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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약속 드렸던 두 편입니다!
나도 깔끔한 거 좋아하거든?
방 두 개와 부엌이 딸린 거실.
대학생 혼자 살기엔 꽤 호화스러운 집이었다.
‘하긴, 얘도 올해로 9년 차 작가니까.’
중학생 때부터 글을 썼던 우서윤이다. 상당히 잘 팔리기까지 했으니 모아놓은 돈이 적지 않을 터였다.
“방 좀 구경해도 돼?”
“어? 아, 아니! 잠깐만! 저쪽 먼저 구경하고 있어!”
우서윤이 급히 방문을 닫고 들어갔다. 서주환은 그녀가 가리킨 다른 방을 먼저 구경했다.
“선생님 댁이랑 비슷하네.”
잡다한 물건이 없다. 큼직한 책장과 작업을 하기 위한 컴퓨터만이 있었다.
“오, 내 책이다.”
지난주에 우서윤이 싸인을 받아간 책이었다. 전권 소장 중이라고 하더니 ‘빙의사부는 무림공적’과 ‘회귀자의 병영생활’이 완결까지 정리되어 있었다.
“이건 서윤이가 쓴 거고.”
우서윤 본인이 쓴 소설이 한 쪽 책장을 꽉 채우고 있었다. 순서를 보니까 연도별로 정리해놓은 듯했다.
적당히 구경하고 있으니 우서윤이 금세 나왔다. 치울 게 많지는 않았나 보다. 자연스럽게 그 방으로 들어갔다. 이미 분위기에서 휘말린 우서윤은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우서윤의 다른 방은 조금 전에 본 방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칙칙했던 방과 달리 나름 요소요소에 장식품이 있는 게 제법 살뜰히 꾸며놓았다.
“작업실을 따로 분리해둔 거구나.”
“응. 저쪽 방은 출근하는 느낌으로 들어가. 그래야 글이 잘 써져서.”
“그 느낌 알지. 나도 작업실이랑 내 방 분리해뒀거든. 집에서 작업하는 사람들 특징인 것 같아.”
집에서 작업을 하게 되면 익숙한 공간이라는 안정감 때문에 쉽게 헤이해질 수 있었다. 특히 침대가 근처에 있으면 더 그렇다. 그 때문에 적잖은 프리랜서들이 일부러 사무실을 구하거나 카페, 호텔 등으로 가서 작업 환경에 변화를 주고는 했다.
우서윤이 문득 말했다.
“주환아, 아깐 미안해.”
“응?”
“내 맘대로 너 남친이라고 한 거 말이야.”
서주환은 씩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거 가지고 뭘. 전 남친 떼어놓으려고 한 말이잖아?”
“어, 으응. 잘 받아줘서 고마웠어.”
어딘가 아쉬운 표정을 짓는 우서윤이다.
“서윤아, 나 목 마른데 물 좀.”
“차가운 거?”
“응.”
“잠깐만. 찬물은 냉장고에 있어서.”
우서윤이 냉장고를 열었다. 뒤에서 그를 보는데 냉장고 안이 특이했다. 웬 캔맥주 수십 개가 정류별로 정렬되어 있었던 것이다.
“서윤이 너 술 좋아하는구나?”
“어? 아, 이건 작업 때문에…….”
“술 마시고 작업해?”
놀란 눈으로 묻자 우서윤이 도리질을 치며 부정했다.
“원고 쓸 때는 아니야! 플롯이랑 설정 짤 때만 그래.”
“흠. 그럼 그냥 집에서 맥주 까면서 설정 짤까?”
“어?”
“설정 짤 거면 밖보다 안이 편하지 않겠어?”
“그, 그렇긴 한데.”
서주환은 집에 있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안주는 적당히 만들면 되지. 내가 만들어줄게.”
“너 요리 잘해?”
우서윤이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서주환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꽤. 특히 술안주는 기가 막히지.”
친구들과 집에서 술을 마시며 만들어본 안주가 몇 종류이던가. 마침 냉장고에 재료도 적당히 있겠다, 오랜만에 실력 발휘를 할 때였다.
하지만 우서윤은 남자가 요리를 한다는 게 영 미덥지 못한 모양이었다.
“주환아, 그냥 내가 요리할게. 원래 내가 밥 사주기로 했었잖아.”
“괜찮아. 그건 나중에 사. 아니면 너도 나 소재 하나 주던가.”
“그러지 말고 뭐 시켜먹을까? 내가 다 사줄게.”
“어허. 가만 있어봐. 남자친구가 요리 좀 해주겠다는데.”
“나, 남자친구?”
우서윤이 당황한 투로 되물었다.
서주환은 씩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오늘 하루는 내가 남친 아니었어?”
“아니, 그건 이제…….”
[성(性)에 관한 강력한 행운이 개입합니다.]
순간 우서윤의 폰이 벨소리를 울렸다.
액정에 떠오른 이름은 ‘스토커 새끼’였다.
서주환은 입술을 꾹 깨물고 있는 우서윤에게 물었다.
“아까 그 새끼야?”
“…응.”
“쯧. 보니까 한두 번 그런 게 아닌 것 같더만 차단하지.”
“나도 그러고 싶은데 차단하면 내 친구들한테 전화해서 진상 피울 놈이라서. 실제로 그런 적도 있고.”
“전화 줘봐.”
“어? 아니, 그냥 무시하면 돼.”
“언제까지? 그 새끼 계속 전화할 것 같은데.”
우서윤은 결국 한숨을 내쉬며 폰을 넘겨줬다. 실제로도 한 번 전화가 울리면 최소 대여섯 번은 이어지곤 했던 것이다. 지금도 말하는 중에 전화가 한 번 끊어졌다가 다시 걸려왔다.
서주환은 폰을 건네받고 전화를 연결했다.
- 우서윤! 아까 그 새끼 남친 아니지!
받자마자 귀 따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상치 못한 고막테러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서주환은 ‘성우’ 재능을 활용해 목소리를 낮게 깔고 말했다.
“야, 이 새끼야.”
- 누, 누구?
“너 아까부터 나 언제 봤다고 이 새끼, 저 새끼 욕질이냐. 진짜 뒤질래? 내가 분명 다음엔 말로 안 끝낸다고 했지.”
위협적인 말에 당황한 기색이 전화 너머로도 느껴졌다.
- 왜, 왜 네가 서윤이 전화를…….
“스토커 새끼가 내 여친한테 전화한 거 대신 받았는데 문제 있냐?”
- 내, 내가 왜 스토커야! 난 서윤이 남친…!
“이건 헤어진 지가 몇 개월짼데 남친 행세야. 싫다는 사람한테 계속 찾아오면 그게 스토커지 어떻게 남친이냐고, 이 새끼야!”
- …….
“야, 됐고. 술 처먹었으면 곱게 자라. 한 번 더 전화하거나 헛짓거리하면 당장 경찰에 신고한다. 지금까지 걸었던 통화 내역 다 녹음되어 있으니까 자신 있으면 계속 해봐.”
거칠게 말을 끝맺었다.
목소리는 잠시간 들리지 않았다. 통화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남자가 잠시 후 소리쳤다.
- 웹소설 따위나 쓰는 새끼가!
“…뭐?”
뚝.
목소리가 끊겼다.
서주환은 전화가 끊긴 전화기를 내려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 새끼 날 알고 있어?’
문득 우서윤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글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생각보다 그가 유명하다고.
그는 우서윤을 돌아보고 물었다.
“서윤아, 이 자식 뭐야?”
“…졸업한 학과 선배.”
“아, 그럼 문창과겠네. 그래서 날 알고 있나?”
“하아. 그런가봐. 네 얼굴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지만.”
한숨을 내쉬는 우서윤에게 폰을 돌려줬다. 어찌됐건 전화는 다시 걸려오지 않았다. 더 이상 방해할 요소는 없었다.
*
골뱅이 소면과 약간의 제육볶음, 스팸맛탕을 만들었다. 거기에 냉동 새우를 꺼내서 새우 감바스 알 아히요까지.
안주를 하나씩 집어먹은 우서윤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 맛있다. 주환이 너 정말 요리 잘하는구나? 플레이팅도 예쁘고.”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지 않던가. 그는 ‘손재주’와 ‘정리’ 재능을 활용해 음식을 예쁘게 담아냈다. 일상생활에서 재능을 활용하는 게 점점 더 능숙해지고 있었다.
“자취하다 보니까 늘더라고. 먹을만해?”
“응, 이거 진짜 맛있다. 그리고 스팸맛탕은 생각도 못했어.”
“흐흐. 짠 할까?”
캔맥주를 따서 내밀었다. 우서윤이 웃으며 맥주캔을 가볍게 부딪쳤다.
서주환과 우서윤은 안주와 맥주를 먹고 마시며 새로운 소재 및 설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여기서도 서주환의 ‘정리’ 재능이 발휘되었다.
정리라는 게 비단 물건을 치우는 데만 해당하는 게 아니었다. 서주환이 주로 ‘정리’ 재능을 활용하는 방향은 따로 있었다. 바로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종합해서 한 눈에 알아보기 쉽도록 하는 것이다.
‘정호 녀석한테 있는 구상에 특화된 능력인데.’
서주환은 아쉽게 입맛을 다셨다. 사촌 동생인 서정호에게 있는 ‘구상’ 재능이야말로 이처럼 설정을 짜고 체계를 잡는데 특화된 재능이었다. 뭐, 아쉽지만 이걸로 만족하는 수밖에. 사실 ‘글쓰기’ 재능과 함께 활용하는 만큼 ‘구상’과 큰 차이가 없을 터였다.
우서윤이 어느덧 빼곡히 채워진 노트를 보며 감탄했다.
“엄청 보기 편하다. 나 이렇게 설정 잘 정리한 거 처음이야. 내가 하면 항상 난잡한 느낌이었는데.”
“평소엔 어떻게 하는데?”
“여기. 이것처럼 해.”
우서윤이 노트북을 켜서 보여줬다. 메모장에 정리된 방식을 보니 마인드맵을 한 것처럼 생각 하나에서 가지가 뻗어나가는 형태였다. 난잡한 느낌이 있지만 신선한 설정들이 많았다.
이게 우서윤에게 맞는 방식일지도.
서주환은 손으로 적은 노트와 노트북에 떠오른 메모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넌 설정 짤 때 평소 하던 방식으로 한 다음 한 번 더 정리해보는 게 좋을 수도 있겠다.”
“응. 앞으로 그래야겠어.”
이야기는 장시간 건설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두 사람 다 작가이다 보니 설정을 짜는데 정신이 팔려서 집에 막 들어왔을 때 있던 어색함이 사라졌다.
쩝, 이게 아닌데. 이놈의 직업병.
서주환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나 맥주 더 마실 건데, 넌?”
“아, 나도.”
좋아, 술로 분위기를 다시 달궈보자. 벌써 각자 마신 맥주만 세 캔을 넘어갔다. 중간에 소주도 살짝 섞어 마셔서 취기가 꽤 올랐다.
밤과 술이 있다면 뭔들 못하리.
서주환은 냉장고에서 맥주와 소주를 여러 병 가져와서 상에 올려두었다. 안주는 아직도 충분했다.
안주. 사실 술자리에서 정말 중요한 안주는 먹는 안주가 아니라 함께 뜯고 씹을 이야깃거리다. 서주환과 우서윤에게는 그게 충분했다. 대략적인 설정을 다 짰음에도 할 이야기가 넘쳐났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우서윤이 말했다.
“민정우 걔 진짜 찌질한 놈이야. 교수님이 지는 A주고 나는 A+줬다고 삐졌었다니까? 지가 부모 빽 믿고 출석 개판으로 한 건 생각도 안 하고.”
민정우. 아까 통화한 남자의 이름이었다. 우서윤의 전남친이다.
“걔 부모님이 두 분 다 교수거든. 문학계에도 한 자리씩 하고 있고.”
“대단하네.”
“대단하지. 그런데 그건 부모님이 대단한 거지 자기가 대단한 게 아니잖아. 정작 본인은 아직 등단도 못했어. 그러면서 웹소설이 저급하다고 무시하고 지가 우월한 줄 알아. 자의식은 또 엄청 세서 꼴랑 한 살 많은 게 뭐만 하면 오빠는, 오빠가, 오빤 말이야~ 지겨워 죽겠다니까.”
“전형적인 오빠무새구만.”
“아니, 걔는 남자들한테도 그래. 형이, 형은, 하는 말마다 형형 거리면서 상대를 낮춰봐. 뭐라고 반박하면 자기 말이 틀렸다고는 절대 생각 안 하고 상대가 어려서 뭘 모른다는 식으로 말해.”
“얼씨구. 꼰대 마인드까지. 그런 놈들 보면 꼰대라는 게 나이랑 상관없다니까.”
“내 말이!”
쌓인 게 많았는지 연신 욕을 쏟아내는 우서윤이다. 처음에는 전 남친 얘기라서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듯했는데 슬쩍 찔러주자 끝도 없이 욕이 나왔다. 덕분에 그가 대화를 이끌 필요도 없이 적당히 맞장구만 쳐주면 좋은 분위기가 유지됐다. 자고로 누군가와 친해지는데 뒷담만큼 빠른 게 없었다.
“하아. 그나마 주변에 사귀는 티 안 내고 다녀서 다행이었지. 다른 애들처럼 티 내고 다녔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해.”
“몰래 사귀었었구나?”
“응. 내가 그런 거 티 내는 걸 별로 안 좋아하거든. CC라서 더 조심했던 것도 있고.”
“아… CC는 조심해야지.”
서주환은 쓰게 웃었다. 그도 정하연과 헤어지고 한동안 어색하지 않았던가. 당사자인 정하연이 아무 말도 않는데 이상한 소문까지 돌았었다.
우서윤이 졸린 듯 눈을 깜빡거리며 물었다.
“주환이 너도 CC했었어?”
“응, 작년에. 너랑 달리 사방에 티 엄청 내고 다녔었지.”
“으아, 헤어지고 많이 고생했겠다.”
“처음엔 그랬는데 지금은 괜찮아. 난 좋게 잘 풀었거든.”
“그래? 좋게 헤어지는 경우는 진짜 드문데.”
“나도 좋게 헤어진 건 아니야. 나중에 가서 매듭을 푼 거지.”
“그럼 지금은 전 여친이랑 잘 지내?”
우서윤이 힐끗 눈치를 보며 물었다.
서주환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제일 친한 친구 중 한 명이야.”
단순한 친구가 아니라 평생 옆에 있기로 약속한 여자가 됐다.
그런 속사정을 모르는 우서윤이 말했다.
“…주환이 너 되게 깔끔하구나.”
“응?”
“관계가 말이야. 맺고 끊는 게 확실한 것 같아서.”
“…하하. 그런 편이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루시가 쿡쿡 웃었다.
[주인님 관계가 깔끔하다네요.]
‘시꺼. 나도 더러운 거 알아, 루시.’
[저는 그렇게 말 안 했답니다?]
‘요게 주인을 놀리기는. 나중에 사람만 돼봐라. 주인님이 제대로 교육시켜준다.’
좆초리로 따끔하게 혼내준다.
[후후. 무서워서 남자가 돼야 할까 봐요.]
‘윽. 끔찍한 소리하지 마.’
그렇게 루시와 투닥거리고 있을 때였다.
우서윤이 잔을 내밀며 말했다.
“주환아, 나 거기 있는 소주 좀 따라주라. 쏘맥마시게.”
“어, 그래. 그런데 괜찮겠어?”
“응, 괜차나, 괜차나.”
많이 취해 보이는데 아직도 술을 달라고 하는 우서윤이다. 그녀도 이대로 끝내기 싫다는 거겠지. 벌써 12시가 가까워지고 있는데도 그에게 돌아가라는 기색을 한 번도 비치지 않았다.
서주환은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우서윤의 잔에 술을 따랐다. 아니, 따르려고 했다.
[성(性)에 관한 강력한 행운이 개입합니다.]
갑자기 손과 술병 사이의 마찰력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거짓말처럼 술병이 손에서 미끄러졌다.
술병 주둥이가 우서윤이 들고 있던 잔을 탁 내리치고, 꺄악 하는 비명이 울리고, 컵에 따라져 있던 맥주가 흩뿌려진다. 이어서 테이블 위를 구른 소주병이 끝에 멈춰서더니 졸졸졸 액체를 쏟아냈다.
순식간에 테이블이 엉망으로 물들고 우서윤의 옷이 흠뻑 젖었다.
서주환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서윤아, 미안! 괜찮아? 다친 데 없어?”
“어, 어어. 괜찮아.”
“진짜 미안. 옷 다 젖었네.”
“아니야, 괜찮아. 실수인데 뭐.”
우서윤의 손을 잡고 일으켰다. 옷에 물기를 털어주고 티슈를 뽑아 닦아주며 자연스럽게 몸을 터치했다. 술에 취한 그녀의 몸이 비틀거렸다.
“서윤아, 조심! 유리 조각!”
서주환은 손을 뻗어서 비틀거리는 그녀의 몸을 잡아챘다. 어깨를 잡고 품 안으로 잡아당기며 그녀를 번쩍 안아서 들었다.
‘너무 오버했나?’
[오버는 맞지만 취했으니까 괜찮습니다. 아주 적절했어요.]
사실 바닥에 유리 조각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축복이 준 기회를 살리고자 오버액션을 취했을 뿐이다.
품에 안긴 우서윤의 시선이 느껴졌다. 동시에 루시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인님, 지금입니다.]
‘오케이.’
정확히 말하지 않아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심전심이었다.
[스킬, 페로몬의 특수능력을 사용합니다.]
[3초간 상대가 이상형으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몸에 깃듭니다.]
특수능력을 사용함과 동시에 품 안의 우서윤을 내려다봤다. 그녀와 시선이 마주친다. 우서윤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게 결코 취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우서윤이 품에서 그의 옷자락을 쥐며 말했다.
“야, 서주환…….”
“어?”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뭐가?”
짐짓 모르는 체 되물었다.
우서윤이 미간을 찡그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야, 짜증나니까 그만 간 봐. 나도 깔끔한 거 좋아하거든? 그러니까 헷갈리게 하지 말고 그냥 좀…….”
말끝을 흐린 우서윤이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덧붙였다.
“그리고 아직 오늘 안 지났잖아. 지금은 내 남자친구 맞지…?”
이쯤 했으면 됐겠지. 나중에 뒷말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더 빼면 차려놓은 밥상을 엎는 격이다.
서주환은 픽 웃으며 고개를 숙이고 우서윤에게 입술을 맞췄다. 그리고 한 가지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달콤한 사탕을 먹여둬야 했는데.’
[에고, 주인님만 드셨군요.]
그녀와의 키스에서는 진한 알코올 향과 제육볶음 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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