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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페티시가 보여-416화 (416/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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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스캔들

세 사람은 안주와 함께 술을 홀짝였다. 어느덧 다들 얼굴에 홍조가 올랐다.

이채희가 안주를 먹으며 말했다.

“으음. 이거 맛있네. 주환이 너 요리 진짜 잘한다.”

“요리라고 할 것도 없는데요, 뭐.”

겸양을 떠는 게 아니라 정말로 별 게 없었다. 기껏해야 계란말이와 된장찌개, 골뱅이 소면무침이 전부다.

“이 정도면 잘 하는 거지. 난 요리하는 건 좋아하는데 결과물은 생각처럼 안 나오더라고.”

배성근이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누님 요리는 좀… 그렇죠. 몸 상하기 전에 그냥 가정부 쓰세요.”

“뭐야?”

이채희가 도끼눈을 떴다.

서주환은 두 사람의 만담을 보며 픽 웃었다.

‘요리를 좋아한다니 의외네.’

어쩐지 냉장고에 식재료가 좀 있다 싶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실력발휘를 할 걸 그랬나.

‘그나저나 아까 그건…….’

서주환은 다시금 이채희의 상태창을 살폈다. 어느덧 S랭크를 찍었던 재능등급이 A+로 돌아와 있었다.

루시가 부연 설명을 했다.

[아무래도 이채희는 성장의 기로에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등급이 왔다 갔다 하는 거군.’

[맞습니다. 적절한 계기만 있다면 언젠가 S랭크에 정착할 겁니다. 물론 그 계기가 평생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이채희의 나이를 생각해 보면 성장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음. 대단한 사람이야.’

서주환은 술을 홀짝이고 있는 이채희를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더 이상 그녀가 섹스파트너 후보 같은 가벼운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어느덧 마음 한편에 은근한 존경심이 자리 잡은 탓이었다.

‘선생님이 생각나네.’

선생님이란 문학계의 대선배인 김현영을 말함이다.

김현영은 ‘문장력(A+/B+)’과 ‘인내(A/B)’ 재능의 잠재등급 한계치를 두 단계나 돌파했다. 그가 아는 사람 중 재능의 한계치를 뛰어넘은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이제 보니 채희 누나도 선생님 못지않은 사람이야.’

불과 34세의 나이로 정상급 한계치인 A+에 이른 것만도 놀라운데 벌써 숙련도를 다 채웠다. 아역배우 시절부터 지금까지 연기에 인생을 바쳐온 결과물이다. 루시가 말했듯 계기만 있으면 언제든 S등급으로 성장하겠지. 존경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여자였다.

“채희 누나, 한 잔 받으세요.”

서주환은 몸가짐을 바로한 후 이채희의 빈 잔을 채웠다. 그 공손한 태도에 이채희가 얼떨떨한 얼굴로 술을 받았다.

“너 갑자기 왜 그래?”

“하하. 그냥 좀, 새삼 제가 그 이채희 배우님이랑 술을 마시고 있다는 게 실감이 안 나서요.”

“풋. 뜬금없이 뭐래니. 성근아, 얘 취했나봐. 저번에도 한 번 마셔놓고.”

“그러게요. 쟤가 저런 말을 할 놈이 아닌데.”

“하하…….”

서주환은 민망한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예의를 차리니 도리어 이상한 놈 취급을 받다니.

‘그럴 만도 한가.’

쉼 없이 까불대던 놈이 뜬금없이 예의를 차렸으니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르겠다.

이채희가 피식 웃으며 술병을 들었다.

“자, 너도 받아. 아, 두 손으로 받지 말고. 하던 대로 동네 누나처럼 대해.”

“제가 언제 동네 누나처럼 대했다고.”

“쓰읍. 안 그럼 혼나.”

“그럼 그러죠, 뭐. 누나, 함 따라줘. 사랑하는 만큼.”

바로 말을 놓으며 잔을 내밀었다.

이채희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주먹을 흔들었다.

“죽을래? 말 까라곤 안 했는데.”

“넵, 죄송합니다.”

“오야. 한 번만 봐준다.”

서주환은 잔을 받은 후 배성근을 돌아봤다. 볼이 좀 붉긴 했지만 눈동자가 또렷한 게 아직 멀쩡해보였다.

“형도 한 잔 더 따라줄까?”

“난 됐어. 내일도 일해야 돼.”

“바쁘네.”

“음. 바쁘진 않아. 누님 촬영이 꼬여서 시간이 붕 떴거든. 그런데… 일이란 게 원래 갑자기 생기는 거니까.”

“프로페셔널하네. 그런데 꼬였다는 게 무슨 소리야?”

그러고 보니 집에 막 왔을 때도 같은 소리를 했었다.

이채희가 대신 답했다.

“이번에 영화 하나 하기로 했는데 약쟁이 한 놈 때문에 일정이 꼬였어.”

“약쟁이요?”

서주환은 이해할 수 없는 소리에 눈을 끔뻑이며 되물었다. 그러자 생각보다 훨씬 충격적인 말이 나왔다.

“같은 영화에 캐스팅 된 배우 하나가 마약 관련으로 구속됐거든. 미친 새끼, 그냥 약을 한 것도 아니고 유통을 했다나?”

마약유통!

“유통이면 실형 아니에요? 그럼 벌써 기사 떴겠네요?”

“엊그제 떴어. 아직도 실검에 있을 걸?”

서주환은 바로 휴대폰을 확인해봤다. 네이비 실검에 ‘경희준 마약유통’이라는 제목이 1위에 올라있음은 물론 그 밑으로도 관련 글이 줄을 세우고 있었다.

“경희준이면 나름 이름 있는 배우 아니에요? 이 사람이 뭐가 부족해서 마약을 유통 했대요? 이해가 안 가네.”

주연을 맡은 작품은 없지만 조연으로서는 상당히 인지도가 높은 배우다.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 후보에도 여러 번 오른 적이 있었다. 결국 한 끗 차이로 수상은 못했지만 말이다.

서주환의 질문에 이채희와 배성근의 얼굴이 동시에 일그러졌다.

이채희가 먼저 쌍욕을 내뱉었다.

“그 씨발놈, 돈은 충분히 있을 텐데 뭔 정신으로 그런 건지. 그 새끼 때문에 촬영 일정이 다 빠그라졌다니까? 좆 같은 새끼.”

배성근도 머리가 아프다는 듯 말을 이었다.

“경희준이 맡은 배역이 주연은 아니야. 영화 스토리상 바로 경찰에 구속되고 퇴장하거든. 대신 초반 비중이 크고 임팩트가 센 역할이라 문제지. 시청자 몰입도에 엄청 중요한 배역이니까.”

“호호. 그런데 이 미친놈이 영화가 아니라 현실에서 구속이 돼버렸네?”

“허허허허허.”

“아하하하하.”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하모니를 이뤘다.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는 듯 허탈한 웃음이었다. 듣는 서주환조차 기가 막힐 노릇이니 당사자들의 심정이 어떨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배성근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무튼 그 인간 때문에 관련자들 전부 비상 걸린 상태야. 촬영 일정까지 다 잡아놨는데 초반부를 견인할 배역이 날아갔으니까.”

“개 같은 새끼. 이번 영화 때문에 내가 얼마나 준비를 했는데…….”

“보다시피 채희 누님도 일정이 붕 떠서 집에 계시는 거고, 누님 담당인 나도 마찬가지지.”

“아아, 그래서 나도 촬영 현장에 못 데려간 거구나.”

현장에 데려간다던 그를 일주일 가까이 방치해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서주환은 아직도 화가 난다는 듯 연신 술을 마시는 이채희를 보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누나, 상황은 안타깝지만 차라리 다행일지도 몰라요. 촬영 도중이나 후에 터졌으면 일정 밀린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걸요.”

“후. 나도 알지. 그런데 그걸 감사해야 되는 이 상황이 짜증난다는 거야.”

“으음…….”

서주환은 작게 침음했다. 이 이상 섣불리 위로를 건네 봐야 속을 긁는 것밖에 되지 않을 듯했다.

대신 그는 배성근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봤다.

“형, 촬영이 얼마나 밀릴지 예상도 안 되는 거야?”

“글쎄다. 완전히 운에 달린 일이라서 잘 모르겠네. 운 좋으면 당장 며칠 이내로 재개 될 수도 있고, 재수 없으면 최소 몇 달 이상은 뒤로 밀릴 수도 있는 거라서.”

“빠진 역 소화할 수 있는 배우 한 분만 구하면 되는 거 아니야? 그게 몇 달 씩이나 걸릴 일인가?”

서주환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단 여주인공 자리에 이채희가 있는 걸 보면 될성부른 영화란 뜻이다. 그녀는 좋은 작품을 잘 고르기로 유명했다.

‘그런 채희 누나가 고른 작품이라면 누구든 하고 싶어 할 텐데.’

이채희 정도 되는 배우가 고른 작품이면 해당 작품도 그에 맞는 급일 터다. 모르긴 몰라도 여기저기서 투자가 들어왔을 테고 연예기획사들도 본인 소속의 배우를 찔러 넣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해당 배역의 오디션을 봤으면 봤지 배우 풀이 부족할 일이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건 자세한 사정을 모르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이채희가 혀를 차며 말했다.

“주환아, 모든 배우가 잘 될 영화의 배역이라고 무조건 다 하고 싶어 하는 건 아니야. 또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느냐는 별개고.”

뒤이어 쓴 웃음을 지은 배성근이 좀 더 자세한 사정을 말해주었다.

“공석이 된 배역이 살인마 역할이거든. 그것도 쾌락주의 살인마인데, 대사는 별로 없고 표정과 몸짓으로 분위기를 조성해야 돼. 그만큼 요구되는 연기력이 높아.”

이 때문에 ‘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느냐’는 말이 나온 것이다. 본인의 희망과 능력은 별개니까.

“반대로 이 배역은 어느 정도 연기력 되는 배우들은 별로 맡고 싶지 않아하는 역이야. 애초에 살인마 역이란 게 이미지 문제도 있고 몰입 후유증이 남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꺼려지는 배역이거든.”

“아, 그래서 인재풀이 엄청 좁구나.”

“맞아. 게다가 요구되는 연기력에 비해 비중 자체는 적은 편이라고 했잖아. 또… 감독님이 그… 민선하 감독님이거든.”

배성근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흐렸다.

하지만 서주환은 그 말에 번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민선하 감독님이라고? 그, 반반 감독…?”

“어어. 아는구나.”

민선하. 대박 아니면 쪽박을 내는 감독이다. 신기하게도 그녀의 작품은 대박과 쪽박의 비율이 50퍼센트라서 반반 감독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저번 작품이 대박을 쳤던가?’

그럼 확률 상 이번에는 쪽박을 칠 가능성이 더 높다는 뜻이다.

서주환은 그제야 완전히 납득했다.

‘배우 필모에 있어서 매력적인 배역이 아니다 이거구만.’

종합해 보면 이렇다.

공석이 된 ‘살인마’는 이미지와 후유증 때문에 꺼리는 배역이다. 그리고 비중에 비해 요구되는 연기력이 높아서 어지간한 연기력으로는 감독의 눈에 차지 않는다. 그렇다고 실력 있는 배우들 입장에서는 쪽박 칠 확률이 높은 영화의 까다로운 배역을 굳이 맡고 싶지 않다.

결론, 인재 풀이 더럽게 좁다.

그리고 서주환은 이 영화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형, 이번 영화 제목 뭔지 알려줄 수 있어?”

“응, 그 정도야 뭐. 제목은 ‘스토커’야.”

역시, 하고 서주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기 상 그럴 것 같았다.

‘민선하 감독 작품 중 처음으로 어중간한 성적을 받은 작품이었지.’

그 이유가 작품은 좋은데 제대로 된 배역을 캐스팅하지 못해서였나. 그만큼 초반에 몰입도를 높여줄 살인마 역이 중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이채희가 술잔을 탁 내려놓으며 한숨을 뱉었다.

“에휴, 씨발… 되는 게 없어…….”

그녀는 상당히 취한 듯했다. 욕설을 뱉는 얼굴에는 어쩐지 짜증보다도 우울감이 짙게 배어있었다.

‘뭐라 위로할 말이 없네.’

그렇게 입을 다물고 술을 한 잔 더 마실 때였다.

띠링!

[성(性)에 관한 강력한 행운이 개입합니다!]

[욕망 시스템이 ‘이채희’의 강렬한 욕망을 감지했습니다.]

[욕망 퀘스트가 활성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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