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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인방 파트를 오래 끌고 싶지 않아서 한 편에 엄청 써버렸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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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루시의 귀환
고작 웹소설에 필력을 논하나?
작가 입장에서 열이 받긴 해도 그리 신경 쓸 말은 아니었다. 웹소설이 무시 받는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이던가. 2016년에 세 배가 넘는 발전을 이루어 2,000억 원 대에 가까운 시장규모가 형성됐다지만, 그래봤자 아직은 그들만의 리그에 불과했다.
결국은 서브컬처. 대중적으로 자리 잡지 못한 하위문화.
그의 필명인 ‘서환’이나 대박을 터트린 작품들도 관심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야 뜨거운 감자였지 따지고 보면 웹소설이란 게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안다고 해도 기껏해야 2,000년대 초반에 특수문자가 난무했던 인터넷 소설을 떠올리지 않을까.
서주환은 픽 웃으며 의자걸이를 톡톡 두드렸다.
‘미래를 알고 있는 입장에선 답답한 소리지.’
인터뷰에서 말했던 것처럼 10년 후까지 갈 것도 없다. 작년 한 해 동안 세 배가 넘는 발전을 이룬 웹소설 시장은 2017년에도 기세를 이어간다. 1,800억 시장이 2,700억이 되고, 2020년에는 6,000억 규모에 도달한다. 얼마나 맛있어 보이는 시장이었으면 까까오나 네이비 같은 대기업들이 몇 백, 몇 천억씩 투자해서 덩치를 키웠겠는가. 현 시점만 해도 벌써 돈 냄새를 맡은 플랫폼들이 기성 작가들에게 억 단위의 고료를 보장하면서 제 플랫폼 키우기에 들어간 지 오래다.
‘애초에 순문학이랑 웹소설을 왜 비교해? 글을 쓰는 방식도 다르고 독자가 재미를 느끼는 포인트도 다른데.’
종목 자체가 다르지 않나. 발로 하는 스포츠라고 족구랑 축구를 비교하진 않는다. 같은 음악이라는 잣대로 클래식과 K팝의 우열을 가리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한 짓. 마찬가지로 웹소설과 순문학도 비교 대상이 아니라는 게 서주환의 생각이었다.
그의 생각에는 필력이란 말도 참 애매했다. 그들이 말하는 필력은 문장력을 말함인가, 아니면 독자가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쓰는 힘을 말함인가.
감탄스럽고 아름다운 문장을 써도 재미없는 글은 얼마든지 있다. 반면 문장이 개탄스러워도 다음 편을 읽고 싶게 만드는 글도 부지기수다. 웹소설 작가가 순문학에 비비지 못하는 것처럼, 순문학 작가가 이쪽 판에서 말아먹는 경우도 아주 많았다.
결국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은 ‘글’이라는 공통점이 있을 뿐 각기 다른 목적과 특성을 지닌 종목이다. 그는 뭐가 더 뛰어나다고 올려치기 하고, 뭐가 더 수준 낮네 하며 내려치기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재밌는 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웹소설이란 장르를 내려치기 하면서도 정작 이쪽 판으로 들어오는 작가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비단 순문학 작가들을 말하는 게 아니다. 방송국 PD부터 드라마 작가, 극작가, 각종 분야의 작가들은 물론 의사, 변호사, 검사 등 흔히 사짜 직업을 가진 사람들까지 시장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이곳에 발을 담근다. 그리고 일부 엄청난 재능을 가진 사람을 제외한 대부분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우습게만 보던 웹소설이란 장르를 다시 공부한다.
서주환은 발 빠르게 들어온 사람들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혜안이 있는 거지. 그가 아는 미래에서 웹소설은 OSMU(One source multi-use)의 근간이 되어 웹툰, 게임, 드라마, 애니메이션, 영화까지 2차, 3차로 쭉쭉 뻗어나가니까. 2025년을 넘어서는 조 단위 시장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해외에서는 K콘텐츠라고 불법 번역본이 흔하게 돌아다닐 정도니까.
‘석찬이 녀석이 괜히 플랫폼 만든다고 설치는 게 아니란 말이지.’
생각해 보면 이석찬도 아주 미친놈이다. 초기 자본금으로 300억, 거기에 조만간 다시 700억. 추이를 지켜보고 계속 투자할 생각으로 쟁여둔 돈이 또 2천 억. 가능성이 보인다고 억 소리가 우습게 느껴질 만큼 돈을 물 쓰듯 꼴아 박는 게 아주 무서울 지경이었다. 운 좋게 주식이랑 코인으로 딴 돈이라 잃어도 상관없다니. 미친놈, 그건 자기 돈이 아닌가?
서주환은 새삼 어이가 없어져서 비어져 나오는 헛웃음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포인트 벌려면 장르를 넓혀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좋은 생각입니다. 웹소설이랑은 또 다른 업적을 달성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겠지?”
서주환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책장에서 책을 한 권 꺼내들었다.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맨부커상을 받은 작품. 순문학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생각은 많아도 결국은 그가 좋아하는 책이다. 이쪽 판을 비하하는 일부가 마음에 안 들 뿐 그것과 별개로 잘 쓴 글은 몇 번이고 곱씹게 되곤 했다.
“역시 종이책이 좋아.”
오랜만에 책장을 하나씩 넘기며 보니 이게 또 감흥이 남달랐다. 이 맛 때문에 종이책 시장은 갈수록 좁아지면서도 끝까지 살아남는 거겠지.
팔락, 책장 넘기는 소리가 독서에 흥취를 더했다.
*
서주환은 며칠 간 방송을 꾸준히 이어갔다. 말하는 게 딱딱하다는 반응에 친구에게 대하듯 말투를 바꿨고, 후원금 리액션으로 ‘성우’ 재능과 ‘춤’ 재능을 이용해 성대모사와 간단한 10초 팝핀을 채택했다. 더불어 그림방송으로 이미지가 굳어지기 전에 게임, 노래 콘텐츠를 추가하여 다양성을 살렸다. 거기에 한수아와의 합방까지.
[업적, ‘시청자 4,000명’을 달성하여 4,000LP가 지급됩니다.]
덕분에 최대 시청자 수 4,000명을 달성했고 이제 방송을 켰다하면 평균 시청자 수 1,500명을 가볍게 유지했다.
[(영상 후원)꽃샤브 님이 5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환 님 목소리 너무 좋아요. 이 장면 성대모사 해주세요!
시청자가 요구한 건 한 달 전 방영이 끝난 사극 드라마의 호위무사가 여자 주인공을 놀리듯 말하며 은근한 고백을 하는 장면이었다.
영상을 본 서주환은 특수능력을 사용했다. 방송을 하다 보니 평소에 딱히 쓸 일 없던 능력을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었다.
[특수능력, ‘성대모사’가 활성화됩니다.]
“거 짚신도 짝이 있다는데 누군가는 데려가지 않겠소? 정 안 나타나면 찾아오시오. 내 한 짝 만들어 줄 테니.”
원본 목소리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좀 전의 영상과 매우 흡사한 톤과 분위기의 대사가 흘러나왔다.
- 으악! 존나 오글거려!
- 오글거리긴 한데 저건 볼 때마다 신기하네. 어떻게 즉석에서 하는 데 이렇게 똑같지?
- 저게 ㄹㅇ즉석에서 한 거라고 생각함? 미리 연습했을 것 같은데
- 개솔ㄴ 해달라고 하는 거 다 해주는데 수십 개를 미리 연습했다고?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 환 님 목소리 살살 녹는다
- 이게 귀르가즘이라는 건가요?
- 눈앞에서 목소리 듣고 싶다ㅠㅠㅠㅠ
- 아씨 아줌마들 주접 좀 그만 떨어. 보기 힘들다
[내로남불 님이 3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씹게이 같은 짓 그만하고 팝핀이나 보여주셈
준비해둔 BGM을 틀고 10초간 짧게 춤을 췄다. 의자에서 일어날 필요도 없이 어깨와 가슴을 튕기고 끊어치는 걸로 충분했다.
- 꺄악! 춤도 잘 춰! 왜 연예인 안 해요?
- 어깨 넓은 거 봐 츄릅
- 아 씨발, 이러려고 후원한 게 아닌데
- 걍 노래나 부르자ㅅㅂ
- 그것도 꺅꺅댈 걸. 걍 그림 방송ㄱㄱ
어느새 성비가 늘어난 여자 시청자들의 채팅에 남자 시청자들이 질색했다.
서주환도 내심 속이 니글거렸다. 칭찬해주는 건 좋지만 실시간으로 채팅을 보려니 항마력이 후달렸다.
“앞으로 걍 오우야만 치는 걸로 합시다. 예?”
잠시 반발이 있었다. 칭찬도 맘대로 못하냐고 재수 없다는 말이 몇몇 올라왔다.
알 게 뭐야. 솔직히 여자 시청자 다 나가도 상관없다. 그는 정도가 심한 몇 명에게 채팅금지를 먹인 후 인상을 팍 찌푸리며 말했다.
“아직도 불만 있는 사람? 아니면 앞으로 아예 리액션을 없애는 걸로?”
- ㅗㅜㅑ
- ㅗㅜㅑ
- ㅗㅜㅑ
- 진압 빠른 거 보소ㅋㅋㅋㅋ
“그렇지. 이게 크위치지. 문화 적응하라고.”
서주환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진심으로 주접 채팅을 쓰는 사람은 몇 없었다. 수가 적어도 워낙 눈에 띄었을 뿐이지.
- 웹소 씹덕 새끼들 현지화On
“그 씹덕 소설 쓰는 게 난데, 님도 밴 당하고 싶어요?”
- ㅎㅎ;; ㅈㅅ
이후 그림 몇 장을 그리고 방송종료 멘트를 던졌다.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그럼 다들 수고!”
이른 방종에 시청자들이 아우성을 쳤다.
- 뭔데! 오늘 왜 벌써 끔?
- 뭐야, 다음 컷 보여줘요. 이제 폭풍야스 해야 될 장면이자너!
마지막으로 그린 건 악마 포식자의 루시페르가 옷을 벗는 장면이었다. 옷이 흘러내리는 실루엣까지만 그리고 끝내려니 시청자들의 반발이 심했다.
서주환은 실실 약 올리듯 웃었다.
“여기서 그거까지 그리면 방송 정지 먹어요. 방금도 아슬아슬했구만 뭘.”
- 그럼 퍽시브에 올려줘!
- 한 번쯤 정지 먹는 것도 나쁘지 않지
- 그런 경험 한 번쯤 해야 성장하는 법임
“이 사람들이 자기 방송 아니라고. 아무튼 이제 약속 있어서 나가봐야 됨요. 수고!”
그 말 이후 서주환은 방송을 꺼버렸다.
화면이 까맣게 물든 방송방에서 시청자들이 채팅을 쳤다.
- 인싸 방장 에반데
- 방장 저 기만자쉑 저거 여자 만나러 가는 거네
- 가서 폭풍야스하겠지ㅅㅂ
- ♠서환: 신작 때문에 편집자 만나러 가는 거예요;;
마지막 채팅을 남긴 서주환은 내심 식은땀을 흘렸다.
무서운 사람들 같으니. 어떻게 안 거지?
*
한 차례 폭풍야스를 마친 후, 품에 안긴 최미화가 물었다.
“요즘 순문 쪽에 관심 있다면서?”
“석찬이가 말해줬어?”
“응. 사이트 이제 오픈인데 갑자기 순문 쓴다고 투덜대더라.”
“오해다, 그거? 신작도 쓰고 있는 중이야.”
해명 아닌 해명에 최미화의 눈은 오히려 날카로워졌다. 활자중독자 모드가 된 그녀가 따졌다.
“뭐야, 신작 썼으면 바로 보내줬어야지. 요즘 방송만 하길래 쉬고 있는 줄 알았더니.”
“윽. 안 그래도 오늘 보내주려고 했어. 다른 편집자들은 10화까진 쓰고 보내라고 한다던데 넌 왜 이렇게 급해? 누가 활자중독자 아니랄까봐.”
“흥. 네 건 3화만 봐도 느낌 오거든?”
“그거 칭찬 맞지? 왜 꾸중처럼 들리냐.”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니 최미화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고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하여간 소설 얘기만 나오면 눈 돌아가기는.
그녀는 이내 화제를 돌렸다.
“그럼 신작은 이따 바로 보내주고, 순문은 왜? 설마 그때 방송 채팅 보고 그런 건 아니지?”
“응? 너 그때 있었어?”
순문이 어쩌고 웹소가 어쩌고 분탕을 놓던 시청자는 바로 밴을 때렸다. 그걸 봤다면 첫 날 방송을 바로 봤다는 뜻이었다.
최미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터넷 기사보고 바로 방송 들어갔었거든.”
“왜 안 말했어?”
“몰래 지켜보는 맛이 있더라고.”
“음흉하긴. 이제 관음증까지 추가… 억, 꼬집지 마.”
“흥. 이유나 말해봐. 진짜 그 채팅 때문이야?”
서주환은 어색하게 눈꼬리를 긁적였다. 이걸 뭐라 말해야 되나. 포인트를 모으려는 목적이라고는 당연히 말 못한다.
“채팅 때문은 아니고, 그냥 좀 관심이 생겨서. 한 번 써보고 싶더라고.”
“진지한 거야?”
“나름?”
“그럼 나도 보여줘.”
“아직은 좀 그런데. 쓸수록 웹소설이랑 달라서 잘 안 써지더라고. 보여주기 민망해.”
“으음. 내가 피드백해주는 건… 좀 무리이려나? 순문도 많이 보긴 했지만…….”
최미화는 ‘안목’과 ‘속독’ 재능을 가진 뛰어난 편집자다. 편집자인 동시에 독자로서의 피드백 능력도 좋다. 하지만 웹소설과 순문학은 쓰는 결이 다른 만큼 피드백의 결도 다를 터. 그녀가 자세한 조언을 해주기엔 조금 무리가 있었다.
그때 최미화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아, 하고 소리를 냈다.
“주환아, 내가 작가님 한 분 소개해줄까?”
“작가님?”
“응. 내가 전에 담당했던 작가님 중에 출신이 좀 특이한 분이 있거든. 순문 쪽에 계시던… 아니, 계신 분이야. 지금도 그쪽 업계에서는 영향력 엄청나셔.”
“진짜? 누군데?”
“음. 그건 바로 밝히기가 좀 그래. 작가님이 비밀로 하고 싶어 해서. 동료분들도 자기가 웹소설 쓰는 거 모른대.”
“나한테도 못 알려줘?”
“주환이 네가 알려달라고 하면 알려줄 거지만…….”
별로 내키지는 않는단 표정이다.
서주환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의 욕심으로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최미화는 그 마음이 고마워서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대신 내가 슬쩍 물어볼게. 아직 계약은 안 했지만 그 작가님 이번에 우리 쪽에서 연재해볼 거라고 하셨거든. 네 팬이기도 하니까 아마 좋다고 하실 거야.”
“내 팬이라고?”
“응. 회병생을 특히 재밌게 봤다더라. 군상극을 웹소설 형식으로 재밌게 풀었다면서 엄청 좋아하셨어. 내가 단행본 드렸는데도 소장용이라면서 따로 한 부씩 더 구매하실 정도로.”
“감사하네. 꼭 한 번 뵙고 싶다.”
“아마 가능할 거야. 내가 오늘 바로 연락 드려볼게.”
서주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품안으로 끌어안았다.
“역시 미화 너밖에 없다.”
‘성우’ 재능까지 이용해서 꿀이 떨어질 듯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최미화가 감동받은 표정으로 말했다.
“뭐래? 존나 많으면서.”
“…….”
같잖다는 표정이었구나.
서주환은 차마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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