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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한 편 더 있습니다 :D
내게 상처 주게 허락할 테니
은율이 도착했다.
그녀는 서주환의 얼굴을 보자 환하게 웃으며 예쁘게 포장된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뭐야?”
“오빠 축하 선물이에요.”
“열어봐도 돼?”
“그, 그럼요. 어쩐지 좀 부끄럽긴 하지만…….”
상자 안에 들어있는 건 판다 캐릭터가 디자인 된 목베개였다. 베개 옆쪽에 버튼이 있었는데, 목에 착용하고 버튼을 누르자 안마기가 움직였다.
“어때요? 작가들은 항상 책상 앞에 앉아 있으니까… 목이 안 좋다고 해서 고른 건데…….”
솔직한 감상으로는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았다. 안마기를 쓰는 것보다 스스로 ‘성스러운 손길’을 사용해 목을 두어 번 주무르는 게 더 효과가 좋을 테니까.
하지만 서주환은 웃으며 고마움을 표했다.
“실용적인 선물이네. 율이 네 덕분에 목 결릴 일은 없겠다. 마음에 들어.”
“휴, 다행이다. 엄청 고민 많이 했거든요.”
“잘 쓸게. 고마워.”
“헤헤. 오빠가 해준 거에 비하면, 별 거 아니에요.”
“그런데 율아, 그건 뭐야?”
서주환은 은율의 손에 들린 비닐봉지를 가리켰다.
“아, 이건 간식거리랑 맥주예요. 오빠 글 쓸 때, 필요할까 싶어서요. 아니면, 지금 같이 먹어도 좋고…….”
“간식거린 그렇다 치고 맥주?”
뭐지, 술 마시면서 글을 쓰란 얘긴가? 아니, 그보다 중요한 건 같이 먹자는 소리다. 그 쪽이 본심이겠지.
서주환은 가늘게 뜬 눈으로 은율을 바라봤다.
“율이 너 술 마시려고?”
“아, 아뇨! 제 건, 무알콜 맥주예요!”
은율이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정신병원에 다니고 있는 환자가 감정에 기복을 줄 수 있는 술을 마시는 건 자제할 일이었다.
‘역시 같이 먹자고 가져온 거였구만.’
서주환은 그녀의 반응에 픽 웃음을 흘렸다.
“다행이네. 일단 들어와. 계속 서있지 말고.”
“네, 네에.”
은율은 콩닥거리는 가슴을 달래며 집으로 들어갔다. 혼자 살고 있는 남자 집에 들어가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오빠 집…….’
또르륵, 눈을 굴려서 집 구조를 살펴본다. 방문이 하나 열려 있었다. 문 틈새로 보이는 침대로 추측컨대 저기가 수면을 취하는 방인 듯했다.
‘그럼 여기가 화장실이고, 나머지 하나는 뭐지? 아, 작업실이구나.’
집에 와본 적은 없지만 따로 작업실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들어가 보고 싶다.’
오빠가 쓰는 작업실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렇게 빤히 닫힌 문을 바라볼 때였다.
“율아, 안 오고 거기서 뭐해?”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은율은 얼른 서주환의 뒤를 따라갔다.
*
서주환과 은율은 간단히 대화를 나누며 맥주와 마른안주를 집어먹었다. 당연히 은율이 마시는 건 무알콜 맥주였다.
그리고 30분 후.
은율의 얼굴이 불콰하게 달아올랐다.
서주환은 문득 그 사실을 깨닫고 설마하며 물었다.
“율아, 너 취했어?”
“네? 아앗, 제가 술이 약하긴 하지만, 무알콜로 취하진 않아요오.”
그리 말하며 홀짝, 한 모금 더 마시는 은율.
그녀가 혀를 빼꼼 내밀며 안주를 집었다.
“이거, 쓰네요. 무알콜도 진짜랑 맛이 똑같…”
“그거 줘봐.”
“앗?”
서주환은 그녀의 손에 들린 맥주캔을 빼앗아 들었다. 조금 전이 마지막 한 모금이었는지 캔이 가벼웠다. 그는 얼른 성분표시를 확인했다.
ALC. 4.5%
무알콜이 아니었다.
‘설마 두 캔 전부?’
혹시 몰라 이전에 마신 캔도 확인해봤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첫 번째로 마신 맥주는 무알콜이 맞았다. 그 사실을 확인하니 오히려 더 황당했다.
“꼴랑 한 캔 마시고 그렇게 빨개진 거야?”
“느에?”
“아이고, 발음 똑바로 안 할래? 너 술 마셨다고, 술.”
“? 아핫, 실수했나봐요오. 오빠 거랑, 착각해따!”
은율은 뭔가 대단한 사실이라도 깨달은 것마냥 짝 하고 박수를 쳤다. 누가 봐도 취한 모습이었다.
서주환은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술 엄청 약하구나. 완전 알쓰네.”
“알쓰?”
“알코올 쓰레기라고.”
그리 말하자 은율이 갑자기 울상을 지었다.
“흑, 쓰레기…?”
울먹울먹. 처량하게 상처받은 눈동자가 그를 바라봤다.
서주환은 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니, 그 뜻이 아니잖아, 율아.
“흐윽, 전 쓰레기예요. 혼자선, 아무것도 못하는, 쓰레기…….”
고작 맥주 한 캔에 완전히 취해버린 걸까. 은율은 무슨 발작버튼이라도 눌린 것처럼 돌연 흐느끼기 시작했다. 표정만 울상이 된 게 아니라 정말로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혔다. 그녀가 고개를 식탁에 처박을 듯 푹 숙였다.
“율아, 그런 거 아니라니까. 네가 왜 쓰레기야.”
“흐윽…….”
“아무도 너한테 그런 말 안 했어. 그러니까 울지 마.”
“…했, 어요.”
“응? 뭘 해?”
고개를 든 은율이 눈물을 또르르 흘리며 말했다.
“저한테, 욕… 했어요! 쓰레기라고!”
“뭐?”
서주환은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설마 최근에 알아보는 사람을 만났던 건가?
곧 이어지는 말에서 그게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인터넷에서… 아직도 저보고 마약돌이라고, 창녀라고… 쓰레기라고… 분명 아니라고, 해명했었는데…….”
“…….”
“한 번 낙인 찍히면, 끝이에요. 전부 저를,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율이 너 최근에 인터넷 봤어?”
“조금, 잠잠해졌나, 싶어서…….”
서주환은 그제야 은율의 반응을 이해하고 이마를 짚었다. 인터넷에서 본 글과 술기운 때문에 억눌렸던 마음이 터진 것이었다.
‘잠잠해지다니.’
그럴 리가 있나.
걸그룹 ‘스윙레이디’가 해체한 지는 아직 1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고작해야 이제 반년이 좀 더 지났을 뿐. 웬만한 논란거리라면 더 이상 언급되지 않기에 충분한 시간일 수도 있지만, 스윙레이디의 경우는 워낙 크게 사건이 터져서 어림도 없었다.
마약, 학교폭력, 성상납 스폰.
하나만 있어도 심각한 논란거리인데 삼관왕을 달성했다. 앞으로 적어도 십수 년 정도는, 어쩌면 평생 동안 부정적인 일례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터였다.
[바보 같이 인터넷을 왜 찾아본 건지 이해할 수가 없네요. 좋은 이야기가 없을 거란 건 뻔히 알면서.]
‘…난 조금 이해해.’
인터넷을 본 게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건 루시의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 심리만큼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글을 쓰는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검색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좋을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검색하게 되거든. 궁금하니까.’
호기심이 문제다. 사람이란 어쩔 수 없이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게 되고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궁금함을 느낀다. 그래서 검색을 하게 되는 것이다.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 걸 알면서도 자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서주환은 탄식을 삼키며 은율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율아, 그런 말들 신경 쓰지 마. 널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잖아.”
“그런, 걸까요?”
“당연하지. 율이 네가 얼마나 예쁘고 착한데. 주희도, 수아도, 가희도, 슬기도 다 그렇게 생각해.”
“…오빠는요?”
“응?”
“오빠는 절, 어떻게, 생각하는데요?”
은율이 돌연 그를 돌아봤다. 그녀는 물기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대답을 재촉했다.
“난…….”
말끝을 흐린 서주환은 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난 네가 ‘또 다른 나’라고 생각해.”
“…네?”
은율의 두 눈에 의문이 어렸다. 말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다시 의자에 털썩 앉으며 미묘한 얼굴이 되어 말했다.
“이런 말하면 기분 나쁠지도 모르지만, 나는 너한테 옛날의 나를 많이 겹쳐보거든.”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요.”
“들어봐. 옛날얘기 좀 해줄 테니까. 오늘 수상소감에서 했던 말을 또 하게 생겼네.”
서주환은 그녀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수상식에서 말한 소감문이 심적으로 영향을 주었던 걸가. 불행한 시절의 이야기를 함에도 울적한 기분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은율의 눈은 놀람으로 물들었다.
“오, 오빠한테 그런 시절이, 있었다고요?”
“왜? 안 믿겨?”
“그야… 오빠는, 뭐든지 잘하고, 주변에 사람도 많으니까…….”
“다 대학에 와서 만난 친구들이야. 중학생 때는 전교 왕따였어. 덕분에 방금 말했던 것처럼 공황장애는 물론이고 대인기피증에 우울증까지 앓았지. 율아, 나랑 처음 만났을 때 기억해?”
“네, 네. 저희 집, 앞에서 제가 발작을…….”
“내가 바로 응급처치 해줬었지? 그게 능숙했던 이유는 내가 직접 앓아봤기 때문이야. 같은 맥락으로 은아힐링 초반부에서 주인공이 앓았던 정신질환 증세도 내 경험에서 따온 게 많고.”
“…….”
“내가 발작이 있었던 건 가족들도 모르는 이야기야. 병원에 가지 않고 혼자 해결하려고 버텼거든. 어디가서 말하지 마.”
“다, 당연하죠!”
은율이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주환은 그런 은율을 보며 작게 웃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털어놓기 힘들었던 과거. 그의 여자들 중에서도 자세한 얘기는 정하연밖에 모르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제는 괜찮다. 떠벌리고 다닐만한 얘기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야기 중 네거티브한 감정에 매몰되는 일은 사라졌다.
그리고 그는, 이런 변화를 은율에게도 가져다주고 싶었다.
“율아, 나는 너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나는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 인연들 덕분에 병을 극복할 수 있었어. 그래서 난 옛날의 나와 비슷한 너에게 그런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싶어. 가능하면 가수가 되겠다는 네 꿈도 이루어주고 싶고. 그게 내가 생면부지인 너를 지금까지 돕고 있는 이유야.”
서주환은 거짓 하나 없는 진심을 전달했다.
다만, 한 가지 마음을 감추며 그녀에게 선을 그었다.
[너를 도와주는 건 단지 동정심에서 비롯된 선의다, 라고 하는 거군요? 주인님께선 사실 이 여자를 꽤, 아니, 상당히? 많이? 마음에 들어 하면서 그건 쏙 빼놓고 말이에요.]
‘루시.’
[네, 닥치겠습니다. 딱 한 마디만 더 하고요.]
‘뭔데?’
[은율의 상태가 이상합니다.]
‘뭐?’
그 순간이었다.
[대상자, ‘은율’의 호감도가 A로 상승합니다.]
[대상자, ‘은율’의 호감도가 A+로 상승합니다.]
분명 선을 그엇는데 호감도가 상승했다.
눈앞의 은율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술에 취해서인지, 물기로 촉촉해서인지 눈동자가 이상할 정도로 또렷했다.
서주환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침을 꼴깍 삼켰다.
이내 앙 다물렸던 은율의 입술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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