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350화 (350/501)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5월 6일 휴재를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5월 4일에 원고 넘김 -> 5월 5일 업로드 예약

5월 5일 빨간 날 -> 5월 6일 업로드 예약 못함

이렇게 되기 때문에 제가 내일 원고 두 편을 넘겨야 휴재가 없는데 어찌 될지 모르겠습니다(조아라와 ㄴㅂㅍㅇ는 제가 직접 업로드가 가능하지만 다른 연재처와 업로드 일정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양해 부탁드립니다)

최대한 노력해보겠으나 혹시 휴재를 하게 된다면 따로 공지를 올리도록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나도 깔끔한 거 좋아하거든?

서주환은 아예 대놓고 물어봤다.

“서윤아, 너 혹시 문신 좋아해?”

“어? 갑자기 그건 왜?”

뜬금없는 질문에 우서윤이 당황스러운 얼굴로 되물었다.

그는 별 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나 네가 쓴 소설 좋아한다고 했잖아. 처음 썼던 작품부터 지금까지 하나도 안 빼놓고 다 봤다고.”

“으응.”

우서윤은 새삼 간질거리는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만났을 다시 그는 오래된 작품부터 최신작까지 그녀가 쓴 소설들의 제목을 줄줄이 읊었었다. 작가로서 이런 독자가 있다는 것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또 그 독자의 정체가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 ‘서환’이라는 걸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서주환이 말했다.

“생각해보니까 네 소설에 유독 문신을 한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는 것 같더라고.”

“…그랬나?”

우서윤의 고개가 갸웃 기울어졌다. 문신을 한 캐릭터가 나오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한 작품 내에는 많이 안 나오지. 그런데 거의 모든 작품에 주연이든 조연이든 꼭 한두 명씩은 문신 있는 캐릭터가 나오더라. 짤막하긴 했지만 그냥 문신이 있다 정도가 아니라 그 문신에 담긴 의미도 서술되어 있었고.”

“어어. 맞아. 되게 유심히 봤구나.”

“사실 최근에 몇 작품 다시 봤거든. 그런데 문신이 유독 눈에 띄더라고. 그래서 혹시 좋아하나 싶어서 물어봤어.”

몇 작품 정도가 아니라 우서윤이 쓴 모든 작품을 다시 읽었다. 중학생 때부터 소설을 쓴 그녀의 작품은 10개가 훨씬 넘어갔고 편수로 따지면 몇 천편에 이르렀지만 ‘속독’ 재능을 가진 그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재독을 하며 발견한 것이 몇몇 캐릭터에게 부여된 ‘문신’이란 요소였다. 다짜고짜 문신에 대해 묻는 것보단 이렇게 연결점을 찾아 자연스럽게 접근하는 게 좋으리라 판단했다.

다행히 그 판단이 옳았는지 우서윤은 와, 하고 감탄성을 냈다.

“이건 진짜 작가로서 좀 감동인데? 네 생각이 맞아. 정확히는 좋아한다기보단 관심이 많은 거지만.”

“어쩌다 관심을 갖게 된 거야?”

“그냥 뭐… 어쩌다보니까?”

서주환은 슬쩍 백미러에 비친 우서윤의 표정을 살폈다. 뭔가 이유가 있긴 한데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계속 캐물을까?’

특수능력을 사용해 몇 번 되묻는다면 손쉽게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중요한 건 그녀가 어쩌다 문신에 관심을 보였느냐가 아니라 이 주제를 통해 더욱 긴밀한 접점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서주환은 질문의 방향을 살짝 틀었다.

“문신 종류 잘 아는 것 같던데 괜찮으면 몇 개 알려줄 수 있어?”

“응? 그건 왜?”

“나도 문신에 관심이 있어서. 한 번 해볼까 싶기도 하고.”

“뭐? 야, 하지 마.”

우서윤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예상치 못한 말에 얼떨떨한 기색으로 힐끗 그녀를 돌아봤다. 그러자 우서윤은 아차 싶은 기색으로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 그게 문신은 몸에 평생 남는 거잖아. 나중에 지우기도 힘들고.”

“…그렇긴 하지?”

“그러니까 충동적으로 문신을 새기는 건 안 좋아. 많은 사람들이 나중에 후회하거든. 특별한 의미가 있다면 모를까.”

서주환은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의외네. 좋아할 줄 알았는데.’

애초에 문신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문신 페티시를 가진 그녀의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한 말이었을 뿐이다.

한데 우서윤은 예상과 달리 단호하게 문신을 반대했다. 그게 멋쩍었던 걸까. 그녀는 묻지도 않은 말을 계속 이어갔다.

“내 지인 중에도 타투 새기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몇 명 있거든.”

“그래?”

“응. 타투 자체는 마음에 드는데 여러모로 불편한 일이 있는 모양이야. 왜, 세간에서 인식이 워낙 안 좋잖아.”

“그런가? 요즘은 많이 좋아진 걸로 아는데.”

“우리 세대 사람들이나 그렇게 생각해. 우리보다 어른들 세대는 문신이라고 하면 아예 불량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야. 그래서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엔 취업할 때도 불리하다 그러더라고.”

“하긴, 윗세대에서는 문신이란 게 조폭들의 상징이었으니까.”

한국의 조폭이나 일본의 야쿠자는 적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문신을 많이 하고 다녔다. 그래서 문신의 종류도 용이나 호랑이, 도깨비 등 무섭게 생긴 형상이 대부분이었다. 그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문신이라고 하면 범죄자의 상징이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깔려있었다.

그나마 최근 들어서는 사회가 개방적으로 변하고 문신을 한 연예인들의 미디어 노출로 인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인식이 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일부일 뿐이다. 젊은 세대에서도 여전히 문신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경향이 많았다.

“혹시 정 해보고 싶으면 문신 말고 헤나(henna)를 먼저 해봐.”

“헤나?”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되물으니 자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쉽게 말하면 헤나는 비교적 잘 지워지는 문신이야. 문신이란 게 바늘로 찔러서 피부 아래에 염료를 넣는 거거든? 그렇게 하면 세포가 그 염료를 분해하지 못해서 영구적으로 남아. 나중에 그걸 지우려면 레이저 시술을 해야 하는데 그럼 돈도 많이 들고 지울 때 고통도 심하대.”

“헤나는 잘 지워지는 거라고?”

“응. 헤나는 피부 겉면에 염색하는 거라서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사라져. 피부 각질이랑 떨어져나가는 거지.”

전문적인 지식이 느껴졌다.

서주환은 처음 들어보는 정보에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도 있구나. 확실히 처음 하는 거면 문신보단 헤나가 낫겠다.”

“아니면 타투 스티커도 있어. 옛날에 판박이 붙여봤지? 그런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돼.”

우서윤이 재잘재잘 말을 이어갔다. 문신을 반대하기에 잘못 건드린 건가 싶었는데 단순한 착각이었다. 한 번 말문이 트인 우서윤은 뉴 스쿨, 올드 스쿨, 이레즈미, 라인 워크 등 그가 처음 들어보는 용어들을 말하며 문신의 종류에 대해 설명했다.

서주환은 생소한 단어들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속으로 아이템을 사용했다.

‘페로몬 가스 사용.’

[반경 3m 내에 있는 사람들의 성욕을 두 단계 상승시킵니다.]

[신체의 성적 민감도를 한 단계 상승시킵니다.]

[성관념에 의한 의식수준을 한 단계 하락시킵니다.]

아이템을 사용해도 겉으로 드러난 우서윤의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상태창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C에 머물러 있던 그녀의 성욕이 B로 올라갔다.

아이템이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 지금부터는 능력껏 그녀를 넘어트려야 한다.

‘가능할 것 같은데.’

우서윤은 애초부터 그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 물론 그건 이성에게 품은 호감이 아닌 작가 ‘서환’에 대한 팬심에 가까웠지만, 지난 몇 주간의 만남을 통해 팬심은 사적인 친밀감으로 바뀌었다.

서주환은 재잘거리는 그녀를 보고 짐짓 감탄스럽다는 듯 말했다.

“생각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네. 그 정도면 거의 전문가 수준 아니야?”

우서윤이 손을 저었다.

“에이, 그 정도는 아니야. 그냥 아는 언니 중에 타투이스트가 있어서 그래.”

“오, 지인 중에 그런 분도 계셔? 그럼 자료조사하기 좋겠다.”

“자료조사?”

“응. 아무래도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찾아보는 것보단 전문가한테 얘기를 듣는 게 훨씬 생생하고 재밌는 사건들이 많잖아. 난 현대물 쓸 때 인터뷰를 따는 편이거든.”

“그렇게까지 해? 너 대단하다.”

“뭘. 운이 좋아서 그랬지.”

우서윤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힐끗 서주환을 바라봤다. 웹소설을 쓰겠다고 직접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고 보니 ‘회귀자의 병영생활’을 쓸 때 현직 장교와 부사관들에게 인터뷰를 했다고 했었지. 지금 쓰고 있는 ‘은퇴 아이돌의 힐링방송’도 현실감을 살리기 위해 직접 방송을 하고 있는 중이고.

과연 글을 잘 쓰는 이유가 있었구나.

우서윤은 얕게나마 있던 시기심 대신 존경하는 마음이 슬쩍 올라왔다. 질투는 여전했지만 자신도 그만큼 더 노력해야겠다는 긍정적인 생각도 들었다.

그리 생각하며 바라보던 중 서주환과 눈이 마주쳤다. 어느새 앞을 달리던 차는 신호에 걸려 멈춰 있었다.

그가 이름을 불렀다.

“서윤아.”

“으, 응?”

우서윤은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얘는 뭔데 이렇게 야한 느낌이 들지?’

성격이나 행동은 안 그런 것 같은데 분위기가 남달라서 자꾸만 눈이 갔다. 윗단추가 풀린 셔츠 사이로 비치는 쇄골을 보자 침이 꼴깍 넘어갈 것 같았다.

‘나쁜 남자상이야. 퇴폐미 있는 남주로 딱인데. 전개상 여기서 눈을 감으면.’

여자를 유혹하는 미소와 함께 키스가 들어올 차례다. 아무렇지 않게 입을 맞추곤 알 듯 모를 듯 애매한 미소로 사람을 가지고 노는…….

‘아오, 이놈의 망상병. 내가 여주가 아닌데 무슨.’

찰나 망상에 빠졌던 우서윤은 헉, 하고 작게 숨을 들이켰다. 실제로 서주환의 얼굴이 가까워졌던 것이다. 그가 얼굴을 향해 팔을 뻗었다. 그에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으려던 우서윤은 팔이 얼굴을 넘어가는 걸 보고 눈을 깜박였다.

서주환이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너 여태 안전벨트 안 매고 있었어? 차에 타면 항상 매라니까.”

“아, 미안.”

다가왔던 서주환의 손이 안전벨트를 매주고 물러났다. 우서윤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시 앞을 바라봤다.

‘얘 일부러 이러는 거 같은데.’

우서윤은 스스로의 눈치가 꽤 빠르다고 자부하는 편이었다. 그녀가 보기에 서주환은 자신에게 수작을 부리고 있었다. 말로 하면 되지 왜 직접 안전벨트를 매준단 말인가. 이게 수작이 아니라면 서주환은 무의식적으로 플러팅을 남발하는 부류였다.

그녀가 긴가민가 고민하는 사이 서주환은 루시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지금은 아니야.’

[그런가요? 방금 키스를 해도 받아들였을 것 같습니다만.]

‘받아들이기야 했겠지. 나한테 호감도 있고 성욕도 올라가 있는 상태니까.’

그가 보기에도 현재 우서윤은 밀어붙이기 쉬운 상태였다. 하지만 아이템의 효과는 언제까지고 지속되지 않는다. 그녀의 성격을 생각하건대 차에서 내리기 전에 넘어트릴 게 아니라면 이 정도가 적당했다.

‘잘 풀리면 다행이지만 괜히 어색해지거나 경계심을 살 수도 있어. 하려면 아예 한 번에 쭉 달리는 게 나아.’

[그렇군요. 주인님도 참 많이 달라졌네요.]

‘응?’

[아이템이나 스킬, 재능 덕분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여자를 대하는 게 굉장히 능숙해지셨어요.]

‘그런가?’

[저와 처음 만났을 때의 주인님을 생각해보세요.]

‘하하…….’

서주환은 속으로 어색하게 웃는 동시에 겉으로는 우서윤에게 태연한 얼굴로 말을 걸었다.

“서윤아, 혹시 노벨다이스 공모전 소재 정했어? 열흘 뒤에 시작이잖아.”

이제 ‘연기’ 재능 덕분에 겉과 속을 다르게 말하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우서윤은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 듯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적당한 소재가 안 떠올라서 고민이야.”

“아직도? 슬슬 준비해야 될 텐데.”

“내 말이. 하도 많이 썼더니 신선한 게 안 떠올라. 정 안 되면 그냥 익숙한 맛으로 쓸까 싶기도 한데…….”

우서윤은 별로 내키지 않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걸 좋아했다. 그러한 고집은 독자들이 그녀의 작품을 매번 기대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소재와 구도가 한정적인 로맨스라는 장르 내에서 항상 새로운 변화와 신선함을 담아내는 게 그녀의 가장 큰 강점이었다.

서주환은 고민에 빠진 그녀에게 슬며시 생각하고 있던 바를 던졌다.

“문신을 주제로 써보는 건 어때?”

“…문신을 메인으로?”

우서윤이 눈을 크게 떴다. 지금까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걸까? 문신에 관심이 많으니 한 번쯤 생각해보았을 거라고 여겼는데.

서주환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어? 네 소설에 문신 캐릭터가 등장한 건 꽤 오래전으로 아는데.”

“그건 그런데… 쓰고 싶은 게 워낙 많아서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던 것 같아. 이렇게 소재 고민하는 것 자체가 엄청 오랜만이거든.”

“아, 그래…….”

서주환은 떨떠름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오히려 소재가 마를 날이 없어서 생각을 못한 거라니. 다른 작가들이 들었으면 기만하는 거냐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소재 하나 떠올리기가 힘들어서 몇 작품 쓰고 나면 자기복제 소리까지 듣는 판인데 과연 ‘상상(A/S)’ 재능 보유자는 뭐가 달라도 달랐다.

그는 새삼 다짐했다.

‘반드시 얻고 만다, 상상력.’

지금까지도 몇 번인가 기회가 있었지만 확률의 장난으로 얻지 못한 재능. 우서윤의 말을 듣고 있자니 그 재능에 대한 열망이 더욱 커졌다.

서주환은 어느덧 혼자만의 세계에 빠진 우서윤을 바라봤다. 그녀는 고민에 잠긴 눈으로 무언가를 연신 중얼거리고 있었다.

“로맨스 비중을 조금 줄이고 오히려 전문적인 맛을 살리는 것도… 남주를 타투이스트로 아니, 여주가 낫겠어… 화상흉터를 타투로 덮는… 반대로 섣불리 타투를 새겼다가 후회하는 에피소드도…….”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소재 하나 정해졌다고 벌써 얼개를 짜고 있는 건가.

서주환은 핸들을 돌리며 우서윤에게 말을 걸었다. 미안하지만 도착하기 전에 그녀의 생각을 끊을 필요성이 있었다.

“서윤아.”

“작품 배경은… 어느 쪽이 더…….”

“서윤아!”

“어, 어? 아.”

정신을 차린 우서윤이 당황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얼굴을 붉히며 사과했다.

“미안, 주환아. 내가 한 번 생각에 빠지면 가끔 이래. 아, 쪽팔려. 나 좀 전에 미친년 같았지?”

어지간히 부끄러운지 얼굴이 벌게졌다.

서주환은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보기 좋던데 뭐. 오히려 내가 방해해서 미안하지.”

모르는 사람이 보면 미친년처럼 보였을 모습이지만 글을 쓰는 작가인 그로서는 감탄스럽기만 했다. 축복도 쓰지 않았는데 저만큼 빠르게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들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재능이었다.

“그보다 소재는 그걸로 결정한 거야?”

“응. 내가 잘 아는 분야이기도 하고 네 말대로 아는 언니도 있으니까 좋을 것 같아. 네 덕분에 더 늦기 전에 소재 정했어. 고마워.”

“정말 고마우면 밥 한 끼 사.”

“당연하지. 내가 나중에 맛있는 거 사줄게.”

“아니, 오늘.”

“…어?”

“오늘 밥 먹자.”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하는 우서윤.

서주환은 세상 무해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덧붙였다.

“그 소재 살릴 거라면서. 내가 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때?”

“아, 밥 먹으면서 얘기하자고?”

“응. 설정 짜는 거 도와줄게. 싫으면 그냥 밥만 먹고.”

우서윤은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설정은 혼자서 짜는 편이지만 그 상대가 ‘서환’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가 어떤 식으로 설정을 짜는지 참고하고 싶었다.

서주환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근처 먹자골목으로 방향 틀까?”

“아, 미안한데 나 잠깐 집에 들러도 될까? 오늘 글 예약해두는 걸 깜빡해서.”

우서윤의 말과 동시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성(性)에 관한 강력한 행운이 개입합니다.]

메시지를 본 서주환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물었다.

‘루시, 이거 지금 우서윤네 집으로 가는 게 행운이라는 거지?’

[제 생각에도 그런 것 같아요.]

‘오케이, 삘 왔다. 이거 오늘 각이다.’

하루 종일 잠잠하던 축복이 일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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