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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페티시가 보여-346화 (346/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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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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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설 연휴

서정호의 얼굴에서 그늘과 독기가 사라졌다?

서주환은 생각을 조금 정정했다. 얼굴이 밝아진 건 맞는데 독하다 싶을 정도의 기세는 여전했던 것이다. 말하는 걸 듣고 있자니 지난 추석날 문규석에게 일방적으로 맞으면서도 깐죽대던 모습이 절로 떠올랐다.

“대학 어디 갈 거냐고? 형, 나 이미 1,2 학년 내신 다 날려먹었어. 졸업하면 바로 취업할 거야. 그냥 생각 없이 말하는 거 아니다? 지금 알바하고 있는 가게 사장님이 나 좋아하셔. 졸업하면 정직원으로 취업하래.”

“정호야, 대학 가고 싶은데 내신 때문에 그러는 거면 아직 안 늦었어. 올해 바로 합격하라는 게 아니라 도전은 해봐. 만약 떨어지면 재수하고. 돈은 형이 지원해줄 테니까.”

늦게 시작한 공부와 좋지 않은 형편 때문에 배움을 포기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가까운 친척 동생인데 지원 정도야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다.

단, 열심히 하겠다는 전제하에.

그러나 서정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형. 난 공부랑 안 맞아. 공부하기 싫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집중도 안 되고 머리에 남는 게 없어. 차라리 빨리 취업하고 돈 버는 게 나을 것 같아.”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는 바가 있는 듯했다.

서주환은 재차 설득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좀 조급해보여서 한 말이야. 나도 대학 안 나와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걱정 마, 형. 나 알아서 잘 할 수 있어. 아까도 지원해주겠다던가 말은 고마운데, 내 인생을 형한테 의지하면 안 되는 거잖아? 나 이제 걱정 안 해줘도 돼. 우리 집도 너무 도와줄 필요 없고.”

“?”

“지금 우리 부모님 나이가 벌써 좀 있으면 쉰이잖아. 그런데 곧 막내가 태어나고.”

서정호가 다부진 얼굴로 말했다.

“내가 키워야지. 내가 행복이 오빠고, 아빠야.”

서주환은 그런 서정호가 참 기특해 보였다. 한참 방황하던 녀석이 중심을 잡은 것에서 그치지 않고 제 나름대로 앞날까지 계획하고 있었으니 어찌 기특해 보이지 않을까. 아직 얼굴도 못 본 아이이건만 벌써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녀석. 대책 없이 싸움질이나 하고 다니던 때와는 눈빛부터 달랐다.

그런데 기특한 건 기특한 거고.

‘얘가 이때부터 이랬구나.’

회귀 전 부모님으로부터 건너들은 소식이 떠올랐다.

그는 서정호의 등을 짝 소리가 나도록 후려쳤다.

“끄아악! 뭐, 뭐하는 거야, 형!”

서정호가 눈물을 찔끔 흘리며 그를 바라봤다. 나름대로 멋있는 말을 한 것 같은데 왜 때린단 말인가.

서주환은 픽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어디 허세를 부리고 있어. 민증에 잉크도 안 말랐을 것 같은 게.”

“아니, 허세가 아니라.”

“내 말부터 들어봐.”

서주환은 살기를 약하게 피워 올려서 서정호의 말문을 막았다. 좀 미안하긴 한데, 이런 식으로 분위기를 만들면 상대가 말에 더 집중해주곤 했다.

“네가 부모님 생각하는 마음은 대견해. 그런데 인마, 나한테 의지하면 왜 안 되는데? 그리고 네가 왜 행복이 아빠야? 그건 작은 아버지 몫인데 왜 네가 감당하려고 해.”

“말이 그렇다는 얘기지. 우리 부모님 연세가 곧 오십이라니까?”

“그래서? 너희 부모님이 너한테 행복이 키워달래?”

“…그건 아니지만.”

“아닌데 왜 설레발이야. 너 행복이한테 인생 저당 잡혔냐? 뭐,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란 건 나도 아는데, 내 말은 행복이 키우겠다고 벌써부터 네 인생 갈아 넣을 필요는 없단 소리야. 나중에 누굴 원망하려고.”

“아무도 원망 안 할 건데.”

“이게 꼬치꼬치 따지고 있어. 혼날래?”

“…….”

서정호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서주환이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억울한 마음에 속마음이 살짝 삐져나왔다.

“꼰대…….”

“뭐, 인마?”

몇 살 차이도 나지 않는 서주환이 좀 꼰대처럼 보였다. 머리는 왜 계속 쓰다듬는단 말인가. 다 헝클어지게.

꼰대 서주환이 말했다.

“형이 돈 잘 버는 건 알지?”

“…….”

“대답.”

“…알아.”

새끼가 부루퉁하긴. 사내놈이 그래봐야 하나도 안 귀엽다. 그는 낄낄 웃으며 말을 이었다.

“형이 그냥 잘 버는 게 아니라 존나 잘 벌어.”

“…자랑하는 거야?”

“자랑이 아니라, 이런 형이 가까운 친척으로 있는 것도 네 복이라고. 도움을 주겠다는데 왜 네가 먼저 선을 그어?”

“계속 의지하는 건 너무 뻔뻔하니까…….”

“뻔뻔해지면 어때서.”

그가 괜히 꼰대처럼 설교를 하려드는 게 아니었다. 지 인생 지가 설계해서 살겠다는데 알 게 무언가. 그런데 그건 아주 남일 때 얘기고, 친척 동생 집안 사정을 뻔히 아는 입장에서는 자존심을 부리는 걸로밖에 안 보였다.

“네가 네 입으로 부모님 나이 드셔서 힘들다며. 몸도 편찮으시고. 그럼 네 기분에 좀 쪽팔려도 뻔뻔하게 도움을 구해야지, 인마. 도움 구할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고 옆에 먼저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있잖아.”

“…….”

“너희 아버지랑 어머니는 그런 말하시기 더 힘들어. 아무려면 저번에 내가 돈 드렸을 때도 작은 어머니가 먼저 도와달라고 하신 거겠냐? 내가 먼저 억지로 떠미니까 고맙다고 받으신 거지. 그리고 지금 형편이 살만했으면 두 분 성격에 내가 아무리 준다고 해봐야 안 받았어.”

“…….”

“그런데 그걸 왜 네가 먼저 거부하려고 하냐고. 뻔뻔하게 도와달라고 해도 모자랄 판에. 너희 부모님이 나한테 도움 구하기가 쉽겠냐, 아니면 네가 자존심 좀 접고 형한테 도와달라고 하는 게 쉽겠냐?”

“…내가 하는 게 쉬울 것 같아.”

서정호는 조금 시무룩한 목소리로 답했다.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서주환이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대학은 너 알아서 해. 아까도 말했지만 억지로 다니라는 얘긴 아니니까. 가게에서 일하는 것도 그게 좋으면 그렇게 하고.”

“…응.”

“뭐라고 하는 거 아니니까 기운 차리고. 꼭 대학이 아니더라도 하고 싶은 거 생기면 말해. 행복이 잘 키우겠다는 건 좋은데 그렇다고 네 인생은 생각 안 하면 되겠냐?”

거기까지 말한 서주환은 쩝 입맛을 다셨다. 그만 멈춰야하는데 말하다보니까 자꾸 잔소리가 나온다. 회귀 전 부모님께 건너들은 서정호의 미래를 대충이나마 알고 있어서 더욱 그랬다.

‘진짜 아빠라도 된 듯이 키웠다고 했었지. 연애도 안 하고 일만 하면서.’

곧 태어날 막내가 제 인생 그 자체였던 놈이다. 물론 본인이 행복하다면 그것도 괜찮겠지 하는 생각도 들긴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더 좋은 미래를 만들어줄 수 있는데 그냥 놔두지는 못하겠다.

‘하여간 이놈의 오지랖.’

이건 천성인지 도무지 바뀔 것 같지가 않았다.

그때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던 서정호가 어물어물 입을 열었다.

“형, 나 사실 하고 싶은 거 있긴 한데…….”

“하고 싶은 거? 뭔데?”

“그게…….”

서정호는 행복이의 뜻을 말할 때보다 더욱 벌게진 얼굴로 간신히 제 꿈을 말했다.

*

서만식은 눈앞에 무릎 꿇고 앉은 막내를 우묵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래, 지금이라도 정신 차렸다니까 다행이구나.”

“걱정 끼쳐드려서 죄송해요, 아버지.”

“나한테 죄송할 것 없다. 애미랑 정호한테 잘하거라.”

“그래야죠. 순애도 그렇지만 정호한테 특히 미안합니다. 아빠로서 면목이 없어요.”

사춘기였던 아들에게 몹쓸 짓을 했다. 보듬어주지는 못할망정 저가 힘든 걸 못 이겨서 아들에게 손찌검을 하고 말았으니 그게 죄스러워서 정신을 차린 후에도 쉽게 말을 못 붙였더랬다.

“알면 됐다. 네가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

서만식이 그 얘긴 그만하자며 손을 내저었다. 서재혁은 연로한 아버지에게 감사함과 죄송함을 담아 작게 고개를 숙였다.

“그보다 곧 태어날 아이 이름은 어떻게 했냐. 태명은 행복이라면서.”

“정호가 지은 태명입니다. 이름은 아직 못 지었어요.”

“다음 달이면 출산인데 아직까지 못 지으면 어떡해.”

“아버지가 지어주세요. 좋은 이름이 안 떠오르더라고요.”

“…내가?”

“네. 아이 엄마도 아버지가 지어주는 게 좋다고 했어요.”

서만식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곧 세상을 볼 아이에게 어떤 이름을 지어주는 게 좋을까. 한 번 무너질 뻔했던 막내아들의 가정을 다시금 이어준 귀한 아이다. 심사숙고하여 좋은 이름을 지어주는 게 마땅했다.

그렇게 눈을 감고 하나씩 뜻 있는 이름을 떠올릴 때였다.

“재혁아, 빨리 나와라! 제수씨가!”

서재필의 목소리였다. 다급히 문 밖으로 나가니 거실에 있던 김순애가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게 보였다.

*

서주환과 서정호는 전화를 받고 급히 집안으로 들어왔다. 남편의 손을 꼭 붙들고 신음하는 김순애가 보였다.

“엄마!”

서정호는 당황과 두려움 섞인 얼굴로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분명 출산일까지 한 달은 남았다고 했는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한편 서주환은 비교적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하고 있는 아버지를 돌아봤다.

“아버지, 구급차는요?”

“5분 전에 연락했다. 금방 올 거라는구나.”

“후우. 설인데 그나마 다행이네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서주환은 놀란 속을 달랬다. 연락을 받고 얼마나 놀랬던지.

‘회귀 전에도 이때 출산했었나?’

모르겠다. 당시에는 눈 감고 귀 막고 혼자 살던 때라 들은 게 없었다. 아니, 부모님이 말해줬는데 기억을 못하는 걸지도. 그때는 명절 모임에 참석하지도 않았으니.

어찌됐건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서주환은 거칠게 호흡하고 있는 김순애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제 엄마의 손을 붙잡고 있는 서정호의 손을 치워냈다. 서정호가 놀란 눈으로 그를 돌아본다.

“형?”

“있어봐.”

가타부타 설명하는 대신 김순애의 손을 잡고 ‘성스러운 손길’을 활성화시켰다. 현재 A+급이 된 스킬의 효과는 이전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중급에서 상급이 된 ‘치유의 손길’과 ‘안정’에서 ‘평온’으로 이름이 바뀐 스킬 효과를 최대한 끌어올렸다.

“작은 어머니, 좀 어떠세요?”

“하아, 하아. 조금, 나은 것 같아…….”

“배에 손 좀 올릴게요.”

여전 왼손을 붙잡은 채 다른 손을 조심스럽게 부푼 배 위로 올렸다.

‘행복아, 걱정마. 저번에도 무사히 태어났으니 이번에도 잘 나올 수 있을 거야. 엄마 너무 힘들게 하지 말자.’

손바닥을 통해 따듯한 기운을 흘려보냈다. 그게 아이에게도 전달이 되었을까. 어쩐지 둥글게 부푼 배의 움직임이 규칙적으로 바뀌었다. 동시에 김순애의 얼굴도 눈에 띄게 편해졌다.

모두가 놀란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는 가운데,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

시스템의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는 서주환이라지만 고통을 덜어주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구급차가 온 뒤 김순애는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현재 김순애는 정확히 35주 하고도 6일 째 임신 중이다. 그런데 36주 전에 아이를 출산하면 아이만 따로 대학 병원에 이송될 수도 있었다.

꼬박 이틀이 지났다.

김순애는 간헐적으로 진통을 느꼈고, 이틀 째 낮에 기어코 양수가 터졌다. 간신히 36주를 넘긴 날이었다.

다행히 행복이는 무사히 출산되었다. 덩치가 조금 작긴 하지만 검사결과 이상은 없었다.

“아이가 이렇게 빨리 나오는 거였어?”

“둘째라서 그래. 정호 너 낳을 때는 진통이 10시간도 훨씬 더 갔대.”

그토록 고통스러웠던 것과 달리 아이가 나오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30분도 채 되지 않았다.

신생아실에서 아이를 본 서정호가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되게 조그맣다.”

“빨리 태어나서 더 그럴 거야.”

“나 진짜로 오빠 됐네. 형, 오빠가 되면 어때?”

“어떠냐니…….”

서주환은 병실에서 김순애와 함께 있을 서주희를 떠올렸다. 그의 표정이 오묘하게 찌그러졌다. 좋은데 싫고, 싫은데 좋은, 귀찮아 죽겠는데 그렇다고 또 없으면 아쉬운 이 웬수 같은 걸 뭐라고 표현해야 되지?

서정호가 설레는 얼굴로 물었다.

“형도 좋았지?”

서주환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 어어. 그치, 뭐. 없는 것보단 있는 게 좋을 걸?”

“행복이 빨리 안아보고 싶다.”

“아직도 행복이야? 이름은?”

“할아버지가 지어주신다고 했는데 아직 못 정하셨나봐.”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하던가. 복도 끝에서 서만식이 걸어왔다. 서재필, 서재혁과 함께였다.

서만식이 유리창 너머를 보며 말했다.

“하람. 막내 이름은 서하람으로 하자꾸나.”

“서하람이요?”

서정호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무슨 뜻인가요, 할아버지?”

“‘하늘이 내린 소중한 사람’이란 뜻을 가진 순우리말이란다. 내가 보기에 하람이는 하늘이 너희 가족을 다시 이어주기 위해 내려준 아이 같구나.”

서만식이 서재혁과 서정호 부자를 보며 덧붙였다.

“소중하게 키우거라.”

“예, 아버지.”

“제가 잘 키울 거예요. 걱정 마세요, 할아버지.”

뒤이은 서정호의 말에 서재혁이 움찔하더니 아들을 보며 말했다.

“…내 딸이다.”

“제 동생이에요.”

지지 않고 말하는 서정호.

서주환은 얼른 둘 사이로 끼어들며 말했다.

“제 사촌동생이기도 하죠. 어쨌든 하람이가 건강하게 잘 컸으면 좋겠네요. 그쵸? 그치?”

그에 서하람을 돌아본 부자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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