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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하연이는 노벨다이스에 안 들어가고 뭐를 하려고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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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악 목표로 했던 이번 주 6연재가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내일 어머니가 퇴원하셔서 마중하러 가봐야합니다ㅠㅠ
일단 되는 데까지 써보고 실패하면 화요일에 두 편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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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수상-소통의 부재
집에 돌아오기 한 시간 전.
서주환은 오랜만에 정하연과 둘이서 걷고 있었다.
문득 정하연이 말했다.
“주환아, 아까 그거 말인데…….”
“응?”
“내가 고민하고 있다는 거 말야.”
“아.”
서주환은 시상식장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이석찬의 갑질 장난에 대꾸했던 정하연의 말.
그녀는 노벨다이스에 들어가지 않겠다며 따로 고민하고 있는 바가 있다고 덧붙였다.
“말해주려고?”
“응.”
정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강한 궁금증을 느끼는 한편 의아함을 담아 물었다.
“나중에 말해주겠다더니. 왜 생각이 바뀐 거야?”
“그게… 원래는 좀 더 고민해보고 얘기하려고 했어. 그런데 네가 수상소감문을 그런 식으로 말했잖아.”
그리 말한 정하연이 입술을 삐죽이며 그를 흘겨봤다.
“소통의 부재니 매개니. 그렇게 말하는데 어떻게 감춰? 비겁한 놈아.”
“하하…….”
서주환은 어색하게 웃음 짓다가도 뾰로통해진 그녀를 보며 큭큭 웃음을 흘렸다. 그녀의 조그만 투정이 귀여운 애정표현으로 다가왔던 탓이다. 그 정하연이 이렇게 바뀔 줄 누가 알았을까.
“뭐야, 그 웃음은? 기분 나쁘게.”
여전히 새침데기 같은 면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서주환은 얼른 주제를 되돌렸다.
“그래서 고민이라는 게 뭔데?”
“음. 그게… 진로 고민이라고 해야 하려나?”
“진로 고민?”
“나, 작년 겨울쯤부터 계속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찾아왔거든.”
“? 편집자 될 거라고 했었잖아?”
“그건 할 수 있는 거고, 하고 싶은 게 아니잖아.”
정하연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너도 덕훈이도 작가라는 명확한 꿈이 있잖아. 수아나 지경이, 주희도 마찬가지고. 우리랑 같은 대학은 아니지만 가희도 작곡가가 될 거라면서? 뭔가 다들 뚜렷한 목표가 있는 것 같으니까 조바심이 나더라고.”
서주환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나이에 비해 그리고 있는 미래가 구체적이었다. 비단 그녀가 언급한 사람들 외에도 게임 디렉터가 되겠다는 이정훈이나 프로 댄서가 되겠다며 대학을 자퇴한 도유이도 있었다.
“그에 비해 나는 집안에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생각뿐이었지 구체적인 목적은 없었어. 출판콘텐츠학과에 재학 중이니까 막연히 출판사에 입사할 거라고만 생각했거든. 그런데… 그건 할 수 있는 거지 하고 싶은 건 아닌 것 같더라고.”
그리 말하는 정하연의 얼굴은 무척 진지한 기색이었다.
서주환은 조금 멍한 기분으로 말했다.
“…네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은 처음 알았어.”
충격…까진 아니지만 조금은 스스로를 반성하게 됐다. 정하연과 그런 식으로 헤어진 이후에는 주변을 충분히 신경 써왔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의 말에 정하연이 등을 팡 두드리며 뭘 그런 표정을 짓냐는 듯 말했다.
“그야 내가 말을 안 했으니까 당연하지. 계속 고민 중인 부분이 있어서 얘기하기가 좀 그랬어.”
“그래도 말해줘. 막연하게라도 상담 정도는 해줄 수 있으니까. 내가 명색이 정하연 남자친군데.”
“흐응.”
정하연이 콧소리를 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곤 고개를 슬쩍 돌리며 투덜대듯 말했다.
“언제는 연애 안 할 거라더니. 우리 엄마 무덤 앞에서 쓰레기 선언 했으면서.”
“윽. 그건…….”
서주환은 무어라 말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변명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변명을 하면 안 되는 사항이었다.
정하연이 킥킥 웃으며 말했다.
“정말 내 남친으로 생각해도 되는 거 맞아?”
“다, 당연하지.”
“지경이 남친 아니고?”
“…….”
“수아 남친이기도 하지?”
“…….”
“가희도 있고, 저번에 본 가브리엘라도 있어.”
여자들의 이름을 하나씩 언급하는 정하연. 웃고 있던 입꼬리가 점점 내려오고 있었다.
서주환은 급히 말했다.
“가브리엘라는… 친구야. 안 사귀어.”
“하.”
정하연이 코웃음을 치며 그를 노려봤다.
“그냥 친구? 정말? 절대 사귈 가능성이 없는? 나중에 사귀면 뒤진다? 팔다리 다 꺾어버릴 거야.”
살기 어린 눈빛에 서주환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어느덧 B급에 달한 그녀의 ‘카리스마’는 사람을 휘어잡는 기세가 있었다.
정하연이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모르는 사람도 있지? 아, 됐어. 말하지 마. 없을 리가 없지. 아까 우윤 작가님이랑도 뭐 있는 것 같던데.”
“서, 서윤이는 진짜 아니야. 맹세해. 거절했어.”
거짓말이 아니다. 떡을 치긴 했지만 상처 줄 것을 감안하고 고백을 거절했다. 그녀도 이제 미련을 털어낸 듯 보였고.
하지만 정하연은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로 그를 지그시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 이내 한 마디를 내뱉었다.
“개새끼.”
“…….”
서주환은 속으로 멍멍 짖었다. 부정할 수가 없었다.
정하연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손.”
잡아달라는 건가?
서주환은 잠시 고민하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그녀의 손 위로 개처럼 손을 올렸다.
“멍.”
“돌아.”
“왈!”
“잘했어.”
“멍! 헥헥.”
혀까지 빼물며 개 흉내를 내자 정하연이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 징그러우니까 이제 그만해. 화 풀렸어.”
“네, 마님.”
그는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와 눈을 맞췄다. 정말로 화가 풀어진 듯했다. 겨우 이런 걸로 기분이 풀렸다면 다행이었다.
그는 슬쩍 눈치를 보다가 다시 물었다.
“그으… 결국 진로는 어떻게 된 거야? 지금은 구체적으로 정한 게 있어?”
“아, 그 얘기 중이었지. 놀리느라 잊고 있었다.
“…….”
괴롭혀 버릴까.
그리 생각한 순간, 정하연이 째릿 하고 노려봤다. 헛생각 하지 말라는 듯이. 대체 어떻게 아는 건지 모르겠다. 설마 독심술이라도…….
“아니거든.”
“어? 뭐, 뭐가?”
“독심술 아니라고.”
“…좀 무서운데.”
“무슨 생각하는지 네 표정쯤은 다 보여. 특히 사람 놀려먹을 궁리할 때.”
“표정에 티를 내진 않은 것 같은데. 흠.”
‘연기’ 재능을 얻은 이후에는 표정관리를 곧잘 하게 되었는데 참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정하연은 쯧 하고 혀를 차고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지금 2순위로 생각하고 있는 건 모델이야.”
“어? 모델을?”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분명 남들 눈에 튀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스완 촬영 때 좀 재밌었거든. 부담스럽긴 했지만… 너랑 같이 촬영한 건 긴장도 별로 안 되고 좋았어.”
“흐음. 하연이 너라면 잘할 것 같긴 해. 일단 예쁘고 하야니까. 키도 크고, 카리스마도 있고.”
“씨, 여자한테 카리스마가 뭐냐?”
“예쁜 건 부정 안 하네?”
“흥. 나 정도 생겨서 부정하면 그거 기만이거든.”
“올~ 자신감.”
서주환이 오 하고 작게 박수를 치자 정하연은 일부러 어깨를 펴고 턱을 살짝 들었다. 이런 식으로 놀리면 하지 말라면서 때리기 바빴던 모습이 제법 능글맞게 변했다. 이런 변화는 그를 닮아간 걸까, 유지경에게 배운 걸까. 어쨌건 나쁜 변화는 아니었다.
“아무튼, 그럼 1순위는?”
“1순위는… 번역가.”
“번역가? 하긴, 하연이 네가 영어를 잘하긴 하지. 논문 번역이라도 하려고?”
“멍청아, 당연히 소설 번역이지. 특히 네 소설.”
“내 소설…?”
정하연이 흘깃 시선을 회피하며 말을 이었다.
“너 이번에 문학공모전에서 대상도 탔잖아. 앞으로는 더 유명해질 거고, 당연히 해외에도 책을 팔게 될 거잖아? 거기에 내가 번역가가 되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무, 물론 지금 당장은 무리겠지만…….”
서주환은 변명하듯 말하는 정하연을 보며 픽 미소 지었다. 뭔가 했더니 번역가라. 그것도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라는 목적을 갖고서. 하여간 생긴 건 차가우면서 정작 하는 짓은 귀엽기 그지없었다.
한데, 정하연의 말이 이어질수록 그는 입을 벌려야만 했다.
“나 영어는 자신 있거든. 얼마 전에 토익 본 거 960점 받았어. 그리고 일단 JLPT자격증도 있긴 한데, 급수가 낮아서 올해 안으로 N1까지 딸 생각이야. 성공하면 중국어도 준비…….”
토익 960점? JLPT면 일본어? 거기에 중국어까지?
“자, 잠깐만. 도대체 혼자 몇 개 국어를 하려고?”
“어? 일단 영어, 일본어, 중국어까지 세 개 정도 생각하고 있는데. 아, 한국어까지 네 개 국어인가?”
“혼자서 세 개 국어를 번역하겠다고…?”
“좀 알아보니까 원작이 좋아도 번역을 이상하게 해서 망한 케이스가 꽤 있더라고. 그거 보니까 내가 직접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현실적으로 말이…….”
…될지도?
서주환은 충고를 하려다가 입을 다물고 말았다. 문득 정하연이 보유한 재능이 떠올라서였다.
<정하연>
성별: 여성
나이: 24살
키: 173cm
몸무게: 58kg
호감도: A+
현재 성욕: D+
페티시: Sophophilia(中), Tripsophilia(下)
보유 재능: 학습(B+/A+), 문장력(B/A+), 어학(B/A+), 운동(B/A), 카리스마(B/A), 리더십(C/A)
언제 봐도 감탄스러운 상태창이었다. 무슨 여자애가 혼자서 잠재력 A급 이상의 재능을 여섯 개나 보유하고 있는 건지. 심지어 그중 ‘번역가’에 도움이 될만한 재능이 무려 절반이었다.
‘아니, 이 정도면 진짜 가능할지도 모르겠는데…?’
정하연은 그의 여자들 중 가장 오랜 시간 가까이 지내온 만큼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해서 재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상태였다. ‘리더십’을 제외한 재능의 현재등급이 전부 B이상. 모두 겉으로 티가 나는 재능이 아니라서 그렇지 따지고 보면 사기적인 능력치였다.
“어째 요즘 바쁘다 싶더니 공부하느라 그랬던 거였어? 나한테는 집에서 소설 본다더니.”
“어? 아, 그게, 아하하. N1까지는 딴 후에 말하려고 했거든. 그리고 소설도 많이 보긴 했어. 번역가는 외국어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
정하연이 민망한 얼굴로 변명했다.
서주환은 어이없다는 듯 그녀를 보다가 픽 웃었다.
“아무튼 번역가라 이거지? 진작 말을 하지 그랬어. 그랬으면 너한테 벌써 작품 맡겼을 텐데.”
“뭐? 그건 아니지!”
정하연이 버럭 소리쳤다.
그가 움찔하자 그녀가 찡그린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내 실력으로 번역하면 너한테도, 독자들한테도 실례잖아. 그러니까 제대로 공부해서 확신이 들었을 때, 정식으로 요청할 거야. 지인이라는 이유로 기댈 생각은 없어.”
“지인이라서 말한 게 아니라 토익 960점이면 충분히…….”
“안 돼. 말했잖아, 번역가라는 게 외국어만 좀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정하연은 단호하게 말했다.
“토익 같이 정형화된 게 아니라 현지 실생활에서 쓰이는 용어, 지방에 따른 특색, 해당 언어국가에 대한 역사와 상식도 필요해. 공부할 게 한두 개가 아니야. 고작 토익 좀 잘 봤다고 네 소설을 번역하기엔 급이 너무 딸려.”
“…그런 거야?”
“그런 거야. 자격증을 딴다고 해도 책상머리 앞에서 공부한 걸로는 한계가 있어. 주환이 너 내 성격 알지? 이왕 번역가가 될 거라면, 난 현지 사람들이 봤을 때 번역체라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위화감 없이 읽을 수 있게 목표야.”
그녀다운 말에 서주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하연은 다소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있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대학에서 시험을 볼 때만 해도 이미 아는 내용을 몇 번에 걸친 복습을 통해 완벽히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했다.
그렇게 목표를 말하던 정하연은 어느 순간 다소 침잠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유학을 가는 게 좋은데…….”
“…유학?”
서주환은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봤다.
“응… 사실 계속 고민하던 게 유학 때문이야. 내가 원하는 수준으로 번역을 하려면 아무래도 그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에 직접 가보는 게 제일 좋으니까.”
“…….”
유학이라는 단어를 듣자 쉽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조금 멀리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아예 다른 나라로 간다니. 심지어 3개 국어를 한다고 했으니 최소로 잡아도 3년 이상일 터였다.
정하연은 굳어버린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풋 웃음을 터뜨렸다.
“바보야, 고민 중이라고 했잖아. 당장 간다는 것도 아니고 왜 그런 표정을 지어?”
“…아, 미안.”
“나도 떨어지기 싫어.”
“어?”
“나도 너랑 떨어지기 싫다고.”
정하연이 두 눈을 똑바로 마주보며 말했다.
“그래서 말하길 망설였던 거야. 난 너랑 있는 게 더 좋거든.”
“하지만… 필요한 거잖아?”
“응, 필요성은 느껴. 그게 제일 빠른 길일 테니까.”
“그러면…….”
서주환은 말끝을 흐렸다. 응원의 말이 목구멍에 걸려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응원을 건네야 하는 게 맞았다.
그때 정하연의 손이 입을 틀어막았다.
“읍?”
“닥쳐.”
“?”
“아무 말도 하지 마.”
“…….”
이내 손을 떼어낸 정하연이 품안으로 파고들었다.
“조금 전에 말했잖아. 역시 너랑 있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연아…….”
“필요성이 있다고 해서, 필수인 건 아닐 거야. 영상매체로 보거나, 유학을 다녀온 사람한테 과외라도 받으면 되겠지 뭐. 그치?”
“…어. 내가 존나 개쩌는 유학파 과외선생 구해볼게. 필요한 거 있으면 말만 해.”
서주환은 쓰게 웃으며 말했다.
*
서주환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존나 병신 같다…….”
응원을 건네야 하는 순간이었다. 충분히 알고 있었음에도 순간적으로 멍해지고 말았다. 정하연과의 인연이 끊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찾아왔던 탓이다. 그래서 역시 옆에 있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그녀의 말에 내심 안도를 느꼈다.
‘아직도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건가.’
슬슬 극복할 때도 되지 않았나. 오늘 소감문에서 말했던 것처럼 괜찮아진 게 아니었나. 왜 아직도 불안함을 느끼는 건지 스스로가 한심했다.
루시가 머릿속으로 말을 걸었다.
[트라우마 때문이 아니랍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지요.]
‘…그런가?’
[네. 루시가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제하고 보더라도 주인님의 반응은 지극히 상식적이었습니다. 수컷은 제 암컷을 무리 밖으로 내돌리고 싶지 않아하는 법이니까요.]
“루시… 수컷, 암컷이라니.”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말이었답니다.]
“에휴. 그래, 덕분에 위로는 됐어.”
서주환은 한숨을 뱉으며 웃었다. 오랜 시간 정신병을 앓다 보니 가끔은 당연한 반응도 트라우마 때문인가 헷갈릴 때가 있었는데, 그 중심을 루시가 잡아주었다.
그는 고개를 흔들어 가라앉은 기분을 털어냈다. 그러자 다른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유학이라… 생각해 보면 가브리엘라도 비슷한 말을 했었지.’
가브리엘라는 그를 가리켜서 방랑벽이 대단하다고 하였다. 그때 언급한 카드는 라이더 웨이트 덱의 21번 카드 The World.
완성, 약속된 성공, 나그네.
그녀는 The World의 힘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변화가 시작이 머지않았다고, 방랑벽을 가진 당신은 어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게 될 것이라고.
‘그게 하연이랑도 관련이 있는 걸까?’
방랑벽. 약속. 나그네. 전 세계를 돌아다닐 운명.
가브리엘라가 말해준 타로카드의 내용이 낱말 단위로 머릿속을 떠돌아다녔다.
거기에 더해지는 건 정하연의 유학.
그녀는 옆에 있고 싶다며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지만… 생각할수록 그녀를 위한다면 보내줘야 한다는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었다.
루시가 문득 말했다.
[어쩌면 주인님이 먼저 떠날지도 모르지요.]
‘…….’
그래, 어쩌면 정하연을 유학에 보내니 마니 하기 이전에 그런 때가 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는 현재 해외로 나갈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얼핏 집히는 바는 있었다.
‘S급 재능 조각.’
7개를 모으고 이제는 3개가 남은 조각.
루시를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과 연관된 재능석.
10개를 모두 모아 재능석을 완성하는 순간 어떤 변화가 시작될 거란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그때였다.
- 지이잉!
여덟 번째 재능조각을 가진 여자에게 연락이 왔다.
액정에 떠오른 이름은 ‘은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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