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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엠티
모든 조원의 장기자랑 무대가 끝났다.
1등은 장덕훈, 서주희, 한수아가 속한 3조가 차지했고, 2등은 서주환, 정하연, 이석찬이 속한 5조가 차지했다.
“야, 덕훈아! 맥주랑 소주 잔뜩 가져왔다!”
“빨랑 양주 주셈. 설마 벌써 마신 건 아니지?
서주환과 이석찬이 5조 인원들을 데리고 3조가 있는 방으로 쳐들어갔다. 그들은 원래부터 제 방이라도 되는 양 궁둥이를 바닥에 붙이고 쭈뼛쭈뼛 서있는 1학년들에게 손짓했다.
“뭐 해? 다들 앉아.”
“원래 다 같이 놀아야 재밌는 법임. 덕훈아, 양주 좀 따라줘. 핫세븐도 있지?”
“형님들…….”
뻔뻔한 형들의 모습에 장덕훈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에 옆에 앉은 서주희가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이 망할 오빠들아, 양주는 아직 우리도 안 마셨어!”
“어어? 헤이, 쭈희. 말은 똑바로 하셈. 화석은 쭈환이만 화석임. 아임 16학번. 너희랑 한 학번 차이. 두 유 언더스탠?”
“어쨌든 나이는 동갑이잖아.”
“아닌데? 나 빠른이라 얘네보다 한 살 어림. 응애, 나 아가 찬이! 양주 내놔!”
이석찬이 혀 짧은 소리를 내며 깽판을 놨다.
“얘는 지 편할 때만 어려지네. 아무튼 그만하고 좀 닥쳐봐.”
“억, 억! 야, 팔, 팔! 악!”
정하연이 이석찬을 제압했다.
“애들 놀란 거 안 보여?”
“팔, 팔! 미친년아! 아파! 억!”
이석찬의 팔을 꺾은 정하연은 1학년들을 향해 친절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얘들아, 우리 재밌게 놀자. 혹시 몰라서 하는 말이지만 술 못 마시는 사람들은 억지로 마시지 마. 그리고 만약 얘가 지랄하면 나한테 말해.”
그 모습에 1학년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그녀 딴에는 친절하게 보이려고 지은 미소였지만 건장한 남자 팔을 꺾으며 웃고 있으니 사뭇 위협적으로 보였다.
“네, 네에!”
우렁차게 대답하는 1학년들.
하지만 모두가 겁을 먹은 건 아니었다. 몇몇은 눈을 반짝이며 그녀에게 붙어서 물었다.
“하연 언니 맞죠? 그, 스완 모델 했던.”
“저 언니 보고 옷 샀어요. 같이 사진 찍어도 돼요?”
“어? 으, 응. 그건 괜찮은데… 주, 주환아. 너 늦게 왔으니까 애들한테 소개해야지. 애들 이름도 아직 모르지?”
관심이 부담스러웠던 정하연은 재빨리 헬프를 요청했다. 그에 1학년들의 시선이 서주환에게 집중되었다. 정하연도 나름 유명인사이긴 했지만 오늘 무대를 뒤집어놨던 서주환만은 못했다.
서주환은 집중된 시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내 이름은 서주환. 본업은 웹소설 작가, 그리고 대학생 겸, 스트리머 겸, 피팅모델 겸, 노벨다이스 대표 겸, 예비 위튜버지. 호칭은 선배든 형이든 오빠든 알아서들 불러.”
그는 해괴한 자기소개를 마치고 잔을 들어 올리며 씩 웃었다.
“일단 우리 건배하고 시작할까? 다들 술 따라!”
언제 따른 건지 높이 들어 올린 잔 위로 소맥이 넘칠 듯 찰랑였다. 뒤이어 이석찬이 본인 잔과 옆에 앉은 1학년 여학생에게 술을 따라주며 말을 받았다.
“술 못 마시는 사람은 물이라도 따르셈! 채웠으면 빨랑 잔 들어!”
대학 엠티의 묘미는 여장대회도 장기자랑도 아닌 먹고 마시고 취하는 밤중의 술 파티 아니겠는가.
““짜안!””
드디어 진짜 엠티가 시작됐다.
*
서주환은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니며 분위기를 띄웠다. 유독 소심한 친구들이 모여 조용했던 방도 그가 등장하자 금세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비록 엠티에는 늦게 참여했지만 장기자랑 한 번으로 큰 임팩트를 남긴 그는 1학년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선배였다.
조경준은 그런 서주환을 따라다니며 은근슬쩍 학생회를 홍보했다.
“의미 있고 재밌는 대학생활 보내고 싶으면 학생회에 들어와. 그게 아니더라도 연락하면 내가 술 한 잔 사줄게. 학생회가 또 선후배들끼리 엄청 친하거든.”
그리 말하며 서주환과 어깨동무를 하는 조경준.
방을 나온 서주환은 옆에 선 조경준에게 말했다.
“경준아, 그거 사기 아니냐? 나 학생회 아니잖아.”
“네가 학생회라는 소린 한 마디도 안 했는데? 난 사실만 말했어. 술 사주겠다는 것도, 선후배끼리 친한 것도 틀린 말은 아니잖아.”
무서울 정도로 뻔뻔하게 말에 서주환은 헛웃음을 흘렸다.
“이거 완전 사기꾼이네. 뒷감당은 네가 알아서 해라?”
“걱정 마. 1년만 어물쩍 버티고 4학년 되면 바로 튈 거거든.”
그리 말하곤 다음 홍보를 위해 방을 이동하는 조경준이었다.
서주환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면서도 픽 웃음을 흘렸다. 조경준이란 사람은 매사에 의욕이 없고 귀차니즘에 절여진 인간이지만, 기본적으로 요령이 좋아서 뭐든 능숙하게 해내는 유형이었다. 거기에 이상한 책임감 때문에 일단 맡은 일은 확실하게 해내는 녀석이기도 했다.
‘저 녀석 졸업하면 노벨다이스로 납치해야겠다. 아니, 아예 4학년 실습 때 납치할까?’
마침 보유 재능에 ‘속독’이 있고 원래도 오타쿠 기질이 있는 녀석이니 노벨다이스에 어울리는 맞춤형 인재였다. 돈으로 때리면 금방 레벨업해서 어지간한 경력직 세 사람 몫을 해낼 테지.
서주환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건물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늘따라 피로가 금방 느껴져서 잠시 바람이라도 쐴 생각이었다.
‘아직 피로가 덜 풀렸었나.’
자문에 답한 건 언제나 그렇듯 루시였다.
[그럴 만도 합니다. 무려 24시간 동안 ‘각성’과 ‘집중의 축복’을 사용했으니까요. 아이템을 복용했어도 고작 몇 시간으로 피로를 다 풀기에는 무리가 있지요.]
‘하긴, 거기에 춤춘다고 특수능력 두 개를 동시에 사용했으니.’
특수능력이나 스킬을 사용하면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로가 쌓인다. 그 반동을 감당하고 능력을 자유롭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일반인 이상의 체력이 필요했다. 그가 꾸준히 운동을 계속하는 이유였다.
그렇게 밤바람을 맞으며 걷던 중이었다.
“저, 서주환 선배… 주환 오빠!”
“응?”
뒤를 돌아보자 익숙한 듯 낯선 얼굴이 보였다. 갈색 긴 머리의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 분명 그와 같은 5조의 1학년 여학생들 중 한 명이었다.
여학생은 술에 취한 건지 붉어진 얼굴로 수줍게 물었다.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
그 물음에 서주환은 애매하게 미소 지었다. 저 ‘오빠’라는 단어가 일반적인 오빠의 의미가 아닌 듯해서였다.
하지만 1학년들에게 호칭을 자유롭게 부르라고 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였다. 이제 와서 그냥 선배님이라고 부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 너 편한 대로 불러.”
“아, 네, 오빠!”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여학생.
서주환은 속으로 상태창을 불러냈다. 여학생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백주현>
성별: 여성
나이: 20
키: 164cm
몸무게: 55kg
호감도: B
현재 성욕: B
페티시: -
보유 재능: 손재주(C/A+), 마임(F/A), 충동(C+/A)
다행히 아까 신체접촉이 있었던 모양인지 상태창이 떠올랐다.
“그, 백주현 맞지?”
“네, 맞아요. 이름 기억해주셨네요, 헤헤.”
“그야 같은 조니까 이름 정도는 알고 있지.”
서주환은 적당히 답하며 그녀의 상태창을 살폈다.
페티시는 없고 호감도는 B까지 올라 있다. 현재 성욕도 마찬가지. 화장빨인지는 모르지만 얼굴도 꽤 예쁘장하다.
[꼬실 건가요?]
‘아니.’
서주환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마음만 먹으면 쉽게 꼬실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영 내키지 않았다.
‘엄청 귀찮아질 것 같아.’
딱 보니 애가 순진하게 생긴 게 괜히 잘못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더 이상 같은 학과 내에서 관계가 생기면 곤란했다.
그래, 처음부터 여지를 주지 말자.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주환 오빠, 좋아해요.”
백주현이 고백했다.
“…어?”
서주환은 너무도 뜬금없는 고백에 멍청히 되묻고 말았다.
그가 멍하니 쳐다보는 사이에도 백주현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오빠, 오늘 너무 멋있었어요. 그리고 예전부터 엄청 팬이에요. 오빠가 쓴 책도 다 읽었고… 그, 저, 저랑 사귀어주세요!”
부끄러운 듯 붉어진 귀와 땅에 고정된 시선.
일견 풋풋한 신입생이 귀여워 보일만도 했으나 서주환이 느낀 것은 황당함과 곤란함이었다.
‘내가 뭘 했다고 고백을 해? 이름도 상태창 보고 방금 알았구만.’
아니, 고백에도 기승전결이란 게 있어야 하지 않는가. 둘 사이에 뭐가 있었다고 갑자기 고백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서주환이 할 수 있는 말은 정해져 있었다.
“미안.”
“아…….”
백주현의 입에서 안타까운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내 고개를 든 그녀는 울 듯한 얼굴로 입술을 어물거렸다.
서주환은 마음이 약해졌지만 다시 한 번 단호하게 말했다.
“미안해. 내가 지금 누구랑 사귀고 그럴 생각이 없어.”
“…….”
“추운데 들어가. 나중에 보면 내가 먼저 웃으면서 인사할게.”
“…네.”
백주현은 들릴 듯 말 듯 답하고 뒤돌아서 종종걸음으로 뛰어갔다. 작게 훌쩍거리는 목소리가 멀어져간다.
홀로 남겨진 서주환은 묘한 기분으로 눈꼬리를 긁적였다. 뜬금없다 싶을 정도로 갑작스러운 고백이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너무도 침착한 스스로가 놀라웠기 때문이다.
‘아쉽다거나 별 생각도 안 드네.’
이런 상황이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옛날 같았으면 마음이 있든 없든 성욕이 앞서서 기회라고 생각했을 텐데 말이다.
[익숙해질 만도 하죠. 주인님이 이제 여자가 아쉬운 상황은 아니니까요. 저 아이도 귀엽긴 하지만 주인님의 여자들에 비할 바는 아니죠.]
‘아니, 그쪽이랑 비교하면 좀 미안하지.’
정하연을 비롯한 그의 여자들은 이미 일반인 수준이 아니다. 하나같이 당장 연예계에 데뷔해도 위화감이 없을 여자들과 백주현을 비교하는 건 영 하지 못할 짓이었다.
[하지만 사실이잖아요?]
‘으음.’
서주환은 차마 부정하지 못했다. 실제로도 눈이 너무 높아진 게 사실이었다. 이제 와서 그가 새로운 여자를 꼬시는 경우는 대게 ‘탐나는 재능’을 갖고 있거나 ‘S급 재능 조각’을 얻을 수 있는 경우였다.
[그것도 아니라면 정 트리오 자매처럼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경우도 있죠.]
‘루시, 너는 나를 너무 잘 알아.’
[흐흠. 루시는 주인님의 도우미니까요.]
루시가 뻐기는 투로 말했다.
서주환은 한동안 루시와 대화를 나누며 건물 주변을 돌아다녔다. 혹여 안으로 들어갔다가 백주현을 만나면 어색해할 것 같아서였다.
그러던 중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지경의 목소리군요.]
‘지경이네.’
서주환은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장소는 흡연장.
부스 안에 비타스틱을 피우고 있는 유지경과 쭈뼛거리고 있는 남자가 한 명 보였다. 보아하니 1학년 남학생이었다.
“미안, 난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유지경이 단호하게 말했다.
“…알겠어요. 학교에서 만나면 제가 먼저 인사할게요. 하하. 누나도 먼저 보면 인사해주기에요.”
남자는 거절당했음에도 밝게 웃었다. 하지만 부끄러운 기색을 감추려 억지로 웃는 티가 역력했다.
유지경은 거기에 대고 쐐기를 박았다.
“아니, 미안. 일부러 피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아는 척하지도 않을 거야. 좀 불편할 것 같거든.”
“아…….”
“아, 말이 심했다. 어차피 1, 2학년은 전공이 달라서 자주 만날 일도 없을 거야. 걱정하지 마.”
유지경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무척 덤덤했다. 얼핏 냉담하게까지 느껴져서 한 치도 찌를 틈이 없어 보였다.
“…먼저 가볼게요.”
남자는 뒤돌아 흡연장 밖으로 걸어갔다. 이내 모퉁이를 돈 남자가 전력으로 질주해 멀어졌다.
서주환은 눈꼬리를 긁적이며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슬금슬금 흡연장으로 들어갔다. 유지경이 비타스틱 연기를 한숨처럼 내뿜고 있었다. 인기척을 내자 유지경이 찡그린 얼굴로 그를 돌아봤다.
“…오빠?”
“욥.”
장난스럽게 손을 흔들자 유지경이 놀란 눈을 깜빡거렸다.
서주환은 가까이 다가가 그녀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우리 너구리, 인기 좋더라?”
“어? 봐, 봤어?”
“응. 엄청 단호하던데. 듣는 내가 상처받겠더라.”
서주환이 별 생각 없이 한 말에 유지경은 손까지 내저으며 당황했다.
“그, 그렇게 안 하면 나중에 또 고백한단 말이야. 차라리 처음부터 제대로 거절하는 게 좋아.”
“올. 고백 받은 게 한두 번이 아닌가 본데?”
“엑! 그게 아니라!”
유지경은 왠지 큰 죄라도 지은 양 손짓 발짓을 하며 부정했다. 그러다 이내 빙글거리는 서주환의 표정을 보곤 울컥! 한 얼굴로 허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그래! 나 인기 엄청 많다! 그러니까 나한테 잘 좀 해!”
“나야 우리 너구리한테 항상 잘하지.”
“뭐래, 바람둥이 집사 새끼가. 오빠는 진짜 고마운 줄 알아야 돼.”
유지경이 인상을 썼다.
“나만 그런 줄 알아? 하연 언니는 작년에 더했어. 우리 과 동기는 물론 선배들도 다 까였어. 거기에 다른 과 남자들도 엄청 까인 거 모르지?”
“그, 그래?”
“나도 마찬가지야. 이제 수아도 마찬가지일 거고. 그러니까 좀 잘 해. 맨날 바람만 피우지 말고 좀 아껴주란 말이야. 흥.”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낸 유지경이 신경질적으로 비타스틱을 빨았다. 이내 그녀는 푸후! 하고 연기를 내뿜으며 서주환을 노려봤다.
서주환은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괜히 놀리려다가 혼이 나고 말았다. 그는 잠시 주변을 둘러본 후 팔을 벌리며 말했다.
“너구리, 일로 와.”
“…흥.”
“빨리.”
“…….”
너구리가 품에 안겼다.
서주환은 고개를 숙여 입을 맞췄다.
그때 루시가 말했다.
[주인님, 뒤쪽에 누가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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