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독자님들 모두 건강하고 즐거운 주말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D
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
도유이의 강습 시간은 오후 3시부터 8시까지다. 그리고 시간별로 초급, 중급, 상급반으로 클래스가 나뉜다. 그 위에 마스터 클래스가 있었지만 해당 클래스는 도유이의 담당이 아니었다.
1일차, 서주환은 초급반으로 들어가서 다른 회원들과 함께 강습을 받았다. 대학 축제와 엠티에서 춤을 춰본 적이 있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는 기본기도 잘 모르는 초보자였다. 단순히 한 가지 곡에 한정된 안무를 익히는 것과 춤을 제대로 배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2일차, 초급반을 졸업했다.
서주환은 모든 기초 동작을 단 한 번만 보고 흉내 냈다. 두 번째 시범을 본 후에는 능숙(能熟)해졌고, 세 번째에는 완숙(完熟)에 이르렀다. 다른 학생들이 어설피 몸을 움직이며 배우는 것에 비해 그는 마치 원래부터 알고 있던 동작들을 되새기기라도 하듯 놀랍도록 빠르게 발전했다. 이미 세계 정상급에 이르는 춤(A+/A+) 재능이 연습 단계를 몇 십 계단이나 뛰어넘어버린 것이다.
3~5일차, 중급반에 들어가 강습을 받았다.
중급반은 앞서 배운 기초 기술을 강화하고 나아가 응용하는 단계였다. 초급에 비해 어렵기는 했으나 ‘헬창의 축복’을 사용하고 ‘모든 운동의 숙련도 200% 상승’ 효과를 받자 3일 만에 졸업할 수 있었다. 새삼 시스템의 사기적인 능력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6~14일차, 상급반에서 본격적으로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일주일이 넘는 시간동안 같은 클래스에 머물렀다. 상급반에서 배우는 것은 초급과 중급반에서 배운 기초, 응용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복잡한 기술이다. 아무리 서주환이라도 일주일 만에 모든 걸 익히기엔 모자란 감이 있었다.
그때부터 서주환은 강습이 끝난 후 도유이에게 개인지도를 받기 시작했다. 덕분에 방송댄스 외에도 비보잉와 락킹 등의 스트릿댄스를 배우며 위튜브 소스를 뽑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서주환이 춤을 배우기 시작한지 2주일이란 시간이 지나 15일 차가 되었다.
*
최근 며칠 전부터 텐밀리언 스튜디오에는 흥미로운 소문 하나가 돌고 있었다.
불세출의 댄스 천재가 나타났다.
얼핏 우습게 들릴 말이었으나 소문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확산되었고, 결국 스튜디오 내 강사들의 관심을 끌기에 이르렀다. 그 중 적극적인 몇몇 강사는 직접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개인 시간까지 내서 도유이가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강의실 앞을 서성거렸다.
한 여성 댄서가 유리문 너머로 비치는 서주환을 보고 감탄했다.
“우와아, 저 분 엄청 잘생겼다.”
그 말에 함께 모인 다른 두 사람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중 한 남성 댄서가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천재라는 게 저 사람인가? 어디 아이돌이 춤 배우러 온 거였어?”
“으음. 요즘 보이그룹 중에 저런 사람이 있었나? 저 비주얼이면 한 번쯤 봤을 법한데.”
“아이돌 덕후인 네가 모르는 거 보면 아직 데뷔 안 한 연습생인 거 아니냐?”
“그런가?”
서주환의 실력을 구경하러 왔던 강사들은 그의 얼굴에 더 집중했다. ‘얼굴 개연성(B+)’을 사용한 서주환의 외모가 어지간한 아이돌에게도 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외모만 봐도 그러한데 183에 이르는 키와 8등신 체형, 운동으로 다져진 몸, 쭉 뻗은 팔 다리의 비율까지 완벽했으니 종합적인 실물은 당장 보이그룹 센터로 데뷔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그때 복도를 지나가던 여자 한 명이 어수선한 강의실 앞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얘, 너희들 뭔데 이렇게 몰려 있어? 회원님들 부담스럽게.”
“히익, 깜짝이야.”
“아, 왕언니.”
다가온 여자의 정체는 스튜디오 대표이자 일명 ‘왕언니’라 불리는 성유라였다.
문 앞에 바짝 붙어서 구경하던 강사들이 어색하게 웃으며 안쪽을 가리켰다.
“언니, 저기 좀 보세요. 저 분이 초급부터 중급반까지 5일 만에 졸업한 천재래요. 궁금해서 구경 왔어요.”
다른 강사가 덧붙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얼굴천재지 뭐예요. 엄청 잘생겼죠? 춤 출 때 살짝 보이는 복근도 쩔어요.”
성유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뭐라는 거니, 회원님한테 실례되게. 요즘은 여자도 잘못하면 신고당해, 이 년들아.”
“아, 아니이. 잘생긴 걸 잘생겼다고 하지 뭐라고 그래요?”
“남자인 제가 봐도 잘생기긴 했어요. 누님 취향이실 것 같은데요? 일단 미소년 스타일은 아님요.”
“흐응. 그래? 그 사람이 누군데?”
“치. 결국 언니도 볼 거면서.”
성유라는 동생들의 투덜거림을 무시하고 문 안쪽을 들여다봤다. 확실히 회원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는 남자가 있었다. 남성 댄서가 말했던 대로 그녀의 취향에도 부합했다.
‘에이, 너무 어리다.’
생김새가 취향이긴 했지만 얼핏 봐도 이십대 중반 정도였다. 많이 쳐줘도 후반? 그녀와는 나이 차이가 꽤 날 것 같았다.
그렇게 잠시 남자를 바라보던 성유라는 어딘가 익숙함을 느끼고 눈을 깜빡였다. 저 회원님을 어디에서 봤더라? 이내 그녀는 손뼉을 짝 하고 부딪쳤다.
“어머, 저 분 주환 씨 아니야?”
“언니가 아는 분이에요? 저 소개 좀!”
성유라는 손을 내저었다.
“나도 한 번 밖에 본 적 없어. 분명 유이 대학 선배라고 들었는데.”
“유이요? 유이, 대학교 안 다니지 않아요?”
“자퇴한 거야. 원래는 과탑이었을 정도로 공부 잘했대.”
“헐, 그런데 왜 자퇴했대요?”
“그건 내가 말하기 좀 그렇지? 아무튼 천재라는 게 주환 씨야?”
“네. 이제 춤 배운지 2주 됐다고 했을 걸요? 초급반부터 올라와서 회원님들 사이에 소문이 자자해요. 오죽하면 저희까지 알게 됐겠어요?”
“흐응.”
성유라는 얼굴 옆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서주환을 관찰했다. 확실히 잘 추긴 한다. 언젠가 축제 영상을 봤을 때도 센스가 있다고 느끼긴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저게 고작 이주 배운 거란 말이지?’
심지어 기초도 없는 백지 상태에서 말이다.
‘유이를 봤을 때도 천재라고 느꼈는데.’
만약 소문이 사실이라면 서주환은 천재 중에서도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음이 분명했다.
성유라는 혀로 입술을 핥았다. 댄서이자 스튜디오 대표로서의 감이 속삭였다. 서주환은 필히 잡아야 할 인재라고.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든 인연이라도 만들어놓아야 한다고.
*
도유이가 짝짝 두 번 박수를 치며 말했다.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서 마칠게요.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업이 끝났다.
서주환은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훔쳤다. 체력은 멀쩡했으나 격렬한 움직임 때문에 몸이 땀으로 푹 젖었다.
그때 눈치를 보던 여자 한 명이 다가와서 수건을 내밀었다.
“이걸로 닦아요.”
“아, 감사합니다.”
스튜디오 내에서 제공하는 수건이었기에 부담 없이 받아들었다. 그가 생긋 웃으며 감사를 표하자 여자가 밝아진 얼굴로 말했다.
“주환 씨, 저 괜찮으면 오늘…….”
“네?”
“아, 아니에요.”
여자는 돌연 흠칫한 기색으로 물러나 무리로 돌아갔다. 뒤에서 기다리던 다른 여자들이 그녀를 보고 물었다.
“어떻게 됐어?”
“약속 잡았어요?”
여자는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말도 못 꺼냈어요…….”
여자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들은 모두 서주환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말을 붙여보려다가 실패한 사람들이었다.
“에휴. 왠지 얘기 꺼내기가 힘들죠.”
“맞아요. 주환 씨는 어딘가 말 붙이기 어려운 데가 있어서.”
“항상 웃는 얼굴이고 친절한데 이상하죠?”
“그러니까요.”
서주환은 분명 친절한 사람이었다. 수업 중에 모르는 부분을 물어보면 자상하게 알려주었고, 말투에도 장난스러운 구석이 있어 대화를 나누면 재밌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따로 약속을 잡으려 마음을 먹으면 말을 꺼내기가 무척 어려웠다. 그래서 일주일 넘게 춤을 같이 배우면서도 회원들과 함께 모이는 저녁 식사자리에 초대하지 못했다.
서주환은 얼핏 들리는 여자들의 대화에 쓴웃음을 지었다.
‘좀 미안하네.’
여자들이 제대로 말도 못하고 물러난 것은 다름 아닌 그가 의도한 것이었다. 일반인, 그 중에서도 폭력에 노출될 확률이 적은 여자들은 ‘살기’를 슬쩍만 흘려줘도 본능적으로 그를 피했다.
[주인님은 나쁜 남자네요.]
루시가 쿡쿡거리며 말했다.
서주환은 하나둘씩 강의실 밖으로 나가는 여자들을 바라보며 작게 입맛을 다셨다. 마음만 먹으면 몇 명 정도는 당장에 일을 치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귀찮은 게 더 크지요? 얻을 것도 없고.]
루시의 말대로였다.
새로운 여성과 관계를 나누는 건 즐거운 일이지만 그보다 후에 감당해야 할 귀찮음이 더 컸다. 탐나는 재능이 보였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깊이 얽히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수업이 끝난 이후에는 도유이와의 1:1 개인레슨이 있었다.
어느덧 텅 빈 강의실 안에서 도유이가 다가와 말했다.
“오빠, 되게 의외다?”
“응? 뭐가?”
“여자 회원님들한테 철벽 치는 거.”
도유이는 정말로 의외라는 듯 팔짱을 끼운 채 그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서주환은 그녀의 머리에 꿀밤을 놨다.
“악! 왜 때려!”
“위아래로 훑어보는 게 건방져서 그런다, 왜. 그리고 넌 날 뭐로 보는 거냐?”
“뭐로 보긴? 희대의 난봉꾼으로 보지.”
“뭠마? 머리에 혹 하나 더 만들어줘?”
다시금 주먹을 쥐어보이자 도유이가 흠칫 물러났다. 이 녀석은 맞을 걸 알면서 왜 툭툭 건드리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아니, 오빠 진짜 양심 있어?”
“내가 뭘?”
“헐. 진짜 기억 안 나나 보네. 오빠, 예전에 홍대에서 나한테 뭐 들켰는지 기억 안 나?”
“홍대?”
“그래! 축제 뒤풀이 때!”
서주환은 눈을 끔뻑거리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축제 뒤풀이라고 한다면 도유이와 관계를 가졌을 때다. 그것 외에 뭐가 더 있었던가?
그가 진정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도유이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소정이! 수정이! 민정이!”
“…아.”
“흥. 이제야 기억났어?”
“하하…….”
서주환은 그제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리고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당시 그는 도유이와 관계를 가지기 전에 정정정 세 자매와 4P를 했었다. 그러다 밖으로 나갔다가 술에 취한 채 남자들에게 붙들려 있는 도유이를 구해줬는데 이후 여차저차하다가 그녀와도 관계를 가졌다.
문제는 그 다음날이었다.
모텔 옆방에 있던 정정이들에게 도유이와 함께 있는 걸 들킨 것이다. 당연히 도유이도 그가 정정이들과 문란하게 놀아났음을 알 수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 도유이는 그에게 난봉꾼이라 부르곤 했다. 한동안 듣지 않았던 호칭이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도유이는 침묵한 서주환을 보고 의기양양해져서는 손가락질까지 하며 외쳤다.
“그런 난봉꾼이 여자 회원님들한테 철벽을 치니까 당연히 의외지! 내가 틀려?”
아니요, 옳습니다. 전적으로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서주환은 시선을 피하며 변명했다.
“나도 인마, 어? 때와 장소는 가려. 친한 동생 직장에서 그럴 수 있겠냐?”
“흐응. 친한 동생?”
건방져진 도유이가 짝다리를 짚으며 되뇌었다. 고개까지 삐딱하게 기울이는 게 친하다면서 그간 연락이 그렇게 뜸했냐고 따지는 듯했다.
서주환은 기분을 맞춰줄까 하다가 이내 씩 입꼬리를 올렸다. 져주는 건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럼. 내 등에다 토해도 봐줄 정도로 아끼는 동생이지.”
“!”
“내가 손수 옷을 벗기고 토사물을 닦아주기도 했지?”
“?!”
“얼마나 친하면 밤새 떡까지… 웁?”
“그, 그마안! 내가 잘못했어!”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도유이가 날 듯이 뛰어와선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서주환은 히죽거리며 혀를 날름댔다. 손바닥에 혀가 닿자 그녀가 힉,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는 거만한 얼굴로 그녀를 보며 픽 웃었다.
“까불지 마라, 술유이.”
“…….”
“대답해야지, 토유이?”
“…씨이.”
“어쭈?”
“아, 알았어! 내가 잘못했어!”
도유이가 무척이나 억울한 얼굴로 빽 소리쳤다.
서주환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훗, 이겼다.’
[주인님은 은근히 유치한 면이 있으십니다.]
‘지느니 그냥 유치한 놈 할래.’
가끔 져주는 대상은 이미 깊은 관계가 된 그의 여자들로 충분했다.
도유이는 피실피실 웃고 있는 그를 보며 이를 바득 갈았다.
“두고 봐. 오늘 수업 엄청 빡세게 할 거야.”
아무리 천재라도 익히기 힘든 고난도 동작으로 괴롭혀주겠어. 그렇게 다짐할 때였다.
끼익, 누군가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주환 씨, 안녕하세요.”
“누구… 어, 대표님?”
“왕언니?”
강의실로 들어온 사람은 바로 텐밀리언 스튜디오의 대표 성유라였다.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대표님이라뇨, 섭섭하게. 우리 그렇게 딱딱한 사이 아니잖아요.”
무척이나 친근한 투로 말하는 성유라.
서주환은 짐짓 기억이 안 난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말했다.
“음… 저희가 무슨 사이였죠? 제 기억엔 분명 한 번 밖에 뵌 적이 없는데.”
“호호. 주환 씨가 유이랑 무슨 사이죠?”
슬쩍 도유이의 어깨를 잡아당기며 묻는 성유라. 분위기에 휘말린 도유이도 은근히 대답이 궁금한 듯 그를 응시했다.
서주환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대학 선후배이자 친한 오빠 동생 사이죠?”
“바로 그거거든!”
성유라가 손가락을 딱 하고 튕기며 말했다.
“우리 유이가 저랑 자매 같은 사이거든요. 그런 유이랑 오빠 동생인 주환 씨는 나랑 무슨 사이다?”
“무슨 사이죠?”
“필히 친해져야 마땅한 누나 동생 사이요!”
뻔뻔하다 싶을 정도로 당당하게 말하는 성유라였다.
서주환은 그 태도가 싫지 않아서 재밌다는 듯 되물었다.
“그런 건가요?”
“그런 거예요. 자, 그런 의미에서 우리 악수해요.”
“푸흐. 그러죠 뭐.”
서주환은 픽 웃음을 흘리며 그녀의 악수를 받았다.
그를 지켜보는 도유이의 얼굴 위로 불만스러운 기색이 스쳐지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