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398화 (398/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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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약속했던 두 편 가져왔습니다!

내심으로는 3~4연참을 해서 독자님들 깜짝 놀래켜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주말 간 시간적 여유가 생기니 계속 지우고 쓰고 하게 되어 마음처럼은 불가능했네요..ㅠ

완결 전에 서주환처럼 10연참 뙇 하고 한 번 박아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역시 전 서주환이 아니라 불가능할 것 같네요

주 5연재도 벅차......

*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내게 상처 주게 허락할 테니

나와 같은 괴로움을 겪고 있는 너를 도와주고 싶다.

내 친구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나 또한 너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

‘오빠가 나를 도왔던 이유는 결국…….’

보통 사람들이라면, 조금만 눈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 말 속에 섞인 또 다른 진의를 쉽게 알아들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은율은 ‘보통’이 아니었다.

‘결국…!’

서주환에 대한 의존증.

반년 내도록 앓아온 각종 정신질환.

결정적으로 거기에 더해진 것은 알코올 쓰레기라고 불리기에 모자람 없는 주량이었으니.

지금 은율의 사고회로를 ‘보통’이라 부르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다.

‘결국… 나를 좋아해서였구나! 오빠도 나를…!’

그것은 제 3자가 보기엔 얼토당토않은 망상과 집착, 알코올… 아무튼 정상과는 거리가 먼 데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그녀 나름의 근거는 있었다.

사람들에게 받은 오해, 기피, 비난.

그로 인해 찾아온 공황장애, 대인기피증 등을 비롯한 각종 정신질환.

하필 그런 두 사람의 우연한 첫 만남.

옆에 있기만 해도 가라앉는 발작증세.

우연하게도 몇 년 전 홀로 썼던 자작곡을 가장 좋아해주는 남자.

‘운명이야.’

그것은 은율에게 운명을 느끼도록 하기에 충분하고도 넘쳤다.

“흑.”

가슴 벅찬 눈물이 흘렀다.

“오빠, 좋아해요.”

그래서 고백했다.

고작 맥주 한 캔으로 오른 술기운에 힘입어서.

*

서주환의 집 거실에 고요한 적막이 흘렀다.

그 적막을 깬 것은 루시의 한 마디였다.

[정신질환자들의 감정기복은 종잡을 수가 없다더니 정말이었군요.]

“…돌겠네.”

서주환은 테이블에 고개를 처박고 엎어진 은율을 쳐다봤다. 그녀는 막 운명론을 설파하다가 쓰러진 참이었다.

‘오빠, 좋아해요.’

뜬금없는 은율의 고백.

그를 떠올린 서주환은 지친 기색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며 다시 내뱉었다.

“진짜 돌겠다.”

분명 선을 그엇는데 왜 호감도가 오르고 고백이 튀어나온단 말인가. 거기에 황당한 운명론까지. 설마하니 은율이 운명과 점괘를 믿는 유사과학 신봉자일 줄은 짐작도 못했다.

‘생각해보세요. 저랑 오빠는 운명이 분명해요. 우연히 오빠의 동생 옆집에 살던 저. 그리고 우연하게도 제가 수개월 만에 집밖으로 나온 날 만난 오빠.’

서주희가 은율의 옆집에 살게 된 건 그가 회귀 전에 자신이 살던 자취방을 추천했기 때문이다. 수개월 만에 집밖으로 나온 날 만난 우연? 그것 또한 ‘몽마신의 축복’이 작용했기 때문이지 운명 같은 게 아니었다.

‘또 있어요. 전 오빠 옆에만 있어도 몸이랑 마음이 편안해져요. 약을 먹었을 때보다도 더 극적으로요.’

그건 시스템을 통해 얻은 ‘페로몬’과 ‘안정의 손길’이 지닌 효과다.

‘제 자작곡 한 걸음도 마찬가지에요. 싸클 조회수도 몇 안 되는 제 노래가 하필 오빠의 최애곡이라면서요? 이 모든 게 과연 우연일까요? 아뇨! 운명이 분명해요!’

본래 그가 ‘한 걸음’을 알게 된 건 지금 시점이 아니라 회귀 전 이미 음원차트 1위에 올랐을 때였다. 그 시점이면 ‘한 걸음’을 모르는 사람이 더 드물었다.

결론적으로 모든 것은 운명 같은 게 아니라 은율의 착각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걸 설명할 수는 없죠.]

‘당연하지.’

회귀니 시스템이니를 주절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 말했다간 미친놈으로 안 보면 다행이다. 아니, 이미 은율이 미친년이라 상관없나?

서주환은 자조어린 웃음을 흘렸다.

‘전직 미친놈과 현직 미친년의 만남이라니 존나 운명이긴 하네.’

[천생연분이군요.]

오늘따라 왜 이리 얄미운 걸까.

서주환은 인상을 찌푸리며 속으로 말했다.

‘혼난다, 루시. 이상한 농담하지 마.’

[전 진담이었습니다만…….]

‘그럼 더 문제지.’

[하지만 은율은 주인님께 여자친구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도 여전히 좋다고 했잖아요? 그저 옆에만 있게 해달라고요.]

‘…그러니까 더더더 문제인 거야.’

은율. 회귀 전 옆집에 살던 여자. 미래의 음원차트 1위 가수. 그에게 과도할 정도로 의지하고 있는 여자. 은퇴한 전 아이돌. 오해와 비난으로 상처받은 정신질환자.

서주환은 안타까운 눈으로 은율을 바라봤다. 술에 취한 채 울다 지쳐서 쓰러진 그녀는 아직도 잠꼬대로 훌쩍거리고 있었다.

‘율아, 나 그렇게 좋은 사람 아니야. 사귀는 사람도 있어. 그러니까 미안해.’

다수의 여자와 사귀고 있다고 말한 건 아니다. 다만 운명론을 설파하는 은율에게 확실한 거절을 하기 위해 사귀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은 털어놓았다.

한데 그녀의 대답이 실로 가관이었다.

충격 받은 표정에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느낀 것도 잠시. 그녀는 울면서 말했다.

‘저는 안 돼요? 헤어지라고, 안 할게요. 그냥 오빠 옆에, 있을 수만 있으면 되니까… 오빠도, 절 좋아하잖아요. 전 두 번째라도, 좋아요. 질투, 안 할게요. 사귀는 분한테도, 절대로, 비밀로 할 테니까…….’

설마 세컨드 제의를 이 순진해 보이는 여자가 먼저 해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에 서주환은 당황보다도 안타까운 마음과 걱정이 먼저 들었다. 그녀의 의존증이 모르는 새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것마저도 거절하셨죠.]

“그럼 어떡해. 솔직히 나도 한편으로는 웬 떡이냐 싶긴 한데… 사람이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정신질환은 앓고 있는 은율이다. 그런 그녀가 정상적이지 않은 말을 하고 있는데 옳다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사귀는 순간 안 그래도 심한 의존증이 더 심화될 게 뻔히 보이는데.

‘젠장. 루시, 페로몬이랑 안정의 손길에 중독 증상은 없는 거 아니었어?’

[몇 번이나 말씀드렸지만 해당 스킬에 담배와 마약 같은 중독물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의존증이 저렇게…….’

[중독물질은 없지만 은율에게 이로운 효과니까요.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싶은 것과 비슷합니다. 주인님이 자신에게 필요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거죠. 정신적으로 약해져 있었으니 주인님의 존재가 더욱 크게 느껴졌을 테고요.]

‘…….’

[제 생각이지만, 스킬이 아니었어도 은율은 주인님께 높은 확률로 의지하게 되었을 거랍니다. 은율에게 주인님은 갑자기 나타난 빛과 같으니까요. 그러니 스스로를 탓할 필요는 없답니다.]

위로인지, 아니면 단순히 사실을 말함인지.

[둘 다입니다.]

‘생각 좀 그만 읽어, 루시.’

[주인님이 싫어하면 읽을 수 없습니다만…….]

‘하여간 한 마디도 안 져요. 건방진 도우미 같으니.’

[으음. 이왕 건방진 김에 루시가 주제 넘는 말 몇 마디만 더 해도 될까요?]

안 된다고 하면 안 할 건가.

[할 겁니다. 주인님께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하는 말이니까요.]

‘그럼 루시 마음대로 하세요.’

[후후. 도우미의 조언을 귀담아 듣는 주인님께선 훌륭한 인격자가 분명하답니다.]

‘지나가던 개가 똥오줌 갈길 소리를 하는군.’

[역시 아부가 너무 심했지요? 더 연구하겠습니다.]

‘…….’

아무리 봐도 루시는 이미 감정을 다 깨우친 게 분명했다. 그것도 사람 놀려먹는 쪽으로만 특히나 더. 이리 생각하면 ‘주인님을 닮아서’라고 할 테지. 알았으니까 쓸 데 없는 소리 말고 빨리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이란 것 좀 해줬으면 좋겠다.

생각을 읽은 루시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으흠. 우선 제 말을 끝까지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알았어.’

[일단 저는 주인님의 걱정이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한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은율의 정신질환은 주인님의 탓이 아니에요.]

‘…….’

하지만 전혀 연관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의존증이 심해진 주 원인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밖에 없었으니까.

루시가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물론 의존증이 심해지는 데 영향을 주긴 했을 테죠. 하지만, 다른 증세는 확실히 나아졌잖아요? 공황장애는 거의 사라졌고, 함묵증도 과도한 긴장만 없으면 티가 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인기피증도 마찬가지. 아직 소수일 뿐이지만, 은율은 이제 주인님 이외의 사람들과도 어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건 맞지. 나도 알아. 문제는…….’

[첫 번째 문제는 주인님과의 관계죠. 그 관계가 어그러진다면 십중팔구는 어렵사리 회복된 멘탈이 무너질 테니까요. 원래 멘탈이 약했던 건지, 수개월 간 앓아온 정신질환 때문에 피폐해진 건지 은율의 멘탈은 아주 약해요.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르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 넘어가도록 하죠.]

‘그래.’

[두 번째 문제는 계속해서 말했던 ‘의존증’입니다. 첫 번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인님이 은율과 원만한 관계를 맺으면 될 일. 하지만 그래서는 두 번째 문제가 심화되죠. 은율은 이미 주인님을 사랑하고 있는데, 그걸 받아주면 의존증이 심각해질 테니까요.]

루시는 그의 생각을 꿰뚫고 있다는 듯 조목조목 문제를 짚었다.

[정신과에 가도 별 도움이 안 될 거예요. 몇 번의 내원으로 김희윤이 실력 있는 의사라는 건 검증됐지만, 그녀에게 이런저런 문제까지 모두 말할 수는 없으니까요. 제대로 된 설명을 하려면 말해도 믿어주지 않을 게 뻔한 시스템과 회귀까지 설명해야 되는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죠.]

그 말대로다. 김희윤은 실력 있는 의사지만 제대로 된 진단을 내리려면 증상의 원인과 과정을 알아야 될 터였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루시가 여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자, 그럼 여기서 두 번째 문제를 되돌아보도록 해요.]

‘?’

[애초에 두 번째 문제인 의존증이 왜 문제가 되는 거였죠?]

‘무슨 소리야? 의존증은 당연히 문제잖아.’

[그러니까, 그건 왜지요?]

‘…내가 항상 옆에 있어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건 또 왜 그런 거죠? 사귀면 되잖아요?]

‘갑자기 왜 답답한 소리야? 그야 나랑 율이는 사귈 수 없으니까지!’

[그러니까 왜 사귈 수 없느냐고요. 주인님도 그 여자에게 꽤 마음이 있잖아요?]

‘멘탈 약한 율이가 그런 관계를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잖…!’

[은율은 조금 전에 세컨드를 자처했는데요?]

‘?!’

서주환은 눈을 크게 뜨며 테이블에 엎어져 있는 은율을 바라봤다. 그녀는 분명 그에게 여자가 있어도 상관없으니 옆에만 있어달라는 식으로 말했었다.

루시가 웃음을 흘렸다.

[그럼 이제 두 번째 문제인 의존증은 괜찮은 거군요? 그녀의 마음을 받아주면 되니까요. 어머나, 그러면 첫 번째 문제도 해결 되는 거 아닌가요? 애초에 첫 번째 문제의 해결책은 주인님과 은율의 원만한 관계였습니다. 그 원만한 관계는 연인이란 형태이고요.]

루시, 천재냐?

서주환은 그리 말할 뻔하다가 급히 정신을 차렸다.

‘아, 아니 이게 아니지. 잠깐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잖아. 율이한테 사귀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는 말했지만 그게 여러 명이란 말은 안 했어.’

[상관없지 않나요? 그녀라면 본인도 그 여러 명 중에 한 명으로 받아달라고 할 것 같은데.]

‘…정말 이런 식으로 의존증을 해결해도 되나? 아니, 애초에 해결이 아니잖아. 그냥 평생 안고 가자는 거지.’

[주인님이 은율을 버리지만 않으면 될 일입니다.]

‘…….’

말이야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하지만… 이런 식의 해결이 정말로 은율한테 좋은 걸까? 좀 더 나은 해결책은 없는 건가?

“…….”

서주환은 잠에 든 은율을 한참이나 바라보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러다 이내, 은율을 들어서 침대로 옮겨준 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루시는 그런 서주환을 보며 들리지 않게 웃음을 흘렸다.

[하여간, 우리 주인님은 그렇게 본인을 쓰레기라고 하면서 미묘하게 무르다니까요. 쉬운 길을 돌아가시고 말이에요.]

뭐, 루시는 그런 주인님도 좋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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