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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나도 깔끔한 거 좋아하거든?
정하연의 이야기를 들은 서주환은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표정을 관리했다.
‘드라마 같은 일이 진짜로 있구나.’
이주철은 정하연의 어머니인 정선애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결혼까지 진지하게 생각했을 정도로.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걸 좋게 보지 않았다. 가벼운 연애라면 괜찮지만 진지해서는 안됐다. 이주철은 연고 없는 고아원 출신의 여자가 아니라 급이 맞는 집안의 여자와 혼인하여 운성을 더욱 견고히 만들어야 했다.
그는 아들에게 헤어지라 말하는 대신 직접 정선애와 만나서 얘기했다. 정선애는 의외로 이주철이 운성의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집안을 알게 된 그녀는 갈등 끝에 이주철과 헤어짐을 택했다. 그게 이주철에게 더 나은 길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갑작스러운 이별통보에 이주철은 실의에 빠졌다. 진지했던 사랑이기에 가슴이 뜯겨나가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아픔을 해결해주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간이 지나 이주철은 가정을 이뤘다. 그의 감정과 상관없이 집안에서 진행한 혼담이었지만 다행히 상대는 아주 괜찮은 여성이었다. 미색도 그렇지만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심성이 좋게 보였다.
그리고 어느 날, 이주철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정선애를 다시 만났다. 과거의 진실을 알게 된 날이었다.
정하연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둘이 만난 건 그 날 딱 하루래. 그 하루 만에 내가 생겼고, 엄마는 혹시 피해가 갈까봐 멀리 내려가서 나를 혼자 키우신 거야. 바보 같이.”
“…….”
“어디서 많이 들어본 흔해빠진 이야기지?”
그 말대로 너무나 흔해빠진 이야기였다. 한국 드라마 역사에 골백번은 더 우려내서 더 이상 육수도 안 나올 클리셰.
하지만 허구의 드라마 속 이야기가 현실로 다가온다면 그만큼 무서운 것도 없는 법이다.
홀로 정하연을 키우기로 한 정선애.
과거의 진실을 알게 된 이주철.
다시 그 이야기를 듣게 된 정하연.
고작 클리셰란 단어 하나로 뭉뚱그리기에는 세 사람의 심정을 감히 헤아릴 수 없었다.
하지만 정하연은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처음에는 머리가 너무 복잡했는데, 지금은 되게 별 일 아니라는 느낌이야.”
“…그래?”
“응. 오히려 조금은 후련해. 물론 화도 나. 할아버지…라고 해야 되나? 그 사람만 아니었으면 우리 엄마가 그만큼 고생하진 않았을 테니까.”
그 일만 아니었다면 지금도 어머니가 살아계셨을지도 모른다. 당연히 외로이 장례를 치르지도 않았을 테고, 아버지를 원망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거기까지 생각하진 않으려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까지 원망하고 살아가기엔 내가 너무 힘들 것 같아. 그냥, 아버지…가 우리 엄마를 제대로 사랑했다는 걸 알게 된 걸로 만족하려고.”
30년도 더 지난 옛날 일을 가지고 이제 와 원망해봐야 어쩌겠는가. 가지처럼 원망을 뻗어 나가다보면 끝도 없을 것이다.
다만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돌아가신 어머니와 지금 있는 아버지의 관계였다. 생전 외롭게 사셨던 당신께도 누군가와 사랑을 나누고 행복한 시간이 있었음에 감사했다.
‘사실은 옛날에 알고 있었을지도.’
정하연은 쓰게 웃었다.
자세한 사정이야 몰랐지만, 어머니와 아버지가 단순히 하룻밤 불륜을 저지른 관계가 아니라는 것 정돈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다만 그토록 원망하던 아버지를 인정하기가 싫었을 뿐이다. 어렸던 그녀에게는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고, 장례식에조차 오지 않은 아버지란 사람은 원망하기에 걸맞은 대상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도 무의식적으로 속사정을 외면하고 아버지와 대화를 일체 나누지 않았다.
그런 정하연에게 진실을 마주하게 될 계기를 준 사람은 다름 아닌 서주환이었다. 일전에 그와 어머니의 묘비를 찾아갔을 적, 아카시아 꽃을 들고 온 아버지와 마주친 것이 계기였다.
‘주환이가 아니었으면…….’
아직도 제자리걸음이었을 테지. 아니, 평생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때 서주환이 팔을 뻗었다.
“하연아, 이리 와.”
토닥토닥, 품에 끌어안고 등을 두드려주는 큼직한 손. 아무래도 위로를 해주려는 것 같았다.
정하연은 등을 토닥여주는 손을 느끼며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진짜 괜찮은데.’
요 며칠 복잡했던 머릿속은 신기하게도 그를 만나고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아까도 말했듯 이제는 후련하기까지 했다.
생각과 달리 정하연은 손을 떨쳐내지 않고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은은한 체향이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듯했다.
*
연휴가 완전히 끝나고 시골로 내려갔던 사람들도 모두 돌아왔다. 시간이 지나 어느덧 2월 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서주환은 그간 모은 포인트를 확인했다.
“거의 두 배로 뛰었네.”
한 달에 50~60만 정도 수급하던 포인트가 100만LP를 넘겼다. 인터뷰를 하고 방송을 켠 게 주효했다. 최초 업적도 감안을 해야겠지만 앞으로 본격적으로 위튜브 활동을 시작한다면 앞으로도 100만LP 이상은 평균적으로 챙길 수 있을 듯했다.
‘악마 포식자 단행본이 출간되면 더 챙길 수 있겠지?’
걱정했던 포인트 수급이 점점 해결되고 있었다. 계속해서 활동 범위를 더 늘려간다면 대량의 LP를 필요로 하는 ‘몽마신의 축복’과 ‘각성’ 스킬도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서주환은 다음으로 재능 숙련도를 확인했다.
[글쓰기(A+/A+) - 9.1%]
개미 눈곱만큼 올라가던 숙련도가 벌써 10%를 앞두고 있었다. 그간 김현영 작가의 집에 자주 들르며 서로의 노하우를 주고받은 덕분이었다. 글쓰기 외의 다른 재능은 아직 1%대에 머물러있었다.
서주환은 나갈 채비를 하며 축복 상점창을 불러냈다.
‘몽마신의 축복 구매.’
띠링.
[100,000LP를 사용하여 ‘몽마신의 축복’을 구매하셨습니다.]
[24시간 동안 ‘성(性)과 관련된 행운 대폭 상승’, ‘숙련도 200%추가 버프’, ‘정력 대폭 상승’ 효과가 적용됩니다.]
오늘은 우서윤과 함께 김현영 작가를 찾아가는 날이었다. 그녀에게 얻을 수 있는 것은 ‘S급 결정석’과 ‘잠재력 S급의 상상력’ 재능. 얻을 것이 많은 만큼 포인트를 아끼지 않았다.
*
김현영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오늘도 많이 배웠어요, 서 작가님.”
“배우긴 제가 더 많이 배웠죠. 선생님 같은 분께 배우니까 실력이 금세 늘어나는 느낌이에요.”
서주환은 김현영에게 순수하게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 그 이유는 그녀가 문학계의 권위자여서도 아니고 글을 잘 쓰기 때문도 아니었다. 다만 순수하게 글을 대하는 태도에서 절로 존경심이 들었다.
‘대단하신 분이야.’
서른 살 넘게 어린 사람에게도 배움을 꺼려하지 않는다. 의견이 양립하게 되면 제 말이 옳다고 말하기보다 진지하게 문답을 주고받으며 되새기기에 들어간다. 심지어 김현영은 자신의 제자인 우서윤의 의견마저도 수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배움의 자세. 수용할 줄 아는 태도.
말이 쉽지, 머리로 알아도 나이가 들수록 실천하기 어려워지는 일이다. 사람이란 자신이 살아온 방식에 맞춰 생각하기 마련이지 않던가.
‘이런 사람이니까 재능의 한계를 두 단계나 뛰어넘을 수 있는 거겠지.’
문장력(A+/B+)과 인내(A/B) 재능.
평생 동안 노력해도 재능을 다 발휘 못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인데 반해 김현영은 자신의 한계를 노력으로 극복했다. 그것만으로도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이었다.
한편 김현영도 감탄을 하고 있긴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서주환을 바라보며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분명 이제 스물넷이라고 했었는데.’
서주환의 글을 읽을 때면 나이답지 않은 깊이와 능숙함이 느껴졌다.
인물을 묘사하는 방법, 폭 넓은 어휘 선택, 문장을 활용하는 방식까지 어느 하나 모자람이 없었다. 그가 쓴 글을 읽고 있노라면 머릿속에 절로 영상 이미지가 떠올라 마치 영화를 한 편 본 기분도 들었다. 그만큼 대단한 몰입감이었다.
천재란 이런 재능을 두고 칭하는 말이 아닐까.
김현영은 순간적으로 질투심도 들었으나 이내 순수한 마음으로 기뻐했다. 시간이 갈수록 쇠퇴해가는 문학계다. 이를 되살릴 수 있는 건 욕심 많은 뒷방 늙은이들이 아니었다. 바로 이처럼 재능 있는 후학이야말로 문학계의 흥복이 될 터였다.
김현영은 기대감을 담아 물었다.
“서 작가님, 4월 공모전에 참여하신다고 했지요?”
“예. 한 번 도전해보려고요.”
“이제 두 달도 안 남았는데 소재는 정하셨나요?”
일전에 대화를 나누었을 때는 명확한 소재가 없다고 하였다. 막연하게 순수문학을 공부해보고 싶다고 말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서주환은 자신감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정했습니다. 지금 말씀드릴까요?”
“으음…….”
“왜 그러세요?”
서주환은 의아한 눈으로 김현영을 바라봤다. 바로 말하라고 할 줄 알았는데 그녀는 앓는 소리를 내며 입을 달싹이기만 했다.
이내 김현영이 아쉬움 가득 담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나중에 완성되면 그때 볼게요. 그 전까지는 보여주지 말아요. 독자로서 한 번에 보고 싶거든요.”
“아하. 그 기분 저도 알죠. 지금 보면 스포일러 당하는 기분일 테니까요. 그럼 나중에 완성해서 보여드릴게요.”
“후후, 기대할게요. 그럼 오늘은 이제 가는 건가요?”
“그래야죠. 그럼… 아, 맞다.”
서주환은 방문을 열다 말고 김현영을 돌아봤다. 그리고 가방에서 그녀가 저자로 있는 ‘노인의 꿈’을 꺼내들며 말했다.
“여기 싸인 좀 부탁드려요, 작가님.”
“그건 괜찮은데… 싸인은 저번에 해드리지 않았나요?”
“하하. 그게, 이건 제 책이 아니거든요.”
서주환은 오매불망 김현영의 싸인을 기다리고 있을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웃었다. 언제쯤 가능하겠냐며 안 하던 연락까지 직접 하시던 할아버지였다.
*
김현영의 집을 나온 서주환은 카니발에 오르며 아쉽게 입맛을 다셨다.
‘출고까지 세 달 정도 걸린다고 했지?’
그나마도 이석찬의 지인을 통해 예약했기에 빨리 나오는 것이었다. 정석대로 진행했다면 최소 반 년 내지는 1년 가까이 걸렸을 터였다.
그때 옆에 앉은 우서윤이 그의 팔을 톡톡 두드렸다. 이제 함께 돌아가는 게 당연하게 됐다.
“왜?”
“공모전 준비 두 달 만에 할 수 있겠어?”
“응?”
“4월에 있는 신춘문예 말이야. 거기 나갈 거라면서. 그 대회 규모가 커서 노리고 있는 사람이 많거든.”
“그래?”
“응. 그래서 몇 년씩 준비하는 사람도 있어.”
“서윤이 너도 나간다고 했지?”
“맞아. 난 이미 퇴고까지 다 끝냈어. 일 년 가까이 준비했거든.”
그녀에 비하면 두 달은 무척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서주환은 내심 믿는 바가 있었다. 바로 ‘집중의 축복’이다. 집중력과 사고력을 올려주는 축복을 사용한다면 다른 사람과 비할 수 없는 효율을 뽑아낼 수 있었다.
서주환은 작게 웃으며 말했다.
“두 달 동안 죽어라고 써봐야지 뭐. 시간을 오래 들인다고 꼭 좋은 글이 나오는 건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만… 아무튼 대상은 내가 탈거야.”
“흐흐. 혹시 내가 대상 타도 원망하기 없기다?”
“우와, 재수 없어.”
우서윤이 혀를 차며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마냥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란 걸 알고 있기에 내심 납득은 됐다. 다름 아닌 그녀의 스승 김현영과 대등하게 대화를 나누는 작가가 아니던가. 솔직히 요 몇 주간 그를 보며 질투가 났더랬다.
‘그냥 말해주지 말까.’
우서윤은 내심 불공평한 재능이라며 투덜거리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김현영이 그녀에게 말했다. 질투하는 건 좋지만 시기하지는 말라고. 질투하는 마음을 자양분으로 삼으면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공모전 작품 제출할 때 필명 바꿔서 내.”
“응? 그건 왜?”
“지금 필명 그대로 내면 문단에 있는 심사위원들이 안 좋게 볼지도 몰라.”
“어… 그 사람들이 내 필명을 알까?”
“에휴. 너 네 생각보다 유명해. 작가들이랑 독자들 사이에서는 특히나 더.”
“그건 몰랐네. 웹소설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좀 먹히는 줄 알았는데.”
“쯧. 아무튼 알겠어?”
“그래. 필명 바꿔서 낼게.”
서주환은 그녀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리라. 그는 작게 웃으며 그녀를 돌아봤다.
“걱정해줘서 고맙다, 서윤아.”
“…흥.”
새침하게 고개를 돌리는 우서윤이었다.
서주환은 차를 몰며 낄낄 웃었다. 동시에 속으로는 준비해둔 이야깃거리를 떠올렸다.
‘얘 페티시가 문신이었지.’
Stigmatophilia(스티그마토필리아). 문신을 갖고 있는 상대에게 성욕을 느끼는 증후군으로 몸에 나 있는 흉터에도 반응을 한다.
서주환은 힐끗 우서윤을 바라보며 입에 시동을 걸었다.
[특수능력, ‘위스퍼’를 사용합니다.]
[상대방의 무의식에 말을 건넵니다.]
[상대방의 판단력을 저하시킵니다.]
[사용자의 말에 알 수 없는 신뢰가 깃듭니다.]
“서윤아, 너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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