새끼 돈 맛 보더니 초심 잃었네ㅅㅂ

└ 하루 두 편이면 매일 연참 아님? 초심 잃어서 좋다고 하는 반어법인가? 진짜 몰라서 물어보는 거임

└ 정보) 원래 하루에 다섯 편씩 올렸다

└ 미친놈들인가ㅋㅋㅋㅋ 초심은 니들이 잃은 거 아니냐? 다섯 편에 익숙해지니까 그게 당연한 건 줄 아네

└ 정보) 하루에 두 편도 다른 작가들이랑 비교하면 두 배가 넘는 연재 속도다

└ 아 몰랑! 배우고 뭐고 작가면 글이나 쓰라고!

서주환은 커뮤니티 반응을 보다가 이내 스마트폰을 껐다. 계속 봐서 얻을 게 없었다.

‘반응 무섭네.’

그나마 나름 양지 사이트에서 떠드는 반응이라 이 정도다. 음지로 가면 생전 처음 들어보는 별의별 욕이 다 튀어나왔다. 어째서 연예인들의 자살 사유에 악플이 있는 건지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서주환은 그러한 반응에 낙담하지 않았다. 정보가 생각보다 빨리 퍼진 것은 당혹스러웠으나 사실 오디션에 지원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이 정도 반응쯤은 충분히 예상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는 이 반응에 가장 좋은 대처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쇼 앤 프루브(Show and Prove). 보여주고 증명하라.

흔히 힙합 쪽에서 많이 쓰는 말이지만 서주환에게 더없이 어울리는 말이기도 했다. 그는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수많은 분야에 손을 뻗칠 생각이었다. 그런 미래가 예정되어 있는 이상 그는 매 순간 증명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그리고 소설을 제외하고 공식적인 첫 증명의 시간이 바로 이번 영화였다.

‘실력으로 보여준다.’

낙담하지 않았다고 해서 신경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결의를 다진 서주환의 눈에서 불덩이가 이글거렸다.

“채희 누나, 다시 시작하죠!”

잠시간의 쉬는 시간을 마친 그가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미친놈아, 좀 더 쉬어! 이제 5분 지났어!”

연습실 바닥에 뻗어있던 이채희가 빽 소리쳤다.

*

오디션 일주일 전, 서주환은 이채희에게 연기 훈련을 받았다.

오디션 일주일 후, 서주환은 여전히 이채희에게 연기 훈련 받고 있다.

“몇몇 씬은 이제 곧잘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아직 한참 부족해. 감각적으로만 하려고 하지 말고 머리로 이해를 한 다음 몸에 적용하란 말이야.”

“네, 누나.”

“잘 봐. 비슷한 표정이라도 미세한 차이에서 다른 느낌을 줄 수 있어. 그래서 얼굴 근육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는 거야. 그리고 분위기란 건 선천적으로 타고나지 않는 이상 표정과 몸짓에서 나와.”

“네, 누나.”

“더 쉽게 말해주자면, 나처럼 청순가련한 여자도 이런 표정을 짓고 자세를 취하면 차갑고 도도하게 보일 수 있다는 거지.”

“? 설명이 거꾸로 된 것 같은데요, 누나?”

“닥쳐.”

“네, 누나.”

이채희는 표정과 몸짓부터 연기의 기본을 가르쳤다. 원래라면 발성과 발음이 가장 먼저였으나 서주환은 이상하게도 처음부터 발성이 잡혀있었다.

서주환은 그렇게 이채희에게 이론을 배웠다. 눈앞에서 직접 보여주며 알려주니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연기(A+/A+) 재능에 의존해서 감각적으로만 표현하던 것에 디테일이 더해져갔다.

“누나, 이거 어려운데요? 어떻게 느낌은 표현할 수 있겠는데 좀 어색해요.”

“괜찮아. 표정과 몸짓을 자유자재로 하라고 했지만 사실 그건 무척 어려운 일이야. 네가 아무리 천재라도 고작 2주가지고 완벽할 수는 없는 게 당연해.”

특히나 표정연기는 더욱 그렇다. 숙련된 다년 차 배우들도 모든 표정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연기력이 좋다는 평을 받는다. 애초에 연기를 하기 위해서 모든 표정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니.

“그 정도로 얼굴 근육을 쓸 수 있게 됐으면 일단 성공이야. 이제부터 여러 감정에 따라서 네가 지을 수 있는 표정을 세분화 해봐. 우선은 크게 희노애락(喜怒哀樂)에서 몇 가지 표정을 만들 수 있는지 구분한 다음 점점 쓸 만한 표정들을 찾아내서 몸에 익히는 거야. 아,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네가 맡은 배역에 필요한 감정만 먼저 연습해.”

서주환은 이채희의 가르침을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그의 머리는 하나의 가르침을 내릴 때 반드시 하나를 이해했고, 그의 몸은 하나의 가르침을 내릴 때 최소 세 가지를 체득했다.

그 엄청난 성장속도의 비밀에는 당연히 ‘연기(A+/A+)’재능이 있었다. 이미 본능이 알고 있는 길을 이론이라는 탈 것에 타고 내달렸다.

여기에 더불어.

[‘몽마신의 축복’이 적용중입니다.]

[성(性)과 관련된 행운이 대폭 상승합니다.]

[어떤 일을 숙련할 때 200%의 추가 효과를 받습니다.]

[끝을 알 수 없는 정력이 샘솟습니다.]

그에겐 하루 10만 포인트에 이르는 축복이 상시 적용 중이었다. 심지어 매 순간 집중력과 사고력을 상승시켜주는 ‘집중의 축복’까지 있었으니 그에게 필요한 것이라곤 하고자 하는 의지와 그를 뒷받침해줄 체력이면 충분했다.

그리고 서주환에겐 의지와 체력이 둘 다 차고 넘쳤다. 덕분에 훈련은 죽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고강도로 이어졌고 보다 못한 루시가 걱정 어린 조언을 할 정도였다.

[주인님, 하루 정도는 쉬면서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러다 몸 상하겠어요.]

‘체력은 헬창의 축복이랑 아이템으로 회복하면 돼.’

[체력은 몰라도 정신력은요?]

‘힘든 게 당연한 거야. 남들은 수 년씩 연습한 걸 한 달도 안 돼서 넘으려는데 불평하면 안 되지. 그리고 수면(A+/A+) 재능 덕분에 살만해.’

[거짓말입니다. 주인님은 ‘자각몽’을 사용해서 꿈속에서도 연습하고 있잖아요.]

‘자각몽’은 ‘수면’ 재능의 특수능력으로 꿈속 세상을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흔히 말하는 루시드 드림이라는 것이었다. 서주환은 자각몽을 사용해서 꿈속에서도 연기 훈련을 했다. 때문에 평소와 달리 잠을 자도 피로회복이 늦어지고 있었다.

‘괜찮아. 견딜만 해.’

[…….]

루시는 말을 골랐다. 그녀도 주인인 서주환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무리 봐도 하루쯤은 휴식이 필요했다. 그러나 서주환은 시스템을 사용하는데 노력까지 아끼면 말이 안 된다면서 도무지 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루시는 설득을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지도자인 이채희가 주인님의 체력을 못 따라 올 겁니다. 그녀에게는 휴식이 필요해요.]

“…….”

서주환은 연습실 바닥에 널브러진 이채희를 바라봤다. 그녀는 손가락 하나 미동하지 않았다. 작게 부풀었다 오르내리는 가슴만이 그녀가 살아있음을 증명했다.

‘일단 채희 누나한테도 아이템을 사용해주곤 있는데…….’

기력보충용 영양제랍시고 이것저것 많이도 퍼먹였다. 아이템을 아낌없이 썼다는 말이다. 은근슬쩍 그녀가 먹는 밥에 체력회복용 조미료를 뿌리는가 하면 BCAA라고 속이고 물에 아이템을 섞어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채희의 체력은 점점 고갈되어 갔다. 그녀에게는 ‘헬창의 축복’이 없기 때문이다.

벌떡!

서주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쓰러져 있는 이채희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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