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387화 (387/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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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무슨 때...?

*

이제 장마철이네요.

가뭄 난에 비가 필요하다는 걸 알지만 개인적으론 비가 싫습니다.

더운데 습하니 꿉꿉하고 끈적거려서 굉장히 불쾌하거든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김치전과 막걸리가 땡기는 시기입니다.

다이어트 중이라 못 먹지만..ㅠ

모두 장마철 출퇴근 파이팅입니다!

*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PM11시, 밤 산책

서주환은 옆에서 함께 걷고 있는 은율을 힐끗 돌아봤다.

‘역시 괜찮을 것 같은데.’

은율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여느 때와 조금 달랐다. S급 재능 조각에 대한 탐욕이 아닌 은율이라는 사람 그 자체를 관찰하는 눈빛이었다.

서주환은 작게 미소 짓고 있는 은율을 보며 생각했다.

‘확실히 많이 좋아졌어.’

그녀는 현재 모자를 깊숙이 눌러 쓰고 도수가 없는 안경을 착용한 상태다. 혹시라도 누군가 자신을 알아보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복장이었다.

하지만 이전과 달라진 점도 있었다. 우선 눈 아래까지 올려 쓰던 마스크가 사라졌다. 그리고 밤중에 숨으려는 듯한 검정 일색의 추리닝도 하얀 색이 섞여서 제법 밝은 색채를 띠게 됐다.

자신을 조금이나마 더 드러내고 감추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그녀의 상태가 좋아졌음을 뜻했다. 페로몬과 손길, 위스퍼 등의 이능 덕분에 은율의 정신질환이 몰라볼 정도로 호전된 것이다.

‘오늘은 혼자서 거리를 걷기도 했지. 슬슬 병원에 가자고 해도 될 것 같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집에서 몇 발자국 나오는 것마저도 두려워했던 은율이다. 그래서 병원에 데려가 제대로 된 진료를 받고 싶어도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한데 오늘은 100m도 넘는 거리를 홀로 거닐었다. 그가 보호자로 동행한다면 이제 병원에 데려가도 될 듯했다.

서주환은 맞잡은 손에 힘을 더하며 그녀를 불렀다.

“율아.”

“네, 네?”

은율이 깜짝 놀라서 대답하며 고개를 들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지 볼이 발그레했다.

그는 안심하라는 의미로 입가에 미소를 만들었다.

“애들이랑은 요즘 좀 어때?”

“애들…? 아, 주희랑, 수아요?”

“응.”

역시 함구증도 많이 완화됐다. 다소 긴 문장을 말할 때는 아직 더듬는 기색이 있고 단어를 끊어 말하곤 했지만,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은율은 여러 말이 맴도는지 입을 뻐끔거리다가 부드럽게 웃었다. 그녀는 우선 고마움을 먼저 표했다.

“둘 다, 고마워요. 저를 많이 도와줘요. 오늘도 먼저, 전화 걸어줬어요. 아, 덕훈이도, 주희랑 같이, 영상통화 했어요.”

“애들이 귀찮게 하지는 않고? 불편하면 솔직하게 말해도 돼.”

그 말에 은율은 절대 그렇지 않다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 아니에요. 귀찮지 않아요. 불편하지도, 않아요.”

“그래?”

“네. 혼자 있으면, 안 좋은 생각, 많이 떠올라요. 그런데 주희랑, 수아랑 전화하면, 그런 생각 안 들어요. 처음엔 조금, 무서웠지만…….”

무섭다. 덩치가 큰 장덕훈이 아니라 서주희와 한수아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녀는 처음 만난 며칠간 서주희와 한수아를 의식적으로 피했었다.

“주희랑 수아가 무서웠던 이유는 율이 너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지?”

끄덕끄덕. 은율의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래도, 이제는 괜찮아요. 주희랑 수아는, 저를 싫어하지 않으니까.”

“싫어하긴, 오히려 좋아하지. 걔들은 애초에 스윙레이디가 아니라 율이 네 개인 팬에 가까웠으니까. 작년 초에는 너 보러 콘서트장도 갔었어.”

“아… 정말요?”

“응, 애들이 말 안 했어?”

“네. 제가 힘들어하는 거, 아니까…….”

은율을 배려해서 연예인 시절의 얘기는 되도록 꺼내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토록 열렬한 팬이면서도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두 사람의 마음이 새삼 기특했다.

하지만 서주환은 계속해서 콘서트에 대한 말을 이어갔다. 그녀의 상태를 살피기 위함이었다.

“그때 콘서트장에 나도 같이 갔었어.”

“오, 오빠도요? 그럼 오빠도, 제 팬이었어요?”

은율이 깜짝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연예인 시절의 이야기를 함에도 두려움보다는 순수한 놀람과 의문이 어린 표정이었다.

“오빠?”

은율은 드물게 대답을 재촉했다. 그녀에겐 서주환이 자신의 팬이었다는 사실이 무척 크게 다가왔던 탓이다.

“음.”

서주환은 작게 헛기침을 하며 눈꼬리를 긁적였다. 그가 콘서트에 갔던 이유는 은율의 팬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다만 한수아가 죽는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하지만 그는 솔직하게 말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네 팬이었어. 두 사람 만큼은 아니지만.”

“아…….”

“멤버들 중에 네가 제일 노래를 잘 부르더라고. 목소리가 워낙 맑고 깨끗해서 좋아했어.”

팬이라는 말은 거짓이지만 노래에 대한 소감은 진짜였다. 군대 생활을 했을 때부터 한 생각이다. 아이돌에 대한 관심이 적어서 그리 주목하진 않았지만, 은율의 맑고 깨끗한 음색만큼은 기억 한편에 남아있었다.

“고마워요, 오빠.”

은율은 원하는 대답을 듣고 활짝 웃었다. 그의 하얀 거짓말은 그녀의 마음을 들뜨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 벅차오르는 걸 느꼈다.

‘서환 작가님이 내 팬이라니.’

은율에게 있어 서주환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감사한 은인이다.

작가 ‘서환’이 쓴 작품 ‘은퇴 아이돌의 힐링방송’은 그녀를 한없는 무기력함과 우울의 늪에서 건져주었고, 인간 서주환은 공황발작에 빠진 그녀를 구해주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그는 일면식도 없던 그녀를 아무런 대가 없이 도와주고 있었다. 이렇듯 함께 걸을 수 있도록, 홀로 방구석에서 조용히 죽어가던 그녀를 세상 밖으로 꺼내주었다.

한데 그런 사람이.

‘오빠랑 내가 서로 팬이었다니!’

…자신의 팬이라고 한다. 맑은 음색이 좋았다고, 네가 노래를 제일 잘 부른다고, 칭찬해주었다. 자신이 그에게 느끼는 팬심은 일방통행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다 문득.

‘…팬심?’

은율은 입속말로 그 단어를 되뇌었다.

팬심. 특정 유명인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마음.

그녀는 ‘서환’을 좋아한다. 읽으면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글을 써주는 작가님의 팬이다. 그건 두말할 필요도 없는 진심이었다.

하지만 서환이 아닌 ‘서주환’에게 느끼는 감정은?

‘아닌데…….’

은율은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팬심이란 말을 부정했다. 이내 그녀는 스스로 한 생각에 흠칫 놀라며 서주환을 올려다봤다.

“아…….”

흑백이 또렷한 눈, 짙은 눈썹과 선 굵은 얼굴. 아이돌보단 배우를 연상시키는 생김새.

은율은 새삼스럽게 그의 얼굴을 보고 볼을 발그레 물들였다. 잘생긴 건 알고 있었지만 그리 시경 쓰지 않았는데, 한 번 스스로의 마음을 인지하고 나니 그의 외모가 필요 이상으로 눈에 들어왔다.

“응? 왜?”

시선이 마주친 그가 웃었다.

“아, 아니에요!”

은율은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수그렸다.

서주환은 그 태도를 보고 아직 병원에 데려가기엔 좀 이른가 하며 속으로 고민을 했다.

*

서주환은 산책을 마치고 은율을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본인 또한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던 중, 고개를 내저으며 중얼거렸다.

“역시 병원에 가자고 해야겠어. 내가 같이 가면 되겠지.”

신중히 진행하라던 가브리엘라의 말이 떠올라 망설였지만,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었다. 이미 지금도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아무리 스킬과 특수능력의 효과가 좋아도 은율 정도로 정신적 질환이 심하다면 의사에게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게 좋았다.

‘치료만 잘 받으면 분명 다시 재기할 수 있을 거야.’

잠시 비난을 받을지도 모르지만 실력적인 면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기에 시간이 좀 오래 걸리더라도 제대로 된 치료가 중요했다. 치료와 병행하여 보컬 트레이닝을 진행한다면 늦어도 몇 년 후에는 무대에 다시 설 수 있으리라.

‘아무렴. 노래 재능 잠재치가 무려 S급인데.’

최대치까지 단련하면 역사에 이름을 남길지도 모르는 재능이다. 걸그룹 활동 당시 그녀에게 유독 개인 팬이 많았던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이런 애 재능이 어쩌다…….”

서주환은 문득 떠오르는 안타까움에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석찬을 통해 그 이유를 알고 있었음에도 그녀의 상태창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오곤 했다.

<은율>

성별: 여성

나이: 23살

키: 166cm

호감도: A

현재 성욕: C

몸무게: 48kg

페티시: Autagonistophilia(上)

보유 재능: 노래(C+/S), 몰입(B+/A+), 바리스타(F/A), 방송댄스(C+/D)

은율의 상태창은 무척 기이했다. 정확히는 재능의 발전 정도가 이상했다.

“허참. S급 재능이랑 D급 재능의 현재등급이 같다니.”

절로 탄식이 나왔다.

걸그룹으로 3년을 활동했음에도 노래는 잠재력에 비해 개발이 너무 안 됐고, 고작 잠재력 D급에 불과한 방송댄스는 그 한계를 몇 단계나 뛰어넘었다. 소속사에서 그녀에게 ‘노래는 그 정도면 됐다’며 가수로서의 실력이 아닌 아이돌로서의 칼 같은 군무를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부족한 안무 실력을 따라잡기 위해 가장 큰 재능인 노래를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소속사만 잘 만났어도.’

그랬다면 벌써 국민 가수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해외에서도 유명세를 타고 있었을지 몰랐다.

하지만 지금의 은율은 마약, 학교폭력, 스폰 사건으로 망해버린 전 아이돌일 뿐이다.

사람을 잘못 만난 탓이었다.

은율이 속했던 기획사는 사람 좋고 열정 넘치는 팀이었지만 그에 걸맞은 능력이 없었고, 그룹 멤버들은 인성마저도 갖춰지지 않았었다.

‘그나마 조건 없이 풀어준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능력은 없어도 사람만큼은 좋았던 소속사 사람들은 손익분기를 다 채우지 못했음에도 은율을 조건 없이 풀어줬다. 사건과 관련이 없음에도 멤버들과 싸잡혀 비난 받고 상처 입은 그녀를 불쌍히 여긴 것이다.

물론 직접적으로 회사에 손해를 입힌 다른 멤버들은 사정이 달랐지만… 그것까지는 서주환이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욕실을 나온 그는 은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컬러링이 울렸다.

[밝게 빛날 거라 생각했던 내 미래는~ ♬

어디쯤에 있는 걸까 찾… 딸각.]

- 죄, 죄송해요. 씻느라, 늦었어요.

전화를 받자마자 사과 해오는 은율.

서주환은 부드러운 말씨로 그녀를 달랬다.

“에이, 뭐 그런 걸로 죄송해. 나야말로 잘 시간에 전화해서 미안하지.”

- 아, 아니에요. 오히려 좋은 걸요.

“응?”

- 아, 그, 늦게 전화해도, 괜찮다고요…….

“응.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서주환은 그녀의 태도에 여상한 투로 답하면서도 애매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어째 그의 주변에는 유독 순해빠진 여자들이 많은 것인지. 3년이나 아이돌 생활을 해본 여자치곤 지나치게 순진했다.

‘이러면 내가 너무 미안해지는데.’

당연하지만, 그는 은율이 자신에게 호감을 품은 것을 알고 있었다. 적당히 모른 척 하고 싶어도 그간 쌓인 경험과 눈에 훤히 보이는 상태창의 호감도가 그녀의 마음을 적나라하게 알려주었다. 그 마음이 오늘로써 충분히 무르익었다는 것도 말이다.

- 오빠?

“어어. 음. 요즘 잠은 좀 잘 자?”

- 네, 많이 좋아졌어요. 악몽도, 별로 안 꿔요. 아, 저 살도 조금, 쪘어요.

“푸흐. 아직 더 쪄야 되는 거 알지?”

- 그, 그래도 이제, 삐쩍 마른 정도는, 아니에요. 아까 봤죠?

“어… 그거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어?”

삐쩍 말랐다는 건 그가 이전에 은율에게 한 소리였다. 설마 신경 쓰고 있는 줄은 몰랐는데.

- 당연히, 신경 써요. 보기 안 좋으니까…….

[지금까지는 별 말 없었는데 말이죠. 이제 와서 새삼 말하는 이유야 뻔하지 않겠어요?]

보기 안 좋으니까. 이를 달리 말하면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뜻이리라. 당연히 그 누군가는 그일 테고.

서주환은 쓰게 웃었다.

‘얼마 안 남은 양심이 찔려.’

그는 은율을 선의로만 도와주는 것이 아니다. 가장 큰 목적은 어디까지나 S급 재능 조각이었다.

[이제까지 루시가 본 주인님이라면 은율에게 조각이 없었더라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을 거라고 보지만요.]

루시의 위로에 서주환은 작게 웃음을 머금었다. 아마 그랬겠지? 그는 이내 고개를 털어내고 본론을 꺼냈다.

“율아, 너 언젠가 다시 무대에 서고 싶다고 했지?”

- 네? 어, 네… 가능하다면, 그러고 싶어요. 은아힐링의 주인공처럼요. 그냥, 꿈일 뿐이지만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은율이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답했다. 뒤로 갈수록 목소리에 씁쓸한 기색이 어리는 게 안타까웠다.

서주환은 ‘위스퍼’를 사용하며 말을 이었다.

“그럼, 병원에 가자. 내가 같이 가줄게.”

- …….

“멀리 나가는 게 힘든 건 알아. 하지만 나중에라도 무대에 서려면 제대로 치료해야 되잖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지금부터 준비하자. 내가 도와주겠다. 나는 그럴 인맥도 있고 능력도 있다. 그리고 너에게도 충분한 재능이 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치료만 끝내면 내가 네 꿈을 도와주겠다.

그러한 설득의 말을 미처 내뱉기도 전이었다.

- 알았어요.

은율의 대답은 무척이나 쉽게 들려왔다. 준비해둔 수많은 말들이 무색해질 정도로.

서주환은 얼떨떨한 기색으로 되물었다.

“어? 정말? 병원 가기로 한 거다?”

그가 재차 확인하자, 그녀는 전에 없이 또렷한 목소리로 답했다.

- 네. 오빠가 같이 가주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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