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414화 (414/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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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스캔들

서주환은 청담동에 위치한 빌라로 들어갔다. 그가 발을 들인 곳은 일반적인 소규모 서민형 빌라가 아닌 한 눈에 봐도 비싸 보이는 ‘고급빌라’였다.

‘언젠가 이런 곳에 살아도 좋겠는 걸.’

당장은 무리지만 오래지 않아 가능할 것이다. 지금도 그의 잔고는 착실하게 성장하는 중이었으니까.

‘회귀가 좋긴 좋아.’

소설을 연재해서 벌어들이는 소득도 컸지만 그 돈을 주식에 재투자함으로 얻는 수익도 무시할 수 없었다. 워낙 시드머니가 크니 확실한 종목에만 투자해도 잔고가 금세 불어났다.

‘분명 코인 판이랑 주식에서 크게 터지 게 있었는데… 얼마나 벌 수 있으려나.’

비정상적으로 우상향 곡선을 그리는 코인과 주식을 몇 개 알고 있다. 거기에 투자를 한다면 이런 빌라 몇 채 정도는 통째로 사고도 남을 돈이 들어올 터였다. 아무튼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그렇게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내부 인테리어 구경을 하고 있을 때였다.

“마실 거 뭐 줄까?”

길거리에서 마주쳤던 여자가 물었다. 여자의 정체는 바로 이채희였다. 그녀는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배우들 중에서도 언제나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톱배우다.

“주스? 커피? 아니면 술 줄까?”

“술이요…? 아니, 그냥 냉수로 부탁드려요.”

목록 중에 술이 왜 있는 걸까.

“그래, 술은 이따 마시지 뭐.”

어쨌든 마시긴 할 거구나.

서주환은 헛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이미 한 잔 하신 거 아니에요?”

이채희가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응? 오늘은 한 잔도 안 마셨는데?”

“그래요? 아까 비틀거려서 취하신 줄 알았는데.”

“아, 그거. 그냥 몸 상태가 안 좋아서 그런 거야.”

“아아.”

서주환은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면 만취할 정도로 마셨다기엔 술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나저나 이 누나는 무슨 생각으로 나를 들인 거지.’

그는 냉수를 마시며 이채희를 관찰했다. 도무지 그녀가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다. 보통 혼자 사는 여자가 이처럼 쉽게 남자를 집 안으로 들이나? 면식이 있긴 하지만 고작해야 술자리 한 번, 안부전화 몇 번이 전부였는데 말이다.

‘혹시 지금까지 나온 찌라시가 사실이었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채희는 구설수가 상당히 많은 배우다. 매스컴 상에서 드러난 성격도 그렇고 실제 성격도 무척 괄괄하다. 거침없이 말을 하기로도 유명했다. 물론 대부분이 부당한 일이나 악성 댓글에 관한 사이다성 발언이었던지라 ‘왕언니’라는 친근한 별명이 생기는 수준에 그쳤지만 말이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튀면 언제나 안티가 생기는 법이다. 그녀의 거침없는 성격을 안 좋게 본 사람들은 기본 예의가 없다거나 인성이 별로라며 꼬투리를 잡았다.

‘난 좋게 보는 편이지만.’

이채희의 발언은 강도가 세긴 해도 내용 자체에 문제가 될만한 건 없었다. 오히려 서주환은 시원한 성격이라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그녀가 매년 결식아동이나 재난 피해자들을 위해 수억 씩 기부하는 대인배라는 점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데 한 몫 했다.

다만 염문설 중 일부는 사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간에서는 그녀가 상대 남자배우를 홀리는 여우라고 비난하곤 했다. 멜로물을 찍을 때마다 묘한 기류의 사진과 함께 염문설이 났던 탓이다. 그래서 잘생긴 남자배우의 팬들 중에는 그녀를 싫어하는 사람이 적잖게 있었다.

‘뭐,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죄는 아니지.’

강제로 덮쳤을 리도 없고 다 큰 성인 남녀가 눈 맞아서 떡 좀 치는 게 죄는 아니지 않은가. 결정적으로 이채희의 염문설 중 명확한 사실로 밝혀진 건 결국 하나도 없었다.

그럼 왜 그를 집으로 들인 걸까.

그 이유는 곧 이채희 본인이 말해주었다.

“휴우. 역시 주환이 너랑은 궁합이 좀 잘 맞는 것 같아.”

“궁합이요?”

서주환은 뜬금없는 소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채희가 자신의 배를 슬슬 문지르며 말했다.

“응. 오늘 생리통 때문에 죽을 것 같았거든. 그런데 너랑 있으니까 좀 편안해졌어.”

“아, 그럼 아까 비틀거렸던 게.”

“어지러워서 그런 거야. 생리 때문에 피를 너무 많이 흘렸거든. 약 사러 갔다가 죽을 뻔했다니까?”

“…크흠.”

서주환은 헛기침을 했다. 왜 말하는 사람보다 듣는 사람이 더 민망한 기분이 드는 건지 모르겠다.

그녀가 킥킥 웃으며 말했다.

“혹시 불편하면 말해. 내가 카메라 꺼졌을 때는 필터링이 좀 없어지거든.”

“아뇨, 딱히 불편한 건 아니에요.”

“응, 그럴 것 같았어. 저번에 봤을 때 너도 보통 성격은 아닌 것 같더라고.”

“네? 제 성격이 왜요?”

서주환은 순진한 척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이채희가 같잖다는 듯 혀를 찼다.

“얘 능청 떠는 거 봐라? 못 본 새 연기가 늘었네.”

“푸흐. 망설이지도 않고 혀 차셔놓곤.”

“그러라고 한 거 아니었어?”

“맞아요. 그러니까 필터링 없이 그냥 말하세요. 아니, 생각해보니까 누나는 카메라 앞에서도 딱히 필터링 없지 않아요?”

“어머? 얘, 나 카메라 앞에서는 말 엄청 가려서 해.”

“…그게요?”

“쌍욕은 안 했잖니. 기레기 새끼들 면전에 두고 욕 참는 게 얼마나 힘든데.”

그리 말한 이채희는 눈을 희번덕거렸다. 어지간히 기자들을 싫어하는 듯했다. 이내 그녀가 다시 생긋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너 만나서 다행이다. 혹시나 싶어서 데려온 건데 진짜 효과가 있어. 미안한데, 안 바쁘면 여기에 좀 있다 가라. 응? 누나가 맛있는 거 사줄게.”

“하하. 알았어요. 오늘 일정도 없는데 그러죠 뭐. 아무튼 나아졌다니 다행이네요. 그게 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녀의 상태가 나아진 건 ‘페로몬’의 효과가 맞았지만 서주환은 그냥 웃어넘겼다. 한데 이채희는 생각보다 훨씬 진지한 기색이었다.

“아니,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네 덕분인 것 같아. 원래 사람은 각자 궁합이 잘 맞는 사람이 있거든.”

“…그래요?”

“응. 주환이 너 혹시 사주 본 적 있어?”

갑자기 사주를 물어보는 이채희다.

서주환은 눈을 끔뻑거리다가 가브리엘라에게 사주풀이를 받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있긴 하네요. 재미로 본 거지만.”

“그럼 네가 무슨 기운인지도 알겠네? 난 나무거든. 너 혹시 물 아니야?”

“어… 물이었던 것 같아요. 기운이 과하게 많다고 했었던가?”

“역시!”

이채희는 그럴 줄 알았다며 박수를 쳤다. 이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이 말이다.

서주환은 그런 이채희를 보며 픽 웃음을 흘렸다.

‘이 누나, 이미지랑 다르게 유사과학 신봉자 같네.’

왠지 MBTI랑 타로점도 좋아할 것 같다. 민가희랑 둘이 붙여놓으면 신나서 점집을 돌아다닐지도 모른다.

‘흠. 그럼 나한테 남자로서 관심이 있는 건 아닌 건가.’

내심 좀 아쉬웠다. 유명 여배우와 떡각이 잡힌 듯해서 조금 기대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먼저 나서서 들이대자니 좋은 인맥을 잃을 것 같아 아쉬웠다.

서주환은 슬쩍 그녀의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이채희>

성별: 여성

나이: 34살

키: 164cm

호감도: C+

현재 성욕: B+

몸무게: 48kg

페티시: Autassassinophilia(中)

보유 재능: 연기(A+/A+), 카리스마(B/A+), 매혹(B+/B+), 상상(B/B+), 관찰(B/B+), 냉정(C+/B+), 직감(C/B+)

‘와우, 재능 보소. 다시 봐도 미쳤네.’

정하연 외에 상위재능이 이렇게 많은 사람은 처음 봤다. 심지어 이채희는 연기 재능을 한계치까지 올린 것은 물론 가진 바 상위 재능 전부가 상당히 개발된 상태다. 이건 재능도 재능이지만 굉장히 치열하게 살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이게 톱배우인가? 말도 안 나온다 진짜.’

절로 혀가 내둘러졌다.

[Autassassinophilia(어타쌔씨노필리아)는 생존기호증이라 하여 극한 상황에서 성적 흥분을 느끼는 증후군입니다. 극단적으로는 생명의 위협을 받거나 누군가에게 살해당할 거라는 공포에서 흥분을 느끼기도 합니다.]

루시가 페티시를 설명해줬다.

그가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정말이지 특이한 취향이었다.

서주환은 페티시에서 눈을 돌리고 그녀의 호감도와 성욕을 확인했다. 겉으로는 이채희의 사주풀이 이야기를 들어주면서였다.

‘음? 성욕 등급이 B+나 돼?’

생각보다 성욕 수치가 굉장히 높았다. 사주궁합이 좋다는 이유 때문인지 어느덧 호감도도 한 단계 증가해 있었다.

[성욕은 생리 중이라서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여자들은 보통 생리 전에 성욕이 가장 높아진다고 합니다만, 생리 중에 성욕이 증가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자궁이 부풀어 오르고 골반 내 혈관에 피가 많이 모이기 때문이다.

서주환은 루시의 첨언을 들으며 슬쩍 입술을 핥았다.

‘이거 잘하면 될 지도 모르겠는데.’

이채희의 염문설이 사실인지는 몰라도 털털하고 거리낌 없는 성격인 건 분명하다. 실제로 본 건 오늘로 두 번밖에 되지 않았지만 어쩐지 뒤끝도 없는 성격일 것 같았다.

[파트너로 제격이군요.]

‘내 말이.’

파트너란 당연히 섹스 파트너를 말함이다. 서로 윈윈하면서 뒤끝 없이 육체적으로만 즐기는 관계 말이다. 높은 성욕과 괜찮은 수치의 호감도를 보아하니 그녀도 생각이 전혀 없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스킬, ‘페로몬’을 비활성화합니다.]

서주환은 슬쩍 스킬을 꺼두고 계속해서 대화를 나눴다.

“주환이 넌 타로점도 봤다고? 재밌었겠다. 나도 한 번 봐볼까?”

“관심 있으면 말하세요. 용한 점술가 친구 소개시켜드릴게요.”

“너 그런 친구도 있어? 별로 관심 없는 것 같더니.”

“어쩌다 보니 친해져서요. 그런데 지금은 이탈리아에 있어서 만날 수는 없을 거예요.”

“어머, 외국인이야?”

“네. 타로가 서양 점술인 건 아시죠? 이 친구 이름이 가브리엘라인데 눈동자도 보라색이라 되게 신비로워 보여요. 가만히 듣고 있으면 좀 홀리게 되는 느낌?”

“와아. 나중에 꼭 소개… 아윽.”

즐겁게 대화를 나누던 이채희가 눈살을 찌푸렸다. 조금씩 잠잠해지던 통증이 다시금 느껴졌기 때문이다.

서주환은 그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물었다.

“괜찮으세요?”

“어으… 안 괜찮아. 약 기운이 벌써 떨어졌나?”

이채희는 앓는 소리를 내며 배를 쓸었다. 점점 통증이 강해지는 게 심상치 않았다.

서주환은 내심 미안함을 느끼며 말했다.

“누나, 제가 마사지라도 해드릴까요?”

“마사지?”

이채희가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며 눈을 흘겼다. 다시금 시작된 통증에 저기압이 된 듯했다.

서주환은 흑심을 숨기고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혈 자리 잘 누르면 통증이 조금 줄어들거든요. 생리통에도 효과 있어요.”

아무리 ‘연기’ 재능이 있더라도 이채희를 속이긴 쉽지 않다. 전문적으로 연기를 배운 것도 아니고 본능만으로 하는 즉석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특수능력을 활용하며 진실에 거짓을 섞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특수능력, ‘메소드 연기’를 활성화합니다.]

[특수능력, ‘위스퍼’를 활성화합니다.]

지금 서주환의 표정과 목소리에는 순수하게 걱정하는 감정만 묻어나왔다. 거기에 더해진 ‘위스퍼’가 안 그래도 생리통 때문에 정신없는 이채희의 판단력을 흐렸다.

그녀가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주환이 너 마사지 잘해?”

서주환은 생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킬, ‘성스러운 손길’의 ‘최상급 마사지’효과가 활성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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