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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내게 상처 주게 허락할 테니
시간은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을 때 더욱 빨리 흐르기 마련이다. 은율과 민가희는 노래를 만드느라 시간이 빨리 흘렀고, 서주환 일행은 기말시험을 준비하느라 시간이 빨리 흘러갔다.
그렇게 어느덧 6월 18일이 되었고 1학기 기말시험이 끝났다.
“끝났다! 프리덤!”
“어예! 술 자시러 가자! 오늘 다 뒤졌다! 빠지면 뒤짐!”
서주환과 이석찬이 만세를 불렀다.
일행들은 그런 두 사람을 어이없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쟤네 뭐야. 누가 보면 공부 엄청 열심히 한 줄 알겠네.”
“내 말이. 둘 다 이번에도 대충 시험 쳤으면서.”
“그건 아닐걸?”
“엥? 저 오빠들 공부 열심히 했어?”
“아니, 이번에도가 아니라 지금까지 중 제일 대충 봤다는 뜻이었어. 아예 벼락치기도 안 하던데.”
“아하.”
부동의 1등 정하연과 그 뒤를 바짝 따라붙고 있는 유지경의 대화였다.
한편 장덕훈은 다크써클이 짙은 눈으로 책상에 늘어졌다.
“으어어어… 연재랑 시험 동시에 하려니까 죽을 맛입니다…….”
그런 장덕훈을 본 이석찬이 낄낄거리며 다가와 등을 두드렸다.
“짜샤, 그러니까 미리미리 비축분을 준비해뒀어야지. 아님 평소에 공부를 해두던가.”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아십니까?”
“덕후야, 너 타자검정 몇 나옴?”
“갑자기요? 음, 대충 450타 정도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들은 이석찬이 허공에 손가락을 짚으며 계산기 두드리는 시늉을 했다.
“1분에 450타면 10분에 4500자네. 대충 절반으로 쳐도 30분이면 한 편 완성이잖아? 와, 이거 개꿀 아님?”
“…선 넘으시네.”
“그런데 이걸 안 해서 징징대? 존나 게을러 빠져가지고 말이야. 곰탱이쉑.”
“형님, 오늘 스파링 한 판 어떠십니까?”
장덕훈의 눈에 살기 비스무리한 게 어렸다. 그는 죽일 듯한 눈으로 이석찬을 노려보며 내뱉었다.
“그거 가능한 사람 있으면 데려와 보십쇼. 못 데려오면 오늘 하극상 벌어지는 겁니다.”
“이 새끼 형한테 말하는 싸가지 보게.”
“지금이라도 사과하면 다시 싸가지 챙기겠습니다. 부디 제가 예의를 갖출 수 있게 해주십시오.”
187cm의 근육질 거구가 으르렁대니 위압감이 남달랐다. 하지만 이석찬은 여전히 낄낄거리며 태연하게 뒤를 가리켰다.
“저기 있네. 한 편 쓰는데 한 시간도 안 걸리는 놈.”
“누구… 아.”
그가 가리킨 대상을 확인한 순간 장덕훈의 눈에서 힘이 스르륵 빠지고 억울함이 깃들었다.
“야발…….”
장덕훈은 존경해 마지않는 스승이 미워지려 했다.
서주환은 심심하면 십 연참도 갈기는 미친놈이었다.
*
서주환은 쉬지 않고 타이핑을 이어가다가 멈칫 화면을 바라봤다. 그렇게 바라보기를 몇 분. 그는 이내 쩝 입맛을 다시며 축복을 종료시켰다.
루시가 의아함을 담아 물었다.
[글이 잘 안 써지시나요?]
“잘 안 써진다기보단 좀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서. 주인공의 감정을 노래로 표현한 곡을 직접 작사해야 하거든.”
[하이라이트 부분이군요.]
“응. 그래서 좀 더 고민해서 쓰려고. 작사랑 작문은 느낌이 조금 다르니까. 이번엔 비유가 아니라 진짜 가사를 제대로 쓰고 싶은데 꽤 어렵네.”
가사를 쓸 때는 생각보다 고려해야할 부분이 더 많다. 예를 들면 같은 표현이라도 좀 더 발음하기 쉬운 단어를 선택해야 한다거나 앞문장과 뒷문장의 운율을 맞춰야 하는 점이 그렇다. 사실 소설이니까 그런 것까지 하나하나 고려할 필요는 없었지만 서주환은 디테일을 챙기고 싶었다.
‘직접 노래를 불러서 삽입곡으로 넣으면 좋을 것 같은데.’
하지만 생각과 달리 당장 떠오르는 문장은 없었다. 아무래도 기존의 노래 가사나 시를 참고해야 할 듯했다.
[시(詩)를 말인가요? 하긴, 노래랑 비슷한 면이 있군요.]
“응. 그래서 시로 만든 노래도 많아. 랩 같은 경우는 ‘거리의 시’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비축분이 많아서 고민할 시간은 충분하겠군요. 다행입니다.]
“그러게 말이야.”
그렇게 루시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환이 오빠! 슬슬 준비해야 돼~!”
문밖에서 한수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서주환은 PC를 종료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그와 한수아가 개최한 ‘방구석 노래대회’가 있는 날이었다.
그는 문을 열며 생각했다.
‘율이는 잘 준비했으려나.’
방구석 노래대회.
은율이 그간의 성과를 보이는 무대였다.
*
한수아의 집은 서주환의 바로 옆에 있다. 덕분에 그는 늦지 않게 자리할 수 있었다.
서주환이 의자에 앉자 한수아가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지금부터 한고미 배 방구석 노래자랑을 시작하겠습니다아! 와아! 짝짝짝!”
“오오. 짝짝짝.”
대충 입 박수로 호응해주자 채팅이 올라왔다.
- 호응 개대충인 거 보소ㅋㅋㅋㅋㅋ
- 1등 30만 원은 내가 먹는다!
- 캬 고미 많이 컸다. 대회 하나에 얼마를 거는 거임ㅋㅋㅋㅋ
- 그래봐야 총 상금 70정도 아님?
- 70만 원이 죠스로 보이냐? 다른 방은 대충 빅맥이나 치킨 걸고 끝임. 1인 방송에 뭘 얼마나 바라는 거야 이 새낀?
- 인방 잘 안 봐서 몰랐어… 미안해…….
- 고미 예쁘다! 귀엽다!
- 환이 오빠 멋있다! 잘생겼다!
- 환이 오빠(덜렁)랑 운동 같이 하고 싶다. 어깨 넓이 봐라 군침이 싹 도네
- ㄹㅇ30만 원 필요 없고 운동 하루만 같이 해보고 싶음
- 한고미는 나가 있어 서환 작가님만 있으면 돼
- ㄹㅇㅋㅋ
채팅을 본 한수아가 빽 소리쳤다.
“우쒸, 내 방송이야! 그리고 난 오빠한테 직접 운동 받았지롱! 이거 보여요? 흡! 알통!”
한수아의 팔에서 이두가 뽈록 튀어나왔다. 근육이 미약하게 갈라지긴 했으나 워낙 작은 체구에 가는 팔이라서 하찮기 그지없었다.
- ㅋㅋㅋㅋㅋㅋㅋ저게 이두?
- 존나 하찮아서 개커엽네ㅋㅋㅋㅋㅋ
- 저거 치면 부러질까?
- 헬창들 신났네ㅋㅋㅋㅋㅋ
- 고미는 됐고 솔져 형 이두 보여줘요
“저요? 고미야, 자세 유지하고 있어봐.”
“웅?”
한수아의 팔 뒤에 대고 자세를 취했다. 대충 2.5배 이상 굵기 차이가 났다.
- 와 지리네;;
- 대비 되니까 더 오진다. 삼두도 오짐ㅎㄷㄷ
- 형 루틴 좀 알려줘 ㅈㅂ
- 여기 노래대회 아녔음?
- 방 잘못 찾아오셨습니다ㅋㅋ
- 여기 헬스방입니다
“아냐! 제대로 찾아왔어요! 자자, 시작하기 전에 우선 제가 한 곡 뽑을게요. 나도 한 노래하거든!”
- 곰 세 마리 부르려고?
- 동요가 잘 어울리긴 해ㅋㅋㅋㅋㅋ
- ㄴㄴ고미 옛날에 노래방송도 했음. 꽤 잘 부름
- ㄹㅇ?
MR을 튼 한수아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느 시청자의 말처럼 한수아는 꽤 노래를 잘 불렀다. 진짜 가수에 비하면 어설프지만 일반인치고는 고음도 제법 깔끔했다.
- 오 생각보다 훨씬 잘 부르네
- 노래 할 때 목소리가 좀 성숙해지네. 이게 찐목인가?
- 원래 노래 부를 때 목소리 바뀌는 사람 많음
- 판 잘 깔아주네. 딱 적당한 수준이라 다음 사람 하기 좋을 듯ㅋㅋㅋ
한수아는 썩 잘 부르긴 했지만 그리 특출난 수준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게 좋은 분위기를 만드는데 도움이 됐다.
이내 노래를 마친 한수아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제 노래는 여기까지! 지금부터 아웃씽 접속한 사람들 노래 신청해주세요! 방구석 노래방 첫 타자는 과연?! 두구두구두구! 환이 오빠, 비트박스 해줘! 두구두구두구!”
“엉? 내가 비트박스를 어떻게 해?”
“엥? 오빠가 못하는 것도 있어?”
한수아가 정말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어이없는 건 채팅창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 뭐임. 진짜 못함? 왜?
- 왜 못함?
- 서환인데?
- 다 할 줄 아는 거 아니었음?
- 살인범도 잡았는데?
서주환이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뭐야 이 만능인간 프레임은? 비트박스랑 살인범 잡은 게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저 못 하는 거 많아요. 할 줄 아는 거라곤 소설연재, 일러스트, 게임, 춤, 노래, 연기, 성대모사, 운동 정도밖에 없습니다.”
채팅창에 야유가 올라왔다.
- 에라이 씨8 퉷!
- 존나 재수 없네
- 재수 없는데 진짜라서 개빡치네ㅋㅋ
- 아니ㅋㅋ 세상ㅋㅋ 존나 불공평하네 씨잇팔ㅋㅋ
- 환이 오빠 멋져요!
- 우리 오빠 소설 연재는 취미에요ㅎㅎ
“아니, 소설이 본업인데요. 오, 고미야 첫 신청자 들어왔다.”
“두둥탁! 첫 번째 참가자는~ 꽃샤브 님! 아, 샤브샤브 먹고 싶어져따.”
[‘꽃샤브’ 님께서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제발 먹어주세요!
“아니, 의미가 다른 것 같은데?!”
“왜, 여성분일 수도 있잖아.”
“무슨 상관이야! 아무튼 만 원 후원 감사합니당! 미리 말씀드렸다시피 노래방 콘텐츠 중에 리액션은 없으니까 양해 부탁드려용!”
- 아니, 만 원은 원래도 감사합니다잖아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ㅗㅜㅑ보빔 개꼴리네(10분간 채팅이 금지되셨습니다.)
- 무7놈ㅋㅋㅋㅋㅋ
- 진짜 여자면 ㄹㅈㄷ
한수아는 채팅 반응을 보며 꽃샤브의 음성을 허용했다.
= 아, 아. 들리세요?
꽃샤브의 음성은 여성 아나운서가 연상되는 톤의 목소리였다.
한수아가 깜짝 놀라서 숨을 들이켰다.
“헉, 진짜 여성분이시네요?”
= 아하하. 안녕하세요. 농담이었는데 분위기가 이렇게 돼서 죄송해요.
“유료 채팅이었으니까 괜찮아요!”
= 아핰깤깤깤깤!
꽃샤브가 웃음을 터뜨렸다. 정갈한 목소리에 어울리지 않는 특이한 웃음소리에 한수아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웬 까마귀 소리가…?”
= 앗, 크흠. 노래 시작할게요! 아참, 환이 오빠, 팬이에요!
“엑! 내 팬이 아니고?!”
“그, 제가 오빠 맞죠…?”
= 그럼요! 잘생기면 오빠예요!
“오케이. 그럼 그런 걸로.”
“우와, 환이 오빠 뻔뻔한 거 봐. 아무튼 노래 틀겠습니다! 큐!”
노래가 시작됐다.
꽃샤브는 고음이 무척 높은 곡을 선곡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짐작컨대 재능등급으로 따지면 B급에 걸칠 듯했다.
“우와아! 잘 들었습니다! 첫 주자부터 노래 실력 뭐야! 왤케 잘 불렁!”
=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고미 님 팬이기도 해요. 섭섭해 하지 말기~!
“헐. 완전 엎드려 절 받기! 그래도 고마워용! 언니 사랑해!”
한수아가 머리 위로 하트를 그렸다.
노래와 짧은 잡담이 이어지며 순서가 돌아갔다. 그리고 순번이 네 번쯤 돌았을 때였다. 노래방 프로그램 아웃씽에 들어온 참가자들이 ‘ㅠㅠ’로 채팅을 도배했다.
- 다들 왤케 잘 부름. 왜 나만 일반인이야ㅠㅠ
- 폭탄 돌리기 에반데;;
- 아니 랩도 잘 부르면 어떡해요..ㅠ
- 이게 바로 코노 강국…? 평균 수준 너무 높아. 뭔데 이거
- 에휴. 여러분 그냥 제가 폭탄 처리반 하겠습니다.
[‘떡주’ 님께서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분위기 전환 시킬 테니까 못 불러도 양해해주세요ㅠㅠ
- 용자가 나타났다!
- 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ㅠ
그리고 잠시 후.
성난 채팅이 마구 올라왔다.
- 폭탄 처리반이라메 야발롬아!
- 분위기 전환 한다메!
- 하성우 노래 선곡할 때 알아봤다 시부레ㅋㅋㅋㅋㅋ
- 나 빼고 다 기만자야ㅠㅠ
방송을 진행하던 서주환과 한수아는 너털웃음을 흘렸다.
“이 정도면 진짜 가수 몇 명 섞여 있는 거 아니야?”
“저기요. 님들 왜 가수 안 해…?”
아무리 봐도 평균 노래등급이 C이상이다. 서주환이 내심 우승후보로 꼽은 사람은 실력이 B+정도는 되어보였고, 그 외에도 B등급은 족히 나올만한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참고로 그가 뽑은 우승후보는 ‘나 빼고 다 기만자’라는 채팅을 친 사람이었다.
“참가자가 삼십 명 가까이 되는데 기만자 아닌 사람은 두 명 정도네. 당신들 양심 터졌어요?”
“이 싸람들이! 다 못하는 척 하더니 진짜 못 부르신 분 상처 받게!”
“수아야, 그거 두 번 죽이는 말이다.”
“아, 아니, 다른 사람들에 비해 못 불렀단 소리였어!”
두 사람의 말에 아웃씽 참가자들이 채팅을 쳤다.
- ㅎㅎ ㅈㅅ;;
- 아, 1등 할 생각이었는데ㄲㅂ
- 그러게 누가 1등 상금을 30만 원이나 걸라고 했냐고ㅋㅋㅋㅋ
- 치킨이 목적이었는데 어림도 없었구연.
- 나만 광대가 됐다…….
- 저도 있어요ㅠㅠ 다 거짓말쟁이들이야 진짜 ;ㅅ;
그때 후원채팅이 하나 왔다.
[‘율율’ 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다들 나빠요…….
*
방송을 지켜보던 은율이 옆자리에 앉은 민가희를 돌아봤다.
“가희야, 나 자신감이 사라졌어. 그냥 나중에 할까…? 사실 오빠가 언제까지라고, 기간을, 설정한 건, 아니잖아.”
은율은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그간의 맹연습을 통해 나름 자신감이 있었는데 쟁쟁한 참가자들을 보자 불안감이 밀려왔다.
민가희는 어색하게 웃다가 떽! 하고 자신의 팔뚝을 쳤다. 찰싹! 하는 소리가 울리자 은율은 자신이 맞은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율 언니, 정신 차려! 왜 또 말 더듬어!”
“어, 어어! 미안!”
놀란 은율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민가희는 다시 한 번 자신의 팔을 찰싹 때리며 말했다.
“참가자들이 생각보다 노래를 잘 부르는 건 사실이야. 하지만! 어디까지나 일반인이야! 무슨 소린지 알아?!”
“아, 알… 솔직히 모르겠어…….”
민가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한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가수란 건 단순히 노래를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보컬 스킬이 다가 아니라고. 스킬적인 부분이 조금 부족해도 더 듣기 좋은 노랫소리로 대중을 사로잡는 가수는 얼마든지 있어. 각자가 지닌 강점은 달라. 그건 독특한 음색일 수도 있고, 노래에 담긴 가수의 에고일 수도 있고, 사람들을 절로 몰입시키는 감정전달일 수도 있어. 그게 있느냐 없느냐가 바로 빵 뜨는 가수와 뜨지 못하는 가수의 차이야. 오케이?”
“오, 오케이…?”
얼떨결에 대답한 은율.
민가희는 그런 은율의 어깨에 두 손을 올리고 자신 있게 말했다.
“내가 원래 보컬 전공이었다고 했었지? 솔직히 나 노래 꽤 잘 부르는 편이었어. 하지만 난 내 곡을 만들어서 노래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 조금 전에 말했듯이 가수로서의 ‘무언가’가 전혀 없었거든.”
“…….”
“하지만 언니한테는 그게 있어. 부족한 건 자신감뿐이지. 그러니까 자신감을 가져.”
“…응. 고마워, 가희야.”
은율이 감동받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할 수 있어. 자신감을 가져야 돼.’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노래 연습에 투자해오지 않았던가. 민가희의 집중 훈련 덕에 현역으로 활동할 때보다 보컬 스킬도 좋아졌다. 충분히 자신감을 가져도 될 것이다.
그렇게 은율이 두 주먹을 꽉 쥐고 다짐할 때, 민가희는 어색하게 웃으며 방송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단 되는대로 말하긴 했는데… 괜찮겠지?’
저 사람들 왜 음대에 안 갔는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전공자가 꽤 섞여 있는 걸지도.
*
방구석 노래대회가 막바지에 달했다. 드디어 마지막 한 사람만 남은 것이다.
서주환과 한수아는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마지막 순서는 ‘율율’님입니다!”
“폭탄 돌리기의 마지막이라니… 내가 미안해. 마지막 순서로 넣어서.”
“율율 언니 미안해……!”
“힘내라, 율율아!”
서주환과 한수아는 과장되게 고개를 숙이며 사죄를 표했다.
시청자들의 채팅이 물음표로 도배됐다.
- ?
- 뭐임? 아는 사람임?
- 편하게 부르는 게 진짜 아는 사람 같은데?
- 헐 1등 정해져 있는 거였어?
- 시청자 투표로 하는데 어떻게 정해놔ㅋㅋㅋㅋ
- 에이, 그래도 지인이면 표가 좀 쏠릴 수도 있지
- 걍 티를 내지 말던가ㄹㅇ
채팅을 본 한수아가 얼른 말했다.
“율율 언니는 오빠랑 제 지인이 맞고, 투표에는 포함 돼도 상금은 못 받아요.”
한 시청자가 의문을 제기했다.
- 상금 안 줄 거면 투표는 왜 포함함?
서주환이 답했다.
“사실 율율이가 가수 지망생입니다. 여러분들이 듣고 가수로서의 가능성을 판단해주세요.”
“히익. 환이 오빠, 그걸 말하면…!”
“일부러 부담되라고 말하는 거야.”
서주환은 방송을 지켜보고 있을 은율을 생각하며 캠을 바라봤다.
“얼굴도 안 드러내고 인터넷상으로만 하는 거잖아. 미래에 가수가 될 건데 이 정도 부담은 극복해야지.”
“환이 오빠…….”
한수아는 조금 불안한 눈으로 서주환과 캠을 번갈아봤다. 그녀도 은율이 아픈 걸 알고 있기에 걱정이 된 것이다.
- 스파르타식 교육 후덜덜
- 부담ON
- 딱히 심한 말 같지도 않은데? 가수 할 거면 이 정돈 별 거 아니어야 하는 게 맞지
- 난 존나 부담될 듯
- 잘했으면 좋겠다
- 그래도 투표는 냉정하게 한다. 지인특혜 그런 거 없음
시청자들의 관심이 은율에게 쏠렸다.
하지만 서주환은 채팅을 신경 쓰지 않고 한 마디를 덧붙일 뿐이었다.
“율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을게.”
서주환은 그녀에게 부담이 될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분위기를 이렇게 만들었다. 은율의 페티시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페티시, Autagonistophilia(어타고니스토필리아).
무대에 오르거나 카메라에 찍히며 대중의 관심을 받을 때 흥분을 하는 증후군.
‘이번에는 꼭 무대에 오르자, 율아.’
그는 은율이 얼굴 없는 가수로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잠시 후.
채팅이 하나 올라왔다.
- 율율: 할 수 있어요.
동시에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 노래 시작하겠습니다. 친구와 함께 만든, 자작곡이고, 제목은 ‘한 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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