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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스캔들
서주환은 곧장 욕망 퀘스트의 내용을 확인했다.
『성장과 정체의 기로!』
▶ 이채희는 5살의 나이로 아역배우가 되어 29년간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그녀는 배우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열정과 노력을 쏟았습니다. 재능이 있던 그녀는 빠르게 성장했고 불과 34세에 자신의 재능을 한계치까지 개발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이채희는 매너리즘에 빠졌습니다. ‘배우’로서 자신의 성장이 몇 년째 정체되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아니, 난 더 잘 할 수 있어!’
이채희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기보단 더한 열정과 노력으로 극복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영화 ‘스토커’를 다른 때보다 더욱 철저하게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주변 상황은 그녀를 도와주지 않습니다. 중요 배역을 맡은 배우 한 명이 마약유통 사건으로 구속되어 촬영 일정이 어그러진 것입니다. 또한 공석이 된 배역에 어울리는 마땅한 배우도 없습니다.
이대로라면 영화 ‘스토커’는 이채희의 각성제로 작용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채희가 매너리즘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이채희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 달성 조건: 이채희의 ‘연기’ 재능 등급 한계 돌파.
▶ 보상: 1,000,000LP
퀘스트를 확인한 서주환은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나한테 배우를 하라는 소린가?’
아무리 봐도 ‘살인마’ 역을 맡으라는 것으로 보였다.
루시가 그렇지 않다며 설명했다.
[꼭 배우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달성 조건은 이채희의 ‘연기’ 재능 등급을 높이는 거니까요.]
‘음. 하지만 그걸 달성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내가 배우가 되는 거야. 그치?’
[그건…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인님께서 내키지 않는다면 굳이 수행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긴 하지. 이제 와서 100만 LP가 아쉬운 것도 아니고.’
이미 월에 벌어들이는 수익이 보상으로 주는 포인트의 몇 배를 가볍게 넘어간다. 퀘스트를 실패한다고 불이익이 있는 것도 아니니 목 맬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특수능력 ‘성교사(性敎師)’의 호감도 버프를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겁니다. 직접 배우가 되는 것보다는 시간이 걸리겠지만요.]
루시의 말대로다. 촬영을 시작하면 그때 견학을 목적으로 따라가기만 해도 충분하다. 그럼 호감도 등급에 따른 ‘성교사’의 버프가 적용될 테고 이채희는 기존보다 좀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한계돌파를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그건 서주환이 배우가 된다 해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평화로운 일상을 지키고 싶다면 한 발 물러나 있는 게 사리에 맞다.
하지만 서주환은 이성이 아닌 마음이 시키는 대로 생각을 정리했다.
‘배우… 해볼까?’
[괜찮으시겠어요?]
‘좀 귀찮아질 것 같긴 하지만… 흥미가 없는 건 아니었거든. 그리고 본격적으로 하겠다는 건 아니야. 살인마 역은 비중도 적다잖아. 뭣보다…….’
서주환은 테이블에 엎어져 씨근덕대고 있는 이채희를 바라봤다.
‘내가 나름대로 저 누나 팬이거든.’
지난 술자리에서 이채희에게 팬이라고 말한 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녀가 워낙 연기를 잘했어야지. 그는 회귀 전부터 이채희가 나오는 작품 대부분을 찾아봤다.
‘그리고 난 노력하는 사람이 좋아.’
특히 한계를 뛰어넘어보겠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좋아한다. 시스템으로 쉽게 능력을 얻는 자신과 대비되기 때문일까. 그는 제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이 멋있게 느껴졌다.
*
다음 날.
서주환은 오늘도 리액트 엔터로 향했다. 지난밤 정리한 마음을 배성근에게 전하기 위함이었다.
‘영화 스토커의 살인마 역에 지원한다.’
그리고 이채희와 합을 맞추며 그녀의 잠재력을 모두 끌어올린다. 그리하여 과거와 달리 ‘스토커’를 대박 작품으로 만든다.
‘얼굴은 좀 팔리겠지만.’
감수하기로 했다. 어차피 이미 위튜브 때문에 얼굴이 상당히 알려진 상태다. 새삼 배우로서 조연을 하나 맡는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루시, 채희 누나의 연기 재능이 S급으로 오르면… 결정석을 얻을 수 있을까?’
[가능합니다.]
답은 긍정적이었다.
보상으로 걸린 100만 LP가 아니라 아홉 번째 S급 결정석을 얻기 위해서라도 이채희와 함께 작품을 해야 했다.
그렇게 계획을 다지며 리액트 엔터로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
서주환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주위를 둘러봤다. 오늘따라 유독 사람들의 시선이 몰리는 것 같았다.
‘뭐지?’
평소에도 시선을 많이 받긴 했다. 키 크고 체격 좋은 것은 물론 얼굴까지 잘생겼으니 힐끔거리며 쳐다보는 것 정도야 일상다반사였다. ‘페로몬’과 ‘매혹(A+/A+)’재능에 홀려서 번호를 따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한데 오늘 사람들의 시선은 평소와 뭔가 달랐다.
‘좀 수군대는 느낌인데.’
서주환은 그 시선의 정체를 사옥에 도착하고서야 알 수 있었다.
배성근이 말했다.
“…주환아, 너 스캔들 났다.”
“스캔들? 내가? 누구랑?”
“채희 누님이랑.”
“그게 뭔…….”
서주환은 순간 입을 다물었다. 워낙 문란하게 살다보니 정말로 자신도 모르는 새에 뭔가 일을 쳤나 스스로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뭐지? 시발, 나 어제 누나랑 섹스 했었나? 아니, 안 했는데? 루시야, 나 어제 뭐 없었지?’
[예. 배성근이 대리를 불렀고, 집에 데려다 줘서 얌전히 주무셨습니다.]
‘그렇지. 어제 마사지하던 중에 성근이 형 와서 불발 났었잖아.’
[맞습니다.]
서주환은 그제야 내심 안도했다.
그때 배성근이 스마트폰을 보여줬다. 폰 화면에 떠오른 것은 <‘달빛을 그리는 여인’ 이채희와 ‘위튜버 서환’은 무슨 사이?> 이라는 어그로성 제목의 인터넷 기사였다. 그 외에도 ‘열애 중’이라던가 ‘10살 차이’등을 강조한 제목의 기사들이 줄줄이 보였다.
서주환은 기사를 쭉 보다가 사진 몇 장을 보고 헛웃음을 쳤다.
“허. 이건 또 언제 찍었대?”
사진 중에는 길거리에서 이채희를 안고 있는 그의 모습이 있었다.
“와씨, 그걸 이렇게 찍어놨네.”
처음엔 이채희인 줄도 모르고 목덜미를 잡았던 장소다. 그나마 여자가 이채희인 걸 안 후 자세를 바꿔서 일으켜 세워준 건데, 어찌나 절묘하게 찍었는지 사진 속의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서주환은 혹시나 배성근이 오해하기 전에 설명했다.
“형, 이거 채희 누나가 쓰러질 뻔한 거 잡아준 거야. 어제 우연히…….”
“괜찮아, 변명 안 해도 돼.”
배성근은 생각보다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잘랐다. 그가 픽 웃으며 서주환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도 어제 같이 있었는데 당연히 찌라시인 거 알지. 그냥 너 모르고 있는 것 같아서 알려준 거야.”
“…그래? 어쨌든 회사 차원에서 해명해야 되는 거 아니야?”
“으음. 해명 해야지. 그런데 회사 차원에서 할 필요는 없을 걸?”
“그럼?”
서주환은 어리둥절한 얼굴이 됐다. 소속사 최고 여배우의 스캔들이 났는데 회사 차원에서 케어를 할 필요가 없다니? 이게 도통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배성근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이미 누님이 개빡쳤거든. 지금쯤 직접 별스타에 올렸지 싶은데.”
“?”
서주환은 오랜만에 별스타 앱을 실행시켰다. 팬들이 그토록 피드 좀 올려달라고 아우성을 쳐도 귀찮아서 뒷전으로 미뤄두었던 어플이다.
이채희의 계정을 검색해서 들어가자 2분 전에 올라온 따끈따끈한 게시글이 보였다.
<기레기들은 봐라. 내가 요즘 너무 순한맛으로 지냈나봐^^>
여러분, 이 CX 기XX 새X들은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을까요? 저 진짜 좋게 말하고 싶은데 이걸 얼마만큼 좋게 풀어서 말해줘야 알아 처먹을지 감을 못 잡겠네요. 좋은 방법 있으면 알려줄 사람?
(중략)
[사진1 - 남자에게 안겨 있는 모습]
- 저 날 생리라서 죽을 맛이었는데 뭐 뜨밤이 어째? 장난하냐? 가랑이에서 피가 줄줄 새는데 뜨밤은 XX아. 내 손에 들린 약 봉투 보이지? 바닥에 쏟아진 약들도 잘 찍혔네. 빈혈 때문에 쓰러지려는 거 저 남자가 잡아준 거니까 헛소리 그만해라, 좀.
[사진2 - 남성과 집에 함께 들어가는 모습]
- 왜 집에 같이 들어갔냐고? 원래 알던 지인이라서 차나 한 잔 하고 가라고 집에 초대했다, 왜. 불만 있어?
나 저 동생한테 미안해 죽겠어. 나야 열 살 차이 나는 애기 잡으면 이득이지. 그런데 쟤는 아줌마랑 엮여서 무슨 잘못이니? 연예인을 공인이라면서 막 다루는 것도 빡치는데 일반인까지 엮어서 팩트확인 없이 기사 x대로 쓰기 있어?
또 개XX 할 인간들 생각나서 참고하라고 쓴느데, 저 동생 집에 들이고 30분도 안 지나서 우리 성근이도 집에 왔으니까 헛소리 그만해. 저때 뜨밤을 보냈으면 XX 난 쓰리섬을 한 건데ㅋㅋㅋㅋㅋㅋ 얼탱이가 없어가지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성근이가 내 매니저 동생인 건 알지? 어렸을 때 내가 기저귀도 갈아준 적 있는 동생이야^^
(중략)
우리 팬분들 또 이상한 기사 보게 해서 죄송해요ㅠㅠ
나 정말 바르고 고운 말만 쓰고 싶은데 가만히 두지를 않네…….
이러니까 청순가련한 여주 배역이 안 들어오지 ;ㅅ;
아무튼 다 오해니까 걱정 마세요. 나 우리 팬들이랑 연애하고 있잖아~ 바람 안 피웠어!
서주환은 게시글을 보며 저도 모르게 감탄을 흘렸다.
“오…….”
원래 이런 성격인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배짱 두둑한 사람이다. 이렇게 정리도 없이 마구잡이로 쓴 게시글로 해명을 때려버린다고?
웃기는 건 이게 먹힌다는 것이다.
- 누가 우리 언니 바르고 고운말 프로젝트 뺏어갔어?! 죽을라고!
└ 그 프로젝트 시작은 했었답니까?
└ 쉿!
- 뜨밤… 피 줄줄… 쓰리……쿨럭. 우리 언니 이미지 어쩔…….
└ 원래 이런 이미지셨습니다^^
└ 놀랍게도 본인이 SNS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 더 놀라운 사실. 소속사에서는 원래 이채희에게 청순가련한 국민여동생배우 이미지를 잡아줬었다.
└ 지금은 그저 국민 이모ㅋㅋㅋㅋㅋ
- 아, 왜 찌라시임. 드디어 우리 눈나 결혼하는 줄 알았더니ㅡㅡ
└ ㄹㅇㅋㅋ 맨날 열애설만 내지 말고 진짜 연애를 좀 하라고ㅠㅠ
└ 우리 언니 연애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예요!
- 언니… 서른 중반이면 팬들도 뭐라고 안 해… 그냥 찌라시 터진 김에 연하남 낚아보자…….
└ ㄹㅇ왜 팬이랑 연애한다고 함. 내가 찰 테니까 걍 연하남 붙잡자ㅋㅋㅋㅋㅋㅋㅋ
└ 서환 님 우리 언니 좀 데려가줘요ㅠㅠㅠㅠㅠ
└ 울 누님 입은 걸걸해도 매년 결식아동이랑 재난피해자들 수억 씩 지원하시는 착한 분이십니다. 얼마나 심성이 고운데요.
평소에 어떤 방식으로 이미지를 쌓아온 건지 짐작도 안 간다. 서주환은 회귀 전부터 나름대로 이채희의 팬이긴 했지만 SNS를 하지 않아서 그녀가 어떤 식으로 팬들과 소통하는지는 몰랐다.
한편 배성근은 게시글을 보다가 자신이 언급된 것을 발견하고 분통을 터뜨렸다.
“아, 기저귀 갈아준 건 왜 얘기하는 건데!”
“…사실이에요?”
“난 기억도 안 나는 일이야!”
아무래도 사실인가 보다.
배성근은 단순히 이채희의 매니저가 아니라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소꿉친구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심지어 그 사실을 팬들도 이미 알고 있었다.
- 영원히 고통 받는 배맴…….
└ 이 시대 최고의 매니저
└ 소꿉친구 잘못 둔 죄
└ 친구가 아니라 꼬봉이라는 게 학계의 정설
└ 어릴 때부터 손수 기저귀 채워가며 길들인 매니저ㅋㅋㅋㅋ
- 아ㅋㅋ 배맴 어제 눈치 없이 껴가지고 고통 받는 거자너ㅋㅋㅋㅋㅋ 누님 연애하게 눈치껏 자리 비켜줬어야지ㅎㅎ
└ 이거네ㅋㅋㅋㅋㅋ
보아하니 배성근이 물 먹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서주환은 생각보다 평화로운 댓글반응을 보고 허허롭게 웃었다.
‘뭐, 음지에서는 또 별의별 욕이 다 나오고 있겠지만.’
그 사람들이야 없는 꼬투리도 잡아서 물어뜯는 종자들이다. 상대할 가치가 없었다. 애초에 이채희는 거기까지 신경 쓰지도 않는 모양이고.
그때 폰으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알림을 꺼두지 않은 개인 메시지다.
너구리: 집사야, 이 기사 무슨 일인지 당장 해명하지 않으면 귀엽고 예쁜 너구리가 오늘 너를 물어뜯어버릴 거야(이빨을 드러낸 너구리 이모티콘)
나: (이채희의 별스타 링크 첨부)
너구리: 그래서 실제로는 어디까지 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깨물기 한 번으로 봐줄게.
나: 진짜 아무것도 없었어;; 술 마시고 집 들어가서 잤음. 고추에 맹세코.
잠시 후 믿고 있었다는 메시지가 왔다. 하트 이모티콘이 마구 붙은 ‘사랑해, 주인님!’은 덤이었다.
‘신뢰가 없구만.’
하긴, 오히려 있는 게 이상한가.
서주환은 쓴웃음을 지으며 여자들에게 까톡을 보냈다. 그리고 난리가 난 본인의 별스타에도 어제 배성근과 함께 찍은 사진을 하나 올렸다.
‘대충 이걸로 됐겠지.’
더 이상은 귀찮아서 못 해먹겠다. 어차피 알아들을 사람은 알아듣고 떠들 사람은 계속 떠들 테지. 더 일이 커지면 회사 측에서 대응을 해줄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지금은 그보다 중요한 볼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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