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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해이해진 자신을 채찍질 할 겸, 지난 휴재 보충도 할 겸 공수표를 날려봅니다.
다음 주 여섯 편 연재할 거임.
*
독자님들 모두 건강하고 즐거운 주말 되시기를 바랍니다 :D
한 걸음
한수아는 자신의 특기를 살려서 세 사람 사이의 중간다리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러고 보니 언니들 다 음악하네? 가희 언니는 작곡가, 슬기 언니는 연주자, 율이 언니는 가수! 게다가 셋 다 실력도 엄청 좋아!”
“헤헤, 고마워.”
“유명 위튜버가 칭찬해주니까 어깨가 으쓱하는데?”
갑작스러운 칭찬에 민가희는 부끄러워하면서도 기분 좋게 웃었고, 비교적 눈치가 빠른 윤슬기는 픽 입꼬리를 올리며 장단을 맞췄다.
반면 은율은 칭찬이 부담스러운 듯 목을 움츠렸다.
“아, 아니, 나는, 그렇게 대단하진, 않은데…….”
“율이 언니 정도면 실력자지!”
“아, 아니야. 그냥 그래…….”
은율은 자신감 없는 태도로 고개를 저으며 한수아의 말을 부정했다. 팀 내에서야 나름 잘 부르는 편이었지만 어디 가서 자신 있게 실력 있는 가수라고 나설만한 정도는 아니다. 그녀는 스스로에 대해 그렇게 평가하고 있었다.
사실 은율의 자기평가는 그리 틀린 생각이 아니었다. 오히려 노래(C+/S) 재능의 현재등급으로만 판단하면 상당히 객관적인 평가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수아는 단호하게 은율의 부정을 일축했다.
“율이 언니는 노래 잘 불러. 아니면 잘 부르게 되거나.”
개인적인 팬심을 제하더라도 한수아의 말에는 절대적인 확신이 있었다.
“왜냐면 환이 오빠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서주환을 향한 한수아의 신뢰는 절대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민가희도 다르지 않았다.
“응. 오빠가 그렇다고 했으면 그런 거지.”
“주환 오빠가 그랬어? 음, 그럼 확실히 재능은 있겠네.”
민가희뿐만 아니라 윤슬기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서주환과 알고 지낸 시간이 오래될수록 강하게 보이는 반응이었다.
서주환이 눈여겨 본 사람은 무언가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다.
그것은 서주환과 친한 지인들 사이에서 무의식중에 통용되는 진리였다.
[주인님께서 지금까지 워낙 보여준 게 많으니까 말이죠.]
하지만 비교적 서주환을 알게 된 시간이 짧은 은율은 세 사람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이나 그리 말하니 근거도 없는 말에 무심코 휘말리는 중이었다.
‘나한테 정말 재능이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서주환을 돌아보니, 그가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마치 그 생각이 맞다는 듯이.
은율은 고작 그 한 번의 끄덕임으로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그의 비상식적인 안목을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서주환이란 ‘은인’에 대한 신뢰만큼은 다른 사람들 못지않았다.
한수아가 세 사람을 둘러보며 물었다.
“언니들은 음악 만들 때 어떤 식으로 작업해? 난 노래 부르는 건 좋아하지만 만드는 건 해본 적 없으니까 궁금해.”
“으음. 난 딱 집어서 말하긴 좀 그래. 대부분 뭔가 하다가 팍 하고 떠오르는 경우가 많거든. 특히 주환 오빠가 쓴 소설 보다가 그럴 때가 제일 많고.”
민가희는 흔히 대중들이 생각하는 천재에 해당하는 유형이었다. S급 잠재력을 가진 것과는 별개로 재능을 개화하는 방식과 시기의 정도는 개개인마다 차이가 있는데, 민가희의 경우는 정해진 틀보다는 경험을 통해 영감을 느끼고 곡을 만들면서 성장하는 타입이었다.
“어우, 왕재수. 가희 이 년이 왜 애들한테 시샘 받는지 알겠다니까? 2학년 돼서 작곡 쪽으로 방향 틀고서 다 죽여버렸잖아.”
“주, 죽여?”
윤슬기의 과격한 표현에 은율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하하. 성적으로 죽였다는 뜻이었어. 가희는 원래 보컬 쪽이었는데 주환 오빠 조언 듣고 나서 작곡으로 갈아탔거든. 그런데 전공 바꾸자마자 날아다니는 거 있지? 오죽하면 깐깐하다고 소문난 교수님이 가희만 감싸고돈다니까. 어떻게든 유학 보내려고 난리도 아니야.”
“치. 난 유학 안 갈 거야. 한국이 좋다구.”
그리 말한 민가희는 남몰래 서주환을 곁눈질했다. 그녀가 유학을 가고 싶지 않은 이유는 전적으로 서주환 때문이었다.
한편 이야기를 들은 은율은 신기하다는 눈으로 민가희와 서주환을 번갈아봤다. 어째서 세 사람이 그토록 서주환을 신뢰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슬기 언니는 어떻게 작업하는데?”
“나? 난 연주는 몰라도 작곡 쪽은 영… 가이드 주면 그대로 연주하거나 내 느낌 살려서 변형하는 정도? 특기라면 작곡가들 특유의 두루뭉술한 표현을 잘 알아듣는 편이야. 민가희 요 년이 연주해달라면서 오선지도 안 주고 헛소리를 엄청 하거든. 거기에 단련됐지.”
“오옹. 신기하다. 그럼 율이 언니는? 아이돌은 어떤 식이야?”
“아, 아이돌 쪽은, 노래랑 안무를, 잘 맞추는 게 중요해. 그래서 반복 연습을, 엄청 하는데, 난 춤을 잘 못 춰서, 대부분 춤 연습에 시간을, 들였어. 곡은 직접 만들기보단, 그냥 시키는 거, 하는 편이었고.”
세 사람은 음악이라는 공통 관심사 덕분인지 금방 친해졌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워하던 은율도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민가희와 윤슬기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서주환은 그 모습을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이제 걸그룹 시절 얘기도 잘하네.’
은율의 정신질환 발단은 그룹 해체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래서인지 은율은 아이돌 시절 얘기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 있었는데, 일전에 병원에서 과거를 상세히 털어놓은 이후 거부반응이 현격히 줄어들었다.
한수아는 계속해서 대화를 주도했다.
“율이 언니, 주환 오빠 작품 다 봤다고 했지? 그럼 브금은 뭐가 제일 마음에 들었어?”
“나는, 은아힐링 초반부에 처음 나온 곡이, 제일 좋았어. 특히 통기타 소리가…….”
“엇, 그거 내가 연주한 건데 괜찮았어?”
“스, 슬기가 연주한 거였, 어?”
“응. 나 기타 전공이거든.”
“기타 말고도 리얼 사운드는 대부분 슬기랑 다른 친구들이 연주한 거야. 물론 내가 직접 미디로 찍은 곡이 더 많긴 하지만.”
윤슬기는 기타뿐만 아니라 베이스, 일렉 등 대부분의 현악기를 수준급으로 잘 다룬다. 거기에 피아노와 드럼까지 어지간한 숙련자 이상의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S급 재능만 없다 뿐이지 민가희 못지않게 사기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 바로 윤슬기였다.
은율은 두 사람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둘 다, 대단하다. 나는 다 어설퍼서… 부러워. 그나마 할 줄 아는 노래도, 실력 있는 가수분들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고.”
“에이, 언니 자신감을 가져. 환이 오빠가 재능 있다고 말했으면 틀림없다니까? 그리고 언니 음색이 얼마나 좋은데!”
“으응. 수아야, 고마워.”
상황이 이러하니 어느덧 뒷전이 된 것은 서주환 한 사람이었다. 그는 한쪽 의자에 덩그러니 앉아서 네 여성이 떠드는 걸 구경했다.
‘생각보다 잘 어울려서 다행이야.’
은율은 기본적으로 사람과 만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조금 걱정했는데 좋은 사람들만 붙여주니 별 어려움 없이 섞여들고 있었다. 물론 그 밑바탕에 서주환을 향한 굳건한 신뢰가 깔려있는 덕분이었지만 말이다.
‘수아도 잘해주고 있고.’
마냥 해맑고 생각 없이 떠드는 것처럼 보여도 한수아가 중간에서 은율을 많이 챙겨주고 있었다. 덕분에 은율은 그가 옆에 바짝 붙어 있지 않아도 무리 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하지만 아직 여러 사람의 주목은 좀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율 언니, 녹음 한 번 해볼래? 언니 노래 들어보고 싶은데.”
“오, 나도 듣고 싶어. 언니 목소리 진짜 좋거든. 노래 부를 땐 어떤 음일지 궁금하네.”
민가희와 윤슬기의 요청에 은율이 눈치를 보며 움츠러들었다.
“나, 기대만큼, 잘 부르진 못할, 텐데…….”
흐려지는 음성에 불안함이 담겨있다. 막상 노래를 불렀는데 실망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다. 오랜 시간 정신을 좀먹은 우울증은 그녀의 자존감도 함께 끌어내렸다.
그때 옆에 있던 한수아가 그 기색을 눈치 채고 은율의 손을 잡았다.
“언니, 힘들면 오늘은…….”
“율아, 못 불러도 괜찮아.”
가만히 지켜보던 서주환이 말했다.
“환이 오빠?”
갑자기 끼어든 음성에 한수아가 눈을 깜빡였다.
서주환은 굳어 있는 은율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냥 코인 노래방 왔다고 생각해.”
“노래방, 이요?”
“응. 요즘 많이 다녔잖아.”
은율은 병원에서 음악치료를 권유받은 이후 매일 같이 코인 노래방에 드나들고 있었다. 아직 혼자 다니는 게 무서워서 항상 그와 함께했지만 말이다.
서주환은 앞장서서 그녀를 녹음실로 이끌었다.
“내가 같이 들어가 줄게. 가희야, 녹음 좀 봐줘.”
그 말에 민가희가 뚱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점심 오빠가 사요.”
“알았어. 너희 먹고 싶은 거 다 시켜.”
서주환은 뜬금없는 말에도 흔쾌히 대답했다. 민가희의 시선에 어린 질투심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한수아는 이해를 해줘서 다행일까.
그때 눈이 마주친 한수아가 옆에 선 윤슬기 몰래 입모양으로 말했다.
‘환이 오빠 바람둥이. 메롱.’
…마냥 이해해주는 것만도 아닌 모양이었다.
서주환은 녹음실로 들어가며 쓰게 웃었다.
‘오늘 저녁은 가희랑, 내일은 수아랑 보내야겠네.’
비정상적인 관계이니 만큼 그녀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수시로 확인시켜줘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
녹음실 안.
본격적으로 녹음장비 앞에 서니 불안함이 커진 것일까.
“바, 바로, 해, 해요?”
은율의 목소리가 평소 보다 훨씬 떨려나왔다.
‘노래방은 괜찮았는데.’
아무래도 단순히 즐기기만 하는 노래방과는 차이가 있는 모양이었다.
[노래방보단 녹음실이 걸그룹 시절을 떠올리도록 만드는 탓이겠지요.]
‘그런 것 같아. 이래서야 지금 상태로는 제대로 부르지도 못하겠는데.’
서주환은 전면에 보이는 유리창을 향해 손을 들었다. 민가희가 갸웃 고개를 기울이며 묻는다.
- 오빠, 왜요?
“율이 준비가 아직 안 된 것 같아서. 내가 먼저 한 곡 부를게.”
- 오빠가요? 음, 좋아요. 헤헤, 오랜만에 오빠 노래 듣겠네요.
민가희가 오히려 좋다는 듯 배시시 웃었다. 그녀는 첫 만남 때 노래방에서의 추억 때문인지 서주환의 노래를 좋아했다.
- 무슨 곡으로 할까요?
“한 걸음.”
- 음? 처음 들어보는 곡이네요. 잠깐만요.
“그거 싸클에 있을 거야. 아직 정식발매가 안 된 곡이라.”
- 아, 찾았어요. MR도 있네요. 이제 틀 거니까 준비하세요~.
“흠, 음음.”
서주환은 목을 가다듬었다. 오래 전부터 즐겨 듣던 노래인지라 가사를 찾아 볼 필요는 없었다.
곧 헤드폰에서 잔잔한 멜로디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기타 소리만 있는 게 아쉽네.’
서주환은 아쉽게 입맛을 다시며 허밍으로 서두를 뗐다.
“아~.”
[특수능력, ‘씽 필링’을 활성화합니다.]
[노래에 담고자 하는 ‘위로’와 ‘응원’의 감정 및 이미지가 뚜렷합니다.]
[현 노래 재능의 등급은 ‘B’입니다.]
이 노래를 불러보는 건 무척 오랜만이었다. 아직 음악 공유 사이트에만 올라와 있는 이 곡은 6년이 지난 후에야 리메이크 버전으로 정식발매가 된다. 그리고 2년이 더 지난 후 역주행을 하며 음원사이트 1위에 오른다.
서주환은 첫 소절을 불렀다.
“어제도~.”
노래 ‘한 걸음’은 다소 무거운 분위기의 멜로디로 시작된다. 조금은 어설픈 통기타 소리가 낮게 깔렸다. 가사도 멜로디와 마찬가지로 힘들고 지친 감정을 전해준다.
어제도 한 걸음 걸었어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오늘도 한 걸음 걸어가요
숨을 풀풀 내쉬면서
화자는 땀을 흘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걸어가는 발걸음이 무겁게만 느껴진다. 매일 하루를 고단하게 살아가는 모습이다.
내일도 몇 걸음 걸어갈 거예요
팔을 휘휘 흔들면서
그러나 화자는 내일도 계속 걸어가겠다고 말한다. 땀 흘리고 한숨 쉬는 일도 많지만 기운차게 팔을 흔들며 걷는 모습으로.
어제의 고단을 쌓아서
오늘의 고난을 지나서
내일의 고지를 올라서
고단함을 쌓고, 고난함을 지나서,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고지에 올라서고자 노력한다.
희끄무레 보이는 불빛을 향해
어슴푸레 비추는 저 빛에 달해
자랑스레 웃음 진 나를 마주해
어디쯤에 있을지 모르는 빛을 향해 나아간다. 어제를 지나, 오늘을 걸어, 얼마나 될지 모르는 수 없이 많은 내일에 올라서 빛에 다다른다.
그렇게 다다른 빛에 웃음 짓고 서 있는 나를 마주하고.
“말해줄 거예요.”
너 정말 열심히 했다고
나 정말 열심히 했다고
“정말 수고했다고─.”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노라고.
이제껏 힘들게 달려온 나를 위로해줄 것이다. 비로소 오늘에 다다르기까지 해온 시간들을 칭찬해줄 것이다.
이 노래에는 그런 의미가 담겨 있었다.
*
노래를 마친 서주환은 옆에 선 은율을 바라봤다.
‘좀 괜찮아졌나?’
괜히 수많은 노래 중 이 곡을 선택한 게 아니었다. 그는 부디 은율이 용기를 내서 한 걸음씩 더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랐다. 이 곡의 화자처럼 희미하게 보이는 빛, 가수라는 꿈을 향해 걸어갔으면 했다.
한데, 노래를 들은 은율의 표정이 뭔가 이상했다. 특수능력인 ‘씽 필링’ 때문에 감동이라도 받은 건가 싶었는데, 그것과는 뭔가 달랐다.
“율아 왜…….”
“오빠가.”
은율이 말을 끊었다.
그녀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오빠가 어떻게 제 노래를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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