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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페티시가 보여-419화 (419/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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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오디션

오디션장에 대기 중인 인원이 생각보다 많았다.

서주환은 의외라는 눈으로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지원자가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여러 가지 요인이 겹쳐서 캐스팅할만한 배우가 없다고 들었다. 한데 얼핏 봐도 지원자가 열 명 이상이다. 비공개 오디션 치고는 상당한 인원수다.

‘심지어 몇 명은 꽤 익숙한 얼굴들인데.’

나름대로 얼굴이 알려진 배우도 몇몇 보였다.

[지원자가 없는 게 아니라 감독 눈에 차는 배우가 없다는 뜻이었나 보군요.]

‘그런가봐. 하긴, 민선하 감독 작품인데 지원자가 없을 리 있나.’

민선하가 아무리 대박 아니면 쪽박의 반반감독이라 불린다지만 천만관객을 찍어본 감독이다. 그러니 이번 작품이 쪽박을 칠 확률이 높다하더라도 지원할 이유는 충분했다. 인지도 없는 배우들 입장에선 영화가 망한다 해도 얼굴 도장만 찍을 수 있다면 유의미할 테니 말이다.

‘음. 오디션 떨어질 수도 있겠는데?’

[그럴 리가요! 주인님, 긴장할 것 없습니다. 주인님이라면 단번에 합격할 수 있을 거랍니다!]

루시가 응원을 건넸다. 별 의미 없이 한 생각인데 아무래도 긴장한 것처럼 보였나 보다. 서주환은 내심 웃음을 흘리며 루시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래, 우리 루시가 응원해주는데 당연히 합격이지.’

그렇게 속으로 루시와 잡담을 나누고 있자니 문득 주변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그를 향한 목소리가 들렸다.

“저 사람 서주환 아닌가?”

지원자 중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

다른 지원자가 중얼거린 사람을 돌아보았다.

“저 분 유명한 사람인가요?”

“웹소설 작가예요. 위튜버이기도 하고.”

“네? 배우가 아니라요?”

“연기 쪽이랑은 전혀 상관없는 것 같던데요.”

“그런 사람이 왜 여기 있대요?”

“저도 모르죠. 여기 있는 거 보면 오디션 보러 온 것 같은데… 설마 그게 사실인가?”

말하던 지원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에 옆에 있던 지원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그가 목소리를 낮춰 속닥였다.

“저 사람, 얼마 전에 이채희 배우님이랑 스캔들 났었잖아요.”

“아……!”

“하아. 전 이미 리액트 쪽에서 꽂아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스캔들 때문에요? 이채희 배우님이 직접 아니라고 별스타에 올리셨던데…….”

“스캔들은 거짓일지 몰라도 친분이 있다는 건 사실이니까요. 안 그럼 웹소설이나 쓰던 사람이 왜 여기 있겠어요? 설마 연기력으로 붙으려고?”

“그런…….”

두 사람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이미 상당수의 지원자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의 추론은 제법 그럴 듯하게 들렸다.

자연히 지원자들의 시선이 서주환에게 모였다.

‘합격자가 내정되어 있다고?’

‘감독이 그 민선하인데 내정자가…?’

‘이채희 선배님 인맥이면 가능할지도…….’

‘쯧. 저 새끼는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이채희 배우님이 실력도 없는 사람을 상대역으로 뽑을 리가 없잖아,’

‘헐, 진짜 서환 님이다. 지금 싸인 해달라고 하면 안 되겠지?’

‘잘생기긴 했네. 그런데 잘생겼다고 다 배우하나? 연기가 돼야지.’

서주환을 바라보는 지원자들의 시선에 은근한 적대감이 어렸다. 그 사이엔 초롱초롱한 팬의 눈망울도 있었지만 서주환은 미처 보지 못했다.

‘대본이나 외우자.’

그는 사람들의 관심을 무시하고 대본에 시선을 고정했다. 구태여 일일이 해명하는 것도 웃기는 노릇이었다.

[순식간에 공공의 적이 되셨군요.]

‘그러게. 별로 상관없지만.’

[덤덤하시군요. 저는 주인님께서 원래 합격자를 신경 쓰실 줄 알았는데.]

‘글쎄… 루시, 재밌는 거 알려줄까? 방금 말 꺼낸 사람, 그 놈이 원래 합격자야.’

서주환은 곁눈질로 처음 말 꺼낸 남자를 살폈다. 역시 기억에 있는 얼굴이었다. 김주경. 회귀 전 이 영화의 ‘살인마 역’을 맡았던 배우다.

‘아마 연기력 논란으로 대차게 까였었지?’

남자는 제법 괜찮은 연기력을 갖고 있었지만 이채희와 대비되어 상대적으로 부족한 실력이 부각됐었다. 결국 작품의 유일한 오점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도 기본 실력은 괜찮아서 나중에 꽤 유명해졌었지만.’

[어쨌든 오디션을 합격할 정도는 된단 말이군요.]

‘그래. 하지만 채희 누나한테 도움이 될 놈은 아니야. 캐스팅 무산만 안 됐어도 저 놈이 뽑힐 일은 없었을 걸.’

캐스팅 미스. 그것만 아니었어도 회귀 전의 ‘스토커’는 대박을 쳤을 것이다. 그만큼 연출과 사운드가 예쁘게 빠졌다. 다른 배우들의 연기력도 하나같이 대단했고.

하지만 초반부를 견인할 배우의 실력 부족으로 인해 영화의 평가가 떨어지고 말았다. 흥행성적은 중박 정도라고 해야 할까. 손익분기점은 한참 넘겼지만 반반 작가라 불리는 민선하의 커리어 중 유일하게 애매한 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번엔…….

서주환이 내심 퀘스트 내용을 상기하며 다시 대본에 집중하려고 할 때였다. 루시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주인님은 저 남자를 싫어하시나요?]

‘응? 갑자기 그건 왜?’

[묘하게 저 남자를 지칭할 때 날이 서 있으신 것 같아서요. 이놈 저놈 하시기도 했고요.]

‘아아.’

서주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래를 알고 있다 보니 저도 모르게 말투가 세게 나갔다.

‘딱히 나한테 해를 끼친 놈은 아닌데… 저 놈 나중에 나락가거든. 음주운전으로.’

인적 드문 곳에서 사람을 쳤다던가. 운전석 바꿔치기니, 합의하고 조용히 넘어가느니 수작을 부리다가 오히려 일이 더 커졌었다.

‘그래서 그런지 딱히 죄책감이 없네.’

음주운전 살인미수범의 합격여부 따위 알 게 무언가.

서주환은 코웃음을 치며 대본에 집중했다.

그리고 잠시 후.

- 10분 후 시작하겠습니다! 호명하는 순서대로 들어와 주시길 바랍니다!

오디션이 시작됐다.

*

반반감독이라 불리는 민선하 감독.

그녀는 자신의 별명이 마음에 안 들었다.

‘치킨도 아니고 반반이 뭐야. 그게 천만관객 영화를 찍은 감독한테 붙일 별명이냐?’

암만 생각해도 듣기 좋은 별명은 아니다. 대박이라 부를만한 영화를 네 편이나 찍었는데 너무하지 않은가.

‘물론 망할 때도 있긴 하지만…….’

정말 같은 감독이 찍은 게 맞냐는 평까지 나올 정도로 대차게 말아먹은 작품이 세 개다. 어떻게 된 게 영화 일곱 편을 찍는 동안 번갈아가면서 흥망을 반복할 수 있는 건지 스스로도 이해가 안 됐다. 그 때문에 슬슬 투자자 쪽에서도 대박을 친 다음 작품에는 몸을 사리려 들었다.

‘아, 징크스.’

그 망할 놈의 징크스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이전 작품에서 대박을 냈더니 이번에는 캐스팅부터 꼬이고 만 것이다.

‘갑자기 마약유통이 말이 되냐고! 이미지가 딱이었는데 진짜로 문제 있는 놈이라니!’

민선하는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렀다. 도무지 이 놈의 징크스를 떨쳐낼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반반감독이라는 멸칭을 씻어내기 위해 직접 비공개 오디션까지 감행했거늘 도무지 쓸 만한 배우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옆에 앉아있던 대머리 중년이 그녀를 돌아보며 속닥였다.

“민 감독님, 다음 순서입니다.”

민선하는 무심코 코를 막으려다가 애써 웃음 지었다. 대머리 중년은 투자처에 속한 사람이었다.

‘아, 입 냄새.’

대머리는 괜찮다. 그건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거니까. 하지만 이는 좀 잘 닦아줬으면 좋겠다. 밥 처먹고 양치하기 귀찮으면 제발 구강청결제라도 뿌려라.

입 냄새는 계속 풍겼다.

“그 배우가 연기를 참 잘해요. 살인마 역에 아주 잘 어울립니다. 감독님도 보시면 마음에 드실 거예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 배우를 뽑아라.

대머리 중년인이 말을 흐리고 눈빛으로 뜻을 전했다.

민선하는 애써 미소를 유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호호. 연기를 잘 하면 당연히 뽑아야죠. 제가 유심히 보겠습니다.”

“허허허. 무조건 마음에 드실 겁니다.”

무조건 뽑으라 이건가?

민선하의 미소에 살짝 경련이 일어났다. 그녀는 잘 나가는 감독이지만 연기에는 재능이 없었다.

다행히 중년인은 눈치 채지 못한 듯 허허롭게 말을 이었다.

“제가 케이지엔터에 특별히 잘하는 배우를 보내라고 말해뒀거든요. 얼굴도 아주 잘 생겼답니다.”

케이지엔터와 연이 있으셨군.

민선하는 속으로는 코웃음을 치며 웃는 얼굴로 맞장구쳤다.

“호호. 살인마 잘생긴 걸 어따 써먹으…….”

“예?”

“…써먹을 데가 많지요. 평소에는 주위 평판이 좋은 캐릭터니까요. 선악이 공존하는 페이스, 그게 중요하거든요. 잘생겼다니까 기대가 되네요.”

“허허, 그렇죠?”

“네네.”

아, 천만감독이면 뭐하나. 결국은 투자자가 갑인 것을. 반반감독이라는 오명만 아니었어도 좀 덜 했을 텐데 짜증이 차올랐다.

“안녕하십니까, 케이지엔터 소속 김주경이라고 합니다!”

투자처 사람이 말한 배우가 올라왔다.

‘연기 못하기만 해봐라.’

그때는 지랄 좀 해도 괜찮겠지.

민선하는 욕 한 바가지를 일발장전하고 지원자의 무대를 지켜봤다. 정해진 시나리오의 지정연기 이후 지원자의 자유연기가 이어졌다.

곧 연기를 끝낸 지원자가 무대를 내려갔다.

“음…….”

민선하는 애매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생각보다 지원자의 연기는 괜찮았다. 하지만 만족스럽냐고 하면 그건 아니었다.

‘일단 지금까지 본 사람들 중에는 제일 나은데.’

간신히 합격점을 줄 정도는 된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상대역인 이채희가 워낙 연기를 잘한다는 것이었다.

민선하는 오른편에 앉은 이채희를 돌아봤다. 두 사람은 꽤나 오래된 인연이었다.

“채희야, 네가 보기엔 어때?”

“…나쁘지 않네.”

간신히 쓸 만하다는 뜻이군. 자신과 비슷한 평가였다. 동시에 지금까지 중 가장 좋은 평가이기도 했다.

“이제 한 명 남았군요. 프로필을 보아하니 벌써 합격자는 정해진 것 같습니다, 허허.”

투자처의 대머리 중년인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민선하는 그 말에 동의했다. 얄밉긴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남은 한 명의 프로필을 보니 별 기대도 안됐다.

다만 의아한 마음에 프로필을 계속 살펴보게 되었다.

‘이 분이 왜 여기 지원을 한 거지?’

서주환. 아는 이름이다.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그가 쓴 소설을 재밌게 봤다. 특히 최근 문학공모전 수상 작품집 타이틀을 차지한 ‘소통의 부재-서애필’은 한 편의 독립영화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었다.

‘그런데 작가가 왜? 혹시 채희랑 난 스캔들이…?’

민선하는 힐끗 옆에 앉은 친구의 표정을 살폈다. 이채희의 얼굴 위로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저, 저저, 저 년이 진짜로 열 살 차이 나는 애기를?! 설마 연하남한테 홀려서 꽂아주려는 건 아니겠지!?’

민선하는 경악하여 이채희의 어깨를 치려다가 간신히 손을 멈췄다. 자신이 아는 이채희는 그야말로 연기에 미친년이었다. 정말로 연하남한테 홀렸더라도 연기를 우선할 사람이 바로 이채희란 여자였다.

그녀는 책상 밑으로 이채희의 허벅지를 툭툭 때리며 속삭였다.

“채희채희, 너 서주환 작가랑 많이 친해?”

스캔들이 진짜냐고 돌려 물은 것이다. 그녀는 십 년 지기 친구와 표정으로 대화할 수 있는 초능력이 있었다.

이채희가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얘 진짜 엄청난 물건이야.”

“……!”

민선하의 얼굴 위로 경악이 어렸다.

‘무, 무무, 무, 물건이 엄청나다고?!’

민선하는 확신했다.

했네, 했어! 아주 단단히 홀렸어! 저 눈빛 좀 봐!

이채희는 대체 무얼 떠올린 건지 몽롱하게 풀어진 눈으로 프로필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붉은 혀가 날름대며 입술을 핥았다. 그녀가 진한 미소 띤 얼굴로 민선하를 돌아보며 말했다.

“너도 보면 마음에 들 걸?”

“!!”

보다니, 대체 뭘?!

민선하는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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