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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이 누나들이 별로라고?
서주환은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새로 얻은 ‘상상’ 재능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컴퓨터를 켰다.
“루시, ‘집중의 축복’ 삼십 분만 적용해 줘.”
[알겠습니다.]
축복을 사용하는 순간 집중력과 사고력이 상승했다. 실험을 위해 쓸 글은 현재 노벨다이스에서 독점으로 연재 중인 ‘은퇴 아이돌의 힐링방송’이다. 요즘 글이 통 써지지 않아 고민이었는데 ‘상상’ 재능을 실험하기에 제격이었다.
서주환은 설레는 마음으로 타자를 두드렸다.
그러기를 삼십 분.
축복의 효과가 끝났다.
“으음.”
그는 미간을 모으고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의외로 극적인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토록 고대하던 재능이건만 뭐가 달라진 건지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평소보다 잘 써지는 것 같긴 한데. 하지만 이번 편은 애초에 플롯을 짜놨던 거고.”
솔직히 이게 끝이라면 기대 이하다.
그 평가를 정정하게 된 것은 두 시간이 더 지난 뒤였다.
“미친. 얼마나 쓴 거야?”
축복이 끝나고 정신을 차린 서주환은 놀란 눈을 끔뻑였다. 한글 파일의 페이지가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글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면 평소의 두 배 이상 되는 분량이었다.
‘쓰는 내내 전개가 거의 안 막혔어.’
작가가 한 편 분량을 빠르게 완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키보드를 두드리는 타속이 아니라 다음 전개를 떠올리는 시간이다. 구간과 구간을 이어주는 문장과 전개가 막히면 다음 스토리와 대략적인 플롯이 정해져 있어도 시간을 낭비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한데 이번에 글을 쓰는 동안에는 문장이 막히지 않았다. 잠시 막히더라도 금세 떠올려서 이어갈 수 있었다. 안 그래도 빨랐던 집필 속도가 더욱 빨라진 이유였다.
‘심지어 원래 생각했던 전개랑 좀 달라졌네.’
달라진 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 오히려 예정에 없던 전개인데 이게 더 나은 것 같았다. 개연성이 충분함은 물론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떡밥이 곳곳에 뿌려져 있었다.
‘확실히 생각하는 게 쉬워졌어.’
본래 가지고 있던 ‘글쓰기’ 재능과 새로 얻은 ‘상상’ 재능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 걸까. 이 정도면 장기적인 글쓰기에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첫 번째 실험을 마친 서주환은 다음 스텝을 밟았다. 바로 ‘상상’ 재능의 특수능력 구매였다.
[10,000LP를 소모하여 ‘상상’ 재능의 특수능력을 구매합니다.]
[특수능력, ‘망상유희’를 습득하셨습니다.]
“망상유희?”
설명을 보니 일정 시간 동안 상상력을 상승시켜 망상모드에 돌입하는 능력이었다. 서주환은 바로 실험에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꽝이네.”
실험을 마친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상상력이 극대화된 건 좋은데 망상이라는 이름처럼 이치에 맞지 않는 잡생각이 너무 많이 떠올랐다. 한 가지에 집중되지 않고 이리저리 튀는 생각에서 쓸모 있는 걸 골라내기란 사막에서 바늘 찾기와 같았다.
루시가 조언했다.
[‘특수능력 변환’을 사용하는 건 어떤가요?]
“포인트가 아깝긴 한데… 이걸로 만족하기엔 좀 그렇지?”
그게 가챠의 시작이었고 인생은 운빨이라는 걸 실감하게 된 계기였다. ‘상상’ 재능의 특수능력은 하나 같이 하자가 있거나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 나왔다. 무슨 종류가 이렇게 많은지 다양한 쓰레기가 총집합했다.
그래도 15만LP 정도를 꼬라박으니 기어코 만족스러운 능력을 뽑을 수 있었다.
【영감의 시간】
▶ 효과1: 감성(感性) 능력이 증가합니다.
▶ 효과2: 오성(悟性) 능력이 증가합니다.
▶ 효과3: 심상(心象) 능력이 증가합니다.
※ 이 능력은 하루에 한 시간만 사용 가능하며, 초 단위로 나눠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 감성, 오성, 심상 능력의 증가폭은 사용자의 경험과 지식수준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건 대박이다.”
능력을 사용해보고 확신했다. 당장 ‘상상’ 재능만 해도 지금껏 떠올리지 못했던 아이디어와 전개를 쓸 수 있도록 해주었는데, 특수능력으로 나온 ‘영감의 시간’은 숫제 날개를 달아줬다.
‘멍하니 상상하는 게 이렇게 재밌다니.’
특수능력, ‘영감의 시간’을 활성화하는 순간 소재 하나를 두고 온갖 방식의 전개와 아이디어가 넘쳐났다. 각각의 전개가 머릿속에서 영화로 상영되는 느낌이랄까. 도대체 이 중에서 어떤 전개를 선택해야 되는지 그것이 고민일 정도다. 그저 멍하니 의자에 앉아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게 더 없이 황홀하게 느껴졌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띠링!
[오늘은 더 이상 ‘영감의 시간’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아, 안 돼!”
서주환은 허망한 표정으로 비명을 질렀다.
영감이란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것이라 했던가. 머릿속에 넘쳐났던 온갖 아이디어가 허깨비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급히 타자를 두드려 보아도 그 많던 아이디어 중 고작 한두 개를 건졌을 뿐이었다.
‘지속 시간 동안 메모해야 돼. 한 번에 다 쓰지 말고 적절히 분배해서 끊어 쓰자. 힘을 줘야할 구간에서 사용한다면 중요한 장면의 퀄리티를 확 높일 수 있을 거야.’
그날부터 서주환은 꾸준히 이어가던 방송시간마저 줄여버리고 집필활동에 몰두했다. 그나마 시청자들의 아우성에 방송을 켤 때도 말없이 글을 쓰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덕분에 한창 연재 중이던 ‘은아힐링’의 연재속도가 무시무시할 정도로 빨라졌다.
당연히 댓글창에는 독자들의 환호성이 물결쳤다.
- 하루에 다섯 편이라니 존나 행복해.
- 그런데 다섯 편이 다 고퀄이야. 쥰내 재밌어.
- 요즘 방송 켜놓고 소통도 없이 글만 쓰는데 진짜 글 쓰는 속도 미쳤더라. 저게 사람인가 싶음ㄹㅇ
└ 그거 때문에 시청자 다 떨어져 나감. 방송 제대로 안 하는 거 ㅈㄴ꼴받음.
└ 서환 작가는 시청자 수 신경도 안 쓸 듯? 하루에 다섯 편 써서 버는 돈이 얼만데.
└ 그래도 방송 켰으면 소통을 해야지. 글만 쓸 거면 뭐 하러 방송 켬? 하는 일에 충실해야지 ㅅㅂ
└ 시청자들이 켜달라고 해서 켠 건데 뭔ㅋㅋㅋ 애초에 방송 일정이 비정기라고 했음. 그리고 본업이 작가인데 일 ㅈㄴ충실하게 하고 있는 거지 개소리 ㄴ
└ 당분간 글 쓰느라 바쁘다고 후원도 막았던데 억까 그만.
└ 하루 다섯 편 행복하긴 한데 방송도 좀 해줬으면 싶긴 함. 겜방송도 재밌던데. 리그 오브 챔피언 개 잘함. 각 잡고 달리면 금방 챌린저 찍을 듯.
- 은아힐링 전개가 좀 느린데 몇 화까지 쓸 예정인지 궁금하네. 한 1천화까지 써줬으면 좋겠다.
서주환은 마지막 댓글을 보고 진지하게 생각했다.
“진짜 1천화까지 써버릴까?”
어느덧 ‘은아힐링’은 100화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첫 화를 업로드한 지 고작 한 달도 안 됐는데 말이다.
‘쓰고 싶은 장면이 너무 많아.’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완결을 지으려면 3백이나 4백화 정도로는 부족할 것 같았다. ‘은아힐링’의 장르가 방송, 음악, 일상인 점도 끝없는 이야기를 만드는 데 한 몫 단단히 했다.
‘그럼 이야기가 너무 루즈해지진 않을까? 적당히 끝내는 것도 중요한데.’
최미화에게 상담했다. 서주환의 고민을 들은 그녀는 ‘재밌으면 장땡’이라는 한 마디로 일축했다.
- 너 쓰고 싶은 만큼 써. 오히려 길어지면 다들 좋아할 걸?
“너도?”
- 당연하지. 전개가 좀 느린 건 문제가 안 돼. 매 편 이야기는 다 담겨 있으니까. 뭣보다 재밌잖아. 하루에 다섯 편 이상 올리는데 솔직히 지금보다 더 느려도 챙겨볼 걸?
이석찬이 말했다.
“다음 편 내놔. 이상한 고민하지 말고 글이나 써라, 글 싸개. 1천화? 하루 다섯 편이니까 6개월이면 완결 치겠네. 솔직히 플랫폼 입장에선 인기작 계속 쓰는 거 환영임.”
“4개월 내로 완결 칠 건데?”
“엉? 천화까지 쓸 거라매?”
“연재 속도 더 높이지 뭐.”
“…네가 사람 새끼임?”
그를 글 싸개라 부르며 항상 재촉하는 이석찬마저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나 시스템의 공능을 받는 서주환의 입장에선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이미 능력이 사람의 범주를 벗어난 지 오래다. 축복을 비롯해 온갖 재능과 특수능력 빨을 받고 있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 다른 작가의 노력과 비슷할 거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다만.
“아, 그래도 당분간은 무리지. 따로 준비하고 있는 게 있거든.”
서주환은 ‘은아힐링’을 쓰는 동시에 4월에 있을 문학 공모전을 함께 준비 중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공모전 준비를 위해 사촌 동생인 서정호를 만나는 날이었다.
*
안양역에 도착한 서정호는 서주환을 발견하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주환이 형! 나, 여기!”
“얌마, 소리 안 질러도 보여.”
서주환은 이전과 전혀 달라진 동생의 모습에 헛웃음을 흘렸다. 지난 추석만 해도 반항기 넘쳤던 서정호는 이제 그를 보면 주인을 만난 개처럼 꼬리를 흔들었다.
“하람이는 잘 지내냐?”
“당연하지! 하람이 이제 집으로 들어왔어. 형도 한 번 놀러와. 우리 막둥이 얼마나 귀여운데. 한 번 보면 돌아가기 싫어질 걸?”
서하람은 얼마 전에 태어난 서정호의 여동생이다. 무려 18살 차이가 나는 늦둥이. 덕분에 서정호는 저가 아빠라도 된 듯 주책을 부렸다.
“크면 연예인 시켜야 될까봐. 사진 찍은 거 보여줄까? 내가 요즘 하람이 보는 맛에 산다니까.”
“나중에. 일단 밥부터 먹고 집으로 가자.”
서정호에게 맛있는 점심을 대접한 후 집으로 데리고 갔다. 집에 온 서정호가 놀란 눈으로 방을 둘러봤다.
“와, 여기가 형 작업실이야? 딱 작가의 공간이라는 느낌이네.”
“그 느낌 내고 싶어서 구색 좀 갖춰봤다. 여기 앉아. 인터뷰 끝나면 용돈 줄게.”
“형, 저번에 준 거 아직도 남아있어. 학원비 등록하고도 남더라.”
서정호는 최근 미술학원에 다니는 중이었다. 아예 알바까지 그만 둔 그는 하루 시간 중 대부분을 그림 실력을 늘리는 데 매진했다.
“줄 때 받아. 가서 작은 어머니랑 아버지랑 맛있는 거 먹고.”
“우리 부모님이 형한테 너무 미안해하는데.”
“그러니까 너한테 주잖냐. 그리고 그냥 주는 거 아니야. 다 투자하는 거다.”
“투자?”
“나루랑은 계속 연락하고 있다고 했지?”
“어어. 걔가 좀 답답하긴 한데 그림은 진짜 잘 그리더라.”
“만화는 어떻든?”
“…솔직히 겁나 재미없어.”
서정호가 애매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그런 그림 실력으로 그 따위로 재미없는 만화가 나오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서주환은 솔직한 사촌동생의 말에 낄낄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나루도 비슷하게 말하더라. 그림인지 낙서인지 모르겠는데 재미는 있어서 황당하다고.”
“아놔. 그 계집애가 그렇게 말해?”
“꼬우면 잘 그려야지. 너도 비슷하게 말해놓고 왜 성질이야?”
“쳇.”
“아무튼 둘이 잘 협력해봐. 그러면 나중에 내 소설 웹툰화 맡길 테니까. 그걸 위한 투자야.”
“뭐? 진짜?”
서정호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는 형으로서도 서주환을 좋아했지만 작가 서환의 열렬한 팬이기도 했다. 한데 그 서환의 소설을 자신이 웹툰화 시킨다니?
“진짜 나한테 맡길 거야?”
“정확히는 너랑 나루가 협력 잘 하게 되면. 두 사람 개인한테는 절대 안 맡기지. 망가질 게 뻔한데. 원작 독자들한테 욕 엄청 먹을 걸?”
원작이 유명한 2차 창작물은 어설피 만들었다간 가루가 되도록 까이기 마련이다. 강나루 혼자 담당한다면 작화만 좋고 절망적인 만화적 스킬로 까일 것이고, 서정호가 담당한다면 낙서처럼 보이는 작화로 까일 것이다.
하지만 서로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두 사람이 협력한다면?
어쩌면 원작을 초월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훗날의 일일 테지만 말이다.
“좋아. 나루 고거랑 제대로 협력한다. 만화계의 명품 듀오가 되겠어.”
서주환은 열의에 불타고 있는 서정호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아무튼 이제 인터뷰 시작하자.”
“어어. 우리 가족 이야기를 소설로 쓸 거라고 했었지?”
“그래. 소설적인 과장이 좀 들어가겠지만 얼개는 비슷할 거야.”
서정호의 가족은 작은 아버지의 병환을 시작으로 한 번 무너지기 전까지 갔었다. 지금은 막둥이 ‘서하람’으로 인해 다시 이어졌다지만 그 당시의 절망은 많은 것을 시사할 수 있을 터다.
메인 주제는 가족 간 소통의 부재. 그리고 소통의 매개가 되는 ‘행복이’의 존재. 조각난 가정이 다시 이어지는 과정이다.
‘조만간 작은 아버지랑 작은 어머니한테도 인터뷰를 따야겠어.’
당시 느낀 감정과 생각이 저마다 다를 테지. 세 사람의 시점으로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그 또한 회귀 전에는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서 주변과 소통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몸으로 실감하고 있었다.
*
장장 다섯 시간에 걸친 인터뷰가 끝났다.
서주환은 인터뷰 내용을 잔뜩 입력한 메모장을 보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냥 쓰는 것보다 훨씬 나아.’
아예 인터뷰를 모두 딴 후에 시작하는 게 좋을 듯했다. 그 전에 써둔 도입부는 폐기를 하거나 필요한 부분만 남기고 뜯어 고쳐야겠다.
“오늘은 자고 가. 내일은 나루 만나러 가자.”
“나루? 그럼 강필춘 선생님 댁에 가는 거야?”
서정호가 눈을 반짝였다. 그는 강나루보다 강필춘을 만난다는 것에 더 흥분하고 있었다.
서주환은 픽 웃으며 서정호의 머리를 헤집었다.
“그래. 선배님이 네 만화 좀 봐주기로 하셨어.”
“진짜? 정말이지? 아싸!”
“인마, 나루랑 친해지는 거 잊지 말고.”
“그건 걱정 마. 내가 나루 걔 꼬셔서라도 친해질 테니까.”
“얼씨구. 무슨 자신감이야?”
“흐흐. 이래봬도 내가 꽤 여자들한테 먹히는 얼굴이거든. 학교애도 나 좋아하는 애들 많아.”
서정호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형, 지금 여자친구 없다고 했지? 내가 여자애들 좀 소개시켜 줄까?”
서주환은 헛웃음을 흘렸다.
“이게 뭔 헛소리야?”
“내가 아무나 소개시켜 줄까봐 그래? 걱정 마, 형. 나만 믿어.”
“쯧. 됐다, 인마. 누가 고딩을…….”
“아, 형. 내가 은혜 좀 갚겠다니까? 말만 해. 고딩 말고 아는 누나들도 꽤 있어. 다들 예뻐.”
“그래?”
“그렇다니까!”
서주환이 관심을 보이자 서정호는 희희낙락해서 폰을 내밀었다. 그리고 자칭 ‘예쁜 누나’들의 사진을 보여줬다.
그러나 사진을 본 서주환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소개는 없던 걸로 하자.”
“어? 왜?”
“내 눈이 좀 높아서. 사실 여자친구 만들 생각도 없고.”
“…이 누나들이 별로라고?”
그 날 저녁 시간.
서정호는 잔뜩 붉어진 얼굴로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주환이 사촌이라고? 반가워.”
“앗, 정호 맞지? 옛날에 한 번 본 적 있는데. 나 수아 누나야!”
“누나? 풉. 수아 네가 동생 같은데?”
“우쒸! 지경이 너도 작은 건 마찬가지거든?”
“백 오십도 안 되는 꼬맹이가 하는 말이라 안 들리는데?”
“나 백 오십이야!”
“수아야, 백 사십구랑 백 오십은 하늘과 땅 차이야.”
“지경이 너어!”
서정호는 서주환의 집에 놀러온 여자들을 보고 서주환이 했던 말을 납득했다.
정하연과 유지경, 한수아.
그녀들을 본 순간 웬 연예인이 온 줄 알았다. 그간 꾸준히 ‘성스러운 씨주머니’의 매력 상승효과를 본 세 여자는 일반인 수준을 벗어난 지 오래였다.
‘역시 우리 형.’
왜 저 얼굴을 가지고 여자친구를 안 만드나 했더니 이유가 있었다. 주변에 있는 여자가 이러니 어지간한 여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게 당연했다.
서주환이 한 층 더 존경스러워지는 서정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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