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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페티시가 보여-413화 (413/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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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스캔들

넓은 연습실을 한 사람의 목소리가 가득 채웠다.

성유진은 황홀한 눈으로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봤다.

“오직 너만 사랑하는데─!”

중저음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거칠게 올라갔다.

성유진은 목 뒤의 잔털이 쭈뼛 일어나는 느낌을 받고 작게 입을 벌렸다.

서주환이 부르는 방식은 조금만 잘못해도 듣기 싫은 소리가 나오는 창법이다. 한데 그의 목소리는 절묘하게 중심을 잡았다. 막힌 귀가 뻥 뚫리는 듯한 시원한 고음이 뻗어 나왔다.

‘성량이 뭔… 얘는 마이크가 따로 필요 없겠네.’

성량은 당연하고, 노래를 한 번도 배운 적 없다던 서주환은 발성이 처음부터 잡혀 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어떻게 소리를 내야하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노래를 불렀다.

그 뿐인가. 음역대는 또 어찌나 넓은지 저음부터 고음까지 자유자재다. 지금은 허스키한 목소리가 돋보였지만 부드러운 미성 또한 매력적이었다.

‘감각적인 건 타고 났어. 아니, 그냥 감각이라고 말하기도 이상한데.’

성유진은 곧바로 생각을 정정했다. 그는 타고난 걸 넘어서 이미 어느 정도 완성이 되어 있는 상태다. 아무리 이 업계가 재능에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크다지만 이런 경우는 이십여 년간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부족한 거라고 한다면 체계적인 이론뿐…….’

비유하자면 정상급의 가수가 오선지를 못 보는 경우와 같다. 아니, 1+1이 왜 2인지 설명을 못하는 경우라고 해야 할까? 답을 낼 수는 있는데 정립된 지식이 없으니 과정을 말할 수가 없고, 그걸 넘어서 자신이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다시 내 곁에만 있어줘~!”

노래를 마무리한 서주환이 호흡을 정돈했다.

성유진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박수를 쳤다.

“자, 잘했어. 아니, 이게 아니지.”

“?”

“왜 그렇게 불렀어?”

“네?”

“내가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 창법 바꾸라고 했어, 안 했어? 알려줬는데 왜 말을 안 듣니.”

성유진은 엄한 표정으로 쏘아붙였다. 감탄하며 노래를 듣긴 했지만 트레이너로써 할 말은 해야 했다.

실수를 깨달은 서주환이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무심코 그만…….”

“주환아, 누누이 말하지만 그 습관 고쳐야 돼. 목소리 긁지 마. 겉멋은 날지 몰라도 성대 다 갈아버리는 창법이니까.”

“하하. 네.”

“쓰읍. 웃지 말고. 가수 선배로서 진지하게 조언하는 거야. 서른 전에 성대결절 걸리고 싶은 건 아니지? 오래 활동하려면 미리미리 관리해야…….”

성유진은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서주환을 보고 말끝을 흐렸다. 일전에 서주환은 본인이 가수 지망생이 아니라 취미생이라고 말했었다.

‘아니, 왜? 이런 재능을 갖고 왜?!’

이 실력으로 가수를 하지 않는 건 노래에 대한 모독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가 지닌 실력의 발끝이라도 쫓아가보겠다고 피땀 흘려가며 노력을 하는데!

성유진은 울컥 성이 난 얼굴로 소리쳤다.

“어쨌든 음원 낼 거라며! 그럼 가수지!”

“그, 그렇죠. 주의할게요, 쌤.”

“신은 왜 이런 놈한테 이런 재능을 줘가지고…….”

“하하.”

“웃지 마! 짜증나니까!”

서주환은 뚝 웃음을 그치고 난감한 표정으로 그녀의 눈치를 봤다.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였다.

‘성 쌤 앞에서만 주의하자. 어차피 내 성대는 알아서 치료하면 되니까.’

성대가 상하는 것 따윈 그에게 의미 없는 걱정이다. 조금 칼칼하다 싶으면 ‘성스러운 손길’로 회복하면 그만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앞으로도 필요할 땐 얼마든지 스크래치를 낼 생각이었다.

“에효. 주환이 너 정말 리액트 들어올 생각 없어? 응?”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말하는 성유진이다.

서주환은 픽 웃으며 답했다.

“아주 없지는 않아요.”

“어? 정말?”

“방송출연, 음원활동, 공연, 행사 등 전부 제가 내킬 때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해준다면야…….”

가만히 듣던 성유진이 버럭 소리쳤다.

“안 하겠다는 거잖아! 아직 데뷔도 안 한 게 배부른 소리 하고 자빠졌네! 넌 조금만 실력 없었음 내 손에 벌써 죽었어!”

성유진이 주먹을 허공에다 붕붕 휘둘렀다.

서주환은 낄낄거리며 좌우로 고개를 흔들어 피하는 시늉을 했다.

“성 쌤, 저 말고 율이 보세요. 율이 걔도 천재인 거 알잖아요?”

“‘걔도?’ 와, 이걸 진짜. 넌 지 잘난 거 아니까 더 짜증난다.”

“겸손이 과하면 기만이래요.”

“넌 좀 겸손해라!”

그걸 바란다면 적당히 띄워줬어야지. 뭐만 했다하면 주변에서 눈알이 빠질 것처럼 부릅뜨고 놀라니 모르는 척 겸손 떠는 게 더 민망할 지경이었다.

성유진도 그 사실을 깨닫곤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율이도 천재지. 내가 여태 봤던 사람들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그죠?”

“그런데 눈앞에 괴물이 있으니까 좀 가려지네? 넌 무슨 외계인 보는 느낌이거든.”

“음. 그건 지금 얘기고, 분명 나중엔 율이가 더 잘할 거예요.”

“넌 향상심도 없니? 그런 얘기를 되게 쉽게 한다. 가수에 미련이 없어서 그래?”

성유진이 못마땅하다는 듯 말했다.

서주환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곤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와 시선을 맞췄다.

“그것도 틀린 얘기는 아니죠. 그런데 제가 다른 거 다 버리고 노래에만 몰두해도 율이보다 잘하긴 어려울 거예요. 진짜 괴물은 율이니까.”

“…네가 봤을 땐 율이가 그 정도야?”

성유진은 무심코 그렇게 되물었다. 순간 자신이 은율을 잘못 판단했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충분히 높게 평가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서주환이 말하는 걸 들어보니 그게 아닌 듯했다.

‘천재는 천재가 알아본다던데.’

그녀가 괴물이라 평가한 서주환은 도대체 은율에게서 무얼 본 걸까. 묘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미소가 신경 쓰였다.

*

보컬 트레이닝을 마친 서주환은 건물 밖으로 나와 휘적휘적 걸음을 옮겼다. 7월이어서 그런지 늦은 시간임에도 아직 해가 저물지 않았다. 다행히 그리 덥지 않은 날씨여서 선선한 바람이 기분 좋게 다가왔다.

서주환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사람들을 관찰했다. 이 때문에 오늘은 일부러 차도 가져오지 않았다.

‘사람 구경하는 게 참 재밌단 말이지.’

종강 후 글을 쓴다고 집에만 처박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에 만난 사람이라고 해봐야 대학 친구들을 비롯한 은율과 민가희 등 매일 보는 얼굴들뿐이었으니. 그나마 신선한 얼굴이라면 오랜만에 본 배성근과 뉴페이스 성유진 정도일까.

‘아, 걸그룹도 만났지.’

아무래도 보컬 트레이닝을 엔터 사옥에서 하다 보니 심심찮게 연예인을 마주쳤다. 그 중엔 나름 인지도 있는 걸그룹도 있었는데, 생각 외로 감흥은 없었다.

[그야 주인님의 여자들이 어지간한 걸그룹 멤버들보다 예쁘고 매력적이니까요.]

‘하긴, 생각해 보면 율이도 걸그룹 멤버였고.’

그와 관계를 맺은 여자들은 기본적으로 예쁘다. 원래도 예뻤지만 ‘성스러운 씨주머니’의 매력 상승효과를 받고 더 예뻐졌다. 특히 자주 관계를 맺을수록 그 혜택을 많이 받았는데, 정하연이나 유지경, 한수아 정도 되면 유명 걸그룹의 비주얼 멤버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았다. 애초에 연예인이었던 은율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 때문에 오히려 서주환보다도 걸그룹 멤버들이 더 반가움을 표했었다.

‘헉, 서환 님 맞으시죠?’

‘작가님, 저 진짜 팬이에요! 은아힐링 완전 재밌게 읽고 있어요! 이번에 노래 부르신 거 대박!’

‘그런데 작가님이 여긴 어쩐 일이세요? 아, 혹시 데뷔하세요?! 그럼 우리가 선배?’

놀랍게도 걸그룹 멤버 여섯 명 중 두 명이 ‘서환’의 팬이었다. 가끔 잊곤 하는데, 현재 그는 대한민국 웹소설 판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었다.

‘여자 아이돌이 웹소설을 읽는다는 게 신기했지.’

읽으면 안 된다는 법이야 없다지만 무척 의외였다. 그가 알고 있는 미래와 달리 현재의 웹소설은 어디까지나 서브컬쳐였으니 말이다.

서주환은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명랑했던 멤버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픽 웃었다. 그리곤 이내 다시 전철역으로 걸어가며 사람들을 관찰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눈에 담아두면 훗날 캐릭터를 조성할 때 도움이 될 터였다.

“저기, 안녕하세요. 혹시 번호…….”

“죄송합니다.”

그 와중에 헌팅을 당한 건 이제 놀랍지도 않은 일이었다. 저녁 시간대에 번화가를 걷고 있으면 불시에 한 번쯤 당하는 게 헌팅이란 것이니까.

“헉, 서환 님 맞으시죠? 방송 잘 보고 있어요!”

“우와, 서주환이다! 팬이에요!”

“오빠, 위튜브 자주 올려주세요!”

헌팅보다 위튜브 구독자들을 만난 게 더 놀라웠다.

그는 일련의 여고생 무리를 친절한 미소로 응대한 후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구독자 수가 많이 올라서 그런지 알아보는 사람이 꽤 있네.’

뭐랄까. 타고난 관심종자 성향이 있는지라 기분이 좋긴 했다. 다만 한편으론 걱정이 들었다.

‘앞으로 점점 귀찮아지겠는데…….’

특히 새로운 여자들을 만나고 다니는데 애로사항이 꽃 필 것 같았다. 본디 대중의 관심이란 양날의 검이 아니던가. 지금까지 수많은 재능들을 썩히면서 연예계 데뷔를 미룬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그때 그와 시야를 공유하고 있던 루시가 말했다.

[주인님, 저기 저 사람 좀 보세요.]

‘응? 누구? 와… 처음 만났을 때 율이랑 똑같은 패션이네.’

맞은편에서 검정 일색의 추리닝을 입고 까만 마스크를 눈 밑까지 올려 쓴 여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여자는 새까만 선글라스까지 착용하고 있었는데, 비틀거리는 모양새가 술을 꽤나 마신 듯했다. 그 외에 특이한 점이라면 얼굴이 가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예쁠 것 같다는 아우라가 풍긴다는 것이다. 심지어 몸매도 좋았다.

하지만 서주환은 두 발작 정도 옆으로 비켜서서 여자와 거리를 뒀다.

‘술 마신 사람은 피해야지.’

본디 취객과는 얽히지 않는 게 상책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여자를 지나치던 찰나였다.

띠링!

[성(性)에 관한 강력한 행운이 개입합니다.]

난데없는 알림음과 동시에 뒤에서 무언가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홱 돌아보자 불쑥 손을 뻗어오는 여자가 보였다.

[특수능력, ‘슬로우 비디오’가 활성화됩니다.]

[사용자의 동체시력과 사고력이 빨라집니다.]

특수능력이 저절로 활성화됐다. 루시가 도움을 준 것이다.

서주환은 본능적으로 어깨를 젖혀 여자의 손을 피했다. 방향을 잃은 여자의 손이 허공을 짚었다.

“으엉? 어, 어어?!”

중심을 잃은 여자가 새된 소리를 내며 몸을 비틀거렸다. 여자는 바로 쓰러지지 않고 잔발을 구르더니 꺄악! 비명을 질렀다.

‘에휴.’

서주환은 쓰러지려는 여자의 뒷덜미를 잡았다. 혹시라도 미친년에게 당하지 않도록 신체접촉을 주의했다. 추리닝을 꽉 붙들자 중심 잃은 여자가 새끼 고양이마냥 데롱데롱 매달렸다.

“저기, 괜찮으세요?”

“…일단 이것 좀 놓지?”

여자가 대뜸 반말로 말했다.

서주환은 슬며시 미간을 모으다가 표정을 풀었다.

“내 말 안 들리니, 주환아?”

아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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