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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재능과 꿈, 그리고 행복
- 아! 깔끔한 리버블로우! 경기 양상이 역전됩니다! 몰아치는 장덕자 선수! 대부분의 공격을 몸으로 버티면서 응수합니다!
- 바로 저거죠! 장덕자 선수의 호쾌한 인파이팅 스타일! 이전보다 날카로움은 떨어졌지만 더 묵직해졌어요! 맷집으로 버티고 힘으로 찍어 누릅니다! 여성 선수한테 이런 표현은 실례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야말로 멧돼지가 따로 없네요!
해설자의 말대로 장덕자의 모습은 흡사 멧돼지와 같았다. 솜주먹 따위 피하기도 귀찮다는 듯 어깨와 가드로 버티고, 그도 안 되면 도리어 이마를 들이밀어버린다. 대신 너도 한 대 맞으라는 듯 뻗은 주먹이 연신 상대 선수의 몸을 두드렸다.
한편 서주환은 내심 안도의 숨을 내쉬며 설핏 미소 지었다. 그가 보기엔 이제야 장덕자의 제대로 된 실력이 나오고 있었다.
‘아닌 척하면서 꽤 긴장했었나 보네.’
예정에 없었던 너무 이른 복귀. 무뎌진 감각으로 인한 스스로에 대한 불신. 오랜만에 케이지 위에서 느낀 중압감.
그녀를 얽매고 있던 여러 요소가 본래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작용했다. 약식이라지만 장덕자를 직접 상대해본 적 있는 그이기에 그녀가 어느 정도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긴장이 풀린 장덕자는 노련했다. 과연 감각이 떨어진 게 맞나 싶을 정도의 움직임. 멧돼지처럼 상대의 공격을 피하지도 않고 맞치던 그녀가 돌연 스탠딩 상태에서 주짓수 기술을 사용했다.
- 다스초크! 제대로 들어갔습니다!
이번에도 마주 치고 받을 줄 알았던 상대는 안일하게 주먹을 뻗었고, 모든 게 유도한 거였다는 듯 장덕자의 손이 상대의 팔 안쪽을 자연스럽게 붙잡았다. 동시에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목 안쪽으로 팔을 집어넣어 휘감고 그대로 두 손을 마주잡아 아래로 찍어 누른다.
쿠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상대가 무릎을 꿇었다. 이어서 넘어진 상대를 굴리고 사이드로 돌아가서 조르기에 들어간다. 모든 게 한 순간에 일어났다.
- 빠져나오지 못하면 끝이에요! 장덕자 선수 아주 노련합니다! 그러고 보니 장덕자 선수가 주짓수에도 일가견이 있었죠?
- 맞습니다! 이 선수, 데뷔했을 적에도 주짓수와 킥복싱이 베이스였어요! 지금 건 완전히 노리고 들어간 겁니다!
- 아, 말씀 드리는 순간, 경기 끝났습니다! 1라운드 4분 15초! 장덕자 선수, 멋지게 승리를 거두고 복귀를 선언합니다!
승부가 갈렸다.
-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짧지만 강렬했던 시합에 관중들이 함성을 질렀다. 호쾌한 인파이팅과 탐색전 없이 이루어진 난타전 승부는 관중들의 환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짝짝짝!
서주환도 씩 웃으며 박수를 쳤다. 약속을 지키라는 듯 그를 향해 주먹을 내밀고 있는 장덕자를 마주 보면서였다.
한편 가브리엘라는 얼이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먼 훗날도 아니고 근미래의 예지가 빗나가?”
서주환은 픽 웃으며 그녀의 등을 두드렸다.
“뭔 상관이야? 어쨌든 이겼으면 됐지. 너도 덕자가 이겼으면 좋겠다면서?”
“그, 그야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그건 바람이었을 뿐 이룰 수는 없을 거라고 여겼다. 한데 결과는 뒤집히고 말았으니.
가브리엘라는 문득 서주환을 쳐다보고 물었다.
“주환, 당신이 뭔가 했죠?”
“엉?”
“아까 뭐라고 했잖아요. 그때부터 덕자의 움직임이 다른 사람처럼 변했어요. 주환이 뭔가 한 거죠?”
가브리엘라는 새삼 카드가 그를 지칭했던 바를 떠올렸다.
수레바퀴를 움직이는 자(A wheel-mover).
그는 운명을 변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그 자신은 물론 그와 관련된 사람들까지 거대한 수레바퀴의 움직임에 휘말린다.
서주환은 내심 그녀의 날카로움에 감탄하다가 픽 웃었다. 말해줘서 뭐 하겠는가.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거늘.
“내가 하긴 뭘 해? 그냥 지지 말라고 응원한 거지.”
“…….”
가브리엘라는 입을 달싹였지만 무어라 말 할 수는 없었다. 그가 무언가 했다고 생각한 건 단순한 감이었을 뿐 어떤 근거가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문득 서주환이 손가락을 들어 가리켰다.
“아무튼 저거 좀 봐.”
“?”
가브리엘라는 서주환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케이지 위.
장덕자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피에 물든 얼굴이었지만 누구보다 기뻐 보이는 얼굴이기도 했다. 그녀의 입에서 토해진 짐승 같은 포효가 생기를 가득 담고 울려 퍼졌다.
“졸라 행복해 보이지 않아?”
서주환이 못 말리겠다는 듯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행복해… 보이네요. 무척.”
가브리엘라는 멍하니 장덕자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어쩐지 확신했다. 저 여자는 재능의 유무와 관계없이, 앞으로 어떤 힘든 경기를 치루더라도 행복해할 것이라고.
*
경기가 끝난 후, 서주환과 가브리엘라는 장덕자와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오래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장덕자의 상태가 좋지 못했다.
“으이그, 머리를 좀 적당히 맞아야지. 멧돼지 같은 게.”
근접전에서 난타전을 벌이는 방식은 몸에 부담을 많이 준다. 계속 그런 식으로 싸워댔다간 격투기 선수들이 으레 그렇듯 어디 한 군데 망가질 게 뻔했다. 아무래도 종종 만날 때마다 ‘성스러운 손길’로 회복을 시켜줘야 할 듯했다.
가브리엘라가 묘한 눈으로 그를 보며 물었다.
“걱정되나 봐요?”
“당연히 걱정되지. 친군데.”
“친구라… 부럽네요.”
“별 게 다 부럽다. 너 친구 없어?”
“네.”
“어…?”
사주환이 당황하건 말건 가브리엘라는 덤덤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전 가문 내에서 교육 받느라 친구를 만들 기회가 없었거든요.”
“학교도 안 다녔어?”
“다니긴 했어요. 그것도 명문 학교에. 차라리 일반 학교로 갔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가브리엘라가 씁쓸하게 웃었다. 무언가 사정이 있어 보였다.
그녀는 이내 고개를 털며 말했다.
“아무튼 굳이 친구라고 한다면 파비오 정도겠네요. 뭐, 파비오는 저를 딸처럼 생각하는 모양이지만요. 일개 경호원이 건방지게.”
말과 달리 가브리엘라는 부드럽게 웃었다. 그녀에게 있어서도 파비오는 친구임과 동시에 아버지나 마찬가지였다.
서주환은 잠시 눈꼬리를 긁적이다가 말했다.
“덕자는 널 친구라고 생각할 걸?”
가브리엘라의 고개가 갸웃 기울어졌다.
“몇 번 보지도 않았는데요?”
“걔가 워낙 단순하거든. 아까 시합 끝나고도 와줘서 고맙다고 막 껴안았잖아. 걘 자기랑 안면 트면 다 친구야.”
“푸훗. 그런가요? 그럼 저도 친구가 한 명 생겼네요.”
“뭐하면 몇 명 더 소개시켜줘? 이전에 본 애들도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지난 열흘간 가브리엘라의 생각을 바꿔보겠다고 지인을 여럿 소개해 주었다. 찬란한 백금발과 아름다운 외모의 가브리엘라와 친해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가브리엘라는 고개를 저었다.
“전 내일이면 돌아가는 걸요.”
“돌아가서도 연락하면 되지.”
“제 생각해주는 거예요? 갑자기 왜 친절해지셨을까.”
“뭐래. 네가 좀 친절하게 대해달라며?”
가브리엘라는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고맙네요. 그런데 전 친구를 소개받기 보단…….”
말끝을 흐린 그녀가 샐쭉한 눈으로 그를 흘겼다.
“주환이랑 같이 있고 싶은데요. 그, 능력 회복해야 되니까.”
“참나.”
서주환은 큭큭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힘들다더니, 엉큼한 아가씨였네.”
“…주환에게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아요.”
입술을 삐죽이며 말하는 가브리엘라.
그녀가 살며시 손을 잡아왔다.
*
격렬했던 밤이 지나가고, 다시 아침이 밝았다.
가브리엘라는 그가 베개라도 되는 것처럼 끌어안고 칭얼댔다.
“주환, 오 분만 더요…….”
서주환은 이불을 들추고 가브리엘라의 엉덩이를 찰싹 두드렸다. 가브리엘라가 눈을 치켜뜨며 소리쳤다.
“아파요!”
“일어나. 어제는 금방 끝내줬잖아.”
“흥. 난 금방 끝내달라고 한 적 없거든요?”
“얼씨구. 요게 사정 봐줬더니.”
“사정은 주환이 한 거고요.”
“이제 섹드립도 하냐? 너 일부러 자극하는 거지?”
어이없다는 말하자 가브리엘라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흥분했어요? 그럼 한 번은 해도 되는데.”
“어쭈. 이제 내숭도 안 떤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에게 나쁜 놈이 되길 종용하더니 이제는 대놓고 자극을 한다. 이미 가면이나 내숭 따윈 내던져버린 지 오래였다.
가브리엘라가 손을 뻗어 그를 더듬으며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야 이제 끝인 걸요. 좀 있으면 돌아가는데 아쉬움은 남기지 말아야 하지 않겠어요?”
묘한 말이다. 단순히 앞으로 그와 섹스를 하지 못할 게 아쉽다는 걸까.
서주환은 지긋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몸을 뒤집었다. 순식간에 그녀의 위로 올라가 다리를 잡고 벌린다. 그녀가 깜짝 놀란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주, 주환?”
“하자면서?”
“아니, 그래도 너무 갑작스럽잖아요. 지금 바로 넣으면 아플 것 같은데요…….”
“안 아프게 할게.”
“저번에도 그렇게 거짓말을 해놓고서는.”
“이번엔 진짜야.”
서주환은 아이템, ‘미끌미끌 러브젤’을 사용해서 가브리엘라의 음부에 발랐다. 그에 메말랐던 음부가 금세 촉촉해지며 자지를 받아들일 준비를 마쳤다. 귀두를 입구에 맞추고 꾸욱 누르려 하자, 간밤에 잔뜩 싸질렀던 정액이 삐질 새어나왔다.
쯔르르륵!
“아…!”
가브리엘라가 작게 입을 벌렸다. 고작 이틀이었지만 밀도 높은 행위에 벌서 몸이 익숙해진 듯했다. 아침발기로 단단해진 물건이 들어오자 배 안쪽에서부터 간질거리는 감각이 올라왔다.
찌걱찌걱찌걱!
서주환은 허리를 흔들며 그녀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마주앉은 자세에서 몸을 끌어안고 작게 허리를 튕겼다.
가브리엘라가 마주 몸을 끌어안으며 귀에 속삭였다.
“하아, 으응! 흑. 조금, 아쉽네요.”
“자극이 잘 안 와? 자세 바꿔줘?”
“아니요. 자세는 좋은데, 그냥, 하아!”
“그냥?”
“앞으로 주환이랑 못할 걸 생각하니까, 아, 으응! 그게 좀, 아쉬워서… 흑!”
가브리엘라의 팔에 힘이 점점 더 들어갔다. 등을 할퀼 듯 꽉 끌어안은 팔이 자극을 버티지 못하고 가늘게 떨린다. 몸 안 깊숙이 들어와 찌르는 감각이 어느덧 완전히 익숙해졌다. 낯설었던 그 감각이 온전한 성적 쾌락으로 다가왔다.
울컥! 정이 토해진다. 뱃속을 가득 채운 그것이 충만한 만족감을 선사했다.
“하아…….”
가브리엘라는 나른하게 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정말로 끝이구나. 불현 듯 몰려오는 아쉬움과 상실감에 이 순간이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이다. 이제 가문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
서주환은 운전대를 잡고 차를 몰았다. 보조석에는 가브리엘라가 탔고, 뒤에는 파비오가 탄 기묘한 구도였다.
파비오가 부담스럽다는 듯 말했다.
“제가 운전한다. 주환과 아가씨, 뒤에 탄다.”
“됐어요, 파비오. 제가 운전하고 싶어서 그래요.”
“그럼 아가씨만이라도 뒤에 탄다.”
“옮기기 귀찮아. 그냥 거기 있어.”
가브리엘라가 뒤에 앉은 파비오를 찌릿 노려봤다. 괜히 나서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뜻이었다.
“끄응. 아가씨가 변했다.”
*
공항에 도착했다.
가브리엘라는 괜히 볼 것도 없는 공항을 둘러보는 대신 서주환과 이야기를 나눴다.
“주환, 여기 제 개인번호예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줘요. 큰 빚을 졌으니까 제 여력이 닿는 한 뭐든지 도와드릴게요.”
“글쎄다. 내가 네 도움이 필요할 일이 있을까 모르겠네.”
해외에 나가서 어떤 사건이 생긴다면 모를까 국내에서 가브리엘라의 도움을 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어지간한 건 자력으로 해결하던가, 정 힘들면 이석찬이나 백강호의 도움을 받을 테지.
가브리엘라는 조금 당황한 얼굴로 다시 말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일단 번호는…….”
“받아둘게. 딱히 도움 필요 없어도 연락해도 되지?”
가브리엘라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녀가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이에요! 언제든지 좋아요.”
“잊을 수도 있어. 내가 먼저 연락을 하고 지내는 편은 아니라서.”
“그, 그렇군요…….”
가브리엘라의 얼굴이 조금 시무룩해졌다. 이제 떠날 때가 되어서 그런지 감정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났다.
서주환은 픽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네가 먼저 연락해. 오는 연락은 잘 받는 편이니까.”
“아…….”
먼저 연락할 생각은 못했다는 듯 입을 벌리는 가브리엘라.
한편에서 둘을 지켜보던 파비오는 고개를 내저었다. 어쩌다 우리 아가씨가 저렇게 됐지. 그 도도하고 오만했던 모습을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서주환이 한 마디를 할 때 마다 일희일비하는 게 안타까웠다. 남자는 저렇게 다루는 게 아닌데.
파비오의 근심어린 마음과 달리 가브리엘라는 활짝 웃었다.
“네. 먼저 연락할게요.”
“그건 그렇고, 한국에는 또 언제 올 거야?”
“어, 오면… 만나줄 건가요?”
“그게 뭐 어렵다고. 그리고 어차피 나 만나러 와야 할 걸?”
“네?”
서주환은 씩 웃었다.
가브리엘라가 하나 착각하고 있는 게 있는데, 그녀의 능력은 ‘회복’이 된 거지 ‘치료’가 된 게 아니었다.
애초에 그가 지닌 ‘성교사’는 버프를 주는 능력이다. 치유에 목적을 두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녀의 능력이 회복된 것은 단지 능력의 하락세보다 상승폭을 높였기 때문이었다.
달리 말해, 버프 효과가 끊어지는 순간 다시 하락할 일만 남았다. 결국 그녀의 능력은 다시금 힘을 잃어갈 터였다.
“…그게 정말인가요?”
설명을 들은 가브리엘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모두 회복되었다고만 생각했는데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상태라니 사기라도 당한 기분이었다. 한편으로는 이전의 점괘가 이해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주환을 반려로 맞아야 한다는 뜻이 이것 때문이었어.’
결혼을 한다면 능력의 하락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때는 항시 충전 상태일 테니까.
하지만 그는 결혼하기를 거부했다.
가브리엘라의 얼굴 위로 근심이 어렸다. 이제 와서 왜 미리 말해주지 않았냐고 따져봐야 해결 되는 건 없었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그때 서주환이 말했다.
“무슨 걱정이야? 다시 한국에 오면 되는데.”
“아…….”
“올 구실로는 충분하지?”
“하, 하하… 주환은 진짜 나쁜 사람이네요.”
“뭘, 알고 있었잖아?”
씩 웃으며 말하는 게 어찌 그리 얄미워 보이던지.
그때 비행기 탑승을 위한 안내 방송이 울렸다. 가브리엘라가 타야 할 비행기였다.
가브리엘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주환을 바라봤다. 짐짓 눈을 치켜뜨면서였다.
“정말, 어쩔 수 없네요. 다시 오는 수밖에.”
서주환도 픽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래, 이 년아. 능력 충전하려면 올 때 미리 연락해라.”
“흥. 처음부터 끝까지 협박만 하네요. 정말이지, 나쁜…….”
투정부리듯 말하는 가브리엘라의 보라색 눈동자에 물기가 어렸다.
서주환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책임 못 진다고 했다.”
“…그럼 잘 해주질 말던가요.”
그리 말한 가브리엘라가 이내 그를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Ti amo(사랑해요).”
“…이탈리아어라서 뭔 소린지 모르겠네.”
어설픈 능청에 그녀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애초에 그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었다. 그럼에도 사랑한다 말한 건 아쉬움을 남기기 싫은 마음에서일 뿐.
가브리엘라는 다시 한국어로 말했다.
“우리, 친구부터 시작하는 건 어떨까요?”
서주환은 익숙한 멘트에 픽 웃어버리고 말았다.
“친구 좋지.”
그녀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떠올랐다.
“또 올게요, 주환.”
“그래, 조심해서 가.”
가브리엘라가 뒤돌아 걸어갔다. 대기하고 있던 파비오도 작게 고개를 숙이고 그녀를 뒤따랐다.
서주환은 작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공항을 나섰다.
그렇게 길을 나서는데, 푸른 아침 하늘 위로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띠링!
[욕망 퀘스트, ‘가브리엘라 데 메디치를 정복하라!’의 보상으로 300,000LP가 지급됩니다.]
[업적, ‘수레바퀴를 움직이는 자’를 달성하여 100,000LP가 지급됩니다.]
- 치지지지직.
돌연 들리는 기계음.
[욕망 에너지가 충족되었습니다.]
뒤이어진 음성,
[관제인격에 이상을 감지합니다.]
[도우미 시스템에 이상을 감지합니다.]
[시스템에 이상을 감지…….]
[…….]
요란한 시스템 음성에 당황을 드러내기도 전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잠잠해진 시스템.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녀왔습니다, 주인님.]
루시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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