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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본문처럼 버팀목이라면 좀 거창하지만
소설이든 만화든 영화나 드라마 게임 등 무엇이 됐든
지친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단이 있다는 건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전 요즘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푸네요
응애 나 아가 헬린이 오늘은 슴가 운동 조졌다!
*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D
삶의 버팀목
서주환은 댓글을 보고 나직이 웃음을 흘렸다.
“율율 님 또 장문으로 댓글 쓰셨네.”
매번 장문으로 댓글을 쓰면 할 말이 없어질 만도 하건만 이만큼 다채롭게 감상을 남겨주는 게 참 감사하다. 글을 한 자 한 자 곱씹는 게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이 사람이 정말 내 글을 재밌게 봐주는구나 싶어서 뿌듯한 마음이 절로 올라왔다.
“으음. 원래 답글은 잘 안 다는 편인데.”
서주환은 ‘율율’의 댓글에 답을 달았다. 항상 재밌게 읽어주시는 것 같아 감사하다는 말과 당신의 앞날도 주인공처럼 행복이 가득하길 바란다는 다소 형식적인 내용이었다.
[답글을 다시는 건 무척 오래만이네요.]
“응. 회귀 전에는 많이 달았었는데.”
댓글이 워낙 많아지다 보니 어떤 댓글에는 답하고 어떤 댓글에는 답을 안 하기가 참 애매했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후기나 방송으로 소통을 하고 답 댓글은 잘 남기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이 정도로 열정적인 독자님에게 감사하다는 한 마디쯤은 할 수 있겠지. 부디 완결까지 재밌게 읽어주었으면 하는 독자님이었다.
지이잉.
폰이 울렸다. 화면에 ‘서애라 여사님’ 이라는 이름으로 발신인이 표기됐다. 어쩐 일이시지? 그는 얼른 전화를 받고 반갑게 말했다.
“아이고, 우리 여사님. 아들 보고 싶어서 전화하셨어요?”
- 알면 얼굴 좀 비추지 그러니?
툴툴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한동안 잘 들리는가 싶더니 또 글 쓴다고 연락도 안 하지? 에휴, 요즘은 주희 고 년도 뜸하고. 자식새끼들 키워봤자 다 의미 없다.
“에이, 왜 그러세요. 저만큼 살갑게 구는 아들이 또 어디 있다고.”
- 살가우면 뭐 하니. 얼굴을 안 비추는데. 요즘도 많이 바빠?
“항상 그렇죠, 뭐.”
-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건강도 챙겨가면서 해. 젊다고 무리하다가 몸 상하는 거야.
“걱정 마세요. 어머니 아들 튼튼합니다. 당장 피트니스 대회 나가도 수상할 걸요?
- 으이그, 말이나 못하면. 됐고, 시간 되면 집에 들러서 김치나 좀 가져가렴.
“김치요?”
- 그래. 이제 5월이라고 또 아버지가 열무김치랑 알타리를 했네.
서주환은 입맛을 다셨다. 그러고 보니 최근 김치가 다 떨어졌다. 밥반찬으로도 좋고 여러 요리에 첨가하기도 좋은 김치. 특히 그의 아버지 서재필 표 김치는 없어서 못 먹는 반찬이었다.
“당장 오늘 갈까요?”
- 시간 되니?
“그럼요. 아예 김장할 때 부르시지 그러셨어요. 저도 도와드릴 수 있는데.”
- 아들 바쁜 거 뻔히 아는데 어떻게 그러니. 요즘은 위튜브도 한다면서? 도유이라는 애 예쁘더라~. 여자친구야? 언제 한 번 데리고 와.
“…그걸 보셨어요? 유이는 그냥 친한 동생이에요.”
- 그럼 하연이랑 다시 사귀니? 아니면 지경이?
“…….”
잠시 침묵하자 전화 너머로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 알았다, 얘. 무슨 말을 못하겠네.
“하하…….”
- 그래서 오늘 올 거야?
“네. 지금 갈게요.”
- 주희도 데리고 와. 고 년 그거 요즘 통 얼굴도 안 비추고 연락도 안 하더라.
“연애 초기니까 어쩔 수 없죠.”
- 뭐? 연애? 주희 누구랑 사귀니?
“어… 모르셨어요?”
서주환은 말실수를 했다는 생각에 눈꼬리를 긁적였다. 전화기 너머에서 서애라의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걸 말해도 되려나? 순간 고민이 됐지만 이내 알 게 뭐야란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그의 연애사에 향한 관심을 돌리기에는 딱 좋은 화젯거리이기도 했다.
“덕훈이 알죠? 장덕훈.”
- 아, 그 덩치 큰 친구. 자기가 막 아들 제자라고 하지 않았나?
“걔 맞아요.”
- 주희랑 사귀는 사람이 덕훈이야?
“네네. 자세한 건 나중에 주희한테 들으세요. 저 출발할게요. 금방 가요.”
- 알았어. 조심해서 오렴. 아, 주희도 가능하면 데려오고.
“알겠…….”
- 여보! 주희한테 남자친구 생겼대!
전화를 끊기도 전에 아버지를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쩝. 주희 녀석한테 한 소리 듣겠네.”
뭐라고 하면 돈으로 때려서 조용히 시켜야겠다.
*
서주환은 친동생 서주희 대신 한수아와 함께 차를 타고 있었다.
“으이그, 누가 진짜 내 동생인지 모르겠다. 수아야, 네가 우리 어머니 딸 할래?”
“에엥? 싫어!”
한수아가 냅다 고개를 저었다. 강렬한 도리질에 서주환은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
“우리 어머니가 싫어? 아니면 아버지?”
“무슨 소리하는 거야. 아줌마랑 아저씨는 당연히 좋지!”
“그럼 왜?”
“애라 아줌마 딸 하면 오빠랑 결혼 못하잖아. 헤헤.”
그 말에 서주환은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이리 예쁘게 말을 하는 한수아가 사랑스럽긴 했지만 한편으론 난감했던 것이다.
그 기색을 눈치 챈 한수아가 말을 돌렸다.
“그, 그리고 환이 오빠랑 나랑 남매면 큰일 나는 걸? 오빠는 그럼 친동생이랑 그런 짓을 한 거잖아?”
“으음. 친동생이랑은 절대 그럴 수 없지.”
“그치?”
서주환은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부모님을 뵙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운전을 하고 있는 서주환 대신 한수아가 발신인을 확인했다.
“선찬 오빠네?”
“석찬이? 수아야, 전화 좀 대신 받아줄래?”
“응. 스피커폰으로 할게. 여보세요?”
전화가 연결됐다.
- 엉? 누구세요?
“나 수아야, 오빠.”
- 아, 수아구나. 쭈환이는?
“옆에 있어. 스피커폰이니까 그냥 말해두 됑.”
- 오키. 야, 쭈환, 너 지금 어디임?
서주환은 안전운전에 주의하며 답했다.
“밖인데 왜? 지금 운전 중이다.”
- 아, 밖임? 집 언제 들어가는데?
“지금 가는 중. 곧 도착할 듯?”
- 그럼 너희 집에 쇼핑백 하나 있나 확인 좀. 어제 내가 두고 나온 것 같음.
“쇼핑백? 거실에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 그거 덕훈이 상패임.
“상패? 설마 노벨다이스 공모전?”
- 엉.
“미친놈아! 그게 왜 우리 집에 있어. 덕훈이가 그걸 얼마나 기다렸는데.”
장덕훈은 얼마 전 수상이 발표된 노벨다이스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공모전은 사이트 내부 심사가 아닌 오로지 독자들의 조회수로 결정되었기에 수상이 빨리 발표됐다.
- 직접 주려다가 깜빡했음.
“깜빡할 게 따로 있지.”
- 괜춘. 어차피 덕훈이 것만 먼저 나온 거임. 다른 수상자들 건 이제 발송 시작했음.
“아, 그래? 지인 거라고 빨리 뽑았구만.”
- 암튼 그것 좀 덕훈이한테 전달해줄 수 있음? 내가 지금 밖인데 며칠 뒤에 들어갈 것 같아서.
“알았다. 내가 전달할게.”
- 땡큐. 그럼 수고하셈.
“오냐, 너도 수고해라.”
전화가 끊어졌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한수아가 손을 파닥대며 말했다.
“우와, 나도 보긴 했는데 상패라니, 덕훈이 진짜 우수상 탔구나. 첫 공모전인데 대단하다!”
“그치? 이게 다 좋은 스승님을 둬서 그런 거 아니겠어?”
“맞아. 환이 오빠도 대단해!”
음. 장난으로 재수 없는 척 거들먹거린 건데 돌아오는 반응이 너무 순수하니 민망하다. 그는 머쓱해진 표정으로 덧붙였다.
“덕훈이가 진짜 많이 노력했어. 그래서 실력이 몰라보게 늘었고.”
“응응. 나도 덕훈이 소설 봤는데 재밌었어.”
“그래도 좀 아쉽긴 해. 초반부 텐션을 계속 유지했으면 최우수상 이상도 노려볼 만했는데.”
초반부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솔직히 대상도 마냥 꿈같은 소리는 아니었다. 그만큼 장덕훈의 재능이 이번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성장했다. 그가 소개해준 백강호를 비롯한 전직 용병들에게 생생한 경험담을 들은 것도 주효했고 말이다.
하지만 경험의 부족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가 아무리 옆에서 붙잡고 가르친다고 해도 대신 글을 써줄 수는 없는 노릇. 연재 회차가 거듭될수록 장덕훈이 지닌 글쓰기 경험의 부족이 드러났다. 에피소드마다 글을 쓰는 폼이 들쭉날쭉했던 것이다.
‘뭐, 우수상도 충분히 기뻐하겠지만.’
장덕훈은 열정도 있고 나름 욕심도 있는 작가지만 결코 자만하지는 않았다. 그는 스스로의 부족함을 겸허히 받아들였고, 첫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것에 기쁨을 드러냈다. 상패까지 직접 전달해주면 분명 함박 웃음을 지으리라.
“여기 있네.”
집에 도착한 서주환은 어렵지 않게 쇼핑백을 찾을 수 있었다. 쇼핑백 안에는 잘 동봉된 상자가 하나 있었다.
장덕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 예, 형님.
“어, 덕훈아. 지금 어디냐?”
- 예? 어, 그게, 저…….
“응? 왜 그래? 아, 지금 바빠?”
- 그게 아니고… 그, 주희네 집입니다만…….
“아하. 주희네… 뭐, 인마?!”
서주환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 이 녀석이 서주희와 단 둘이 집에 있단 말인가? 남녀가 단 둘이 한 공간에? 원룸에?
장덕훈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 아,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냥 같이 영화 봤습니다, 영화!
“너 이 새끼, 무슨 영화 봤어. 69가지 잿빛 그림자 이런 거 본 거 아니야? 주희랑 어디까지 갔…!”
- 미친 새끼야! 액션 영화 봤으니까 헛소리 말고 닥쳐!
돌연 서주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주환은 그제야 너무 흥분했음을 자각하고 헛기침을 했다.
“크흠.”
- 뭘 크흠이야, 또라이 새끼야! 미친, 언제부터 날 그렇게 끔찍이 아꼈다고 씨! 미리 말하는데 너 찾아오지 마라? 어? 올 생각하지 마!
“아니, 그런데 이 년이 계속 오빠한테 미친새끼니 또라이니 욕을 해쌌네. 죽을래?”
- 네가 헛소리하니까 그렇지! 야, 그리고 너 엄마한테 그걸 왜 말해! 내가 연애하는 걸 네가 왜 말하냐고오!
“아오, 귀 따가워.”
이 년이 기차화통을 삶아 처먹었나. 서주환은 귀를 막고 스마트폰을 멀리 떨어트렸다. 여자 목소리 특유의 쨍한 외침이 한동안 울렸다.
그는 한참 씩씩대던 서주희가 잠잠해진 후에야 다시 폰을 귀로 가져갔다.
“야, 됐고.”
- 되긴 뭐가…!
“확 씨. 너 어머니한테 다 말해?
- 또, 또 뭘 말하려고!
“내가 아까 분명 전화 걸었을 때 너 뭐라 그랬어. 오늘 편집하느라 바빠서 같이 못 간다 그랬지. 그런데 지금 왜 덕훈이랑 같이 있어.
- …….
“이 년이 발랑 까져가지고 남친이랑 집 데이트를 해? 지 오빠랑 부모님한테는 거짓말을 하고? 뒤질래?”
- 아니, 그건… 편집 다 끝나고 잠깐…….
“바른대로 말해라. 아버지가 담근 김치 나한테 있다.”
- …씨이. 나한테 왜 그러는데. 오빠 때문에 오늘 다 망했어. 이 곰탱이랑 진도 나가는 게 얼마나 어려운 줄 알아?
“…….”
울먹이는 목소리에 서주환은 눈꼬리를 긁적였다. 요 년이 암만 그래도 왜 이리 싸가지 없게 나오나 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설마 진도 빼는 중에 어머니한테 전화 온 건가.’
그가 벌써 어머니에게 다 말한 걸 알고 있는 걸 보면 가능성이 있었다.
서주환은 돌연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말했다.
“크흠. 아무튼 지금 너희 집으로 간다.”
- 오지 말라고 좀…….
“인마, 방해하려는 게 아니라 김치 가져다주러 가는 거야. 어차피 오늘은 나가리인 것 같구만 뭘. 그리고 덕훈이 상패도 줘야해. 애초에 그게 목적이고.”
- …무슨 패?
“상패. 덕훈이 이번에 공모전에서 우수상 받았잖아. 남자친구 상 받는데 너도 옆에 같이 있는 게 좋지 않겠냐?”
- …치이. 알았어, 와라, 와.
잔뜩 토라진 목소리였다.
서주환은 쩝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갈 때 메로나?”
- 아니, X겐다즈가 좋아.
“…오케이. X겐다즈로 사갈게.”
비싼 건 잘도 골라 처먹어요, 하여간.
서주환은 떨떠름한 얼굴로 전화를 끊고 옆에서 쿡쿡대고 있는 한수아를 바라봤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
“오빠랑 주희 사이가 너무 좋아 보여서.”
“어딜 봐서?”
“환이 오빠는 맨날 주희 엄청 아끼면서 뭐라 그러더라. 다른 사람한테는 안 그러면서 주희한테만 틱틱 대. 킥킥.”
“크흠.”
서주환은 다시 헛기침을 하며 짐을 챙겨들었다. 계속 헛기침을 했더니 목이 따가웠다.
[저번엔 동생한테 참고하라고 콘돔 사이즈까지 알려주셨으면서…….]
루시, 닥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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