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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내게 상처 주게 허락할 테니
난데없이 굴러들어온 돌멩이.
은율은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했다. 이미 서주환과 사귀고 있던 한수아와 민가희에게 있어 자신은 그저 방해꾼밖에 되지 않을 테니까. 심지어 기껏 호의로 다가와준 은혜를 원수로 갚기나 하는 배은망덕한…….
와락!
한수아가 은율을 끌어안았다. 아니, 품에 들어온 건 그녀였으니 안겼다고 보아야 옳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예상치 못한 그 행동은 은율의 부정적인 생각을 끊어내기에 충분했다.
“수, 수아야…?”
“언니, 그런 얼굴 하지 마. 우린 언니한테 화났다는 게 아니니까.”
“어, 어?”
은율이 당황하는 사이, 민가희도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이걸로 땀 좀 닦아, 언니. 식은땀 엄청 난다.”
“…….”
은율은 멍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분명 화가 났어야 할 두 사람은 여전히 미소 짓고 있었다. 다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는데, 그마저도 경멸이나 비난이 아닌 안타까움과 동정의 빛을 띠고 있었다.
한수아가 에효- 하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언니가 환이 오빠를 좋아하게 된 건 잘못이 아니야. 어떡해? 상대가 환이 오빤데.”
“맞지. 이미 좋아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지. 뭣보다 그 오빠 이상한 페로몬 같은 거 풍기고 다니니까.”
“환이 오빠 말로는 향수도 안 쓴다던뎅.”
“그러니까 더 위험하지. 무슨 인간 페로몬남이냐고.”
은율은 멍한 시선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나한테 콩깍지가 씌었다고 했으면서.’
아무리 봐도 두 사람이 할 말은 아닌 듯했다.
은율은 재잘재잘 떠드는 두 사람을 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수아랑 가희는, 내가 밉지 않아? 결국 난 너희를 배신한 건데… 그냥 굴러들어온 돌이고 방해꾼이잖아…….”
그에 한수아는 눈을 꿈뻑이며 고개를 기울였다.
“글쎄엥. 사실 난 환이 오빠한테 얘기 들었을 때 ‘아직도?’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
민가희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 그거 무슨 기분인지 알아. 완전 공감.”
“그칭?”
“응. 오히려 의외였어. 그리고 사실 굴러들어온 돌? 방해꾼? 그런 거 따지기 시작하면 우리도… 그치?”
“할 말 없지이. 당당하게 따질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니까.”
하나씩 따지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가장 먼저 서주환과 사귄 여자는 정하연이고, 잠시 헤어졌을 때 그 틈을 파고들어 자리 잡은 사람은 유지경이었다. 이후 민가희는 서주환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달라붙었고, 한수아는 유지경의 배려에 힘입어 관계를 맺었다.
저마다 과정은 조금씩 달랐지만 결론적으로 누가 누구를 비난할 만큼 당당하진 못했다.
물론 그럼에도 자신의 남자에게 자꾸 여자가 늘어나는 건 못마땅할 수밖에 없었지만…….
한수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꾸 늘어나니까 익숙해져버렸어. 여자 많은 것도 한두 명이어야 따지지 벌써 다섯 명 째… 아니, 여섯 명 짼가?”
“엑? 여섯 명?!”
“응? 가희 언니는 몇 명인 줄 알았는데?”
“나는 우리 단톡방 멤버가 끝인 줄 알았지!”
“아, 그럼 네 명인 줄 알았구낭. 하긴, 확정은 네 명이 맞지. 나머진 내 짐작이고.”
“짐작하는 사람이 누군데?”
“한 명은 가브리엘라 언니.”
“아…….”
민가희는 그 이름을 듣자마자 납득했다.
“그럼 다른 한 명은?”
“있어, 환이 오빠가 굉장히 엄청나게 신뢰하는 출판사 언니. 옛~날에 얼굴도 한 번 본 적 있는데 예뻐.”
“예뻐? 얼마나? 가슴 커?”
“음. 되게 지적으로 보이는 언니야. 성공한 커리어우먼이라는 느낌? 가슴은 별로 안 컸던 것 같은데… 솔직히 난 가희 언니보다 큰 사람 못 봤어.”
“으흠!”
민가희는 자랑스럽게 가슴을 폈다. 평생 거추장스럽게 생각했던 큰 가슴은 이제 남들과 다른 경쟁력이었다.
한편 은율은 대화를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오, 오빠한테, 여자가, 그렇게나 많아…?”
당황스러운 마음에 함묵증이 도질 정도였다. 많다고 말을 듣긴 했지만 여섯 명이라니, 많아도 너무 많지 않은가. 아니, 이제 자신까지 셈하면 일곱 명이었다.
한수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더 있을지도 몰라. 서로 다 알고 지내는 건 아니거등. 아니, 분명히 더 있을 걸.”
“율이 언니, 먼저 오빠를 좋아한 사람으로서 말하는데, 그거 일일이 다 상처받으면 옆에 못 있을 거야. 그럴 거면 지금이라도 포기하는 게 좋아.”
은율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포, 포기 안 해!”
“헉, 깜짝이야.”
“나도. 율이 언니가 소리치는 거 처음 봐.”
“미, 미안해. 화낸 거 아닌데… 미안…….”
은율이 다급히 손을 내저으며 사과했다. 그에 한수아와 민가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두 사람이 이렇듯 수다를 떨어댄 이유는 은율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함이었다.
한수아는 짓궂은 얼굴로 말했다.
“어쨌든 율이 언니는 아직 환이 오빠랑 사귀는 거 아니지?”
“으, 응. 오빠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은율이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한수아가 메롱 하고 혀를 내밀며 말한다.
“그럼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건데 사과는 그만해. 그보단 노래를 만들어야지.”
“맞아. 언니는 그보다 ‘한 걸음’을 완성시킬 생각을 해야 돼. 지금까지는 적당히 봐주면서 했지만 그런 조건까지 걸렸으니까 이제 안 봐줄 거야.”
“그, 그게 봐준 거였어…?”
경험한 바 민가희의 프로듀싱은 굉장히 매서웠다. 한데 그게 봐준 거라니.
민가희는 픽 웃으며 눈을 빛냈다.
“언니 상태 고려해서 엄청 봐준 거야. 소리 지르고 싶은 걸 얼마나 참았는데.”
거짓말이 아니다. 민가희는 평소 동생들에게도 바보취급당할 정도로 맹한 구석이 있었지만 음악과 관련해서만큼은 깐깐하기 그지없었다.
다만 본인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 교수님에 비하면 난 너무 무르지. 응.’
전과 후 작곡에서 천재성을 보이고 깐깐하기로 유명한 교수님의 관심을 독차지한 민가희. 그녀는 어느덧 본인의 지도교수님을 닮아가고 있었다.
“히익…….”
은율은 번쩍이는 민가희의 눈을 보고 두려움에 떨며 생각했다. 역시 화난 게 분명하다고.
한편 한수아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으음. 지경이는 엄청 화낼지도 모르겠는데.’
정하연보다도 유지경이 걱정이었다. 정하연은 이미 해탈한 수준이었지만 유지경은 일행 중 질투심이 제일 강했다.
‘아, 몰랑. 내 몫까지 화내줬으면 좋겠다.’
서주환에게 정면으로 분노를 터뜨리는 사람은 유지경이 유일하다. 여섯 명 중 고작 한 명. 그 정도는 마땅히 감수해야 되지 않을까.
*
한수아의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서주환의 얘기를 들은 유지경이 간만에 이를 드러냈다.
“이, 이 난봉꾼 집사 새끼! 죽어!”
“으아악! 깨물지 마, 너구리! 야, 야! 진짜 깨물었어! 악!”
“캬아아아악!”
“미, 미안하다니까! 어쩔 수 없었어!”
“어쩔 수 없기는 뭐가 어쩔 수 없어! 그걸 말이라고 하냐! 팔뚝 내놔!”
“아프다고!”
“아프라고 깨무는 거야!”
서주환은 결국 유지경에게 팔뚝 하나를 내줘야만 했다.
너구리가 입에 굵은 팔뚝을 문 채 잘근거리며 말한다.
“드드츠 믗믕끄즈 늘를승극으느.”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거든…….”
콰악!
“어억! 알아따따! 내가 무조건 잘못했어!”
“퉤. 나쁜 집사새끼. 도대체 몇 명까지 늘릴 생각이냐고. 어?”
팔뚝을 뱉어낸 너구리는 여전히 으르렁댔다.
“냉미녀, 너구리, 149 꼬맹이, 왕거유, 금발백마. 이 정도로 다양하면 만족할 때도 되지 않았냐, 주인 새끼야?”
“나 주인 맞아…?”
“말 돌리지 말고 대답이나 해! 이제 하다하다 전직 아이돌이라니! 나쁜 놈! 개새끼! 쓰레기!”
“밟지 마라. 아, 아! 그만 밟아. 난 맞는 취향 없다고.”
“씨이, 씨이잉…….”
유지경은 분한 기색으로 씩씩거리며 서주환을 노려봤다. 아무리 알고 만나는 거라지만 도대체 몇 명째란 말인가. 차라리 만날 거면 모르게 만나던가 왜 직접 말을 해준단 말인가.
그 이유를 알기에 화가 났다.
‘은율이라는 사람, 그냥 지나가는 여자가 아닌 거잖아…….’
하룻밤 스쳐 지나가는 여자는 상관없다. 아니, 그것도 화가 나긴 마찬가지지만 욕 한 번 하는 걸로 참을 수 있었다. 왜냐면 자신은 그의 수많은 여자들 중에서도 몇 없는 특별한 사람이니까.
유지경은 왼손 약지에 낀 반지를 바라보며 입술을 씹었다.
‘또 경쟁자가 늘었어.’
그녀의 경쟁상대는 반지를 선물 받은 여자들이었다. 그 외에 지나간 여자들은 크게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한데, 이렇듯 통보까지 하는 걸 보아하니 은율이라는 사람에게도 훗날 반지를 선물할 듯했다.
서주환은 분한 기색으로 씩씩대는 유지경을 바라보며 쓰게 웃었다.
‘더 깨물어도 괜찮은데. 하여간 착해 빠져가지고.’
그는 침으로 범벅된 팔뚝을 쓸었다. 옅게 난 잇자국이 보인다. 고작 그 정도 흔적이었다. 힘껏 깨물 것처럼 하더니 엄살 좀 부리니까 금방 떨어져나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안심하고 깨물라고 대줄 걸 그랬다.
서주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유지경을 끌어안고 침대에 앉았다. 품안에 들어온 그녀가 빠져나갈 생각이 전혀 없는 몸짓을 해댔다.
“이거 놔라, 집사.”
“싫다, 너구리.”
“깨물어버린다, 주인.”
“물어라, 노예.”
“캬악!”
콱!
“윽. 맛있냐, 요지경?”
“쯔드.”
“짜다고? 아직 샤워 전이라 그래.”
잘근잘근.
“맛있어? 짜다면서 계속 씹어대네.”
“느쁜늠…….”
“그래, 그래. 내가 나쁜 놈이고 죽일 놈이다.”
다 알고 만난 거면서 왜 그러냐, 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안다고 해서 상처를 안 받는 건 아닐 테니까.
서주환은 팔뚝 하나를 물려준 채 유지경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렇게 예쁘고 착한 너구린데 못된 주인을 잘못 만나서 마음고생이 심했다.
“퉤. 오빠의 진짜 나쁜 점이 뭔 줄 알아?”
“…….”
“은율이라는 언니 사정을 나한테 다 설명했다는 거야. 원망도 못하게.”
“…….”
“내가 오빠는 진짜로 못 미워하는 거 아니까 배짱부리는 거잖아. 틀렸어?”
“…미안해.”
“짜증나…….”
“에휴, 순해빠진 너구리.”
“나 안 순하거든!?”
“착해빠진 너구리.”
“안 착하다고! 그리고 머리 쓰다듬지 마. 나 아직 화 안 풀렸으니까.”
서주환은 계속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 말란다고 정말 안 하면 그건 그것대로 또 삐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럴 땐 그냥 한 번 더 물려주고 욕을 먹는 게 나았다. 이렇듯 화내고 투정부리는 게 유지경 나름대로의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제일 좋은 스트레스 해소법은 따로 있지요?]
루시가 끼어들었다.
‘분위기 잡는데 말 걸지 마, 루시.’
[흑. 루시는 박을 구멍도 없으니까 이런 취급이군요.]
‘야…….’
[농담이랍니다♡]
‘꼴받으니까 특수문자는 좀 빼지.’
[힝..ㅠ]
루시와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먼저 움직인 사람은 유지경이었다. 그녀는 서주환의 품에 안긴 채 손을 더듬거렸다. 뒤로 돌아간 손이 서주환의 중심부를 만지작댔다.
서주환은 픽 웃으며 말했다.
“요즘 좀 못하긴 했지?”
“…밥 안 주고 방치하면 동물학대인 거 알아, 주인새끼야?”
“생사람 잡네. 내가 너한테 술안주를 얼마나 해다 바쳤는데.”
“흥. 그건 유지경한테 준 거고.”
“아, 그것도 그런가? 너구리한테는 밥을 안 줬네.”
“빨리 밥 내놔, 집사 놈아.”
유지경, 아니, 너구리가 붉게 물든 얼굴로 그리 말했다.
서주환은 낄낄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구리.”
“흥.”
“입 벌려, 식사 시간이야.”
“…너굴.”
그 날 너구리는 배가 빵빵해질 때까지 포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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