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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루시 덕분에 드디어 빌드업 끝났......
서주환 귀찮은 새끼
*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내게 상처 주게 허락할 테니
은율은 용기를 내서 고백했다. 그러자 서주환이 처연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율아, 나 그렇게 좋은 사람 아니야. 사귀는 사람도 있어. 그러니까 미안해.’
그녀는 거절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부끄러움도 잊고 매달렸다. 두 번째라도 좋으니 자신도 받아달라고. 오빠가 없으면 안 된다고. 사실은 오빠도 날 좋아하지 않느냐고.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아니, 그걸 용기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정신병자라고 비난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추한 모습이 그에겐 어떻게 비췄을까.
다행히도 그의 눈동자에 경멸은 없었다. 다만 씁쓸하고 안타까운 감정만이 전해져올 뿐이었다.
끝내 그는… 오빠는 자신을…….
“헉.”
은율은 놀란 숨을 토하며 눈을 떴다.
“아? 어…?”
그녀는 어벙한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낯선 공간이 시야에 들어왔다.
“설마 오빠 방…?”
그 사실을 깨달은 은율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순간 어젯밤에 있었던 일이 선명하게 떠오른 탓이었다. 술이 약한 만큼 쉽게 취하지만 전날의 기억은 또렷했다.
“어떡해……!”
당장 떠오른 걱정은 앞으로 서주환의 얼굴을 어떻게 보냐는 것이었다. 그런 추한 모습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릴 늘어놓았으니 기피 받아도 이상할 게 없었다.
‘이 멍청이, 고백을 왜 해가지고!’
이미 여자친구가 있다는 확답을 들어버렸다. 차라리 고백을 하지 않았더라면 계속 옆에 있을 수 있었을 텐데.
‘오빠는 그냥 내가 불쌍해서 도와준 거였는데. 그걸 내가 다 망쳐버렸어.’
동정심으로, 선의로 도와준 것도 모르고 분수에 맞지도 않는 착각을 해버렸다. 거절당했으면 거기서 끝내야 하는데 운명이라는 말이나 지껄이며 들러붙었다.
“아으으… 다 망했어… 어떡해…….”
은율은 머리를 감싸 쥐고 앓는 소리를 냈다. 지난밤의 자신이 원망스럽고 앞으로가 막막했다.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모르는 척 하자.’
기억 안 나는 척 넘겨버리자. 그러면 계속 그의 옆에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태연을 가장해야 한다.
은율은 그리하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 앞에 서있는 서주환과 딱 마주쳤다.
“히익?!”
“일어났어?”
“네, 네에! 안녕히 주무셨어요!?”
삑사리 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쥐구멍에 숨고 싶다는 게 이런 감정이구나. 당장 사라지고 싶었다.
반면 서주환은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저기 욕실에서 씻고 나와.”
“네, 네?”
“밥 먹자. 해장해야지.”
웃으며 말한 서주환이 주방으로 돌아갔다.
은율은 그의 뒷모습을 끔뻑거리는 눈으로 바라봤다.
‘뭐, 뭐지? 다 꿈이었나?’
그럴 리가 없는데. 이렇게 기억이 선명한데.
하지만 너무나 태연한 얼굴을 보니 자신의 기억이 잘못된 것인가 의심이 들었다.
세수를 하던 은율은 문득 깨달았다.
‘없었던 일로 하려는 거구나…….’
생판 처음 보는 남의 정신병을 낫게 해주겠다고 도와주는 사람이다. 이번에도 그런 배려심에서 비롯된 행동일 터였다.
은율은 씁쓸하게 웃었다. 분명 잘 된 일인데도 불구하고 어쩐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나 완전히 차였구나.’
결국 질문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어떡하지. 이대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계속 그에게 의지해도 되는 걸까. 술에 취해 한 말이지만, 두 번째라도 좋다는 것은 거짓이 아니었는데.
*
은율의 고민은 식사를 하는 중에도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식사가 끝난 후.
서주환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율아, 어제 일 다 기억하지?”
“?!”
커피를 마시던 은율은 사레가 들렸다.
“켁, 콜록! 아뜨, 뜨거!”
“안 데였어? 이걸로 닦아.”
서주환이 물티슈를 뽑아서 건네주었다.
은율은 티슈를 건네받으며 떨리는 눈동자로 그의 눈치를 봤다.
‘모, 모르는 척 해주는 게 아니었나?’
서주환은 여전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억하고 있는 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은율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기억해요.”
“그럼 네 마음은 아직도 그대로야? 안 취하고 멀쩡한 상태에서 제대로 듣고 싶어.”
“…….”
은율은 침을 꼴깍 삼켰다. 이미 둘러대기는 늦었음을 알았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으며 대답했다.
“네, 저, 오빠를 좋아해요. 그냥 취해서 한 말이, 아니에요…….”
“나한테는 이미 사귀는 사람이 있는데도?”
그 말에 은율은 흘러나오려는 눈물을 간신히 참았다. 여기서 또 울면 민폐다. 그녀는 뚝뚝 끊어지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했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마음이, 갑자기 사라지지는, 않으니까요.”
은율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여자는 머리가 길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카락이 지금처럼 못난 표정을 가려주니까.
‘이걸로 끝이구나.’
앞으로 어떡하지. 몇 번째 하는 생각인지 모르겠다. 그가 유일한 버팀목이었는데, 차라리 몰랐으면 모를까 이미 따듯함을 알아버렸는데 어떻게 몰랐던 것처럼 이 다음을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서주환은 그런 은율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괜찮아?”
“…뭐가요?”
“어제 율이 네가 그랬잖아. 나한테 사귀는 사람이 있어도 상관없다면서.”
“……?”
“그거 진짜냐고 묻는 거야. 너한테는 나 하나지만, 나한테는 너 하나가 아니어도 괜찮겠냐고.”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말한 거라고는 볼 수 없는 잔인한 질문이다.
그러나 은율은 고개를 번쩍 들며 휘둥그레 눈을 떴다. 부릅뜬 눈에 담긴 감정은 옅은 희망이었다.
“괘, 괜찮…!”
“잠깐. 대답하기 전에, 할 말이 있어.”
“뭐, 뭔데요?”
“어제는 말 안했는데, 나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 한 명이 아니야.”
“…네?”
“율이 네가 아니어도 이미 여러 명이라고.”
“…저, 정말로?”
은율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되물었다. 그녀가 생각하고 있던 서주환의 이미지와 너무 맞지 않는 말이었다. 항상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고 위하는 그가 여러 명의 여자와 사귀고 있다니.
서주환은 놀란 그녀를 보고 쓰게 웃으며 말했다.
“어제도 말했잖아.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
“다시 물을게. 정말로 괜찮겠어?”
은율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놀라긴 했지만 그뿐이다. 애초에 다른 여자가 있어도 상관없다고 말한 것은 자신이 아니던가. 그건 술김에 한 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오히려 지금 이 얼토당토않은 말이 기회로 느껴졌다.
“다른 사람이 있어도, 상관없어요. 그러니까…….”
“좋아.”
“저, 정말로요?”
“대신 지금은 아니야.”
“네…?”
은율은 눈을 끔뻑이며 서주환을 바라봤다.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계속 이야기가 빙빙 도는 느낌이었다.
서주환은 그녀의 상태창을 힐끗 쳐다봤다. 지금부터가 중요했다.
<은율>
성별: 여성
나이: 23살
키: 166cm
호감도: A+
현재 성욕: C+
몸무게: 50kg
페티시: Autagonistophilia(上)
보유 재능: 노래(C+/S), 몰입(A/A+), 바리스타(F/A), 방송댄스(C+/D)
어젯밤 두 단계나 오른 호감도 등급. 상태창의 변화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본래 B+였던 ‘몰입’ 재능의 현재등급이 A로 상향조정됐다.
서주환은 거기서 가능성을 봤다. 이제부터 얼굴에 철판두께를 더할 시간이다.
[주인님, 루시도 이제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배웠답니다. 계속 듣고 있으면 수치사할 것 같으니 잠시 귀를 막겠습니다.]
‘뭐야? 언제나 지켜보겠다면서!’
[듣지 않고 보기만 하겠습니다.]
‘나쁜 년…….’
서주환은 침을 꼴깍 삼키며 입에 시동을 걸었다.
[특수능력, ‘위스퍼’를 활성화합니다.]
[대상자, ‘은율’의 호감도 등급은 ‘A+’입니다.]
[상대방의 무의식에 말을 건넵니다.]
[상대방의 판단력을 저하시킵니다.]
[사용자의 말에 알 수 없는 신뢰가 깃듭니다.]
그는 은율과 시선을 맞추고 말했다.
“율아, 나는 뭐가됐든 열심히 하는 사람이 좋아. 특히 꿈이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좋아해.”
현재 은율의 ‘몰입(A/A+)’재능은 안 좋은 쪽으로 작용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녀가 일상에서 ‘몰입’하는 대상은 십중팔구 그일 터. 모르긴 몰라도 우선순위를 매기자면 그가 1위, 트라우마가 2위, 노래가 3위이지 않을까.
“그런데 최근 너는 어때?”
“…….”
“어제도 그렇고, 나한테만 너무 의지하려고 하잖아. 솔직히 난 꿈도 목표도 없이 나한테만 의지하려는 사람은 별로야.”
“하, 하지만…….”
은율이 반박하려고 했다. 최근 그녀는 민가희의 작업실에 가서 분명 노래를 연습하고 있었다. 자작곡 ‘한 걸음’을 어떻게든 완성시키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하지만 서주환은 특수능력으로 반박을 찍어눌렀다.
“율이 너 가수 되고 싶다면서?”
은율이 시무룩한 얼굴로 대답한다.
“…네.”
“나도 네 노래 좋아해. 그게 너를 더 특별하게 만든다고 생각하고. 그러니까…….”
아, 차마 다음 대사가 나오지 않는다.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해야 한다. 현재 은율이 ‘몰입’하고 있는 대상을 그가 아닌 다른 쪽으로 돌리기 위해서. 그렇게 해서 의존증을 조금이라도 낮추는 것이다.
서주환은 새빨개진 얼굴로 말했다.
“그, 그러니까, 음악으로 날 반하게 만들어봐.”
*
민가희와 한수아가 이제껏 본 적 없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음악으로 날 반하게 만들어봐.””
몇 번이고 연습한 것처럼 동시에 말이 나왔다. 완벽한 하모니였다.
이내 두 사람은 푸흑-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꺄하하하핳! 환이 오빠가 정말로 그런 말을 했어?”
“푸흐읗! 아니, 오빠라면 정말 할 것 같기도 한데. 오빠 은근히 오글거리는 대사 많이 치잖아.”
“그것도 그렇지만… 으히힣. 이번 건 좀 심해따아~. 나중에 꼭 놀려줘야징!”
“나도나도! 엄청 놀려줄 거야!”
한수아와 민가희는 작업실 바닥을 데구르르 굴러다니며 폭소했다.
은율은 그런 두 사람을 보고 울상을 지었다.
“아, 안 돼. 오빠가 화내면 어떡해. 오빠는, 진심으로 한 말인데…! 그리고 내가 말해서 그렇지, 오빠가 말할 때는, 하나도 안 오글거렸어.”
배꼽을 잡고 웃어대던 한수아가 고개를 들었다.
“으으. 가희 언니, 율 언니 콩깍지 씐 거 봐.”
“이해하자. 사실 우리도 오빠 앞에 서면 비슷하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흥이다. 환이 오빠는 조금 놀림 당해도 돼. 지금까지 우리를 얼마나 괴롭혔는데.”
“그건 맞지. 오빠는 가끔 놀림당하는 입장이 되어봐야 해.”
맺힌 게 많았는지 작당모의를 해대는 두 사람이었다.
은율은 자신이 이상한 건가 싶어서 고개를 기울였다.
“그, 그런 거야…?”
두 사람은 또 다시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런 거야!””
“그, 그렇구나.”
은율은 대충 납득하기로 했다. 사실 이런 걸로 따지기에는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그녀는 두 사람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저기… 수아랑 가희는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아? 너희는 오빠 여자친구잖아. 나도, 그, 오빠를 좋아하는데…….”
두 사람에 대해서는 서주환에게 이야기를 들은 참이었다. 그녀들은 서주환이 말했던 ‘여자친구들’ 중 하나였다.
은율의 말에 한수아와 민가희는 미묘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그리곤 이내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렇지도 않을 리가 없지?”
“응, 절대로. 솔직히 화도 나고.”
그리 말을 주고받은 두 사람은 동시에 은율을 돌아봤다.
그 시선에 은율은 흠칫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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