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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중간에 끊을 수가 없어서 분량 채우고도 계속 썼네요 히히
*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생일
루시는 자신의 주인인 서주환을 바라봤다.
“그렇지! 내려갈 때는 숨 참고, 올라와서 후! 길게 뱉지 말고 짧게!”
“주, 주인님, 나 쥬거…….”
“안 죽어. 내가 뒤에서 잡아줄 테니까 부상 걱정 말고 실패지점까지 해!”
“끄에오에으…….”
그녀의 주인은 새벽부터 제 여자들에게 운동을 가르치는 중이었다.
정하연, 유지경, 한수아.
세 여자들은 불과 몇 달 사이에 몸매가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항상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하고 요요가 오기를 반복하던 유지경은 날씬한 허리와 탄력적인 엉덩이를 갖게 됐고, 체력적으로 허약했던 한수아는 오히려 살을 조금 찌워서 건강한 몸으로 거듭났다. 특히 본래도 꽤나 관리된 몸을 갖고 있던 정하연은 체중이 그대로인 대신 골격근량이 늘고 체지방만 쏙 빠져서 선명한 일자 복근이 생겼다.
식단을 엄격히 제한한 것도 아니었는데 고작 두 달 만에 일어난 변화치곤 지나치게 놀라운 면이 있었다.
[이 여자들은 고마운 걸 알까 모르겠군요.]
루시는 죽을 것 같다며 이상한 비명을 질러대는 여자를 못마땅하게 쳐다봤다. 이 너구리 노예는 자신이 누구한테 가르침을 받는지 알기나 할까? 전 세계의 어떤 트레이너가 와도 주인님의 교육만큼 효율적인 퍼스널 트레이닝을 할 수는 없다.
[주인님도 참. 쉬엄쉬엄 하시면 좋을 텐데.]
안 그래도 바쁜 주인님이건만 새벽마다 세 여자에게 심력을 쏟는 게 안타까웠다.
[하긴, 굳이 세 여자만 그런 것도 아니지만요.]
그녀의 주인님은 참 오지랖이 넓었다. 세 여자가 쉬는 날에는 또 다른 여자를 상대해주었으니.
“다음 달에 시합이라고? 텀이 너무 짧은 거 아니야?”
“그렇지도 않아. 세 달 간격으로 잡히면 오히려 딱 좋은 정도야. 훈련할 시간도 있고, 팬들한테 잊히지 않을 수 있거든. 난 이제 막 복귀전 끝냈으니까 얼른 치고 나가야지.”
“그래, 아무튼 그때도 응원할게.”
“고마워.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말인데… 체력 보충 좀 하려고. 히히.”
“푸흐. 그럴 줄 알았다. 오늘은 여기 말고 모텔로 가자. 나중에 강호 형네 체육관에서 스파링도 한 판 하고.”
“응!”
너구리에 이어 또 못 마땅한 건 바로 저 멧돼지 같은 여자였다.
[짐승 같은 여자.]
루시는 저 멧돼지 여자가 주인님께 무례하게 굴었던 걸 기억했다. 제대로 된 대화도 하지 않고 제 맘에 안 들면 역정을 내던 꼴이 선명하다. 그때의 일은 시스템 안쪽에 숨어 있을 때지만 그녀는 주인님의 눈을 통해 모든 걸 보고 듣고 있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주인님을 향한 사랑보다 제 욕망이 더 큰 여자.]
멧돼지 여자는 본인의 훈련을 비롯한 실력 향상에 벽을 느낄 때마다 본능적으로 주인님을 찾아왔다. 그렇게 양기를 잔뜩 받고서는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고 말이다. 그 행동양상에 담긴 것은 사랑보다 욕구충족의 비중이 더욱 컸다.
차라리 그런 의미에서 정하연을 비롯한 세 여자는 합격이었다. 주인님을 향한 그녀들의 호감도는 언제나 A등급 이상을 유지했으니까. 특히 소꿉친구인 한수아의 호감도는 간혹 S급까지 오를 때도 있었다.
[이번엔 남자군요. 부지런도 하시지.]
또 안타까운 점 한 가지는 주인님의 오지랖이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인마, 너무 실망하지 마. 연독률 빠지는 거 너보다 잘 쓰고 오래 써본 작가들도 다 겪는 거다. 오히려 첫 유료 연재에서 이 정도면 엄청 선방한 거야.”
“하지만 형님은…….”
“아, 이 자식 봐라. 네가 벌써 나만큼 하려는 건 양심 없는 거지. 그보다 자 봐봐. 너 여기서 힘 빠졌지? 최근 플롯 만드는 데 시간은 얼마나 들였어? 비축분은 얼마나 남았고? 여유분이 없으니까 시간에 쫓겨서 급급한 거잖냐. 원래 연재는 후반부로 갈수록 힘들어. 초반에 힘 빡 줘서 인기 좋다가 유료화 하고 어그러지는 게 한 두 작품이야? 유료화 이후에는 멘탈을 얼마나 잘 잡고 버티느냐가 관건이란 걸 명심해.”
“예, 형님. 멘탈 잡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루시는 곰 같은 남자를 보고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으음. 제자로서 스승님을 항상 존경하는 태도가 바람직합니다. 힘내십시오, 덕훈.]
그 말을 들은 서주환이 낄낄 웃었다.
“덕훈아, 너한테 힘내라고 한다.”
“예? 누가 말입니까?”
“누구긴, 인마. 네 독자님들이지. 악플 말고 응원 댓글 많이 보고 열심히 써.”
“하하. 예, 알겠습니다, 형님.”
스승은 진심전력으로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는 존경으로 스승의 말을 따른다. 그야말로 바람직한 사제관계가 아니고 무언지.
[흐음. 장덕훈이 여자였으면 좋았을 텐데.]
제 주인이 들었으면 기겁할 만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루시였다.
*
주인님이 최근 굉장히 바쁘다. 특히 요 며칠 사람을 만나는 빈도가 무척 잦아졌다. 만날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몸이 세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루시는 그 사실이 너무나도 좋았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나루도 잘 지냈지? 그런데… 서정호 너는 왜 여기 있어?”
하얗게 센 수염의 인자한 노인과 그 손녀. 그리고 사촌 동생.
“선생님, 저 또 왔습니다. 아, 서윤이요? 그게… 요즘 공모전 때문에 바쁜지 저도 연락이 잘 안 되네요.”
인내와 노력, 세월의 축적을 통해 재능의 한계를 두 단계나 뛰어넘은 문학가.
“요즘은 착하게 잘 사냐? 아, 됐고, 너 그림 실력 많이 늘었던데 우리 회사 들어올래? 노벨다이스라고 하는데 여기서 웹소설 표지랑 일러스트 그리면 돼. 페이는 넉넉히 챙겨줄게.”
재능을 찾은 후 막장 인생을 청산하고 성실히 살고 있는 여자.
“누님, 오랜만이에요. 5월에 성우 공채라고 했죠? 걱정 마세요. 제가 보기엔 누님은 무조건 뽑혀요. 무슨 근거냐고요? 그야 재능이 벌써 B… 가 아니라, 제 감이 원래 좀 잘 맞거든요.”
과거 주인님의 마음에 한 편의 시를 선물해주었던 강사.
“야, 배준호! 어, 별이도 있네? 큭큭, 너희 둘은 나중에 결혼하면 내 덕인 거 알지? 그땐 청첩장 꼭 보내야 한다?”
미래에 영화, 드라마계의 거장과 탑배우로 성장할 남녀.
“정훈이 형, 연락 좀 하고 살아! 형 소식을 맨날 슬기한테 듣는다. 아, 미안할 것까진 없고. 바쁜 거 아는데 그냥 해본 소리야. 그래, 조만간 술 한 잔 해.”
군 시절 맞후임이지만 친형처럼 주인님을 도와주었던 남자.
“오, 이번엔 또 무슨 점을 봐주려고 연락했어? 하하, 농담이야. 말했잖아, 용건 없어도 연락해도 된다고.”
S급 점술 재능을 가진 여자, 가브리엘라.
“강철! 캬, 그래도 어떻게 알고 오늘은 먼저 연락을 했네? 그래서 도대체 휴가는 언제 나올 건데? 응? 누나 휴가 나오면 내가 큰일 난다고? 왜?”
불행했던 회귀 전에도 주인님을 편견 없이 바라봐주었던 여자.
“형수님, 저 배 터져요! 강호 형, 형수님 좀 말려보세요. 임신 중이신데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녜요?”
서주환 덕분에 아이를 잉태한 백강호와 이혜리 부부.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주인님에게 먼저 연락을 해왔다. 하다못해 미용실의 신하늘이나 리본 피트니스의 임수희, 스완의 윤서라, 같은 학과의 정정정 자매들까지.
주인님은 바쁘게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그간 쌓은 인연이 얼마나 많은지 미리 약속을 잡고 며칠에 걸쳐서야 일정을 끝낼 수 있었다.
루시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웃으며 바라봤다.
[제가 잘못 생각했군요. 오지랖이란 게 꼭 시간낭비인 것만은 아니었어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내심 주인님의 행동에 한숨을 내쉬었다. 본인의 능력을 개발할 시간도 부족하면서 잠 잘 시간까지 쪼개가며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게 못마땅했다.
그러나 요 며칠간 루시의 생각은 바뀌었다.
“허허. 주환 군, 생일 축하하네.”
“오빠, 생일 축하해요. 선물로 그림 그려봤어요.”
“형, 생일 축하해. 이거, 엄마랑 아빠가 항상 고맙다고 전해주래.”
“호호. 공모전 출품한 거 잘 봤어요. 어떻게 봤냐고요? 사실 제가 심사위원이거든요. 아, 물론 편애는 없을 거랍니다. 결과는 5월에 발표될 텐데… 생일 선물과 따로 하나 더 준비해야겠군요.”
“무조건 입사할게! 아, 그리고 이건 생일 선물!”
“별이랑 같이 준비했어. 축하해, 주환아.”
“직접 못 보고 전화로 말해서 미안하다. 일 끝내면 내가 꼭 술 한 잔 살게. 축하한다, 주환아.”
“주환, Auguri di compleanno(생일 축하해요).”
“응, 당분간은 훈련이라 또 연락 못할 것 같아. 아, 선물 보내놨어. 아마 당일에 도착할 거야. 생일 축하해.”
“크하하하! 많이 먹어라, 인마! 생일날은 배부르게 먹는 거야!”
많은 사람들이 주인님의 탄생일을 축하해주었다.
어찌 보면 단지 매년 돌아오는 생일일 뿐이었음에도 사람들의 말에는 진심 어린 애정이 담겨있었다.
[축하의 말 한 마디마다 질 높은 욕망 에너지가 깃들어 있습니다. 주인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계시는군요.]
서주환은 씩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 최미화와 도유이에게도 연락을 받은 참이었다. 물론 어머니와 아버지에게도 축하를 들었다.
“사실 생일 같은 건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말이야.”
회귀 전에는 생일이라고 특별히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가족을 제외하면 아무도 그의 생일을 기억해주지 않았으니까.
“이번에는 며칠 전부터 엄청 돌아다녔네.”
생일이 일주일 쯤 남았을 때 까톡 프로필에 일자가 올라갔다. 그리고 그걸 본 많은 사람들에게 연락이 왔다. 리액트 엔터의 배성근처럼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에게서도 말이다.
[작년보다도 훨씬 성대하네요.]
‘그때는 맺은 인연이 많지 않았으니까.’
[지금처럼 인연이 깊지도 않았고 말이죠.]
‘오지랖으로 끈끈해진 인연이야. 그러니까 너무 못마땅해 하지 말라고, 루시.’
[…알고 계셨군요?]
서주환은 낄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루시처럼 생각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유추하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했다.
루시는 그런 서주환을 바라보다가 역시 제 주인님이라며 기쁘게 웃었다.
[오지랖. 어쩌면 그게 주인님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네요. 달리 말하면 언제나 사람에게 진심을 다한다는 뜻이니까요.]
루시는 이제야 서주환을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는 꿈 많은 소년이었으나 불행한 운명 때문에 지치고 상처받았던 영혼이다. 그렇기에 이번 생에서는 매 순간 사람에게 진심을 다 하는 것이었다.
최선이 아닌 진심.
가끔은 차선책도 안 되는 귀찮은 선택지를 고르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것은 도우미인 루시가 보기엔 무척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었으나, 실상 결과를 보면 오히려 그 선택이 옳았던 경우의 수도 많았다.
[제가 빨리 돌아온 것만 해도 그렇지요.]
욕망 에너지란 사람의 감정을 주원료로 하는 것.
그가 사람에게 진심으로 대했기에 진심으로 돌아온 것이다. 쓸 데 없는 오지랖이라고 생각했던 행동이 진심 어린 애정으로 돌아왔다.
“얼마 전 유이이 경우도 마찬가지야.”
[‘각성’ 스킬 말이지요?]
“응. 루시는 말렸지만, 결과적으로 더 큰 보상이 되어 돌아왔잖아?”
루시는 그가 도유이를 위해 ‘각성’을 사용하는 것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굳이 10만 LP를 소모하지 않더라도 ‘욕망 퀘스트’는 충분히 완료할 수 있었기에. 그녀는 앞으로 욕망 포인트(LP)가 더욱 많이 필요해질 것을 알고 있었기에.
하지만 서주환은 기꺼이 10만 LP를 지불하고 스킬을 사용했다. 그로 인해 한 순간 도유이의 재능은 A등급까지 도약했고, 그로써 돌아온 추가 보상은 스킬의 소모비용을 지불하고도 남았다.
[진심은 진심으로.]
욕망 시스템(Lust system)의 관제인격 도우미.
주인님께 받은 이름은 루시(Lusy).
그녀는 오늘도 사람을 배워간다. 주인님의 인연들로부터 전해져오는 따스한 기운에 미소 지었다.
[생각해 보면.]
“응?”
[주인님은 본격적으로 잘생겨지기 전에도 꽤 인기가 많았죠. 한수아는 물론 정소라나 민가희, 최미화, 정하연, 유지경 등. ‘얼굴 개연성’을 사용하기 전에도 주인님을 좋아하는 여자들이 많았어요.]
“나 그때도 나름 잘생긴 얼굴이었…….”
[주인님이 항상 진심이었기에 그랬던 걸지도 모르겠네요. 여자란 생물은 구조적으로 남자보다 감정에 더 민감하니까요.]
“아니, 나 그때도 꽤 괜찮았다니…….”
[역시 얼굴보단 매력이 중요하단 말이 사실인가 봅니다.]
“…네 맘대로 해라.”
서주환은 투덜대며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직 생일날인 오늘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 가장 중요한 친구들과의 모임이 남아있었다.
문고리를 열자 반가운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얌마, 왜 이렇게 늦음! 배고파 뒤지겠다!”
“환이 오빠, 빨리빨리!”
“형님, 여기 앉으시면 됩니다.”
“주환아, 이거 머리에 써.”
“오빠, 울 준비해. 내가 오빠 울리려고 영상 하나 만들었거든?”
“헤헤, 오빠, 안녕하세요. 저도 왔어요. 이거 슬기가 선물 대신 전해달래요. 아, 정훈 오빠도요.”
“난 어제 집에서 줬으니까 안 줘도 되지? 배고프다, 빨리 앉아, 오빠.”
서주환은 방 안을 바라보고 못 말리겠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없는 사이 자취방이 무슨 파티룸 마냥 꾸며져 있었다.
“아오, 이 자식들. 이거 다 누가 치우라고.”
투덜대며 들어간 그는 결국 주인공 자리에 착석했다. 그래, 언제 또 이런 생일파티를 해보겠냐. 이 짓도 한 번 하고 나면 귀찮아서 못할 터였다.
“야, 다들 선물 내놔, 선물!”
*
다음 날 새벽, 하루 늦은 생일선물을 들고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짜잔! 우리가 생일선물이지롱!”
“오늘만 특별 서비스야. 어때, 마음에 들어?”
정정한다.
선물을 들고 찾아온 게 아니라 선물이 되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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