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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페티시가 보여-322화 (322/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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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라 데 메디치

“가브리엘라, 요즘 점술은 좀 어때?”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다.

가브리엘라는 재빨리 표정을 정돈하고 그를 바라봤다.

질문의 의도가 뭐지? 무언가 알고서 물어본 건가?

‘이 남자 설마…?’

그럴 리 없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가문 내에도 그녀의 충복인 파비오밖에 없으니까. 능력의 하락은 철저히 비밀에 붙였다.

하지만 가브리엘라는 다시 한 번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을 받고 몸을 떨었다.

저 비죽이 올라간 입꼬리. 모든 걸 알고 있다는 웃음.

애초에 맥락 없는 질문이 나올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것도 순간적으로 능력의 하락을 느낀 지금 이 순간에.

그녀는 떨리는 눈가를 감추지 못하고 되물었다.

“무슨… 뜻이죠?”

“그건 네가 제일 잘 알고 있지 않아?”

“…….”

“남편감을 찾는 게 아니라 의사를 찾는 거였네.”

확신에 찬 말.

“당신 어떻게…!”

가브리엘라의 표정이 무너졌다. 그녀는 더 이상 평정을 유지하지 못했다. 몇 년 동안 꽁꽁 숨겨온 비밀이 새어나갔다는 사실에 온갖 상념이 검은 파도가 되어 몰아쳤다.

그녀는 붉은 입술을 꾹 깨물며 물었다.

“운성그룹…인가요? 이석찬? 아니면 정하연?”

“허. 뒷조사를 참 열심히 했네?”

서주환이 진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처음 옆집으로 찾아왔을 때만 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일. 당연히 접근해올 줄 알았으니 그 대단한 가문의 정보력으로 수소문을 했거니 했다.

한데 그의 여자가 다섯 명임을 언급하더니, 이제 운성그룹에 이어서 이석찬은 물론 다른 성씨를 사용하고 있는 정하연까지 입에 담는다. 그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 대한 뒷조사까지 했다는 뜻이었다.

“…….”

가브리엘라의 입매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이 순간 주도권이 상대에게 완전히 넘어갔음을 직감했다.

‘카페에서부터 조심했어야 했는데……!’

사실, 애초부터 주도권은 저쪽에 있었다.

타로카페에서 당신과의 결혼을 원하노라고 섣부르게 본심을 드러낸 일. 너무나 애타는 마음으로 찾아다녔기에, 카드가 점지해준 반려였기에 찾기만 한다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말았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무마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오히려 설득만 잘 한다면 자신이 키워낼 수 있다는 희망적인 미래마저 그렸다.

훗날에는 어떨지 몰라도 그는 아직 평범한 20대 청년이니까. 권력과 명예는 물론 쌓은 부조차 먼지만한 크기에 불과했으니까. 그것은 그에 대해 조사를 할수록 명확해졌고, 조심스럽게 접근한다면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어리석은 그녀는 이번에도 일을 그르쳤다.

- 멍청한 년.

문득 가문의 경쟁자들이 비웃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 반쪽짜리 쭉정이.

능력을 개화하기 전 수없이 들었던 말들.

가치 없는 쓰레기를 바라보는 눈빛들.

‘아니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잘근, 붉은 입술이 잇사이로 말려들어간다.

가브리엘라는 흔들리는 눈을 들어 서주환을 바라봤다.

“나는… 이… 있어요.”

“뭐?”

서주환의 눈이 커졌다.

*

고개를 든 가브리엘라가 말했다.

“나는… 아니, 저는 당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이 여자 지금 뭐라고 하는 거지.

“하하.”

어이없음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가브리엘라는 어느덧 당황이 떠올랐던 표정을 갈무리했다. 그리고 다시 태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는 누구보다 당신의 능력을 잘 서포트할 수 있어요. 운성? 대단한 기업이죠. 하지만 메디치에 비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돈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메디치 가문에는 오랜 세월 다져온 힘이 있습니다. 부와 권력, 그리고 명예. 월스트리트는 물론 정계에도 힘을 쓸 수 있죠. 당신이 무엇을 하든 최고의 결과로 이끌 수 있어요.”

숨도 쉬지 않고 말하는 가브리엘라.

사과가 아닌 제안. 자신의 가치를 제시한다.

아까 했던 말의 도돌이표였다.

“주환은 엄청난 능력을 갖고 있어요. 당신의 생각 이상으로요.”

“가브리엘라.”

“세상은 소수의 천재가 이끌죠. 바로 우리처럼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요. 메디치는 그 가능성을 최대치까지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

쉴 새 없이 말하는 가브리엘라는 척 보기에도 정상이 아니었다. 앞서 연기를 하던 것과 달리 조급함이 드러났다.

“지금 웹소설을 쓰고 있지요? 최근에는 플랫폼을 만들고 있고. 제가 지원해드리겠습니다.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그만.”

그리고 기어코 선을 넘는다.

“저는 이런데, 다른 사람들은 어떤가요? 주환의 여자들은 할 수 있나요? 아뇨, 못하겠죠. 그들은 평범한 사람이니까… 저야말로 당신에게 어울리는 가치를…….”

“야!”

쾅, 하고 내리친 탁자가 요동쳤다. 찻잔이 탁자 밑으로 떨어지고, 날카로운 소음을 내며 조각났다.

이 여자가 지금 뭐라는 건가.

서주환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가브리엘라를 노려봤다. 그의 감정에 반응한 특수능력이 살기를 일으켰다.

“허억.”

즉시, 가브리엘라의 얼굴에 두려움이란 감정이 떠오르며 끊임없이 달싹이던 입술이 누군가 틀어막은 듯 다물렸다.

그는 얼어붙은 가브리엘라를 노려보며 말했다.

“너, 아까부터 뭐라고 하는 거냐?”

“…….”

“네가 뭔데 내 사람들 가치를 판단해. 무슨 자격으로.”

살기를 정면에서 받은 가브리엘라는 숫제 하얀 물감이라도 들이부은 듯 창백하게 질린 얼굴이 되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입을 열었다.

“저와…….”

잘게 떨린 입술이 간신히 말을 만들어낸다.

“저와, 결혼해주세요.”

“하하…….”

이걸 뭐라고 해야 되나. 이쯤 되면 대단하다고 인정을 해야 할까?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런지 풀려나온 살기마저 흩어질 지경이었다.

서주환은 이내, 비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네 목적은 결혼이 아니잖아. 점술 능력의 회복이지.”

“…….”

“좋아, 해줄게.”

“…네?”

공포에 질려 있던 가브리엘라의 눈이 놀람으로 부릅떠졌다. 잘못 들은 건가? 모든 걸 망쳤다고 생각했는데.

서주환이 다시 말했다.

“뭘 못들은 척이야? 해준다고.”

“저, 저와 결혼해주시는…….”

“미친 년. 그거 말고.”

“그럼…?”

“네 능력 회복시켜준다고. 그딴 거, 결혼 따위 하지 않아도 가능하거든.”

“……!”

예상치 못한 말에 경악하는 가브리엘라.

서주환은 싱긋 웃으며 말하곤 뒤에 서 있는 사람을 돌아봤다.

“그러니까 그거 치우지? 줘 터지기 싫으면.”

칼을 겨눈 파비오가 긴장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

준비하고 있어.

그리 말을 남긴 서주환이 제 집으로 돌아갔다. 잠시 후 그는 다시 찾아올 터였다.

가브리엘라는 그의 말대로 준비했다. 욕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틀고, 몸을 꼼꼼히 씻었다. 옷을 입고 거실로 나오자 그녀의 경호원인 파비오 칸나바로가 대기하고 있는 게 보였다.

그녀는 나직이 입술을 열었다. 모국어인 이탈리아어가 흘러나왔다.

“아직까지 안 나가고 뭐했어?”

“…….”

“근처 호텔이라도 가서 자도록 해. 돈은 나중에 경비처리 하고.”

“제가 돈이 부족하겠습니까.”

“그럼 얼른 나가.”

파비오는 집을 나가는 대신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괜찮겠습니까?”

“안 괜찮으면?”

“…….”

“난 옛날로 돌아가는 게 죽기보다 싫어. 오히려 그 남자가 자비를 베풀어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중이야.”

“그렇습니까.”

“그래. 그러니까 어서 나가. 설마 내 신음소리를 듣고 싶은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딸의 신음을 듣고 싶은 아빠가 어디 있겠습니까?”

“누가 아빠야. 이제 서른다섯이면서.”

“뭐, 그런 마음이라는 겁니다.”

파비오가 씩 웃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가브리엘라는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내저었다.

“빨리 사라져. 건방진 경호원.”

“주인이 나가라면 가야지요. 부디 그 남자 물건이 작길 바랍니다.”

“당장 꺼져!”

베개가 날아들었다.

*

서주환은 힐끗, 멀어지는 남자를 확인했다.

‘쓸 데 없는 말을.’

그는 이내 가브리엘라의 집으로 들어갔다. 이미 비밀번호를 들었기에 그녀가 문을 열어줄 필요는 없었다.

‘이번 퀘스트는 포기하자.’

집안으로 들어가며 마음을 굳혔다.

30만 LP와 거기서 딸려올 욕망 에너지가 아깝긴 했으나 도저히 가브리엘라의 호감도를 A+까지 올릴 생각이 안 들었다.

남자는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욕정을 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도 마음이 있을 때나 해당되는 얘기였다. 아니면 차라리 아무 감정도 없거나. 결국 사람인 이상 불쾌한 감정을 갖고서 하는 섹스가 유쾌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대충 조각이나 얻고 끝내야겠어.’

떡을 치고 S급 재능 조각을 얻는다. 그리고 가브리엘라는 적당히 떨어트릴 생각이었다.

능력을 회복시켜주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다. 일단은 시간을 들여서라도 확실하게 회복시켜줄 셈이었다. 그는 약속을 깰 생각이 없었다.

다만.

‘나중 일은 내 알 바 아니지.’

그가 하는 건 능력의 ‘회복’이지 ‘치료’가 아니다. 애초에 ‘성교사(性敎師)’의 효과는 치료가 아니라 버프에 있다.

달리 말하면, 일단 하락한 능력을 회복시키더라도 훗날 다시 떨어질 수 있다는 뜻이었다.

미래를 떠올린 서주환의 입매가 비웃음을 띠었다.

정상으로 돌아온 줄 알았던 능력이 다시 떨어진다면 실망이 클 테지. 절망이란 본디 희망이 있어야 더 극적으로 다가오는 법이니까.

그는 순순히 그녀가 원하는 걸 이뤄줄 생각이 없었다.

‘지가 뭔데 내 사람들을 아랫급으로 봐.’

그 자신에 대한 뒷조사는 불쾌해도 참아 줄 수 있다. 어차피 그도 퀘스트와 S급 재능 조각이라는 목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친구들은 아니다. 특히 여자들을 뒷조사하고 깔보는 발언을 한 건 곱게 넘어갈 수가 없었다.

서주환은 쯧 혀를 차며 내키지 않는 동작으로 방문을 열었다.

“…오셨어요?”

저녁 식사 때보다 가벼운 복장의 가브리엘라가 그를 맞았다. 벗기기 쉬운 옷차림이다.

서주환은 말없이 침대 쪽으로 걸어가며 상의를 내던졌다. 이어서 바지를 벗으며, 멀뚱멀뚱 서 있는 그녀에게 말했다.

“안 벗고 뭐해?”

“아…….”

“얼빠진 소리 내지 말고 각자 할 것만 하자. 나라고 좋아서 하는 건 아니니까.”

차가운 목소리.

가브리엘라는 등 뒤로 숨긴 손을 작게 떨었다.

좋아서 하는 게 아니다. 저게 무슨 뜻일까. 이건 정말 능력을 회복시키기 위한 수단일 뿐인 건가?

알 수 없었다. 그저 남자가 그리 설명했기에 따랐을 뿐. 이미 연이은 실수로 주도권이 넘어간 상황에서 그녀는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냐는 등의 구체적인 질문을 할 수 없었다. 단지 몸이 목적이라고 해도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따를 수밖에.

“네.”

가브리엘라는 나직이 답하고 그의 말을 따라 옷을 벗었다. 하얀 박스티와 헐렁한 바지가 내려가고 속옷차림이 드러났다.

이후 잠시간의 머뭇거림.

서주환은 이미 옷을 모두 벗고선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뭐해? 다 벗어.”

“…….”

가브리엘라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반쯤 혼이 나간 듯 주절대던 아까와는 달리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다.

이내 브래지어와 팬티가 툭, 바닥으로 떨어졌다.

“올라와.”

툭툭. 침대 모서리를 두드리는 손.

그 손짓이 마치 개를 부르는 명령으로 다가왔다.

가브리엘라는 침대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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