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404화 (404/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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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분량 폭발!

인방 채팅도 많고 전개가 더 느려지면 안 될 것 같아서 안 끊고 때려 박았습니다ㅎㅎ

...대신 허리가 끊어진 것 같아요.

며칠 지켜 보고 차도 없으면 주사라도 맞으러 가야겠네요ㅠㅠ

운동을 잘못 했나...?

*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내게 상처 주게 허락할 테니

전주는 단조로운 기타소리로 시작됐다.

아르페지오로 한 음씩 현을 튕기는 소리. 그 사이로 피아노 건반이 섞이며 은율의 맑은 목소리가 덧씌워졌다.

= 아~

보이스 챗으로 울려 퍼지는 음성. 먹구름 비 개인 듯 맑은 허밍이 청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서주환은 허밍에 귀를 기울이며 생각했다.

‘이제 곡 자체는 회귀 전이랑 비교해도 손색이 없어.’

본래 이 시기의 ‘한 걸음’은 회귀 전 음원차트 1위를 달성했을 때와 달리 어설픈 면이 많은 곡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단점은 쓸데없이 전주가 길어서 가사가 나오기도 전에 질리는 다는 것이다.

한데, 작곡(B+/S) 재능을 가진 민가희가 그 부분을 보완했다. 이제부터는 온전히 은율의 몫이었다.

= 어제도 한 걸음 걸었어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맑지만 낮은 톤. 다소 무거운 멜로디 위로 화자가 지친 걸음을 내딛는다.

서주환은 첫 소절을 듣자마자 작게 미소를 지었다.

‘됐구나.’

은율이 노래에 몰입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고작 한 소절이었지만 이전과는 전해져오는 감정의 농도가 달랐다. 그녀의 몰입(A/A+) 재능이 드디어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 오늘도 한 걸음 걸어가요. 숨을 풀풀 내쉬면서~

애초부터 은율은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였다. 다만 이제껏 올바른 방향을 잡지 못했을 뿐이다.

= 내일도 몇 걸음 걸어갈 거예요. 팔을 휘휘 흔들면서.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걸까.

어느덧 제대로 방향을 잡은 그녀의 음성은 듣는 사람을 노랫말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 어제의 고단을 쌓아서, 오늘의 고난을 지나서, 내일의 고지를 올라서~

그것은 보컬적 스킬이나 특이한 음색의 힘이 아니었다.

다만 엄청난 몰입감.

은율의 가장 큰 강점은 바로 듣는 사람을 빨려들게 만드는 몰입감에 있었다. 짙게 배어나오는 그녀의 감정이 청자에게 그대로 전해져왔다.

[이건… 마치 주인님의 ‘씽 필링’ 같군요.]

루시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서주환은 작게 고개를 끄덕여 그 말에 동의했다. 은율의 노래는 그가 지닌 특수능력과 맞닿아 있었다. 그녀가 지닌 노래(B/S)와 몰입(A/A+) 두 가지 재능이 상승효과를 낳은 것이다. 그녀가 노랫말에 담은 감정이 느껴졌다.

= 희끄무레 보이는 불빛을 향해, 어슴푸레 비추는 저 빛에 달해~

무겁게 시작했던 멜로디가 어느덧 높고 여린 음으로 바뀌었다. 이내 높은 멜로디 위로 더 맑고 깨끗한 은율의 목소리가 날아올랐다.

= 자랑스레 웃음 진 나를 마주해─!

원곡보다 더욱 높아진 음색이 고막 안쪽을 파고든다.

우웅, 순간적으로 머리가 울렸다.

두성(頭聲)을 사용한 고음. 현장에서 듣는 것도 아니고 노래방 프로그램 너머로 전달되는 음성이 뚜렷한 공명을 일으켰다.

‘아…….’

서주환은 멍한 눈으로 화면을 바라봤다. 마치 그 앞에 누군가 있는 듯이.

‘리메디.’

얼굴 없는 가수. 상처 받은 사람들의 치료약이 되어주고 싶다던 그녀. 누구보다 상처받았던 은퇴한 전 아이돌.

= 말해줄 거예요. 너 정말 열심히 했다고. 나 정말 열심히 했다고.

리메디, 은율.

그녀에게 인기투표 같은 게 필요할까.

= 정말, 수고했다고─!

이미 훌륭한 가수인 것을.

*

노래가 끝났다.

그럼에도 채팅창은 느릿하게 올라왔다.

서주환은 그 이유를 짐작하고 저가 노래를 부르기라도 한 듯 뿌듯하게 미소 지었다.

‘다들 여운에 잠겨 있네.’

[그만한 노래를 들었으니까요. 제 짐작이지만 은율의 노래 재능은 순간적으로 A등급 이상까지 치솟았을 겁니다.]

‘그랬겠지. 지금의 율이가 보여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어.’

이래서 잠재등급이 중요하다. 천재들이란 종종 현재의 자신이 가진 것보다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곤 하니까.

서주환은 옆에서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 한수아의 어깨를 흔들었다.

“고미야, 정신 차려. 진행해야지.”

“어, 어? 아, 응! 여러분 노래 잘 들으셨죠? 이게 바로 율이 언니에요! 어때요? 가수로 데뷔할 수 있을 것 같… 아니, 당연히 할 수 있지!”

한수아가 말을 쏟아내자 그제야 채팅이 우르르 올라왔다.

- 자문자답 뭔데ㅋㅋㅋㅋㅋ

- 그런데 이건ㅇㅈ

- 맞말추ㅋㅋㅋㅋㅋ

- 와 현장 라이브 개마렵네

- 예명이 율율인 거예요?

- 목소리 뭐야…….

- 중간에 두성 오졌다. 머리 울릴 때 멍해지더라

- ㄹㅇ

- 아니 이거 투표할 필요 있음? 무조건 1등인데

- ㄹㅇㅋㅋ

- 지금부터 팬 할게요. 내가 1호 팬이야. 언니 빨리 데뷔해ㅠㅠ

- 눈나 나 쥬거!

- 목소리 진짜 깨끗하네. 이 실력으로 왜 여태 데뷔 안 함?

- 얼굴도 예쁠 듯

서주환은 채팅 하나를 확인하고 정색하며 말했다.

“어허, 1호 팬은 접니다.”

“2호는 내 거야!”

한수아도 뒤따라 얼른 끼어들었다.

- 독재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1호든 2호든 됐고 방금 그 노래 제목이 뭐라고 했죠?

- 분명 한 걸음이라고 했음. 가사에도 많이 언급됨

- 그래서 이거 음원 언제 나오는데?

- 나를 마주해~! 여기 두성 개쩔었던 부분 계속 맴도네

- 빨랑 투표ㄱㄱ! 그리고 한 곡 더 불러!

- 오늘부터 내 최애곡은 ‘한 걸음’이다

잠시 후 투표가 시작됐다.

[1위: 율율-한 걸음]

결과는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였다.

*

결과를 확인한 은율은 눈을 번쩍 뜨며 숨을 들이켰다.

“저, 정말로 일등이야? 흐아아, 다행이다. 가희야, 나, 일등이래…!”

민가희는 그런 은율을 황당하다는 듯 바라봤다.

“당연히 일등이지. 그렇게 잘 불러놓고.”

“나 잘 불렀어? 사실 제대로 불렀는지 기억이 잘 안 나서…….”

“본인이 불러놓고?”

“으응. 너무 긴장했었나봐. 옛날에도, 가끔 이랬거든. 최근엔 거의 없었지만.”

“…어쩐지 연습 때에 비해 너무 잘 부른다 싶더라.”

민가희는 아쉽게 입맛을 다시며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전의 노래가 단지 운(運)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흔히 극도로 집중하거나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평소보다 나은 실력이 나오지 않던가. 이를 그녀는 운이라는 말로 일축했다.

‘뭐, 오늘 했으니까 나중에 또 부를 수 있겠지.’

운이라고 하긴 했지만 그것도 아무런 기반 없이 튀어나오는 건 아니다. 그만한 잠재능력이 있고 숱한 연습이 뒷받침 되었기에 요행으로나마 가능한 것이었다.

민가희는 이내 진하게 웃으며 은율에게 손을 내밀었다.

“율이 언니.”

“으응?”

“이 정도면 오빠도 만족했을 거야. 축하해.”

그 말을 건넨 순간, 은율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들떠 있던 그녀는 휘둥그레 눈을 떴다가 이내 턱을 달달 떨어댔다.

“까, 깜빡, 했다. 오, 오빠가, 마, 마, 만족하는 게, 중요한 거였…어……!”

“…잊고 있었어?”

민가희가 황당하다는 묻자 은율이 울먹울먹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노, 노래, 부르느라. 그리고 가희 네가, 오빠 생각, 하지, 말라고오……!”

“엑. 이 언니 또 말 더듬네.”

“어떡하지?”

“뭘 어떡해. 빨리 오빠한테 연락해야지. 한 곡 더 남았잖아.”

“…어? 아, 맞다!”

은율은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박수를 짝 쳤다.

“우와, 그것도 잊고 있었어? 이 언니 진짜 특이하네. 슬기가 그랬는데, 나한테 특이하단 소리 듣는 거면 문제 있는 거래. 언니 문제 있어.”

파란 머리를 찰랑이며 쯔쯔 혀를 차는 민가희.

은율은 그녀의 심술 맞은 태도에 입술을 삐죽였다. 얘는 다른 사람들한테는 안 그러면서 왜 나한테만 이러는 거람? 아무리 은율이라도 심통이 날 수 밖에 없었다.

“…흥. 가희 너도 작곡할 때, 진짜 문제 있는 사람 같거든?”

“헐. 율 언니 점점 나한테 막말해.”

“가희 네가 먼저, 그랬어.”

“메롱이다. 나중에 하연이 언니한테 이를 거야.”

낯선 듯 익숙한 이름에 은율의 고개가 갸웃 기울어졌다.

“하연? 아, 분명 오빠랑…….”

“응, 처음 사귄 여자친구. 엄청 멋있고 센 언니야. 그리고 만만해.”

“센데, 만만해?”

은율이 고개 각도가 더욱 기울어졌다. 저게 무슨 소리지?

민가희는 정하연에 대해 설명해주려다가 귀찮아져서 말했다.

“나중에 직접 봐. 그보다 빨리 오빠한테 연락해서 여기로 오라고 해야지.”

“…응. 고마워, 가희야.”

“고마우면 다음에도 나랑 같이 작업하던가.”

“나야 당연히 좋지!”

“흐히히. 그럼 난 나가 있을게. 좋은 시간 보내~.”

민가희가 작업실 밖으로 나갔다.

은율은 서주환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 오빠? 아, 그, 지금 와줄 수 있어요? 가희네 작업실인데…….”

*

투표를 마지막으로 방송이 종료됐다.

서주환은 한수아에게 양해를 구하고 곧장 민가희의 작업실로 차를 몰았다. 이내 작업실 앞에 도착한 그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으음. 이제 괜찮으려나?”

[은율의 상태 말인가요?]

‘어. 막상 결정하려니까 좀 걱정되네. 기껏 음악에 몰입할 수 있게 됐는데 또 나한테 의존하게 되는 건 아닐지.’

[걱정이 과해요, 주인님. 어차피 여기까지 온 이상 멈출 수도 없잖아요?]

‘그것도 그렇지… 그래, 나도 이제 모르겠다.’

루시의 말대로 이제 와서 약속을 물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더 이상의 걱정은 시간낭비다. 차라리 축복을 사서 대비하는 게 나으리라.

[100,000LP를 사용하여 ‘몽마신의 축복(1일)’을 구매하셨습니다.]

서주환은 고민하던 마음을 정리하고 작업실 문을 열었다.

“율아, 가희야, 나 왔… 율아?”

서주환은 눈을 끔뻑이며 은율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녹음실 안에 들어가서 유리문 너머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지이잉, 하는 진동음과 함께 전화가 걸려왔다. 녹음실 안에 있는 은율에게서 온 전화다.

“여보세요?”

- 오, 오셨어요.

“응. 그런데 왜 녹음실에 있어? 가희는 어디 있고?”

- 가희는 먼저 나갔어요. 오빠랑 둘이, 대화하라고요.

“아아.”

- 녹음실에는… 지금부터 노래할 거라서 들어왔어요. 대화하기 전에, 노래부터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노래?”

- 네. 미디 믹서 위에 헤드폰 있어요. 그거 쓰고, 들어주세요. 가, 가능하면 저랑 마주보고 서 있어주세요.

“그래, 뭐 어려운 일이라고.

고개를 돌리자 은율이 말한 헤드폰이 보였다. 청음 성능이 뛰어난 고가의 헤드폰이다.

서주환은 기꺼운 마음으로 헤드폰을 착용했다. 아까 같은 노래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으음. 혹시 실망하실까봐 말씀드리지만 아까처럼은 무리일 거예요.]

‘그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얼마나 기특해? 중증 의존증세를 보이던 애가 나 오자마자 노래부터 들려주겠다는데.’

이미 마음을 결정했기 때문일까. 긍정적인 쪽으로 사고가 돌아갔다. 그는 넉넉해진 마음으로 녹음실 안의 은율을 바라봤다.

은율이 긴장한 기색으로 말했다.

- 오빠, 지금 일시정지 되어 있는 파일 틀어주세요.

“그래. 처음부터 틀면 되지?”

- 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MR이 시작됐다.

2초 동안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서주환은 문득 깨달았다.

‘한 걸음이 아니야?’

그리 생각한 순간, 시스템 음성이 울렸다.

[특수능력, ‘성교사(性敎師)’가 활성화됩니다.]

[대상자, ‘은율’의 호감도 등급 ‘A+’에 따라 200% 숙련도 버프가 적용됩니다.]

[축복, ‘몽마신의 축복’이 성(性)에 관한 강력한 행운을 발휘합니다.]

[대상자, ‘은율’의 ‘노래(B/S)’재능이 일시적으로 ‘노래(A+/S)’로 상승합니다.]

갑작스러운 알림을 추스르기도 전.

= 거울에─

은율이 노래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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