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385화 (385/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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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어제 휴재해서 죄송합니다.

대신 오늘 분량 넉넉히 들고 왔어요..ㅠ

열심히 쓰겠습니다!

*

후기에서 풀었던 이야기는 이스터에그 같은 느낌이라 아예 언급 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다른 플랫폼 독자님들을 생각하니 짤막하게라도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ㅎㅎ...

*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PM11시, 밤 산책

앞으로 까톡도 문자도 하지 말아라.

서주환의 말에 은율은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역시 방해됐던 거야…….’

얼마나 귀찮았을까.

나름대로 자제했다고 생각했음에도 그에게 방해가 되었던 것이리라. 따지고 보면 그는 아무 연고도 없는 남일 뿐임에도 제 한 몸 편하고자 너무 의지하고 말았다.

“죄, 죄송… 앞으로 연락, 안… 할게요…….”

은율은 잘 움직이지 않는 혀로 말을 만들어냈다. 그가 귀찮아한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원망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지난 열흘간 귀찮은 연락을 받아준 것에 감사를 표해야 함이 마땅했다.

“지금, 지금까… 감사했…….”

- 율아? 율아, 내 말 좀 들어봐.

“소설, 계속… 게요…….”

은율은 간신히 말을 마치고 통화를 종료하려 했다.

그때 휴대폰에서 엄청난 성량의 외침이 들려왔다.

- 율이 너! 끊지 마!

“네, 네?”

- 전화기에서 손 떼! 끊으면 두 번 다시 연락 안 한다! 소설에 댓글 못 달도록 차단 걸어버릴 거야. 방송에도 못 오게 블랙한다?

“힉!”

은율은 반사적으로 휴대폰을 침대에 내려놨다.

소설 댓글 차단에 방송까지 블랙이라니. 그만큼 꼴 보기 싫었던 걸까?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런데 눈물이 차오른 걸 어떻게 안 걸까? 서주환이 외쳤다.

- 뚝! 울지 마!

“?!”

- 대답?

“네, 네!”

은율은 흠칫 대답하며 눈가를 닦아냈다. 그리곤 다시 한 번 휴대폰을 확인했다. 혹시 영상통화로 연결되어 있던 걸까? 아니, 여전히 음성 통화다. 그런데 어떻게 눈으로 본 것처럼 제 행동을 아는 것일까.

- 어으, 진짜. 대화 한 번 하기 힘들다.

서주환의 짙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

서주환은 전화기 너머에 있는 은율의 기색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직접 여러 정신질환을 경험해본 그이기에 은율의 행동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그래서 까톡을 하지 말란 말 뒤에 바로 ‘대신 전화로 하자’라는 말을 텀도 없이 붙였던 것인데, 그럼에도 이놈의 피해망상증은 안 좋은 말만 쏙쏙 골라 들었다.

“율아, 다시 말할게. 앞으로는 까톡이나 문자로 하지 말고 전화로 해.”

- 저, 전화로…?

“그래. 나한테 할 말 있으면 무조건 전화로 해.”

- 하, 하지만… 답답… 한데…….

“내가? 아니면 네가?”

- 자, 작가님이.

“나 안 답답해. 내가 한 번이라도 너한테 재촉하거나 답답하다고 한 적 있어?”

- 없…어요.

“그럼 앞으로는 전화로 하기로 한 거다? 많이 말해야 나아질 거 아니야.”

자고로 병이란 병든 부분을 더 많이 사용하고 써야 나아지는 법이다. 재활치료가 괜히 있겠는가. 지금 은율은 말을 하는 것에 있어서도, 사람을 만나는 것에 있어서도 재활이 필요했다.

“열흘 전에 비하면 지금도 많이 좋아졌어. 포기하지 말고 노력해야지. 응?”

서주환은 내친 김에 다른 조건들도 걸어버렸다.

“율이 너 나랑 약속 몇 개만 하자. 첫 번째는 나랑 대화는 무조건 전화로 하기. 이건 벌써 약속했지?”

- 네에…….

“두 번째는 하루 세 끼 밥 다 챙겨먹기.”

- 세, 세 끼나, 먹어, 먹어요?

“너 지금 몇 끼 먹어?”

- 두 끼… 먹어요….

“진짜?”

잠시 후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하, 한 끼…….

서주환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줄 알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삐쩍 마를 리가 없지.”

택배가 오는 간격만 생각해봐도 은율의 식사량을 추측할 수 있었다.

서주환은 다소 강경한 태도로 말했다.

“앞으로 밥 먹을 때마다 사진 찍어서 나한테 보내.”

- 사, 사진, 을요?

“그래. 아니다, 아예 내가 식단 구성해줄까? 요리는 좀 할 줄 알아?”

- 조, 조금.

“음. 자세한 건 나중에 얘기하고, 아무튼 밥 먹는 거 보고해. 그리고 세 번째 약속.”

- 또, 또 있…어요?

은율의 목소리에서 당황한 기색이 느껴졌다. 갑자기 정신없이 몰아붙이니 흐름을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다.

‘오히려 이 정도가 딱 좋아.’

아예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몰아붙이는 게 나을 때도 있는 법이다. 물론 서주환은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는 의사가 아니었지만, 그에게는 경우에 따라 의술보다 뛰어난 효과를 발휘하는 ‘스킬’과 ‘특수능력’이 있었다.

[특수능력, ‘위스퍼’를 적용중입니다.]

[대상자 ‘은율’의 호감도가 ‘B+’입니다. 호감도 등급만큼 특수능력의 효과가 상승합니다.

[대상자의 무의식에 말을 건넵니다.]

[대상자의 판단력을 저하시킵니다.]

[사용자의 목소리에 알 수 없는 신뢰가 깃듭니다.]

다른 누군가가 이처럼 압박하듯이 몰아붙였다면 혼란만 주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에게는 상대방의 무의식에다 진심을 전달할 수 있는 특수능력이 있었다.

서주환이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바는 은율의 건강과 회복이다. 그리고 특수능력의 효과를 받은 목소리는 그 진심을 그대로 전달했다. 덕분에 은율은 당황하면서도 연신 ‘네’를 반복하고 있었다.

“세 번째 약속은 매일 저녁에 나랑 산책하기.”

하지만 이번만큼은 특수능력의 효과를 빌어도 다소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 …느에?

은율의 입에서 괴상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

서주환은 그 날부터 휴대폰을 항상 옆에 두었다. 그렇지 않는 현대인이 어디 있겠냐만 최근의 그는 유독 심했다. 밥을 먹을 때도, 화장실을 갈 때도, 심지어 운동 중에도 휴대폰을 소지했다. 은율에게 전화가 오면 언제든 즉각 받기 위해서였다.

- 자, 작가님, 조, 좋은, 좋은 아침…….

“그래. 잘 잤어? 악몽은 안 꿨고?”

- 오늘, 은… 괘, 괜찮았어요.

“다행이네. 밥은 먹었고?”

- 아, 아직…….

“시간이 벌써 아홉신데? 어서 아침 먹어.”

- 배, 배 안 고픈… 데…….

“쓰읍.”

- 머, 먹을게요!

“사진 찍어서 보내는 거 잊지 말고.”

- 네에…….

정말로 배가 안 고픈 듯 시무룩한 목소리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데도 축 처진 눈꼬리가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봐줄 수는 없다. 괜히 삼시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먹으라는 게 아니다. 사람의 몸뚱이란 참 복잡하고 귀찮고도 신비로운 것이어서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루틴으로 식사를 챙겨먹는 게 참 중요했다.

‘괜히 운동하는 사람들이 빡세게 식단을 하는 게 아니란 말이지.’

먹지 않아도 살아갈 수는 있다. 영양이 부족한 만큼 뇌와 몸이 알아서 조절을 할 테니까. 하지만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특히 아픈 사람의 경우에는 잘 챙겨 먹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 은율: (샐러드 사진)

- 은율: 아침이에요.

은율이 아침 사진을 찍어서 보냈다.

서주환은 곧장 답장했다.

- 나: 고기는?

- 은율: 고기는 저녁에 먹으려고요.

- 나: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다 부족해. 차라리 저녁에 샐러드를 먹어. 원래 아침이랑 점심에 탄수화물을 많이 챙겨먹어야 돼.

- 은율: ㅠㅠ

- 나: 울어도 소용없어. 율이 너 저번에 보니까 근육이 너무 없더라. 근육을 키우려면 고기를 먹어야 돼. 근육이란 게 잉여 칼로리가 충분해야…….

- 은율: 작가님, 헬창.

- 나: ;;

서주환은 픽 웃으며 눈꼬리를 긁적였다. 한바탕 푸닥거리를 한 뒤로 어째 의사표현이 명확해졌다.

“그래봤자 문자에서 밖에 못 따지지만. 불만 있으면 말로 하던가.”

[말로 하면 봐주실 건가요?]

“아니, 그건 별개지.”

어림도 없다. 건강하게 만들어주마.

- 은율: (점심 사진)

- 나: 오, 이번엔 고기도 넣었네.

- 은율: 배불러요…….

- 나: 한 번에 많이 먹으라는 뜻은 아니니까 천천히 늘려가자. 그보다 저녁에 약속 안 잊었지?

- 은율: 산책 진짜로 가요?

- 나: 그럼 가짜로 가? 이따 집 앞으로 찾아갈 테니까 준비해.

- 은율: 문 안 열어줄 거예요…….

- 나: 그럼 소설이랑 방송 네 아이디 블랙 해버릴 거야.

- 은율: 작가님 나빠요 ;ㅅ;

- 나: 대신 잘 하면 상 줄게.

- 은율: 무슨 상이요???

- 나: 그건 나중에 말해줄게. 미리 말해주면 재미없잖아.

서주환은 오후 동안 집필활동을 하고 저녁을 먹은 후 은율의 집으로 찾아갔다.

‘주희 녀석도 나오라고 할까?’

은율의 옆집에는 서주희가 산다. 서로 가까이 있으니 친해지면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은율은 특수능력과 스킬을 사용하는 그와도 간신히 대화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벌써 서주희와 친하게 지내기에는 무리가 있을 터였다.

“율아, 나 왔어.”

벨을 누르자 금방 문이 열렸다. 미리 대기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빼꼼 열린 문 사이로 추리닝 차림의 은율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 작가님… 지, 진짜, 진짜로 가요…?”

그녀는 이전에 봤을 때처럼 모자에 마스크, 도수가 없는 안경까지 착용하여 얼굴을 꽁꽁 싸매고 있었다.

서주환은 글썽거리는 은율의 손을 잡고 문밖으로 끌어냈다.

“꺄악… 흡?”

서주환은 재빨리 은율의 입을 막았다. 고작 문 밖으로 끌어냈다고 비명을 지르다니 이쪽이 더 깜짝 놀랐다.

“율아… 네가 비명 지르면 다른 사람들이 나 오해해. 경찰에 신고해버릴지도 모른다고.”

“죄, 죄송, 해요…….”

“알았으면 빨리 가자. 너 지금 되게 수상해보여. 모자도 추리닝도 새까매가지곤.”

“바, 밤이니까.”

“밤이니까 어두워야 눈에 안 띈다고?”

끄덕끄덕 고개를 움직이는 은율. 나름대로 생각을 해서 입은 색인 모양이었다.

“어쨌든 가자. 따라와.”

“가, 같이…!”

그가 먼저 걸음을 옮기자 은율이 허둥지둥 따라붙었다.

서주환은 낄낄거리며 은율을 놀렸다.

“빨리 안 오면 버리고 간다. 아, 그렇다고 다시 집에 들어가면 블랙할 거야.”

그 말에 재빨리 옆으로 다가온 은율.

얼굴 위로 불만스런 기색이 한 가득이다. 원망과 울먹임 뒤섞인 표정이 썩 볼만했다.

은율은 잠깐 계단을 내려오는 중에도 연신 주위를 힐끗대며 살폈다. 혹여나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닐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조그만 소리가 들리기만 해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흠칫거리는 게 무척 안타까웠다.

‘이래서야 오늘 안에 돌아올 수 있을까 모르겠네.’

근처에 있는 개천가나 한 바퀴 돌려고 했는데 이런 속도면 하루 종일 걸어도 불가능하지 싶었다.

서주환은 눈꼬리를 긁적거리다가 은율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 잡아줄까?”

“네, 네?”

“무섭잖아. 손 이리 줘.”

파들파들 떨고 있는 은율의 손을 잡아챘다. 그리고 곧장 ‘안정의 손길’을 사용했다. 심신을 진정시키는 따스한 빛이 맞잡은 손을 통해 스며든다.

서주환은 씩 웃으며 은율과 시선을 마주쳤다

“아직도 무서워?”

“…조금.”

“그럼 계속 잡고 있어. 괜찮을 때까지 잡아줄게.”

“네…….”

은율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그 날 집에 돌아올 때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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