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394화 (394/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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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간만에 빵빵한 분량으로 찾아왔습니다.

서주환의 과거 털어내기 프로젝트는 이번 에피소드를 끝으로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듯하군요.

이번 편은 꽤 공을 들였는데도 조금 아쉬움이 남네요.

작중 은율 에피소드와 공모전 수상 시기가 겹쳐서 '소통의 부재'에 대한 빌드업이 살짝 부족했지 싶습니다.

더 발전할 수 있는 글쟁이가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에피소드 연관성의 이유로 소제목을 수정하였습니다.

'내게 상처 주게 허락할 테니' -> '한 걸음' or '수상-소통의 부재'

*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수상-소통의 부재

수상식이 막을 내렸다.

서주환은 단상에서 내려가 가족들에게 다가갔다. 어머니인 서애라가 눈물자국 진 얼굴로 그를 껴안았다.

“아들…….”

목소리에 울먹임이 묻어났다. 조금 전 서주환의 수상소감을 들으며 지난날을 떠올린 탓이었다. 지금의 서주환은 이렇듯 훤칠하게 자라서 잘 지내고 있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녀에게 있어 서주환은 항상 걱정스럽고 미안한 아들이었다.

서주환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어머니를 안아주었다.

“아이고, 우리 어머니 왜 눈물을 흘리셨어. 아들이 대상 받은 게 울 정도로 자랑스러웠어요?”

“…엄마는 아들이 대상 같은 거 안 받아도 항상 자랑스러워. 그러니까 힘든 일 있으면 숨기지 말고 말해야 돼.”

“물론이죠. 조금 전에 그러겠다고 말했는걸요.”

“약속이야?”

“네. 대신 어머니도 힘든 일 있으면 숨기지 말고 얘기하기에요. 아, 그리고 아버지는 혼자 힘들어하실 게 뻔하니까 그것도 어머니가 얘기해주기.”

“푸흐. 그래, 알았어.”

서애라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서재필은 뒤에서 헛기침을 하고 있었다.

그가 부모님과 얘기하는 동안, 서만식은 중절모를 벗으며 서주환의 친구들에게 조용히 다가가서 물었다.

“주환이 대학 친구들이라고 했었지? 수아는 내가 몇 번 본 적이 있고.”

갑작스런 물음에 일행들이 당황하는 사이 그나마 일면식이 있는 한수아가 앞으로 나섰다.

“네, 할아버지. 전부 환이 오빠랑 엄청 친한 친구들이에요. 다들 좋은 사람들이고요.”

서만식은 고개를 끄덕이곤 일행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환이가 어렸을 때부터 항상 어두웠던 아이인데 지금은 굉장히 밝아졌어. 왜 그런가 했더니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그런 모양이야. 고맙네.”

서만식이 작게 고개를 숙였다.

이석찬은 드물게 당황한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어르신. 저희가 한 게 뭐가 있다고…….”

“마, 맞아요. 저희야말로 오빠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는걸요.”

“할아버지, 얼른 고개 드세요. 부담스러워요.”

서만식은 숙였던 고개를 들며 당황한 일행들을 바라봤다.

“‘친구가 일가보다 낫다’는 말이 있지. 때로는 가족이나 친지도 못하는 것을 친구가 해결해줄 때가 있음이야.”

“…….”

“앞으로도 환이를 잘 부탁하네.”

“예, 어르신. 알겠습니다.”

“음. 노인네가 부담스럽게 했구먼. 이만 물러감세.”

서만식은 눈인사를 하곤 다시 서가네 친인척이 모인 곳으로 돌아갔다.

이석찬이 그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뭔가 양반 같으신 분이네.”

“…그러게.”

일행들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한편 자리로 돌아온 서만식은 조금 전에 보였던 근엄함이라곤 한 톨도 찾아볼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가 흥분에 찬 얼굴로 물었다.

“저, 정말로 작가님이십니까?”

서만식은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서주환에게 한 사람을 소개받았다. 그가 평생 가장 좋아하고 있는 작가인 김현영이었다.

“네, 어르신. 김현영이라고 해요.”

“어흠. 큼.”

서만식은 얼른 표정을 정돈하고 서주환을 돌아봤다.

서주환이 웃음기를 감추며 말했다.

“저도 나중에 알았는데, 선생님께서 이번 공모전 심사위원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그렇구나.”

“선생님, 저희 할아버지께서 선생님의 엄청난 팬이세요. 저번에도 말씀드렸죠?”

“호호. 그랬었죠. 주환 군한테 어르신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옛날에는 글도 쓰셨다지요? 주환 군이 그렇게 글을 잘 쓰는 이유가 있었네요.”

그 말에 서만식은 소녀처럼 붉어진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아이고, 아닙니다. 저야 이름도 없는 글쟁이였는데… 제 손주라도 선생님께서 좋게 보아주시니 감사하군요.”

“제가 좋게 봐서 다를 게 있나요. 주환 군은 나이만 어리다 뿐이지 저 이상으로 잘 쓰는 작가인걸요.”

“…환이가 그 정도입니까?”

“그럼요. 빈말 하나 없는 진심이랍니다.”

서만식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서주환을 바라봤다. 손주인 그가 잘 쓰는 것이야 직접 봤으니 잘 알고 있었지만 평생 최고로 꼽아왔던 대문호에게 이렇듯 인정받는 걸 보니 그 사실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김현영이 이어서 말했다.

“어르신의 작품도 참 재밌게 봤습니다.”

서만식의 두 눈에 의문이 어렸다.

“…제 작품이라니. 그게 무슨?”

“어머, 모르셨나요? 주환 군이 보여줬었는데…….”

“!”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손주의 부탁으로 저가 쓴 글을 보여준 적은 있었지만 그걸 김현영 작가가 봤다니?

서주환이 머쓱한 얼굴로 말했다.

“죄송해요, 할아버지. 노인의 꿈은 아무리 봐도 그냥 썩히기엔 아까워서 제 맘대로 보여드렸어요.”

“그런 부족하기만한 글을…….”

서만식은 화보다도 부끄러움을 먼저 느꼈다. ‘노인의 꿈’은 5년 전 아내와 사별한 후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홀로 끄적거리던 소일거리였다. 그걸 김현영 같은 대문호에게 보여주었다고 하니 낯이 홧홧하게 달아오르는 듯했다. 그는 떨리는 손을 감추며 말했다.

“미안합니다, 작가님. 부끄러운 글로 눈을 어지럽혔습니다.”

“어머, 부끄러운 글이라니요?”

“예?”

김현영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저는 분명 재밌게 봤다고 말씀드렸는걸요? 조금만 다듬으면 공모전에 출품해도 되겠던데요.”

“…허허. 손주 앞이라고 체면을 세워주는군요.”

“어르신, 제가 다른 건 몰라도 글로 체면치레를 하지는 않아요. ‘노인의 꿈’은 무척 연륜이 느껴지는 글이었어요. 문장력만 있는 젊은 작가들은 감히 시도하기 힘든 구성이었고요,”

“그, 그럼 참으로……?”

서만식이 떨리는 눈동자로 되물었다.

김현영은 잔잔히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사실만 말했어요. 어르신만 괜찮으시다면 나중에라도 꼭 공모전에 참가하시길 권해드리고 싶네요.”

“허어. 그렇게까지…….”

서만식의 눈이 감동의 물결로 일렁였다. 그에게 있어 작가란 젊었을 적 포기해야 했던 꿈이었다.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여 먹과 펜을 벗 삼아 살아가고 싶었으나 가족들을 부양해야 했기에 펜을 꺾어야만 했었다.

한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김현영 작가가 자신의 글을 재밌게 보았노라 말하고 있었다. 심지어 공모전 참가까지 권할 정도로 높게 평가하고 있었으니…….

서만식은 애써 목을 가다듬었다.

“어흠. 나이가 드니 눈물샘이 약해져서 곤란할 때가 많아지는군요.”

“할아버지…….”

“고맙구나, 환아. 그리고 감사합니다, 선생님. 말씀 새겨듣겠습니다.”

서만식이 깊게 허리를 숙였다.

김현영은 깜짝 놀라서 급히 그를 일으켰다.

“어, 어르신, 이러지 마세요. 그리고 이제 그만 말씀도 낮춰주시고요.”

어떻게든 감사를 표현하려는 노인과 그를 일으키려는 중년 여인이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뿌듯하게 웃는 서주환에게 다가온 사람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 서재필이었다. 그가 서주환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고맙다, 아들.”

“그럼 떡볶이 해주세요.”

“음?”

“오랜만에 아버지가 해주신 분식 먹고 싶어서요. 어디 가지 말고 가게로 가면 좋을 것 같은데…….”

서주환은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분식집으로 가면 이 좋은 날에 아버지는 불판 앞에서 땀을 흘려야 했다.

“그래, 다들 데리고 가자. 소고기보다 맛있는 분식을 해주마.”

서재필이 픽 웃음 지으며 말했다.

서주환은 환하게 펴진 얼굴로 일행이 모인 곳을 향해 외쳤다.

“야, 썩… 석찬! 얘들아! 밥 먹으러 가자!”

*

서주환 일행이 ‘서가네 분식집’에 도착한 것은 생각보다 늦은 시간이었다. 대상을 받은 서주환에게 기자들이 다가온 탓이었다. 최근 국내에서 개최된 문학공모전 중 가장 큰 규모였던 만큼 기자들의 관심이 컸다.

[웹소설 작가 ‘서환’, 국내 최대 문학공모전 대상을 수상하다]

[서주환 작가, “제가 쓰고 싶은 걸 쓸 겁니다.” 장르의 경계 개의치 않는다]

[작가 서애필, “우리는 누구나 소통의 부재를 안고 살아간다”]

몇 시간 지나지도 않아서 포털 사이트에 관련 기사가 우후죽순 올라왔다. 서브컬쳐로 취급받는 웹소설계 작가가 국내 최대 규모의 문학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는 것은 경쟁을 붙이기 좋은 가십거리였다.

- 웹소설 글싸개가 대상을 타? 공모전 수준 알만하네.

- 서환 작가 글 잘 쓴다 싶긴 했는데 이걸 등단까지 해버리네ㅎㄷㄷ

- 독서모임 가서 앞으로 순문학 대신 서환 작가 작품 들이밀면 되냐ㅋㅋㅋㅋ

└ ㄹㅇㅋㅋ무시하면 문학공모전 대상 작가라고 하면 됨

└ 개꿀따라시

- 서애필 이 작가 김현영 작가 제자라는 썰이 있던데 뒤에서 밀어준 거 아님? 이번에 심사위원이었자너

- 서주환 이 사람 ㄹㅇ불공평하네

└ 역시 밀어주기임? 그럴 줄 알았음

└ 뭔 개소리야 이 새낀. 걍 씹재능충이라 불공평하다고 한 건데

└ 이거 ㄹㅇ인 게 웹소설, 순문학, 그림, 춤, 얼굴, 키, 몸, 게임까지 못하는 게 없음. 사람 새끼 맞나 싶음

└ 내 지인이 서주환이랑 동창이었다는데 싸움도 ㅈㄴ잘한다고 함

└ 뭐임. 학폭 가해자 출신임? 생긴 게 양아치 상이긴 했는데. 하긴 이 정도 가졌으면 인성이라도 안 좋아야지ㅅㅂㅋㅋ

└ 가해자X 피해자O

└ ??? 피해자 출신이라고?

└ ㅇㅇ전교 왕따 출신이랬음. 그런데 동창회 가서 자기 괴롭히던 놈 닥치게 만들었다고 함

└ 웹소설을 쓰랬더니 현실에서 찍고있었네ㅋㅋㅋㅋ

- 아니 시발, 그래서 이 새낀 서주환이냐, 서환이냐, 서애필이냐? 하나로 통일해라 좀.

└ +솔져형

└ 그건 또 뭔데 씹덕아

└ 이게 씹덕이라는 걸 아는 당신도…….

└ 잇힝♡

인터넷 기사를 주로 쓰는 사람들에게 서주환은 지금 떡밥을 굴리기 무척이나 좋은 대상이었다. 그에 대해 알아볼수록 흥미로운 점들이 튀어나온 탓이다.

[서주환 작가, 학폭 피해자에서 국민영웅으로]

[서주환-서환-서애필, 국민영웅에서 웹소설가… 문학공모전 대상까지]

[Who is? 나이 스물셋 플랫폼 대표, 작가 서주환]

- 기자란 놈들이 커뮤니티 보고 기사 쓰는 거 실화냐? 가슴이 졸렬해진다

└ ㄹㅇ기사 제목 갈수록 가관이네. 국민영웅ㅇㅈㄹ

- 국민영웅은 뭔 소리임? 살인자를 잡아?

└ 우리 형 작년에 말년휴가 나와서 토막살인범 잡았음. 그래서 별명이 솔져형임

└ 나 같은 부대였는데 그거 때문에 강제복귀 당했었음 엌ㅋㅋㅋㅋㅋ

[서주환 작가, 리액트엔터 캐스팅 제의 거절]

└ 이건 또 뭔데ㅅㅂ

└ 위튜브 영상 보셈. 스완 피팅 촬영하다가 캐스팅 당했었음

└ 우리 오빠 글은 취미로 쓰는 거예요ㅎㅎ

└ 빨리 데뷔했으면 좋겠다. 덕질 10년차 인생 걸고 진짜 명품 배우상인데. 이 오빠 ㄹㅇ아우라부터 달라

└ 갑자기 인생 살기 ㅈ같네

└ 아 현타…….

*

집으로 돌아온 서주환은 밀린 메시지를 확인했다.

[업적, ‘문학공모전 대상’을 달성하여…]

[업적, ‘노인의 꿈’을 달성하여…]

[업적, ‘문학계의 관심을 한 몸에’를 달성하여…]

[업적, ‘팬 카페 창설’을 달성하여…]

[업적, ‘질시 받는 자’를 달성하여…]

[업적, ‘실시간 검색어 10위’를 달성하여…]

[업적…….]

[업적…]

[업…]

미친 듯이 울려대는 알림음과 메시지.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루시, 다 지워버려.”

[알겠습니다.]

루시의 대답과 함께 미친 듯이 떠오르던 메시지가 사라졌다.

“오늘 총 얻은 포인트는?”

[지금도 계속 오르고 있습니다만…….]

“대략적으로만 알려줘.”

[200만LP가 조금 안 됩니다.]

“하하…….”

거의 한 달 동안 벌어들이던 포인트가 하루 만에 들어오다니. 헛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많아야 20만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일이 커졌어.”

[기사가 문학공모전에서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처음에 나온 기사들은 문학공모전에 초점이 맞춰져있었다. 그나마도 그 하나에만 집중된 것이 아니라 수상자들에게 시선이 분산되어 들어오는 포인트 양이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기사의 초점은 ‘서주환’이란 한 사람에게 맞춰졌다. 웹소설 작가의 문학공모전 대상이란 것만으로도 흥미로웠지만 지금까지 보인 행보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재조명된 덕이 컸다.

“위튜브 구독자랑 별스타 팔로워도 엄청 늘었네.”

각각 40만과 20만을 돌파했다. 특히 별스타는 최근 업로드하는 것도 없는데 왜 팔로워를 누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뭐, 포인트 벌어먹으려고 가입해둔 게 맞긴 한데.’

귀찮아서 따로 관리를 하고 있진 않았다. 기껏해야 한 달 전에 사진 한 장을 올렸을 뿐이다.

지이잉, 지잉, 지이이잉!

그는 일단 DM폭탄을 해결하기 위해 알림을 꺼버렸다. 한둘이어야 답장을 하지, 이 정도로 메시지가 오면 일일이 확인할 수도 없었다.

서주환은 어쩐지 지쳐버려서 침대에 몸을 뉘였다. 그렇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 정하연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연이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구나.’

그는 집에 들어오기 전, 수상식장에서 정하연이 나중에 말해주겠다던 바를 들은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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