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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엠티
사회자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강당 안으로 퍼져나갔다.
“지금부터 출판콘텐츠학과 레크리에이션을 시작하겠습니다! 1등 팀한테는 양주! 2등과 3등 팀한테는 소주와 맥주를 더 지급하겠습니다! 점수는 저녁에 있을 장기자랑까지 합산합니다!”
“와아아아아!”
“양주는 우리 거다!”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2학년이었다. 1학년 대다수는 아직 어색함이 남은 듯 눈치를 보며 분위기에 적응하고 있었다. 2학년들이 저마다 1학년 사이에 섞여서 분위기를 주도했다.
장덕훈과 같은 조가 된 유지경이 물었다.
“덕훈아, 혹시 오빠한테 연락받은 거 없어?”
“형님한테?”
“응. 어제부터 계속 연락이 없네.”
“으음. 아직 글 쓰고 계시는 걸지도. 원래 집필 할 때는 연락 잘 안 받으시잖아.”
“에휴. 그럼 오늘 엠티는 못 오는 건가.”
유지경은 아쉬운 마음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기껏 엠티에 왔는데 서주환이 없으니 영 재미가 없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1학년들도 아쉬운 목소리를 냈다.
“오늘 서주환 선배님 안 오는 거예요?”
“쩝. 그 형 엄청 재미있다던데. 주희야, 주환 형한테 연락해보면 안 돼?”
“우리 오빠 내 연락 잘 안 받아. 그리고 안 오면 뭐 어때? 어차피 우리랑 같은 조도 아니잖아.”
“대신 우린 귀여운 수아가 같은 조니까!”
여학생 한 명이 한수아를 와락 끌어안았다. 또 다른 여학생은 한수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품에 끌어안긴 한수아가 버둥거리며 말했다.
“너희 언니한테! 지경아, 얘네 혼내줘!”
유지경은 그녀를 도와주는 대신 같이 장난을 쳤다.
“어머, 1학년이 건방지게 선배 이름을 막 부르네?”
“지경이 너어!?”
“킥킥. 알았어. 얘들아, 수아가 이래 보여도 너희보다 한 살 많아요. 언니 취급은 해주자.”
“네에~.”
“씨잉. 내가 언닌데. 주희 때문에 족보 꼬였어!”
“아하하. 그렇다고 내가 이제 와서 수아 너한테 언니라고 하는 것도 이상하잖아.”
“그건 나도 싫지만… 아무튼!”
한수아는 눈가를 찡그리고 분노를 담아 동기들을 노려봤다. 하지만 타고나길 선하고 순하게 생긴 얼굴은 아무리 인상을 써도 위협이 될 수 없었다.
서주희는 깔깔거리며 카메라로 한수아를 촬영했다. 나중에 ‘언니 취급 못 받아서 화난 뱁새’라는 제목으로 위튜브에 올릴 셈이었다.
그렇게 방금 찍은 영상과 지금까지 찍은 사진들을 확인하고 있을 때였다. 게임 때문에 무대 위로 나갔던 예쁘장한 여학생이 다가오더니 장덕훈에게 말했다.
“저기, 저랑 같이 나가주세요.”
“응? 나?”
장덕훈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 여학생은 약간 붉어진 얼굴로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덕훈 오빠요.”
“어…….”
장덕훈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쩐지 서주희의 눈치가 보였다.
서주희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해? 빨리 다녀와, 오빠.”
“그, 그래. 알았어.”
장덕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여학생과 함께 무대 위로 나갔다. 1학년이 게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거절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잠시 후, 사회자의 멘트가 들렸다.
- 자, 끝에서부터 한 명씩 쪽지 공개해주세요!
엠티의 단골 게임인 사랑의 쪽지.
쪽지에는 남녀를 이어줄만한 은근한 멘트 또는 ‘싸우면 내가 질 것 같은’처럼 엽기성 멘트가 기재되어 있었다.
이윽고 장덕훈을 데리고 나온 여학생이 쪽지 내용을 오픈했다. 사회자가 쪽지를 읽었다.
- 같이 학식 먹고 싶은?
““오오오오오!””
- 어떻게? 남자 분, 후배님과 학식 드실 생각 있나요?
사회자의 말에 장덕훈은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학생들의 환호가 터졌음은 물론이었다.
““사겨라! 사겨라!””
지켜보던 이석찬과 정하연이 혀를 찼고, 한수아와 유지경은 힉, 소리를 내며 옆에 앉은 서주희의 표정을 살폈다.
서주희는 생글생글 웃는 표정 그대로 굳어 있었다.
*
오후가 되어서야 일어난 서주환은 급하게 운전대를 잡고 차를 몰았다. 도착하면 8시가 다 될 것 같았다.
“어우, 하루를 다 날릴 뻔했네.”
기절하기 직전에 아이템을 복용하지 않았으면 정말로 내일까지 잤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피로감이 극심했다.
엠티 장소에 도착한 그는 곧장 출판콘텐츠학과가 있는 강당을 찾아 움직였다. 다른 학과에서도 같은 날 엠티를 와서 학과를 찾는 데 좀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복도를 걷는 중이었다.
“…너희 뭐하냐?”
서주희와 장덕훈을 마주쳤다. 한데 두 사람이 다정하게 손을 잡고 있었다.
서주환을 본 장덕훈이 크게 당황한 얼굴로 주춤했다.
“혀, 형님? 언제 오셨…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자기야, 비켜봐.”
“뭐? 자기?”
그가 황당하다는 듯 되물으니 서주희가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당당한 표정으로 장덕훈의 손에 깍지를 끼우며 말했다.
“우리 사귀기로 했어.”
“…언제부터?”
“지금부터.”
서주환은 힐끔 장덕훈을 쳐다봤다. 장덕훈은 어벙한 표정으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덕훈이가 고백했냐?”
서주희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했어.”
“천천히 기다릴 거라더니?”
그 질문에 서주희가 불만스레 장덕훈을 노려보더니 말했다.
“그러려고 했는데, 마냥 기다리다간 내 속이 터지겠더라고. 그리고 막 다른 1학년 여자애랑 밥 먹자고 약속 잡는 거 있지?”
“뭐? 덕훈이가?”
무척 의외라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장덕훈이 기겁해서 손을 내저었다.
“아니, 형님 그건 오해입니다. 거절하기가 애매한 상황이라 나중에 따로 말하려고 그런…”
“자기야, 닥… 조용히 해봐.”
“응…….”
서주환은 대충 알만하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지금까진 경쟁상대가 없어 여유롭게 있었지만, 방해꾼이 들어올 기미가 보이자 잽싸게 고백을 한 것이리라. 순둥순둥한 한수아와 달리 서주희는 쌈닭기질이 있어서 절대로 자기 걸 빼앗기고는 못 사는 성격이었다.
장덕훈을 침묵시킨 서주희가 싱긋 웃으며 서주환을 바라봤다.
“축하해줄 거지? 우리 오빠한테 뭐라고 하지 마.”
서주환은 헛웃음을 쳤다.
“네 오빠는 나고, 이 년아.”
“그럼 우리 자기한테?”
“허이구, 지랄 났다.”
이 년 보게. 사귀자마자 남자친구 괴롭히지 말라고 챙기려 든다.
“야, 장덕훈.”
서주환은 정색한 얼굴로 장덕훈을 불렀다. 그에 굳어 있던 장덕훈이 화들짝 놀라서 대답했다.
“아, 네, 형님!”
“힘내라. 예쁘게 사귀고.”
“예? 어, 예. 고맙습니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답하는 장덕훈.
서주환은 측은한 표정으로 아끼는 동생의 어깨를 두드렸다.
“얘가 지랄해서 못 살게 굴면 나한테 말하지 말고 혼자 견뎌라.”
“…예?”
“알간?”
“아, 네. 알겠습니다…?”
서주희가 빽 소리쳤다.
“야 이씨, 뭐라는 거야! 내가 우리 자기를 왜 못 살게 해!”
“아오, 자기는 무슨. 입을 확 꼬매벌라. 호칭 똑바로 안 해?”
“그, 형님, 꼬매는 건… 너무 말이 심한 것 같습니다.”
“…뭐 인마?”
서주환은 황당한 기분으로 장덕훈을 돌아봤다. 장덕훈은 어색하게 웃으면서도 서주희의 손을 꼭 붙들고 있었다.
“우리 자기 최고.”
서주희가 히죽히죽 웃으면서 장덕훈의 팔짱을 꼈다.
“염병.”
서주환은 토할 것 같은 표정으로 욕설을 내뱉고 얼른 걸음을 옮겼다. 강당 안에 있을 정하연과 유지경, 한수아가 굉장히 보고 싶어졌다.
*
서주환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장기자랑을 시작하고 있는 중이었다. 같은 조인 이석찬과 정하연이 어서 오라며 손을 들어 올렸다.
“왜 이렇게 늦었음?”
“글은 다 썼어? 너 늦게까지 연락 안 받길래 못 오는 줄 알았는데.”
“사실 다 쓴 건 아침인데 피곤해서 그대로 기절했었어.”
“괜찮은 거야?”
정하연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서주환은 픽 웃으며 그녀의 손을 슬며시 잡아주었다. 무대를 제외한 주변이 어두워서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었다.
“괜찮으니까 왔지. 그보다 지금 분위기 왜 이래? 좀 이상하다?”
서주환은 의아함을 담아 주변을 둘러봤다. 어째 분위기가 어수선해 보였다.
정하연이 어색한 얼굴로 설명했다.
“좀 전에 사고가 있었거든. 누가 무대 위에서 다쳤어.”
“뭐? 진짜?”
이야기를 듣자하니 2, 3학년 학생회 인원들이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장기자랑을 먼저 선보였는데 그 과정에서 누가 춤을 추다가 크게 미끄러졌다고 한다.
“저기 보이지? 피가 좀 많이 났거든.”
학생회 집행부 일원 중 한 명이 급하게 걸레질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정하연이 말한 피를 닦아내는 듯했다.
“크게 다쳤나 보네?”
“그렇긴 한데, 다친 거에 비해 피가 좀 많이 나왔어.”
“아아.”
분위기가 어수선할 만했다. 다친 것도 다친 거지만 분위기를 띄우겠다고 나선 선배들 입장에서는 적잖게 쪽팔렸을 것이고, 갑자기 피가 튀었으니 후배들 입장에서도 무척 당황스러웠으리라.
그때 MC가 멘트를 쳤다.
- 아이고, 작은 사고가 있었네요. 우리 후배님들을 위한 학생회의 열정이 너무 뜨거웠던 모양입니다.
서주환은 익숙한 목소리에 MC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번 MT에서 학생회 지원군으로 부른 도유이였다.
‘쟤는 자퇴하고도 MC를 보고 있네.’
지원을 요청한 당사자인 그가 할 말은 아니지만 참 해괴한 장면이었다. 작년에 자퇴한 그녀가 지원군으로 와서 MC를 뛰고 있다니. 하지만 분위기를 살리려는 멘트를 듣고 있자니 그녀를 부른 게 매우 적절한 선택이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 하지만 여기서 MT의 꽃인 장기자랑을 끝낼 수는 없겠죠? 우리 신입생들 투입 전에 제가 한 번 분위기를 살려보겠습니다! 15학번 자ㅌㅚ… 도유이! 춤추겠습니다!
서주환은 끅끅거리며 웃었다.
“쟤 저거 자퇴생이라고 말하려고 한 거다.”
“아하하. 유이 큰일 날 뻔했네. 교수님들 다 계시는데.”
“사실 교수님들도 별로 신경 안 쓸 것 같긴 해. 다들 유이 좋아하시잖아.”
도유이란 사람이 워낙 싹싹하고 넉살이 좋아서 누구나 호감을 느낄 스타일이다. 그러니까 자퇴생이 엠티에 왔음에도 위화감 하나 없이 잘 섞여있는 것이고.
- 그런데 혼자서 하려니까 아무리 저라도 조금 창피하네요. 누군가 한 명만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혹시 저를 도와주실 분 없을까요?
다만 한 가지 단점이 있었는데, 워낙 기분파라서 가끔 돌발행동을 할 때가 있다는 것이었다.
- 거기, 남학생 분이 도와주시죠!
“……?”
- 당신이요, 당신! 나한테 도와달라면서 불러놓고 본인은 지각한 당신! 우리 출판콘텐츠학과 인기스타! 13학번 선배님! 스완 패션모델! 크위치 스트리머! 인기 웹소설 작가 서환 님! 서주환 씨, 바로 당신이요!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미친, 저 녀석이 뭐라는 거야. 나 구경만 할 거야!”
서주환은 질색하며 도리질을 쳤다. 뭐 준비한 것도 없는데 올라가서 어쩌라고! 이번 엠티는 아무것도 안 하고 구경만 하려고 했단 말이다.
하지만 마이크를 든 사람은 도유이였고, 그녀는 상대가 빼도박도 못하게 분위기를 주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 자, 우리 모두 서주환 선배님에게 박수와 환호성 발사!
““우와아아아아!””
1학년은 물론 2학년과 3학년까지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러댔다.
서주환은 간절한 눈으로 정하연을 돌아봤다.
“하연아, 살려줘.”
“…누구세요?”
정하연은 슬며시 시선을 피했다. 오히려 눈에 띄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푹 수그리기까지 했다.
“하연아, 내가 다른 여자랑 춤춰도 괜찮아?”
“…이럴 때만 일편단심인척 하는 건 좀 비겁하지 않을까? 더 아는 척하지 말고 빨리 가버려. 난 올라가기 싫어.”
“이 매정한 년…….”
서주환은 학생들의 환호성 속에서 무대 위로 끌려가듯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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