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420화 (420/501)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다름이 아니라 8월 15일 광복절이 껴있어서 연재처 업로드 문제로 16일은 휴재를 하게 되었습니다.

16일 화요일 연재분은 17일 수요일로 넘어갑니다...

17일에 두 편 업로드 된다는 뜻입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운달 드림.

*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오디션

민선하가 망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러갔다. 마지막 참가자의 이름이 호명되었다는 뜻이다.

이내 앞문이 열리고 훤칠하게 생긴 남자 한 명이 들어섰다.

민선하는 무대에 오르는 남자를 보고 놀란 눈을 크게 떴다.

‘프로필보다 훨씬 느낌 좋은데?’

사진이 인물을 다 담아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남자는 직접 봐야만 알 수 있는 기묘한 매력이 있었다.

‘눈을 뗄 수가 없네.’

겉으로 드러난 생김새 때문이 아니다. 민선하는 영화판을 구르며 그보다 더 잘생기고 예쁜 사람을 적잖게 봐왔다.

하지만 그런 선남선녀들 중에도 지금 무대에 오른 남자만큼 눈길을 끄는 사람은 몇 없었다.

뭇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아우라.

가끔 저러한 기질을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주위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곤 한다. 배우로서는 하늘이 내린 재능이라고 봐도 좋다.

“안녕하십니까. 서주환이라고 합니다.”

중저음의 정갈한 목소리가 듣기 좋게 울렸다. 이후 뻔한 문답이 몇 차례 이어졌다.

민선하는 그 과정에서 서주환의 목소리에 발성이 잡혀 있는 것을 느끼고 흥미로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연기 연습을 좀 했나 보지?’

그렇다고 서주환에 대한 기대감이 크게 올라가거나 하진 않았다. 훤칠한 모습과 기묘한 매력이 잠시 눈길을 끌긴 했으나 단지 그뿐이었다.

‘일단 마스크가 캐릭터랑 안 어울려.’

지금 선발하려는 살인마 배역은 동네청년의 서글서글한 인상이 베이스로 깔려야 한다. 그러다 살인 장면에서는 분위기를 완전히 반전시켜서 쾌락살인마의 잔인한 면모를 드러내야 했다.

한데 서주환은 얼굴형 자체가 남자답게 선이 굵고 강인한 인상이다. 동시에 눈매와 턱 선이 날렵한 늑대상이기도 했다. 살인마는 몰라도 유약하고 서글서글한 동네청년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문제가 한 가지 더 있었다.

민선하는 아쉬운 기색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분위기가 너무 세.”

앞서 하늘이 내린 재능이라 했지만 그것이 언제나 장점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극단적으로 예를 들면 ‘행인1’이 ‘주인공’과 같은 존재감을 내뿜으면 안 되는 것과 같다. 오히려 축복 받은 재능이 발목을 잡는 꼴이었다.

물론 노련한 배우라면 그 존재감마저도 표정과 몸짓을 통해 조절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력도 없는 서주환이 그 정도 연기력을 보여줄 거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심지어 그는 본디 배우가 아니라 웹소설 작가겸 위튜버였으니.

다만 한 가지 신경 쓰이는 바가 있었다.

‘채희는 뭘 보고 기대하는 거지?’

민선하가 아는 사람 중 연기에 가장 깐깐한 사람이 바로 이채희다. 한데 그런 그녀가 서주환을 향해 ‘엄청난 물건’이라고 지칭했다. 십여 년간 이채희와 알고 지내면서도 몇 번 들어본 적 없는 극찬이었다.

민선하는 의문을 감추지 못하고 힐끔 옆을 돌아봤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채희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

흠칫 놀라서 눈을 크게 뜨는데, 이채희가 픽 웃으며 속삭이듯 나무랐다.

“이 망상증 환자.”

“내, 내가 뭘?”

“됐고, 일단 앞이나 봐.”

“어?”

“시작해야지.”

이채희가 무대를 향해 눈짓했다. 그에 민선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제 연기를 시작할 차례다. 여기서부터는 감독인 그녀가 형식상이나마 진행을 해야 한다.

민선하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흠흠. 공지했던 대로 지정연기부터 볼게요. 먼저 Scene 6과 Scene7 두 장면을 이어서 해보세요.”

이채희가 말을 받았다.

“Scene 7의 상대역은 제가 해드릴게요. 이쪽 보시고 대사 치시면 됩니다.”

이채희의 어조는 다소 딱딱한 투였다. 일부러 감정을 빼고 사무적으로 말한 것이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녀와 서주환의 스캔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서주환도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노라 대답했다. 실력으로 붙을 자신이 있는데 굳이 오해를 살 필요가 없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그리 말한 서주환은 품에서 은테 안경을 꺼내 썼다.

*

S#6 ─ 김정민(살인마) 방

불이 꺼진 방 안.

끼이이- 소름 돋는 선율이 흐른다. 날카롭게 긁어내는 현악 소리가 섬뜩하다. 불안정한 음색 사이로 쿵쿵거리는 소리가 뛰어든다.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한껏 조성된다.

책상 앞에 앉은 김정민, 스탠드의 조그만 불빛에 의지해서 펜을 움직인다. 태블릿 안에 그림이 빼곡하다. 스크롤을 내린 그가 여백에 글자를 적는다.

End.

쿠구궁! 음악이 멎는다. 딸칵, 방 안의 불이 켜진다.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사라진다.

“으으윽~!”

김정민이 앓는 소리를 내며 힘차게 기지개를 켠다. 오랫동안 앉아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듯 목과 허리에서 우두둑 소리가 난다.

김정민이 상쾌한 표정으로 웃으며 만세를 부른다.

“끝났다! 자유다! 백수 만세!”

해맑게 외친 김정민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과장되게 어깨를 들썩인다. 발목까지 틀며 우스꽝스럽게 미끄러지는 모양새가 춤이라도 추는 듯했다. 난잡한 춤이 묘하게 중독성 있다.

그때 쿠궁! 끼이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공포스러운 음악이 다시 흘러나온다. 춤을 추던 김정민이 흠칫 놀라며 책상으로 다가간다.

“어우, 깜짝아! 깜빡했네.”

혼잣말을 한 김정민이 마우스를 조작한다. 이내 노래 소리가 뚝 멎는다. 섬뜩한 노래는 컴퓨터에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노래를 끈 김정민이 책상 서랍을 열고 뒤적거린다. 그러나 찾는 물건이 보이지 않는 듯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내 무언가 깨달은 그가 한숨을 푹 내쉰다.

“아, 다 피웠었지. 끝낸 기념으로 한 대 피우고 싶은데…….”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입맛을 다신 그가 머리를 긁적인다. 그러다 대충 외투를 걸치고 방문을 나선다.

*

민선하는 놀란 눈으로 무대를 바라봤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서주환이 연기를 하고 있었다. 그가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더니 보이지 않는 외투를 걸치고 방문을 여는 시늉을 했다. 일체의 동작이 더 없이 자연스러워서 있지도 않은 사물이 보이는 듯한 착시가 일었다.

‘저게 경력도 없는 배우라고?’

따지고 보면 배우도 아니다. 분명 그가 쓴 소설들을 봐왔는데? 연관 동영상로 뜬 위튜브 채널도 몇 번 본 적이 있다. 그는 배우가 아니라 작가겸 위튜버였다.

그래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위기도 완전히 바뀌었어.’

조금 전만 해도 강렬한 인상을 풍기던 서주환은 안경을 착용한 순간 눈매가 묘하게 누그러졌다. 그래도 무표정하긴 마찬가지라서 지금만큼 놀라진 않았다. 한데 대사를 치는 순간 표정이 싹 바뀌더니 유순하고 서글서글한 청년이 되었다. 고작 소품 하나 착용한 걸로 일어난 변화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다.

그때 옆에서 조그맣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역시.”

이채희가 만족스럽게 웃고 있었다. 그녀는 이 상황이 놀랍기는커녕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였다.

민선하는 한층 진중해진 얼굴로 앞을 바라봤다. 무대를 내려갔던 서주환이 다시 올라오고 있었다. 그가 문을 여는 동작을 취하더니 실없이 웃는 표정으로 심사위원석을 바라봤다.

“안녕하세요, 이모.”

이채희가 대사를 받았다.

“엄메, 만화가 청년 아녀? 왜 이렇게 오랜만이야!”

Scene 6에서 Scene 7로 자연스럽게 흐름이 이어졌다.

서주환(김정민-살인마)과 이채희(편의점주)가 대사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

S#7 ─ 아파트 편의점

편의점주가 며칠 만에 온 김정민을 반겼다.

“엄메, 만화가 청년 아녀? 왜 이렇게 오랜만이야!”

김정민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마감하느라 며칠 동안 집에서 안 나왔어요.”

“그려, 일은 잘 끝냈어?”

“흐흐, 이제 백수입니다.”

“만화 짤린겨?!”

“아뇨. 완결 쳤거든요. 프리랜서가 일 끝나면 백수죠, 뭐.”

“에구, 놀래라. 단골손님 한 명 줄어든 줄 알았잖어.”

“아이, 섭섭하게. 그걸 걱정하신 거였어요?”

“호호. 아무튼 시간 맞춰 잘 왔어. 도시락 살 거지? 지금 막 들어왔거든.”

“오, 좋네요.”

김정민이 콧노래를 부르며 오늘은 뭘 먹을까 하고 도시락을 고른다. 이내 마음에 드는 도시락을 찾은 그가 계산대에 선다. 그리고 뒤편에 담배를 가리키며 말한다.

“담배도 하나 주세요.”

“으응?”

편의점주가 의아한 눈으로 되묻는다.

“마감 끝나면 안 피우지 않어?”

“원래 끝나고 마지막으로 하나 피우거든요. 그런데 다 떨어져서요.”

“아이구, 그냥 피우지 말지.”

“한 개비만 피울 거예요.”

“그려. 요거 마쎄 맞지?”

편의점주가 대답도 듣지 않고 담배 한 갑을 집어 포스를 찍는다. 단골손님이 항상 피우는 담배 정도는 외우고 있다.

“그럼 또 올게요~.”

“그려. 담배 너무 많이 피우지 말구!”

“네엡!”

유쾌한 목소리로 대답한 김정민이 편의점을 나갔다. 그리고 구석에서 자리를 잡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연기를 한 모금 빨아들인 그가 여전히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혼잣말을 한다.

“또 소재 수집하러 가야겠네~.”

어쩐지 그 목소리가 섬뜩하다.

*

Scene 7 아파트 편의점 장면이 끝났다.

이쯤에서 민선하를 비롯한 심사위원석의 모두가 깨달았다. 프로필만 보고 무시했던 저 웹소설 작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지원한 건가 싶었는데 결코 뜨내기 배우 따위가 아니었다.

“…두 번째 지정연기, Scene 18 보겠습니다.”

이번 오디션 지정연기는 두 개다. 하지만 장면은 세 가지다. 컷이 짧은 Scene 6, 7을 묶어 하나로 보고 Scene 18을 두 번째 연기로 취급했다.

지정연기로 세 개의 씬을 정한 이유가 있었다.

Scene 6, 7은 유순한 동네청년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 그리고 Scene 18은 비정상적으로 일그러진 쾌락살인마의 광기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상반된 두 가지 모습을 완성도 있게 연기하기란 숙련된 배우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투자처의 대머리 중년인은 침을 꼴깍 삼키며 서주환을 응시했다. 부디 Scene 18만큼은 못하기를 바라면서다.

그때 서주환이 말했다.

“잠시만요.”

그는 안경을 다시 품에 넣었다. 그리고 아주 잠깐 눈을 감았다. 이내 생글생글 웃고 있던 얼굴이 무표정하게 변하며 갑자기 채도가 낮아진 듯 흑백이 뚜렷해졌다.

다시 눈을 뜬 그가 심사위원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시작하겠습니다.”

그리 말한 서주환의 눈이 평소보다 날카롭게 번뜩였다. 이어서 눈꺼풀이 접히며 반달을 그렸다.

[특수능력, ‘살기(殺氣)’가 활성화됩니다.]

서주환의 몸에서 섬찟한 기운이 사방으로 뿌려졌다.

무대 위에 더 이상 유순한 동네청년은 없었다.

[특수능력, ‘메소드 연기’가 활성화됩니다.]

[캐릭터, ‘김정민(살인마)’에 대한 이해도를 반영합니다.]

[캐릭터의 생각과 감정에 동화됩니다.]

[몰입도 - 50%]

순간 꾹 다물렸던 서주환의 입에서 바람 소리가 삐져나온다.

“흐.”

이내 부들부들 떨린 입꼬리가 돌연 쭉 찢어진다. 기괴하게 일그러진 미소가 짐승의 것처럼 섬뜩하다. 쩌억, 맞닿은 이가 위아래로 벌어지며 광소(狂笑)를 토해낸다.

“흐하하하하하하!”

살인마의 웃음소리가 장내를 쩌렁쩌렁 울렸다.

무대 밖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빨려들었다.

“……!”

서주환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움찔 몸을 떨었다. 담이 약한 몇몇은 헉, 하고 놀란 숨을 들이켰다. 기괴한 웃음소리보다도 자신들을 쓸어보는 눈빛이 더 섬찟했기 때문이다. 반달처럼 접힌 눈웃음에서 싯누런 빛이 나오는 듯했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