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392화 (392/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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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여러분 항상 하는 말이지만 건강이 최고입니다.

저 포함 가족들 중에 건강한 사람이 없다 보니 입에 달고 사네요.

얼마 전 어머니께서 가벼운 접촉 사고 때문에 검사 차 입원했는데 심전도 검사에서 부정맥 가능성이 있다고...

정확한 건 더 자세한 검사를 해봐야겠지만 정말 듣고 깜짝 놀랐네요.

다시 한 번 운동의 중요성을 느꼈습니다.

저는 오늘도 글을 쓰기 위해 운동합니다.

건강 최고.

*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수상-소통의 부재

녹음실 밖.

민가희는 ‘한 걸음’의 멜로디에 귀를 기울였다.

‘악기는 통기타가 끝?’

기타소리 외에는 들리지 않았다.

‘음… 별로인 것 같은데…….’

얼핏 듣기에도 현을 튕기는 솜씨가 조잡하고 멜로디는 지나치게 단조로웠다. 다른 사람이 듣기에는 몰라도 ‘기타(B+/A+)’ 재능을 보유하고 있는 윤슬기의 연주를 매일같이 들어온 그녀를 만족시키기엔 너무나 아쉬웠다.

‘나라면…….’

민가희는 머릿속으로 몇 가지 악기를 추가해봤다. 상상으로 만든 오선지에 임의로 악보를 그려내고, 여러 가지 모양의 음표를 더해서 멜로디를 풍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즉흥 편곡은 얼마 가지 못해 중단됐다.

- 아~.

서주환의 허밍.

민가희는 곧장 머릿속에 그려냈던 오선지를 구겨서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이런 조잡한 음률을 고치느니 서주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었다.

‘역시 오빠야.’

허밍만 들어도 벌써 기분이 좋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이런 음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훨씬 듣기 좋게 바뀌었다. 민가희는 알지 못했으나 그 이유는 서주환이 지닌 ‘성우(A+/A+)’ 재능 덕분이었다.

‘전주가 왜 이렇게 길지?’

민가희는 다소 긴 전주에 조급한 마음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허밍도 좋지만 빨리 노랫소리를 듣고 싶은데 쓸데없이 전주가 길었다. 왜 구성을 이렇게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딱히 중독적이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은 멜로디를 오래 들려줘서 어디 쓰겠다고.

이내 짧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노래가 시작됐다.

- 어제도 한 걸음 걸었어요.

노래는 ‘한 걸음’이라는 제목과 어울리는 가사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한 소절, 두 소절. 노래가 이어질수록 민가희의 눈이 점점 크게 뜨였다.

‘조잡한 느낌이 사라졌어.’

만족할만한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조금 전과는 확실히 달랐다. 서주환의 목소리가 단조롭고 평이했던 멜로디 사이사이를 채워갈수록 소리가 풍부해졌다. 기타라는 악기가 내는 현악소리와 사람이 내는 목소리가 섞인다.

‘아, 목소리도 악기구나.’

민가희는 그렇게 새삼스러운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노랫말이 없는 BGM 위주의 곡만 작곡하느라 간과하고 있던 사실이었다.

본디 악기란 더욱 다양하고 풍부한 소리를 내기 위한 도구다. 먼 옛날, 악기가 존재하기 이전에는 사람의 목소리만이 음(音)을 만들어내는 주된 수단이었다. 이 때문에 사람의 성대를 최초의 악기라고 부르기도 했다.

‘지금도 아쉬운 부분이 많긴 하지만…….’

기타소리만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곡이 됐다.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목소리에 담긴 ‘감정’이었다. 담담한 듯 씁쓸한 투의 목소리는 청자를 멜로디보다 가사에 더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애초에 멜로디로 승부하는 곡이 아니란 뜻이다.

‘그렇다고 멜로디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야.’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풍부한 악기 구성은 필요 없을 테지만 그녀는 이 곡을 훨씬 좋은 노래로 편곡할 자신이 있었다.

- 정말 수고했다고─!

노래는 2분 남짓의 시간으로 끝을 맺었다. 길디 긴 전주를 제외하면 실제로 노래를 한 시간은 1분 30초 정도일까. 그에 민가희는 아쉬움 가득 담긴 숨을 내쉬었다.

“좀 더 길어도 좋았을 텐데.”

그저 서주환의 노래를 듣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는데 기대도 않던 곡에 아쉬움을 느끼게 됐다. 더불어 원곡자가 부른 노래는 어떨까 기대감이 들었다. 서주환이 부른 것의 반만 되더라도 협업을 제안해볼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원곡자가 부른 버전을 들어보려는 때였다.

- 오빠가.

은율의 목소리가 녹음실 마이크를 타고 들어왔다.

- 오빠가 어떻게 제 노래를 알아요?

자신이 원곡자임을 밝히면서.

*

서주한은 당황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한 걸음이 율이 네 노래라고?”

“네. 2년 전에, 소속사에서 퇴짜 맞고, 싸클에만 올린 건데…….”

서주환이 ‘한 걸음’이란 노래를 알게 된 것은 32살 때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8년 후의 미래. 그가 죽고 회귀를 하게 되던 해. 이 노래는 역주행을 하여 다수의 음원사이트에서 1위에 랭크됐다.

‘Remedy가 율이었다니.’

Remedy. 치료, 혹은 치료약.

이 노래, ‘한 걸음’을 부른 가수의 이름이다. 리메디는 그 이름처럼 사람들에게 치료약이 될 만한 힐링 노래를 주로 만들었다. 그래서 그 또한 마음이 힘들 때면 리메디의 노래를 많이 찾아듣곤 했었다.

서주환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은율을 바라봤다.

‘리메디가 방송에 출연하지 않았던 이유가…….’

리메디는 자신의 노래가 1위에 올랐지만 어느 방송매체에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또한 자신의 신상정보를 철저히 비밀에 붙이고 얼굴 없는 가수로만 활동했다.

당시에는 그저 신비주의라고만 생각했는데, 눈앞에 있는 은율과 연관 짓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가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도 결국 가수가 됐구나.’

서주환은 이내 당황한 표정을 정돈하고 부드러이 미소 지었다.

얼굴 없는 가수라지만 음원 사이트 1위를 몇 주 동안이나 차지한 가수다. 그리고 그녀는 ‘한 걸음’ 외에도 다수의 곡을 차트 50위 안으로 랭크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결국 본인이 바라던 꿈을 이룬 것이었다.

그는 리메디의 노래를 통해 치유 받았던 회귀 전을 떠올리며 은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율이 네 노래인 줄 알고 부른 건 아니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라서 부른 거지.”

“오빠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요? 정말로…?”

“응. 작업할 때 계속 반복재생 해놨었거든. 특히 은아힐링 쓸 때 많이 들었지.”

“말도 안 돼…….”

그리 중얼거린 은율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가 오랜만에 머리를 쓰다듬어줬다는 설렘보다도 자신이 부른 노래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라 말해준 것에 대한 기쁨이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그때였다. 벌컥, 하고 녹음실 문이 열리며 민가희가 뛰어 들어왔다. 그녀는 이제껏 본 적 없이 흥분한 얼굴이 되어 은율의 어깨를 붙잡았다.

“방금 노래, 율이 언니가 만들었어?”

“어, 어?”

“한 걸음! 언니가 만들었다고 했잖아. 맞지?”

“으, 으응. 내가, 만들었는데…?”

“우와아! 진짜였어. 우와!”

“가, 가희야? 어깨 아파… 흐이익!?”

짤짤짤짤!

은율의 가녀린 몸이 흥분한 민가희의 손짓을 따라 마구 흔들렸다.

“생각해 보니까 싸클 계정도 SilverSnow네! 은설이면 언니 아이돌 시절 예명 맞지? 와아아앙!”

“꺄아악! 이, 이것, 좀, 놓, 놓고오! 오, 오빠, 도와… 흐베베벱!”

서주환은 처음 보는 민가희의 모습에 주춤 뒤로 물러섰다.

‘가희… 맞지?’

흥분한 민가희는 사람이 바뀐 수준이었다. 눈이 반쯤 돌아가서 은율의 어깨를 잡고 탈탈 흔들어대는 게 처음 보는 과격함이었다. 섹스할 때도 저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는데.

민가희가 기절하기 직전의 은율을 붙잡고 소리쳤다.

“언니! 율 언니!”

“흐에에…….”

“나랑 작업하자! 노래 만들어! 응? 내가 편곡해줄게! 아니, 하게 해줘!”

“무, 뭐라, 고? 아, 아무튼 알았으니까, 일단 이것 좀, 놔줘어…….”

은율이 초점 잃은 눈으로 말했다.

가수 Remedy가 세상 밖으로 좀 더 빨리 나오는 계기가 된 날이었다.

*

5월 넷째 주 토요일.

서주환을 비롯한 가족들이 한 데 모였다. 그의 부모님과 여동생 서주희는 물론 집안의 큰 어른인 서만식과 몇몇 친척들도 함께였다.

서가네는 잔뜩 차려입은 채 수상식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상 받는 건 난데 어째 다른 사람들이 더 빼입은 것 같네.’

오늘 서가네 식구들이 모인 이유는 다름 아닌 그의 문학공모전 수상 때문이었다. 젊었을 적 작가가 되기를 희망했던 집안의 최고 어른 서만식은 자신이 상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정장까지 빼입었다.

그의 어머니 서애라가 시아버지인 서만식을 향해 말했다.

“어쩜. 아버님, 정장이 너무 잘 어울리세요. 완전 영국 신사 같으셔요.”

“크흠. 흰소리는 됐다.”

서만식은 괜한 소리 말라는 듯 손을 저으면서도 옷매무세를 재차 점검했다. 당사자인 서주환보다도 더욱 긴장한 모습이었다.

서재필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우스워서 웃음을 흘리며 서주환을 돌아봤다.

“이따 네 할아버지가 단상에 올라가는 거 아닌가 모르겠구나.”

서주환이 대답하기도 전에 서만식이 인상을 쓰며 지팡이를 매만졌다.

“다 들린다.”

“헉.”

“쯧. 너는 나이를 먹어도 똑같구나. 네 아들이 상을 받는 자리인데 점잖은 채 좀 하거라.”

“…예.”

서재필이 뚱한 목소리로 답했다.

서주환은 픽 웃음을 흘리며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모습을 쳐다봤다.

‘판박이시구만 뭘.’

서만식은 서재필을 한심하다는 듯 봤지만 그가 보기에 서재필은 서만식을 그대로 옮겨둔 듯 똑같았다. 평소 말 수가 적고 진중한 것까지 말이다.

그때 서정호가 옆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형, 진짜 우리 가족 이야기를 써서 대상 탄 거야?”

“음. 크게 보면 그렇지?

서주환이 쓴 소설의 모티브는 사촌 동생인 서정호 가족의 이야기였다. 이 때문에 서정호를 비롯한 작은 아버지와 작은 어머니에게 직접 인터뷰를 하기도 했었다.

서주환의 대답에 서정호가 민망한 얼굴로 말했다.

“이제 와서 할 말은 아니지만, 어째 가정사가 까발려지는 느낌이라 쪽팔리네…….”

그 말에 서주환은 서정호의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작은 어머니와 작은 아버지의 표정을 살폈다. 대화를 들은 건지 두 부부의 표정도 서정호와 마찬가지로 민망한 기색을 띠고 있었다.

서주환은 오해하지 말라며 손을 내저었다.

“크게 보면 그렇단 얘기야. 소재라는 측면에서 모티브를 잡은 거지 이야기 자체는 다른 점이 더 많아.”

“아, 그런 거야?”

“그런 거야는 인마. 몇 번을 설명했는데. 어머니랑 아버지한테 말씀 안 드렸어?”

“으하하… 크흠. 하람이랑 같이 못 와서 아쉽네.”

“짜식이 말 돌리기는. 그런데 하람이는 많이 컸냐?”

서하람은 지난 설에 태어난 서정호의 여동생으로 이제 생후 5개월이 조금 안 된 늦둥이다.

서정호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우리 하람이 천재가 분명해. 벌써 기어 다닌다니까? 개쩔지?”

“오, 벌써? 빠르긴 하네.”

“나중에 육상 선수 시켜야 할까봐. 흐흐.”

생후 5개월 된 아기가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고 육상 선수를 시켜야겠다라. 주접도 이런 주접이 없었다.

서주환은 어이없다는 듯 서정호의 등을 짝 두드리며 말했다.

“주접 그만 떨고 가서 부모님한테 설명이나 드려.”

“어으, 아파. 이 형 진짜 무식하게 세졌네.”

“뭐 인마?”

“엄마, 아버지!”

서정호가 도망쳤다.

그렇게 시상식이 있는 건물 입구에 도착했을 때였다. 입구 앞에 모여 있는 20대 남녀 몇몇이 손을 흔들었다.

“주환아!”

“얌마, 왤케 늦음!”

“형님!”

“오빠, 여기!”

“환이 오빠!”

정하연을 비롯한 그의 대학 친구들이었다.

서주환은 놀란 표정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너희들이 왜 여기 있어?”

“새꺄, 너 축하하러 왔지. 객석은 내가 알아서 받아놨음.”

“아니, 그거 미리 말해야 된다고 했는데? 인원제한도 있고.”

“나 재벌집 손자임.”

“미친놈이세요?”

“농담이고, 이 대회 후원을 우리 형 처가 쪽에서 한 거임.”

어이없는 대답이긴 마찬가지였다.

서주환은 따지기를 포기하고 친구들에게 뒤를 가리켰다.

“아무튼 왔으니까 인사나 해. 다들 우리 어머니랑 아버지는 알지?”

일행들은 언젠가 ‘서가네 분식집’에 와서 그의 부모님을 뵌 적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주환이 친구예요. 오늘 수상한다고 해서 축하해주러 왔어요.”

“어머, 하연이랑 지경이 아니니? 어쩐지 수아가 따로 온다더니. 석찬이랑 덕훈이도 어서 오렴.”

“어? 형, 누나들!”

서애라가 그의 친구들을 반갑게 맞고, 일면식이 있던 서정호가 살갑게 인사했다. 그렇게 정하연과 유지경, 이석찬이 어른들을 상대로 인사를 올리는 중이었다.

장덕훈은 뻣뻣하게 굳은 채 서재필과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서재필이 우묵한 눈으로 장덕훈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딸이랑 사귀고 있다지?”

“그, 그렇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버님.”

“아버님…?”

“아, 아니. 아저씨…?”

“아저씨이…?”

“아, 아니, 그게… 죄송합니다!”

장덕훈은 미래의 장인어른 앞에서 땀을 뻘뻘 흘려댔다. 그때 서주희가 달려와서 서재필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오, 아빠 좀! 덕훈 오빠 괴롭히지 마!”

“…괴롭힌 적 없다.”

“아무튼!”

“주, 주희야, 그러지 마. 아버님한테 제대로 인사드려야…….”

“크흠. 일단 들어가지.”

서주환은 그 촌극을 바라보며 낄낄거렸다.

[주인님께서 웃을 때가 아닌 것 같은데요?]

‘엉?’

그는 곧 루시의 말뜻을 깨달았다.

“아들, 그래서 셋 중 누구야?”

“…….”

어머니 서애라의 물음이었다.

“하연이랑, 지경이, 수아. 셋 중 누구냐고. 엄마는 수아가 제일 좋은데.”

“…뭔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네요.”

“아들, 못 알아들은 척 하지 말고. 그런 애매한 태도가 여러 사람 상처 입히는 거란다? 나쁜 남자는 몰라도 개새끼는 되면 안 돼요. 엄마는 아들을 그런 사람으로 키운 적… 아들?”

“…….”

“아들? 아들!”

서주환은 수상식장 안으로 도망치며 생각했다.

‘어머니, 개로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어머니 말씀대로면 저는 이미 개새끼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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