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390화 (39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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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6월도 이제 끝났네요.

본격적으로 더워지겠군요..ㅠ

*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한 걸음

은율과 듀엣으로 노래를 부른 그 날.

서주환은 이제껏 고민하던 마음을 정리했다.

루시는 그 생각을 읽고 안타까운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주인님… 정말 포기하시려는 건가요?]

“그래.”

서주환은 여상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목소리는 무언가를 포기한 것치곤 무척이나 담담했다.

[아쉽지는 않으신가요?]

“물론 전혀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지.”

은율에게 얻을 수 있는 S급 재능 조각.

솔직히, 이제 와서 포기하기에는 무척이나 아쉬운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서주환은 오히려 후련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게 맞는 것 같아. 기껏 나아지고 있는 애한테 할 짓이 아니야.”

은율은 이제까지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비롯해 조울증과 대인기피증, 함묵증 등의 각종 정신질환을 앓아왔다. 그리고 그 질환들은 지금도 완전히 치료된 것이 아니다. 이제야 조금 차도가 보였을 뿐이지.

‘그런 애랑 어떻게든 한 번 자고 끝내라?’

요즘 사회에서 성인 남녀가 하룻밤 잠자리를 같이하는 건 그리 흉볼 일도 아니다. 섹스라는 게 꼭 사귀는 사이에만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그걸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분명 있다. 그리고 은율은 명백히 후자의 사람이었다.

루시가 다른 대안을 제시했다.

[그럼 한 번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다른 여자들처럼 받아들인다면 어떤가요?]

서주환은 말도 안 된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율이한테 그런 비정상적인 관계를 말하라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발작 때문에 과호흡 오던 애한테?”

서주환과 여자들은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관계도 아닐뿐더러, 어떻게든 설명한다 해도 은율이 그 관계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미지수였다. 아니, 만에 하나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그게 제정신 박힌 판단으로 이루어졌냐가 문제였다.

‘처음부터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어.’

은율의 정신질환을 특수능력과 스킬로 치료해준다. 대신 이후 잠자리를 갖고 S급 재능 조각을 얻는다.

겨우 그 정도의, 계획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얕은 생각을 갖고 행동했다. 물건을 거래하는 듯한 태도로 말이다.

하지만 서주환은 그간 은율을 지켜보며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다. 그녀는 생각보다 훨씬 아프고 정신적으로 몰려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서주환은 그런 은율을 회귀 전의 자신과 겹쳐 보게 됐다.

‘포기하는 게 맞아.’

지금 은율에게 있어 자신은 단순히 고맙거나 호감 가는 남자가 아니라 ‘은인’ 내지는 ‘구원자’에 가까웠다.

- 오빠가, 살려줬거든요.

괜찮을 거라며 가볍게 여기고 넘어가기엔 그녀가 보여준 마음이 너무 컸다. 차라리 우서윤처럼 자신을 단순히 좋아하는 남자, 사귀고 싶은 남자 정도로 보았으면 마음이 조금은 편했을 텐데 말이다.

“후우. 생각을 바꾸니까 좀 편하네.”

서주환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간 은율의 정신병을 이용해먹는 것 같아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다른 목적 없이 순수한 의도로 그녀를 도와줄 생각이었다.

“난 이만 잘게, 루시. 내일 새벽에 깨워줘.”

[…알겠습니다, 주인님.]

루시는 눈을 감는 서주환을 보며 대답했다. 그리고 그에게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오히려 마음에 들어와서 멀리하겠다니, 사람의 감정은 너무 복잡하군요…….]

*

그로부터 일주일 후.

서주환은 자신의 생각이 옳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은율의 담당의사인 김희윤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 주환 씨한테 따로 율이 씨 상태를 좀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김희윤은 서주환이 걱정하던 바를 말했다.

- 주환 씨에 대한 율이 씨의 의존도가 너무 높아요. 단순히 믿고 의지하는 정도가 아니라 ‘의존증’이 염려될 정도로요.

김희윤이 의존증에 대해 설명했다.

의존증(依存症)이라 함은 스스로 사고하여 판단하는 것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의지하여 생활하고 존재하려는 심리적 상태를 말함이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 의존적 경향을 갖고 있지만, 이런 의존성이 생활 전반에 이르면 일종의 신경증으로 분류하며 중독현상으로 보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을 탐닉(耽溺)이라 하여 정신적, 의존적 중독(Addiction)이라고 말한다.

- 아, 확진을 내린 건 아니에요. 단지 여기서 더 심해지면 안 된다는 건데, 그러려면 율이 씨가 주환 씨 외에도 마인드컨트롤을 할 만한 수단이 필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선생님.”

- 네?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습니다. 율이가 너무 저한테만 의지하지 않도록 주의할게요. 아, 역시 율이한테 제일 좋은 수단은 음악이겠죠?”

- 아, 네. 저도 그래서 음악치료를 추천했던 거예요.

서주환은 김희윤과 대화를 마치고 곧장 민가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 네, 오빠! 이번에 보낸 곡 들어보셨어요?!

“응, 들어봤어. 역시 이번에도 좋더라.”

- 히히. 전 오빠 소설 볼 때 곡이 그렇게 잘 써지더라고요.

“항상 고마워.”

- 뭘요. 저도 연습할 겸 만드는 건데요.

벌써 민가희에게 받은 브금만 수십 곡이었다. 30초 내외의 비교적 짧은 곡이라지만 그 수를 생각하면 엄청난 작업량이었다. 물론 작업료는 넉넉히 챙겨주었다.

서주환은 한동안 대화를 이어가다가 본론을 꺼냈다.

“가희야, 저번에 말했던 사람 기억나? 은율이라는 친구.”

- 저보다 한 살 언니라고 했던 분 말이죠? 아이돌 생활 중에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미리 얘기를 해두었던 터라 민가희은 은율의 사정을 알고 있었다.

- 저한테 여자를 소개시켜주겠다고 하고… 솔직히 그런 사정만 아니었어도 엄청 투덜댔을 거라고요. 오빠 진짜 너무해. 하연이 언니한테 일러버릴까 보다.

민가희가 삐친 목소리로 말했다.

서주환은 어색하게 웃으며 그녀를 달랬다.

“에이, 율이는 그런 사이 아니라고 했잖아. 진짜 순수하게 선의로 도와주는 거야.”

- 그러시겠죠~ 제가 오빠한테 넘어간 것도 바로 그 순수한 선의 때문이었으니까요!

“하하…….”

- 앗, 혹시 저는 순수한 선의가 아니라 음흉한 수작이었던가요?

민가희가 말하는 선의와 수작이란 언젠가 노래방에서 그녀를 달래준 일을 말함이었다. 클럽에서 처음 만났던 당시의 민가희는 스스로의 재능에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고, 자신을 향한 주변의 기대와 실망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서주환은 벌써 1년이 지난 기억을 떠올리며 작게 웃었다.

“달래준 건 선의였어. 진심이었고. 그거랑 별개로 수작도 부리긴 했지만.”

- 역시. 첫 만남 때부터 오빠가 제 가슴을 엄청 쳐다보긴 했죠.

“남자가 돼서 그걸 어떻게 안 봐? 그러니까 조심해. 내 가슴 아무나 막 쳐다보지 않게.”

- 제 가슴이거든요?!

“응, 그러니까 내 거라고.”

- 쳇. 아무튼 알았어요. 안 그래도 저 작업실 마련했으니까 같이 놀러오세요.

“개인 작업실?”

- 네. 누가 제 곡을 매번 엄청 비싸게 사주거든요. 부담스러울 정도로요.

당연히 그 ‘누가’란 서주환이었다.

“그래, 그럼 내일 보자.”

서주환은 민가희와의 통화를 마치고 은율에게 연락을 넣었다. 그녀는 낯선 사람을 만나러 간다는 사실에 조금 망설였지만 곧 서주환의 말 한 마디에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 오빠 소설 브금 만들어주신 분이요?!

어찌나 흥분했는지 말도 더듬지 않고 소리치는 은율이었다.

*

민가희의 작업실에 도착했다.

함께 따라온 한수아가 도도도 달려가 민가희의 품에 안겼다.

“와, 가희 언니 오랜만! 언니는 여전히 푹신하네!”

“수아, 안녕. 수아는 여전히 작… 헉, 미안해. 놀린 거 아니야. 귀엽다는 뜻이었어.”

“…마치 엄청 큰 말실수를 했다는 듯이 사과하지 마. 그게 더 기분 나빠. 그리고 난 섹시파거든?”

“에이, 농담도.”

“우이씨!”

악의 없는 놀림에 한수아가 발끈한다. 두 사람이 투닥거리는 한편 서주환은 쓰레기를 바라보는 듯한 눈빛과 마주해야 했다.

“오빠는 친구가 여자밖에 없어요…?”

민가희의 단짝친구 윤슬기의 말이었다.

그녀는 서주환의 뒤에 숨어 있는 은율을 힐끗 쳐다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리 가희 울리기만 해봐라.”

“쯧. 그런 걱정 말고 슬기 너나 정훈이 형한테 잘해라.”

“흥. 저는 정훈 오빠한테 항상 잘하거든요? 오빠도 날 얼마나 좋아하는데.”

“에휴. 쯧쯧쯧.”

“아니, 이 오빤 왜 나만 보면 이렇게 혀를 차?”

서주환은 발끈하는 윤슬기를 보곤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이 년아, 너 나랑 떡 쳤었어. 확 씨. 이걸 말할 수도 없고.’

술에 취해서는 자고 있는 그를 자신의 남자친구 이정훈으로 착각하고 덮쳤더랬다. 그 때문에 루시와 헤어지기까지 했었으니 그 얼마나 황당한 기억인지 모른다. 그때 생각만하면 아직도 화가 나곤 했다.

‘뭐, 정훈이 형을 향한 순정만큼은 인정한다만.’

[확실히 그 점은 대단했죠. 주인님한테 그렇게 박히고도 이정훈을 향한 마음이 변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잘못했다고 싹싹 빌어야한다며 난리를 쳐댔으니까요.]

‘정훈이 형 말을 들어보면 현모양처가 따로 없는 것 같더라고.’

아마 두 사람은 결혼까지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와 루시만 그 날의 일을 비밀로 가져가면 말이다.

서주환은 다시 한 번 혀를 차곤 자신의 뒤에 숨어 있는 은율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세 사람의 시선이 은율에게 집중되었다.

당황한 은율이 달달 떨어대며 그를 돌아봤다. 손끝이 옷소매를 잡아온다.

“아, 힉. 오, 오빠……,”

“뭐해? 율아, 인사해야지.”

서주환은 어리광피우지 말라는 듯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매를 잡은 그녀의 손도 자못 냉정한 태도로 떨어트렸다. 은율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한다.

그때 한수아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율이 언니, 다들 좋은 사람들이야. 여기 가슴 큰 언니가 오빠 소설 음악 만들어주는 브금술사! 작곡보다 가슴이 더 대단한 F컵 언니야. 아, 율이 언니보단 한 살 어려.”

“안녕하세요. 민가희라고 해요. 그리고 F아니고 G컵이에요.”

“히익? 언니, 또 자랐어?”

놀라는 한수아와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는 민가희.

은율도 황급히 자신을 소개하며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은율, 이에요.”

서주환은 작게 미소 지으며 그 모습을 바라봤다.

‘역시 수아야. 데리고 오길 잘했어.’

천성이 밝고 순수한 한수아다. 그를 닮아서 장난기가 좀 있긴 하지만, 생긴 것 자체가 무해해서 그런지 누구도 경계하는 법이 없었다.

한수아가 마저 소개하기 위해 윤슬기를 가리켰다.

“여기 이 언니는… 어…….”

한수아의 고개가 갸웃 기울어졌다.

“나도 몰?루. 안녕하세요, 언니? 한수아라고 해요.”

“아, 네. 윤슬기에요. 안녕하세요.”

한수아도 윤슬기와 첫 만남이긴 마찬가지였다.

은율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채 두 사람이 인사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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