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333화 (333/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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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독자님들 모두 건강하고 즐거운 주말 되시기를 바랍니다 :D

재능과 꿈, 그리고 행복

서주환은 느지막한 아침에 눈을 떴다. 평소였으면 새벽 내 일어나 벌써 운동을 다녀왔을 텐데, 전날의 격렬한 행위는 아무리 그라도 조금은 여파가 있었다.

“그래도 상쾌하네.”

오랜만에 숙면을 취했기 때문일까. 막 눈을 떴음에도 정신이 또렷했다. 한동안 ‘수면’ 재능을 믿고 몸을 혹사 했었는데, 단잠 한 번으로 그간의 피로가 모두 회복되었다.

‘어디 보자.’

시스템 창을 열고 아침 일과를 시작했다. 우선은 ‘랜덤 아이템 뽑기 2회’를 누른다. 평소처럼 ‘아로마 향초’나 ‘달콤한 사탕’ 따위의 별 메리트 없는 아이템이 나왔다.

쯧, 혀를 한 번 차고 상태창을 연다. 어차피 오늘의 메인은 따로 있었다.

재능, 매혹(F/A+).

어젯밤 가브리엘라에게 얻은 재능이다. 곧바로 포인트를 투자했다.

[21,500LP를 사용합니다.]

[재능, ‘매혹’의 등급이 A로 상승했습니다.]

이어서 특수능력을 뽑았다.

[10,000LP를 사용합니다.]

[특수능력, ‘위스퍼(Whisper)’를 습득했습니다.]

‘속삭임?’

위스퍼, 직역하면 속삭임 혹은 귓속말을 뜻한다.

매혹 재능과 속삭임이 무슨 상관이지?

특수능력의 설명창을 열었다.

【위스퍼】

▶ 효과1: 상대방의 무의식에 말을 건넵니다.

▶ 효과2: 상대방의 판단력을 저하시킵니다.

▶ 효과3: 사용자의 말에 알 수 없는 신뢰가 깃듭니다.

※ 위스퍼의 효과는 상대가 지닌 호감도 등급에 따라 달라집니다.

서주환은 작게 탄성을 흘렸다.

무의식에 말을 속삭임으로써 상대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고 제 말의 신뢰도를 높이는 능력. 속삭임이 매혹과 무슨 상관인가 했는데 설명을 보니 이만큼 적절한 것도 없어 보였다.

서주환은 옆에 누워 있는 여자를 돌아보았다.

작게 새근거리며 잠들어 있는 백금발의 미녀.

문득 가브리엘라에게 홀릴 뻔했던 때가 떠올랐다. 그녀와의 저녁식사. 그 날의 그는 평소답지 않게 다소 흐린 정신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더랬다. 위스퍼가 매혹 재능의 한 갈래인 만큼 그녀에게도 상대의 정신을 홀리는 힘이 있는 게 이상하지 않았다.

‘사용하기에 따라선… 엄청나겠는데.’

설득과 협상이 필요한 자리라면 이만큼 강력한 재능도 없을 듯했다. 조금 과장하면 ‘마인드 컨트롤’이라고 볼 수도 있고, 요즘 흔히 쓰는 말로는 ‘가스라이팅’에 최적화된 능력이었다.

능력 확인을 마친 서주환은 아직 잠들어 있는 가브리엘라를 흔들었다.

“가브리엘라, 일어나. 아침이야.”

“으응…?”

가브리엘라가 웅얼대며 몸을 뒤척였다. 아예 이불을 끌어가서는 등을 보이고 돌아눕는다.

서주환은 다시 가브리엘라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리 흔들어도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깨우기를 몇 분.

“가브리엘라, 그만 좀 일어…….”

찰싹!

순간 가브리엘라의 손이 날아들었다.

그녀가 옅게 뜬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시끄러워.”

그리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눈을 감고 새근거리는 가브리엘라.

“…이 년이?”

서주환은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멀쩡한 정신으로 한 행동은 아니고 잠버릇이 고약한 모양이다. 하긴, 어제 그 고생을 했으니 쉽게 일어나지 못하는 걸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가브리엘라가 한국에 머무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 오후 내 약속을 생각하면 슬슬 일어나야 할 시간이었다.

‘위스퍼.’

능력을 시험해볼 겸 아직 잠들어 있는 가브리엘라에게 위스퍼를 사용해보기로 했다.

[특수능력, 위스퍼(Whisper)를 사용합니다.]

[상대방의 무의식에 직접 목소리를 속삭입니다.]

“일어나, 가브리엘라.”

묘한 울림을 담은 목소리가 진동한다.

순간 가브리엘라의 몸이 움찔 들썩였다.

“…주환?”

아무리 흔들어도 깨지 않던 그녀가 부름 한 번에 바로 눈을 떴다.

‘효과 좋네.’

서주환은 씩 웃으며 다시 말했다.

“당장 안 일어나면 넣어버린다?”

“!”

벌떡 일어난 가브리엘라가 이불로 몸을 가리며 뒤로 물러났다. 벽 쪽에 몸을 기댄 그녀는 서주환을 괴물 보듯 하며 입술을 파들파들 떨었다.

“이, 일어나자마자 무슨 소리에요? 어제 그렇게나 해놓고!”

“가브리엘라, 이거 보여?”

“네?”

갑자기 손을 앞으로 내미는 서주환.

무언가에 맞았는지 손등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가 비죽 입술을 틀어 올리며 말한다.

“좀 아프네?”

“…설마 제가 했어요?”

“응. 깨우니까 시끄럽다면서 때리더라고.”

“헉. 미안해요, 주환. 절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그래? 난 이제 볼 일 다 봤으니 쓸모없어져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어.”

“그, 그럴 리가요! 오해예요, 주환!”

가브리엘라가 당황한 얼굴로 양손을 앞으로 내밀며 손사래 쳤다. 덕분에 이불이 흘러내리며 뽀얀 가슴이 드러났다.

꿀꺽.

서주환은 침을 삼켰다. 환하게 불이 들어온 방에서 드러난 그녀의 나신이 참 아름다워 보였다.

‘넣는다는 건 농담이었는데.’

간밤의 한 걸로는 부족했나. 피가 아래로 쏠렸다.

그때 뭔가를 발견한 가브리엘라의 눈꼬리가 잘게 떨렸다.

“…주환, 아니죠? 어제 그렇게나 했잖아요. 네?”

그녀의 시선은 어느새 우뚝 솟은 그것을 보고 있었다.

서주환은 씩 웃으며 속삭였다.

“하자.”

*

서주환은 아침부터 한바탕 뒹군 후 다짐했다.

‘남용하지는 말자.’

필요하면 적절히 사용하되, 무분별하게 남용하지는 않기로 했다. 특히 함께하고 있는 여자들에게는 말이다.

‘잘못하면 이전 꼴 나겠어.’

정하연과 헤어졌을 때를 말함이다. 당시 그는 ‘중독’과 ‘복종심’을 부여하는 아이템의 효과를 남용하는 바람에 정하연과 관계가 틀어졌었다. 그런 경험은 한 번으로 족했다.

물론 기껏 얻은 능력을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가 무섭다는 이유로 묵힐 생각은 없었다.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무척 유용한 능력이었으니.

“주환은 괴물이에요. 나중에 당신과 결혼할 여자가 불쌍해요.”

“한 번 더 하고 싶다고?”

“…….”

“농담이야.”

“…저한테 좀 친절하게 대해주면 안 돼요? 툭하면 협박이나 하고.”

가브리엘라가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댔다. 만남부터 꼬여버리는 바람에 여태 저자세로 나갔지만, 이제 그건 지난 일이 아닌가. 내일이면 헤어질 텐데 그 전에 꼬인 관계를 풀고 싶었다.

서주환은 눈꼬리를 긁적이며 그녀를 바라봤다. 자신이 생각해도 그녀에게는 좀 막 대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 애초에 위스퍼를 시험한 것도 다른 여자들이었더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다.

그는 가브리엘라의 머리를 헝클이며 말했다.

“미안해.”

“…저한테 사과한 거예요?”

그녀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뭐, 확실히 내가 좀 심했으니까. 네가 싫어서 그런 건 아니야. 예뻐서 그랬던 거지.”

“…그런 거면 됐어요. 저도 싫기만 한 건 아니었고.”

가브리엘라가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서주환은 씩 웃으며 그녀에게 속삭였다.

“그럼 좋았어?”

“조, 좋다고 한 적은 없거든요.”

“음. 그럼 오늘 밤은 안 하는 걸로?”

이미 그녀의 능력은 전부 회복되었다. 간밤의 행위를 통해 적용된 ‘성교사’의 버프 효과는 A에 이른 호감도까지 포함하여 총 300%. 단번에 그녀의 능력을 S까지 회복시켰으니 더 이상 그와 몸을 섞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가브리엘라는 눈살을 찌푸렸다.

“미안하다고 했으면서 또 협박을…….”

“응?”

“제 능력 회복을 가지고 협박하는 거잖아요. 주환은 제가 매달려야 직성이 풀리죠?”

“아니, 그게 아니라…”

서주환은 오해를 풀려고 했지만 가브리엘라가 더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제발 저랑 해주세요, 주환. 오늘 밤에도, 내일 아침에도. 그래야 회복을 할 수 있으니까.”

서주환은 헛웃음을 지었다.

‘아하. 내가 나쁜 놈이 돼라?’

점술 재능의 등급 하락을 민감하게 느꼈던 그녀가 아닌가. 그런 그녀가 본인의 능력이 모두 회복되었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

즉, 그녀는 지금 섹스를 해야만 하는 구실을 찾고 있었다. 그에게 나쁜 놈이 되기를 종용하며.

서주환은 이내 픽 웃으며 말했다.

“그래, 능력 회복하고 싶으면 말 잘 들어. 알겠냐?”

“…어쩔 수 없네요, 정말.”

새침하게 말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큭큭거리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섹스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

저녁 무렵.

“입장권 보여주세요.”

“여기요.”

“네. 자리로 가시면 됩니다.”

서주환과 가브리엘라는 건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

가브리엘라가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수준이 별로네요.”

“그야 뭐, 그리 큰 매치는 아니니까. 그래도 이 정도면 사람이 꽤 많은 편이야.”

“이게요?”

“어. 한국 격투기 시장 사정이 별로 좋은 편은 아니거든.”

서주환은 주변을 둘러봤다. 곳곳에 빈자리가 있지만 사람들이 꽤 많았다.

‘생각했던 것보단 사람이 좀 있네.’

국내 격투계는 가난하다.

본격적으로 이름을 날리기 전에는 돈 한 푼 제대로 벌어가지 못해 겸업을 뛰는 선수들이 대부분일 정도다.

여성 격투기의 사정은 더 안 좋다. 관심도가 떨어지는 만큼 지원도 광고도 더 적게 붙는다. 입장권을 사고 들어온 관중들 중에는 남성 파이터들의 시합만 보고 일어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분위기가 좀 달랐다. 메인매치를 비롯한 대부분의 경기가 끝났음에도 많은 사람이 남았다. 집에 가려던 사람들도 격투 팬들의 태도를 보고 다시금 자리 앉았다.

격투 팬들은 익숙한 이름을 언급했다.

“장덕자 선수, 진짜 다시 돌아왔구나.”

“호쾌한 인파이팅이 꽤 볼만 했는데 말이야.”

“분명 저번 달에 부산 UFC에서 김아랑 선수가 지목했었지?”

“어. 그래서 복귀할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네.”

“복귀전이 너무 이른데… 이길 수 있을까?”

“힘들 걸. 그래도 타이틀전까지 했던 선수니까 혹시 모르지만.”

잠시 후, 장덕자가 케이지 위로 올라갔다.

경기가 시작된다.

서주환과 가브리엘라는 제일 앞줄에서 경기를 관람했다. 가브리엘라가 조금은 안타까운 어조로 말했다.

“정해진 결과를 보는 건 힘들어요.”

일전에 가브리엘라는 장덕자의 경기를 점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힘든 시합이 될 거라고 돌려 말했지만, 사실상 패배가 확정되어 있었다.

서주환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

“미래는 얼마든지 바뀌어.”

“…운명은 정해져 있어요.”

“처음에 만났을 때 한 말이랑은 다르네.”

“네?”

의아함에 그를 보는 가브리엘라.

서주환은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 경기를 지켜보며 말했다.

“운명은 언제든 바뀔 수 있고, 수만 가지 갈래가 있다. 가변적인 길을 확정 짓는 것은 사람의 의지이니, 심지를 굳건히 해라. 타로카페에서 네가 했던 말이야.”

“그건…….”

단지 점성술사로서 으레 하는 말 중 하나다. 그렇다고 거짓은 아니지만, 먼 미래에나 해당되는 말이었다.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을 갑자기 바꾸는 것은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

가브리엘라는 말없이 다시 장덕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녀도 장덕자가 이기기를 바랐다.

“아!”

순간 경기장 안에 탄성이 울려다.

주먹과 주먹의 교환.

빠악! 거친 타격음과 함께 장덕자의 몸이 흔들렸다.

*

장덕자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후우, 후욱.”

몇 번의 공방 교환으로 알 수 있었다. 확실히 현역으로 뛸 때와 비교할 수 없이 감각이 무뎌졌다.

‘옛날 같았으면…….’

조금 전의 공격 따위, 어설픈 맞교환이 아니라 카운터를 먹여줄 수 있었다. 눈으로 보지 못해도 본능적으로 피했을 터였다.

하지만 지난 몇 년의 휴식은 파이터로서의 감각을 앗아갔다. 체력을 비롯한 피지컬은 올라갔지만 파이터로서는 더 약해졌다.

지그시 이를 깨무는데, 상대 선수가 씩 웃으며 말한다.

“저 덕자 선수님 팬이에요. 그런데, 생각보다 실망이네요.”

“…….”

건방지긴. 옛날 같았으면 넌 벌써 케이지 바닥에 구르고 있었어.

장덕자는 입속에 맴도는 말을 씹어 삼켰다. 옛날이야 어쨌건 중요한 건 현재였다. 새삼 케이지를 떠났던 시간이 후회됐다.

“갑니다.”

슉, 하고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주먹이 다가왔다.

장덕자는 간신히 그를 피하고 왼손을 뻗었다. 하지만 손이 닿기도 전에 장딴지에서 격통이 느껴졌다.

짜아악!

잽으로 시선을 끈 뒤 로우킥.

간단한 페인트에 보기 좋게 걸려들었다.

“큭!”

다음 공격을 대비해 몸을 웅크리며 가드를 단단히 세웠다.

짜악!

다시 한 번 들어오는 로우킥.

피해야 하는데 반응하지 못했다.

‘씨발. 이러려고 복귀한 게 아닌데!’

1라운드 내내 유효타 한 번 적중시키지 못하고 맞고만 있다. 이렇게 제대로 된 공격 한 번 못하고 끝낼 수는 없었다.

장덕자는 격통으로 떨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어쨌든 피지컬은 이전보다 올라갔다. 한 대만 제대로 먹이면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다.

“덕자야 안 된다! 1라운드는 지켜 보라니까!”

코치진의 외침.

쩌억!

크로스 카운터. 내지른 오른팔 위로 교차한 왼손이 턱을 정통으로 후려쳤다. 순간 의식이 깜빡이며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휘청.

케이지 바닥이 얼굴까지 솟아올랐다. 아니, 몸이 케이지 바닥으로 추락한다.

‘아…….’

내가 이거밖에 안 됐나. 명색이 타이틀전까지 치렀던 몸인데 초보적인 실수의 연발이라니. 역시 준비기간이 너무 부족했다. 실전 감각을 더 끌어올렸어야 했는데.

‘안 돼!’

우뚝. 쓰러지려는 몸의 중심을 잡았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 다행히 이전보다 좋아진 몸은 충격을 버텨냈다.

하지만 상대는 몸을 가눌 시간을 주지 않았다. 후속타가 날아들었다. 주먹이 가까워진다. 아직 채 몸을 다 일으키기도 전. 이번에 맞으면 끝장이다.

그때, 머릿속에 익숙한 목소리가 울렸다.

- 약속 기억하지? 지면 앞으로 안 하기로 한 거.

장덕자는 눈을 부릅뜨며 몸을 앞으로 숙였다.

더킹. 주먹이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간다.

‘못 해? 그건 안 되지!’

이어서 허리를 비틀며 주먹을 올려 친다.

그림으로 그린 듯 깔끔한 리버블로우.

콰드득!

기분 좋은 손맛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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