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411화 (41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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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독자님들 모두 건강하고 즐거운 주말 되시기를 바랍니다 :D

리액트 엔터

서주환은 강남구에 있는 리액트 엔터로 향했다. 미리 마중 나와 있던 배성근이 그를 발견하고 손을 높이 흔들었다.

“주환아! 여기!”

흡사 연인이라도 만난 것처럼 반기는 배성근이다. 그에 민가희가 짐짓 놀란 표정을 지으며 서주환을 돌아봤다.

“설마 오빠, 남자도?!”

꾸웅! 꿀밤을 날렸다.

“혼날래?”

“아얏! 이미 때려놓고! 저 머리 나빠져요!”

“이미 나쁘니까 괜찮지 않을까?”

“뭐예요?! 그럼 이렇게 해도 괜찮겠네!”

민가희가 등에다 이마를 퍽퍽 부딪쳐왔다. 파란 머리가 찰랑찰랑 흔들렸다.

“가, 가희야, 그만해.”

은율이 안절부절못하며 민가희를 말렸다. 그에 은율에게만 유독 강해지는 민가희가 혀를 베 내밀었다.

“율 언니는 마스크나 벗으시지. 그 이상한 선글라스도!”

“이건 안 돼……!”

은율은 절대 벗을 수 없다는 듯 안경과 마스크를 사수했다. 이제 다른 곳에서는 맨얼굴로 다닐 수 있게 된 그녀였지만 이곳은 사정이 달랐다. 연예 기획사인 리액트 엔터에서는 그녀를 알아볼 가능성이 높았다.

서주환은 투닥거리는 두 여자를 뒤로하고 배성근과 인사를 나눴다.

“오랜만이야, 형. 얘네는 내가 데려오겠다고 한 애들.”

“하하. 애들이 활기가 넘치네.”

배성근이 정신없는 두 사람을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주로 민가희를 보면서였다. 그는 난감하게 웃으면서도 속으로 민가희를 평가했다.

‘기타에 헤드셋이라. 복장이 개성적이네. 연예인 지망생인가? 일단 마스크는 합격. 화장도 별로 안 한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최소 B급 이상. 바스트는… 남자들 환장하겠고. 성격은 좀 특이해 보이지만 오히려 그게 매력이 될 수도 있지.’

사람을 보고 평가를 매기는 것은 배성근의 직업병이었다. 특히 어느 정도 매력적인 사람을 봤을 때는 자동으로 등급을 매기게 됐다.

배성근은 옆에 있는 은율에게도 시선을 주었다가 아쉽게 입맛을 다셨다.

‘왠지 느낌은 좋은데 너무 꽁꽁 싸맸네.’

새까만 선글라스에 마스크까지 한껏 올려 써서 평가할 수 있는 요소가 적었다.

“얘들아, 인사해. 나랑 친한 형이고, 리액트 엔터의 대리야.”

“안녕하세요! 나이는 스물 둘이고 작곡하고 있는 민가희라고 해요!”

민가희가 밝게 인사했다.

배성근은 작곡이라는 말에 눈을 끔뻑였다.

‘작곡? 그럼 혹시…….’

서주환의 소설 삽입곡을 만들어주는 GH. 가희라는 이름에서 그 이니셜이 떠올랐다.

배성근이 사실을 확인하려는 찰나 은율이 뒤따라 허둥지둥 고개를 숙였다.

“아, 안녕하세요. 은율이라고 합니다.”

“…은율?”

배성근의 고개가 모로 기울어졌다. 그는 연예계에 몸담은 대부분의 사람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은율의 목소리는 익숙한 것이었고,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이내 그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스윙레이디의 은설 씨?”

“…히끅!”

은율의 입에서 놀란 딸꾹질이 나왔다.

*

서주환과 은율은 번갈아 녹음실로 들어가 노래를 불렀다.

배성근은 노래를 감상하며 생각했다.

‘주환이 녀석 라이브도 장난 아니네. 믹싱으로 많이 만졌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들어본 결과 오히려 음원이 라이브를 전부 담아내지 못했단 생각이 들었다. 감정전달이 이렇게까지 될 수 있다니. 노래를 듣는 내내 소설의 내용이 함께 떠오를 정도였다.

‘은설… 아니, 은율 씨도 상당해. 현역 때보다 더 좋아진 것 같아. 하지만…….’

서주환과 달리 음원에는 미치지 못하는 실력이었다. 그것도 한참이나 말이다.

‘솔직히 음원은 은율 씨 버전을 더 좋게 들었었는데.’

라이브가 많이 아쉽다. 분명 잘 부르긴 하지만 음원으로 들었을 때만큼의 감동이 느껴지진 않았다.

그때 옆에 앉아있던 민가희가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역시 그때만큼 부르진 못하네. 그때 부른 건 따로 만질 필요도 없었는데…….”

배성근은 눈을 크게 뜨며 민가희를 돌아봤다.

“가희 씨, 그게 무슨 소리에요?”

“네?”

“방금 한 말이요. 따로 만질 필요가 없었다고 했잖아요. 그거 위튜브에 올라가 있는 음원 말하는 거죠?”

“아, 네. 그거 컴프레션 조금 잡아낸 거 빼면 만진 거 없어요.”

“그런데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난다고요?”

“에휴, 제 말이요. 율이 언니 실력이 좀 들쑥날쑥해요. 이래서 어렸을 때부터 제대로 트레이닝을 받아야 되는 건데. 왜 그런 소속사를 들어 갔어가지고.”

민가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한편 배성근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은율을 다시 바라봤다.

‘하긴, 전 소속사가 작긴 했었지. 데뷔시킨 그룹이라곤 스윙레이디 하나밖에 없었고. 그런 곳에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었을 리가 없지.’

민가희의 말을 듣고 나니 아쉬움이 커졌다. 처음부터 리액트에 데려와 키웠더라면 어땠을까. 지금쯤 당당한 솔로가수로 자리매김을 하고도 남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배성근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의 은율은 각종 구설수에 얽혀 은퇴한 전 아이돌일 뿐이었다.

‘복귀는 무리야.’

가망이 없다.

*

가망이 없다며 미련을 접었건만.

배성근은 골치 아프다는 듯 미간을 꾹꾹 누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주환이 너… 이 자식아, 나한테 왜 그래… 너 음원 낸다고 찾아온 거 아니었어?”

“하하… 쏘리, 형. 그래도 들어봤으니까 알잖아. 율이 노래는 진짜야.”

서주환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배성근이 다시 한 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래, 노래는 좋지. 나도 위튜브에 있는 원곡 잘 들었어. 솔직히 엄청 놀랐고. 오죽 했으면 원곡 틀어놓고 소설을 다시 봤겠냐.”

“그치? 율이 쟤 끝내준다니까? 그거 가희랑 둘이서 만든 노래야. 고작 스물둘 셋 먹은 여자애들 둘이서 그런 노래를 만든 거라고. 탐나지 않아?”

“이 자식아! 그걸 말이라고 하냐?!”

결국 배성근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 작업실을 구경 중인 민가희와 은율의 눈치를 살피곤 다시 목소리를 줄인 채 말을 이었다.

“탐이야 당연히 나지. 그런데 인마, 너 스윙레이디 사건 몰라? 어?”

“알아. 그런데 율이는 무죄…….”

“무죄지. 그래, 무죄야. 다른 멤버들은 전부 줄줄이 터져 나오는 와중에 은설… 아니, 은율 씨 혼자만 결백이 증명됐어.”

“형도 아네, 뭐.”

“너, 내가 무슨 말 하는지 다 알아들었으면서 왜 그러냐. 어? 그걸 내가 아는 건 중요한 게 아니잖아. 대중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 중요하지. 나야 이쪽 업계 관계자고 우연히 기사를 봤으니까 아는 거야. 하지만 일반 대중들은 해명기사 따위 잘 찾아보지도 않는다고.”

“…….”

“대중들한테 은율 씨는 여전히 성상납 스캔들에 얽힌 학폭돌이고 마약돌이야. 그거 해명하려면 얼마나 빡센 줄 모르겠어?”

“…….”

서주환은 쉽게 반박하지 못하고 쩝 입맛을 다셨다. 배성근의 말처럼 대중들에게 은율의 이미지는 최악이다. 하지만 그걸 알기에 배성근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작게 고개를 숙였다.

“부탁해, 형. 도와줘. 율이 재능 있어. 이미지 개선, 힘들긴 해도 불가능한 건 아니잖아.”

“아니… 와… 미치겠네.”

다시 미간을 매만지는 배성근.

서주환은 특수능력을 사용했다.

[특수능력, ‘위스퍼’를 활성화합니다.]

[사용자의 말에 알 수 없는 신뢰가 깃듭니다.]

[상대방의 무의식에 말을 건넵니다.]

[상대방의 판단력을 저하시킵니다.]

[대상자, ‘배성근’의 호감도 등급은 ‘B’입니다.]

“리액트 정도면 악성 기사나 댓글에서 보호해줄 수 있잖아. 율이는 그 문제만 해결하면 유아이처럼 대단한 가수가 될 거야.”

“유아이? 돌겠네. 아무리 허세를 부려도 누구랑 비교를…….”

“허세 아니고,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아니, 난 율이가 유아이보다 더 대단해질 거라고 생각해.”

“주환이 너 대체 뭘 믿고 근거도 없는 소리를 당당하게 하는 거야……?”

배성근이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헛웃음을 쳤다. 유아이는 노래를 냈다하면 차트에 줄 세우기를 하는 가수다. 국내 최고의 솔로가수를 꼽으라면 언제나 후보군에 오르는 가수가 바로 유아이였다.

서주환은 진하게 웃었다. 근거라면 ‘노래(B/S)’ 재능만으로도 차고 넘쳤다. 다만 설명할 수가 없을 뿐. 대신 그는 감정적인 부분을 건드리기로 했다.

“이석찬.”

예상치 못한 이름에 배성근이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 떨었다. 그는 이석찬을 무척 높게 평가하고 있다.

서주환은 그 반응을 보고 자신 있게 말했다.

“내가 석찬이 녀석보다 사람 잘 봐. 특히 재능 있는 사람은 더더욱. 단언하는데, 율이는 정상급 스타가 될 수 있어.”

“…….”

배성근은 입을 꾹 다물고 서주환을 노려봤다. 그의 말에는 여전히 제대로 된 근거가 없었다.

…하지만 어째서 신뢰가 가는 걸까. 이석찬보다 사람을 잘 본다는 말이 이상한 믿음을 불어넣었다.

‘그래도 안 돼. 내 선에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대상자, ‘배성근’이 특수능력에 저항합니다.]

[특수능력, ‘위스퍼’가 비활성화됩니다.]

[위스퍼의 효과가 일부만 적용되었습니다.]

메시지를 본 서주환은 속으로 혀를 찼다.

‘실패인가?’

예상하지 못했던 바는 아니다. 아무래도 배성근의 호감도는 다른 여자들만큼 높지 않았으니까. 결정적으로, 지금까지 내뱉은 말은 객관적인 근거가 하나도 없었다.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지 못하는 이상 궤변으로 들릴 뿐이리라.

결국 배성근은 고개를 저었다.

“역시 안 돼. 은율 씨를 지금 복귀시키는 건 절대 무리야.”

“…알았어. 무리한 부탁해서 미안해, 형.”

서주환은 순순히 사과했다. 속으로는 위튜브와 같은 다른 방법을 모색하면서였다.

그때 배성근이 손가락을 하나 들며 말했다.

“‘지금’ 실력으로는 절대 안 돼.”

“어? 그거 무슨 뜻이야?”

서주환은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배성근이 골치 아프다는 듯 머리를 헤집으며 다시 말했다.

“일단 연습생 신분으로 들어와서 개인 트레이닝 받으라고 해. 그리고 라이브 실력이 음원만큼 나오면 그때…….”

“그때 복귀시켜주는 거야?!”

그가 흥분해서 묻자 배성근이 울컥 소리쳤다.

“아니야, 인마! 이건 내 선에서 결정 못해.”

“뭐? 그럼?”

“그때는 내가 직접 대표님한테 건의해보겠단 뜻이야. 대표… 아버지한테 회사 이미지 걸고 도박을 건의하는 건데, 나도 뭐 하나 할 말은 있어야 할 거 아니냐.”

리액트 엔터는 수많은 연예기획사 중에서도 대중적인 이미지가 좋기로 유명하다. 더불어 소속 배우와 가수들 또한 인성을 가장 먼저 보고 고른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이미지가 좋았다.

사실 서주환이 리액트에 의탁하려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었다. 바로 구설수에 쌓인 은율을 리액트의 이미지에 기대어 해명하기 위함이었다.

배성근은 못내 떨떠름한 기색을 다 지우지 못하고 말했다.

“그렇게 됐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율이 씨?”

그에 뒤쪽에 다가와 있던 은율이 흠칫하며 앞으로 나섰다.

“고, 고맙습니다. 저, 진짜 열심히 할게요!”

은율이 다부진 얼굴로 말했다. 옆에 선 민가희가 잘됐다며 은율의 어깨를 두드렸다. 서주환도 드디어 한 결 안심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배성근이 서주환을 노려보며 말했다.

“자, 주환아. 이제 우리 얘기도 좀 해볼까? 내가 설마 이렇게까지 하겠다는데 이제 와서 아무것도 안 할 생각은 아니겠지? 응?”

“하하…….”

서주환은 어색하게 웃으며 눈길을 피했다.

‘안 할 건데.’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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