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342화 (342/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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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오십 대는 무리다

정하연의 집을 나온 서주환은 약속장소로 향했다. 오늘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은 최미화를 통해 소개받은 작가다.

‘다행히다. 안 늦겠어.’

평소라면 30분은 빨리 나왔을 텐데 정하연과 장난을 치다보니 시간이 아슬아슬했다. 그래도 장소가 멀지 않아 늦지는 않을 듯했다.

‘빨리 뵙고 싶네.’

서주환은 힐끗 에코백 안에 있는 책을 확인했다. 얼마 전에 재독을 마친 ‘노년의 꿈’이란 소설책이다. 공교롭게도 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이 바로 이 소설을 쓴 김현영 작가였다.

‘설마 그 김현영 작가님일 줄은.’

상대방의 본명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는 걸 꺼린다던 최미화의 말이 단번에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김현영 작가는 한국 문학계의 엄청난 권위자다. 노년의 꿈이 영국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맨부커상을 받은 것만 해도 알 수 있다.

한데 그런 문학계의 대선배가 웹소설을 쓰고 있다? 그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작가들은 물론 책을 읽는 독자들 사이에서도 온갖 말이 튀어나올 터였다. 그가 얼마 전에 인터뷰한 기사와는 비교도 안 되는 관심을 받을 게 분명했다.

서주환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환상이 안 깨지면 좋겠는데.’

작품과 작가를 별개로 봐야한다지만 독자로서 작품에 대한 애정이 커지면 글을 쓴 작가에게도 관심을 갖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서주환에겐 김현영 작가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부디 김현영 작가가 편견 없이 글을 바라보는 사람이기를 바랐다. 혹시라도 웹소설이라고 우습게 보는 부류라면 실망이 클 것 같았다.

물론 직접 웹소설을 쓰고 있다고 하니 그럴 확률은 낮겠지만 말이다.

어느덧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카페 안으로 들어간 서주환은 한쪽에 자리를 잡으려다가 흠칫 고개를 돌렸다. 낯설지 않은 얼굴이 보였던 것이다. 에코백 안, 노년의 꿈 띠지에 나온 김현영 작가의 얼굴이었다.

서주환은 잰걸음으로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저, 김현영 작가님 맞으신가요?”

커피를 마시던 중년 여성이 고개를 들었다. 검은 생머리를 하고 있던 책 띠지의 사진과 달리 단발의 곱슬머리였지만 김현영 작가임을 알 수 있었다.

김현영은 눈가를 살짝 찡그리며 그를 바라보더니 이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네, 제가 김현영이에요. 서환 작가님.”

“안녕하세요, 작가님. 서주환입니다. 제가 기다리게 했네요.”

“아니에요. 제가 빨리 나온 걸요. 신경 쓰지 마세요.”

그리 말한 김현영 작가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만나 뵙게 돼서 너무 반가워요. 제가 서환 작가님 팬이거든요.”

“김현영 작가님께서요?”

“호호. 회귀자의 병영생활, 너무 재밌게 봤어요. 물론 다른 작품도 다 봤고요.”

“아, 감사합니다. 저도 작가님이 쓰신 작품들 모두 너무 재밌게 봤습니다.”

서주환은 얼떨떨한 기색으로 손을 맞잡았다. 그러고 보니 최미화가 말하길 단행본을 선물했음에도 소장용을 따로 구매할 정도라고 했던가. 덕분에 좋게 봐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김현영 작가에게 직접 팬이라는 말을 들으니 감흥이 남달랐다.

김현영이 입구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말씀드렸던 대로 장소를 옮겨도 될까요?”

“예, 물론이죠. 저도 조용한 곳이 좋습니다.”

“고마워요. 멀지 않으니 금방 도착할 거예요.”

서주환은 냉큼 고개를 끄덕이고 김현영의 뒤를 따라갔다.

집에 도착한 김현영이 작업실로 안내한 후 물었다.

“서 작가님은 커피랑 차 중에 뭐가 좋으세요?”

“아, 전 차로 부탁드립니다.”

“그럼 차로 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선생님, 그 전에 이거…….”

서주환은 미리 챙겨온 종이가방을 내밀었다.

김현영이 그를 받아들며 되물었다.

“이게 뭐에요?”

“모레가 설이잖아요. 곶감이랑 몸에 좋은 것들 좀 챙겨왔습니다.”

“빈손으로 오셔도 되는데 이런 걸 다…….”

“오늘 많이 가르쳐주셨으면 해서 뇌물 드리는 거예요.”

능청스럽게 눈을 찡긋이며 말하니 김현영도 부담을 내려놓고 웃었다.

“호호. 그런 거예요? 그럼 저도 배울 게 많으니까 혼자 먹으려고 숨겨둔 찻잎 좀 꺼내야 되겠네요. 좋은 게 있거든요.”

곧 방문이 닫히고 김현영이 나갔다.

서주환은 의자에 앉은 채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서 글을 쓰시는구나. 생각보다 나랑 크게 다르지 않네.’

괜히 대작가라는 생각에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았는데 의외로 간소한 환경이었다. 목재로 된 책상과 연식이 좀 돼 보이는 컴퓨터, 그리고 큼직한 책장에 꽂혀 있는 수많은 책들.

서주환은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 중 익숙한 제목을 발견했다.

빙의사부는 무림공적, 회귀자의 병영생활.

그가 쓴 소설의 제목이었다. 그 위아래와 옆으로는 다른 제목의 판타지, 무협, 로맨스 소설도 여러 권 진열되어있었다.

‘장르소설을 꽤 보시는구나.’

의외로 작가들 중에는 웹소설을 직접 쓰면서도 정작 읽지 않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김현영도 그런 타입은 아닐까 했는데 생각보다 스펙트럼이 넓은 듯했다.

서주환은 짧게 구경을 마치고 김현영의 상태창을 띄웠다.

<김현영>

성별: 여성

나이: 55살

키: 160cm

호감도: C

현재 성욕: E

몸무게: 53kg

페티시: -

보유 재능: 문장력(A+/B+), 인내(A/B), 사색(B+/B+), 그림(E+/A), 운동(F+/A)

보유 재능을 확인한 서주환의 눈이 놀람으로 부릅떠졌다.

‘뭐야, 이 기형적인 재능들은?’

문장력(A+/B+)과 인내(A/B) 재능이 잠재등급 한계치를 넘어섰다. 그것도 두 단계나. 반면 잠재력이 가장 높은 그림(E/A)과 운동(F+/A) 재능은 밑바닥을 기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잠재력을 뛰어넘는 걸 몇 번 보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경우는 처음이었다.

서주환은 어쩐지 소름이 돋았다. 기형적인 재능등급을 보고 있자니 김현영이란 사람이 걸어온 삶의 궤적이 어렴풋하게나마 느껴지는 듯했다.

‘시스템도 없이 이만큼 등급을 올리려면 얼마나 걸릴까. 진짜 글에 미쳐서 일생을 보내면 이렇게 되려나?’

상태창에 표기된 인내와 사색의 등급이 유독 높은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분명 온갖 유혹을 인내하고 글 하나에만 미쳐서 생각하는 나날을 보냈으리라. 제대로 대화를 나눠보기 전임에도 마음으로부터 존경심이 일었다.

“서 작가님?”

차를 들고 온 김현영이 다소 멍한 기색으로 앉아있는 그를 발견하고 의아한 목소리를 냈다. 그에 정신을 차린 서주환은 보다 정갈해진 몸짓으로 차를 받아들고 말했다.

“선생님, 싸인 하나만 해주실 수 있을까요?”

“싸인이요?”

“네. 아까 제 팬이라고 하셨죠? 사실 저도 선생님의 엄청난 팬이거든요. 여기에 싸인 부탁드려요.”

서주환은 에코백에 챙겨온 ‘노년의 꿈’을 꺼내들었다. 그를 본 김현영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가 호선을 그렸다.

*

언제나 즐거운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는 법이다.

서주환과 김현영은 글에 대해 쉼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현영은 그에게 웹소설에 관해 물어봤고, 서주환은 그녀에게 순수문학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차이가 있다지만 ‘글’이라는 분야에서 능력을 증명한 두 사람이다. 서로 다른 관점에서 이루어진 대화는 양쪽 모두에게 득을 주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서주환은 문득 질문했다.

“선배님은 언제부터 웹소설에 관심을 가지셨어요?”

“으음. 그리 오래 되진 않았어요.”

대화를 많이 나누어서일까.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하는 말씨가 편해졌다.

김현영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를 풀었다.

“사실 요 몇 년 간 글이 안 나왔어요. 그래서 기분전환 겸 이것저것 손을 대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요즘 청년들은 어떤 글을 많이 볼까하는 생각에 웹소설을 보게 되었고요.”

“그럼 누구한테 추천받고 그런 게 아니라 직접 찾아보신 거네요?”

“네. 참고로 처음 본 소설이 바로 회귀자의 병영생활이이에요.”

“아…….”

어쩐지 유독 회병생에 애정을 드러낸다 싶더니 이유가 있었다. 어떤 장르든 처음 접한 작품은 기억에 더욱 오래 남는 법이었다.

김현영은 책장에서 회귀자의 병영생활을 한 권 꺼내어 페이지를 넘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책으로 웹소설을 접해서 다행이네요. 다른 걸 먼저 봤으면 제 굳은 머리로는 웹소설이란 걸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거예요.”

김현영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회귀자의 병영생활’은 ‘회귀’란 소재 하나를 빼면 판타지적인 색채가 옅은 작품이다. 웹소설의 형식을 갖추고 썼지만 정작 웹소설 특유의 자극적인 맛이 강한 작품은 아니었다.

김현영이 말했다.

“어떻게 보면 우리네가 쓰는 것과 비슷하더라고요. 시대상을 반영하고 사회문제와 사람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뭐가 다르겠어요?”

“평가가 후하네요. 감사합니다.”

“호호. 그냥 하는 말 아니에요. 오늘 서 작가님한테 많이 배웠어요.”

“아이고,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부담스럽습니다. 배우긴 제가 배웠죠. 감도 못 잡고 있었는데 덕분에 많이 알아갑니다.”

“어머, 그럼 이제 감을 잡았다는 뜻인가요?”

“하하. 조금은요.”

서주환은 겸양하기보단 능청스럽게 웃었다.

그도 그럴 게 정말로 많이 배웠다. 김현영의 재능을 확인한 후 짧은 시간 동안 하나라도 더 흡수하기 위해 ‘집중의 축복’으로 집중력과 사고력을 높이고 ‘몽마신의 축복’으로 숙련도 효율을 가능한 최대치까지 끌어올렸다. 덕분에 막막했던 길이 조금은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서주환은 또렷한 시선으로 김현영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선생님, 제가 앞으로도 종종 찾아와도 될까요? 염치없지만 더 배우고 싶습니다.”

그 열정 가득한 눈길에 김현영은 작게 감탄했다. 동시에 속으로 비웃음을 흘렸다. 서주환이 아닌 문학계의 꼰대들을 향한 비웃음이었다.

‘이 청년이 당신들보다 훨씬 작가답네요.’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그리고 지금의 문학계는 그녀가 보기에 너무나 고이고 말았다. 결국 시대는 젊은 사람이 이끌어가야 하거늘 어찌 키워주지는 못할망정 무시하고 짓밟으려 드는 것인지.

김현영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서주환의 손을 맞잡았다.

“언제든지 환영이에요.”

“아, 감사합니다, 선생님.”

“아까도 말했지만 저도 배우는 게 많으니 절대 부담 갖지 말고 찾아오세요.”

그 인자한 미소에 어쩐지 강필춘이 생각났다. 이로써 그는 만화계와 문학계 양쪽에 엄청난 선배님을 두게 되었다.

새삼 인복이 있구나 싶은 마음에 입꼬리를 올릴 때였다.

[성(性)에 관한 강력한 행운이 개입합니다.]

흠칫. 메시지를 확인한 서주환의 미소가 딱딱하게 굳어졌다. 순간 정하연이 놀리던 게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 서른 살? 그럼 오십 대인데. 헉, 너 설마?!

미친. 아니지?

서주환은 떨리는 눈동자로 김현영의 상태창을 다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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