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321화 (32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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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글쟁이 운달입니다.

먼저 기다려주신 독자님들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우선 전반적인 스토리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습니다. (요소마다 변화가 많긴 한데, 줄기는 유지했다는 뜻입니다. 수정 이전의 대화문이나 서술을 가져다 쓴 부분도 있고 그 앞뒤로, 혹은 중간에 추가한 부분이 많습니다).

주로 인물 간의 대화, 심리 변화, 행동 양상에 따른 이유, 서술로 뭉개고 넘어간 느낌이 들었던 디테일을 수정 및 추가 했으며 너무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은 삭제했습니다.

또 난잡했던 부분을 많이 정리하여 가독성이 좋아졌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건 글을 쓴 제 생각일 뿐 독자로서의 시선을 온전히 알 수는 없겠지요.

부디 독자님들이 보기에 이전보다 괜찮아졌다고 느끼게 되기를 바래봅니다.

감사합니다.

운달 드림.

가브리엘라 데 메디치

서주환은 흥미로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이번엔 무례하게 안 나와서 다행이네.’

가브리엘라는 이전과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때는 다소 오만하고 고압적인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다른 사람인 것처럼 예의를 보였다.

“아, 그때요? 한국어를 속성으로 배워서 존대라는 걸 잘 몰랐어요. 그래서 말투가 이상했나 봐요.”

이렇듯 상대가 예의를 갖추어 나오는데 그가 냉랭히 대할 이유가 없었다.

한편 가브리엘라는 그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자 내심 미소를 지었다. 역시 이 남자, 자신이 찾아올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눈치가 빠르네.’

마음에 든다. 갑자기 찾아왔음에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하는 모습 또한 플러스 요인이었다.

“그때는 좀 갑작스러웠죠?”

“하하. 뜬금없이 결혼을 하자기에 당황하긴 했어요. 기세가 워낙 대단해서 얼른 도망쳤죠.”

“미안해요. 그땐 너무 흥분했나 봐요. 운명의 상대를 드디어 만나서.”

운명의 상대라.

이 여자 꽤 오그라드는 단어를 쓴다.

서주환은 조금 민망하다는 듯 웃었다.

“운명의 상대라면, 저요?”

“네. 주환이야말로 내가 찾던 사람이 분명해요.”

“그건 그때 말했던 결혼 상대로써?”

“흐흠. 그렇게 들으니 새삼 부끄럽네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가브리엘라.

일정 수준 이상의 아름다움은 인종을 가리지 않는다던가.

입가에 작게 미소를 물고 그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 마치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도 보였다.

그녀는 이내 곱게 눈을 내리깔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카드가 당신을 가리켰거든요. 나는 반려를 찾기 위해 이탈리아에서 왔어요.”

거기까지 말한 가브리엘라가 급히 손을 내저으며 말을 덧붙였다.

“바, 바로 결혼하자고 하는 건 아니에요. 그럼 주환도 당황스럽겠죠.”

첫 만남에는 오만하고 도도한 아가씨로만 보였는데 성숙한 외모와 달리 귀여운 면이 있었다.

서주환은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당황스럽긴 해요. 전 결혼 생각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럼, 우리 친구부터 시작하면 어떨까요?”

가브리엘라는 그리 말하며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만들었다. 수많은 남성들이 사랑에 빠졌던 미소다.

“나는 주환이 좋아요. 믿을지 모르지만, 첫 눈에 반했다고 생각해요. 아니나 다를까 주환은 제 운명이었어요.”

“…….”

“난 당장 결혼해도 좋지만, 주환에겐 갑작스러울 테니 나를 알아갈 시간이 필요하겠죠? 나도 주환을 더 알고 싶고요.”

“하하…….”

서주환은 대답 대신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그녀를 바라봤다.

‘뭐지?’

이 여자, 왜 이렇게까지 적극적인 걸까. 먼저 들이대올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건 상정했던 범주를 넘었다.

대체 퀘스트에 나온 본 목적이란 게 무엇이기에.

그녀의 눈과 행동에서 어쩐지 조급함이 엿보였다.

“음…….”

서주환은 쉽게 답하지 않았다. 짐짓 복잡한 표정으로 으음,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가브리엘라를 살폈다.

사실 그녀가 말한 ‘친구’ 관계가 되는 건 무척 쉬운 일이다. 어지간한 탑배우도 압살하는 비주얼의 백금발 미녀. 남자로서 그런 여자와 친구가 되는 게 싫을 리 있겠는가. 심지어 저가 먼저 좋아한다면서 들이대는데.

그게 문제다. 너무 적극적인 거.

‘이거 잘못하면 진짜 코 꿰이겠는데.’

방심하고 있으면 아차 하는 순간 이탈리아로 끌려가서 메디치 가문의 데릴사위가 될 것만 같다.

당연하지만 서주환은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여기서 맺은 인연이 몇인데 이탈리아로 간단 말인가. 뜬금없이 나타난 가브리엘라와 결혼할 거라면 진즉에 그의 여자들을 데리고 중동으로 떴을 것이다.

그런 서주환의 모습이 어떻게 보였던 걸까.

가만히 답을 기다리던 가브리엘라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내가 친구로 부족한가요?”

불안하게 떨리는 눈동자.

서주환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에요. 가브리엘라가 부족할 리가요.”

그 말에 가브리엘라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그럼 우리 친구하는 거죠?”

“그게…….”

서주환은 말끝을 흐렸다. 쉽게 그렇다고 하기가 참 애매했다. 정말 자칫하다간 이탈리아로 끌려갈 것 같았다.

그 반응에 가브리엘라의 아미가 미세하게 일그러지며 안타까운 표정을 자아낸다.

“주화안, 나랑 친구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하하… 일반적인 친구라면 어렵지 않죠. 그냥 마음 맞으면 친구하는 건데, 그게 뭐가 어렵겠어요.”

“그런데 왜요? 나는 당장 결혼하자고 하는 게 아니에요.”

“그, 가브리엘라는 그냥 친구를 하자는 게 아니니까요.”

서주환은 그녀의 입술이 열리기 전에 얼른 말을 이었다. 가만히 두면 페이스에 휘말릴 것 같았다.

“친구, 될 수 있죠. 그런데 가브리엘라는 결혼을 전제로 생각하는 거잖아요? 딱 친구로 끝낼 수 있겠어요? 미리 말하지만 난 결혼은 물론이고 누구랑 사귈 생각이 없어요.”

사실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 욕망 퀘스트는 둘째 치고 S급 재능 조각 생각하면 일단 모르는 척 친구가 되는 게 이득이었다. 이후에야 어찌됐건 일단 분위기를 타서 관계를 갖고, S급 재능 조각을 얻은 후에, 적당히 얼버무리고 나 몰라라 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이 여잔 할 거 다 해놓고 모르는 척 하면 마피아라도 끌고 올 것 같단 말이지.’

그 메디치 가문이 아니던가. 괜히 재능 조각 하나 얻으려다가 골로 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쉽게 포기하고 싶진 않은데…….

그때 가브리엘라가 애타는 어조로 말했다.

“주환, 혹시 제가 싫어요?”

“네? 에이, 그럴 리가요.”

“지금도 주환의 주변에는 여자가 많잖아요. 부담 갖지 말고 나도 그 중 한 명으로 생각해주면 돼요.”

“…아, 저번에 카드로 점괘를 봤다고 했죠?”

생각해 보면 가브리엘라는 그에게 여자가 많은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아마 그것도 점괘를 통해 알았겠지. 일전에 타로카페에서도 자신과 결혼을 하되 다른 여자를 만나도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부드럽게 돌려 말하려다 보니 깜빡 잊고 말았다.

가브리엘라의 미성은 계속 이어졌다.

“다섯이나 여섯이나 큰 차이 없잖아요? 주환과 나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예요.”

“…….”

서주환은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뭐가 거슬리는 거지? 듣기 좋은 목소리가 이상하게 거슬렸다.

그때 머릿속에서 익숙한 시스템 음성이 울린다.

[페로몬(Rank:A)가 발동합니다.]

[상대의 매혹(A/A+)을 떨쳐냅니다.]

“……!”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섯 명이나 여섯 명이나 큰 차이가 없다니. 어떻게 숫자를 정확히 알지?

정하연, 유지경, 한수아, 민가희, 최미화.

아무리 잠재 능력 S급의 점술 재능이라지만 어떻게 다섯 명임을 확신하는 걸까? 그가 육체적인 관계를 맺은 여자는 다섯을 한참 넘는데.

불현 듯 가슴 한편이 싸늘하게 식었다.

서주환은 돌연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물었다.

“가브리엘라, 다섯 명은 어디서 나온 숫자죠?”

“…….”

“설마 내 뒷조사를 했어요?”

가브리엘라의 얼굴 위로 크게 당황이 어렸다.

“미, 미안해요. 주환을 찾으려고 하는 과정에서 알게 됐어요. 주환과 더 가까워지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절대 악의는 없었어요.”

정말 미안하다는 얼굴로 말하는 가브리엘라. 울 듯한 표정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한데, 정말로 미안하긴 한 걸까?

“주환, 난 진심이에요. 나도 그 여자들 중 한 명으로 생각해주면 안 될까요? 여자 입장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쉽지 않은 건 알죠? 나, 그만큼 주환을 좋아해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입은 쉴 새 없이 말을 잇는다. 은근슬쩍 화제를 돌리기까지.

서주환은 자신을 좋아한다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서 어쩐지 다른 모습이 겹쳐보였다. 타로카페에서 부와 명예, 권력을 말하며 자신의 반려가 되라던 귀족의 얼굴이다.

가브리엘라는 제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나는 주환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주 많아요. 너무 자랑하는 것 같아 마음이 좀 그렇지만, 메디치 가문은 역사가 깊거든요. 재계는 물론 정계에서도 막강한 파워를 갖고 있어요.”

그녀의 말이 이어질수록 확신이 들었다.

말투만 달라졌을 뿐 사람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그녀는 부와 명예, 권력을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말씨에서부터 느껴지는 게 있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더 도움이 될 거예요.”

비교.

직접적으로 깎아내리진 않지만 비교우위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높인다. 은연중에 다른 사람을 낮잡아보는 게 느껴졌다면 과한 생각일까. 그리고 그녀가 말한 ‘다른 사람들’이란 필시 ‘다른 여자들’을 말하는 게 분명했다.

서주환은 설핏 입꼬리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글쎄요.”

“네?”

“전 방금 만난 가브리엘라보다 지금 있는 연인들이 훨씬 소중하거든요.”

그리 말하며 가브리엘라의 얼굴을 살폈다. 실로 오랜만에 ‘마안’을 사용하면서였다.

“그야 전 만난 지 얼마 안 됐지만…….”

그녀가 울적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눈물을 떨어트릴 듯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사랑하는 상대의 눈치를 살피 듯 눈매를 늘어뜨린다.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게 심장이 울렁이는 듯했다. 뭇 남자들이라면 죄책감을 느낄만한 표정이다.

하지만 서주환은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그는 착각이었나 싶을 정도로 찰나지간, 그녀의 눈과 입매의 근육이 미세하게 꿈틀 거리는 것을 확인했다. 제동을 걸지 않고 그대로 움직였으면 어땠을까. 모르긴 몰라도 진한 불쾌감이 드러났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사랑은 무슨.’

상태창으로 확인한 가브리엘라의 호감도는 현재 D+.

기껏해야 약간의 호감을 가진 수준에 불과했다.

‘왜 착각했지?’

분명 일전에 타로카페에서 그녀의 고압적인 모습을 봤음에도 어째서 착각한 걸까.

그때는 한국말을 잘 몰랐다? 그럴 리가 있나.

이 정도로 한국말을 잘하는데 존대만 몰랐다니. 그리고 가브리엘라는 미국인이 아니라 이탈리아인이다. 이탈리아어에는 한국과는 조금 다르지만 ‘존대’라는 개념이 존재했다.

‘매혹 재능 때문인가.’

매혹(魅惑), 남의 마음을 사로잡아 흐림.

고상하고 아름다운 겉모습과 어우러진 그녀의 매혹(A/A+) 재능은 남자 한 명 홀리기에는 충분하고도 넘쳤다. 거기에 더해서 점술(A+/S) 재능 때문인지 몰라도 신비로운 분위기가 있었으니, 어지간한 수컷들은 그녀가 하는 말이라면 모두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왔을 것이다.

‘이거 봐라?’

스스로가 최대한 이성적으로 득실을 따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 홀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녀가 조금만 더 똑똑하게 굴었다면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불쑥 괘씸하다는 생각이 올라왔다.

‘나 공사당하기 직전이었잖아?’

딱히 공사당한다고 해도 물질적은 손해는 없을 테지만, 목적도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상대의 의도대로 끌려간다는 것 자체가 불쾌했다.

특히, 정하연이나 유지경 등 그의 여자들을 저보다 아래로 보는 듯한 태도가 거슬렸다.

“주환…?”

가브리엘라가 의아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이쯤 되면 슬슬 미안하다면서 달래줘야 할 타이밍일진대, 서주환의 얼굴에서는 점점 표정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그만하죠.”

“…네?”

“그 존대도 그만하고. 나도 편하게 할 테니까.”

“주, 주환? 갑자기 왜 그래요?”

가브리엘라의 얼굴 위로 당혹이 떠올랐다. 동시에 급변한 분위기에 대한 두려움도 함께했다.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깜빡 속아 넘어갔을 얼굴이다.

서주환은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

“연기는 그만하고. 본론을 말해, 가브리엘라.”

“주환, 대체 무슨 말이에요?”

“목적을 말하란 뜻이야.”

“…목적이라니.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끝까지 모르는 체 할 셈인가.

서주환의 얼굴 위로 짜증이 어렸다. 이 빙빙 돌아가는 대화를 언제까지 계속해야 되지. 깨닫고 나니까 지금까지의 대화가 의미 없게 느껴졌다. 애초에 본 목적이 따로 있다는 걸 진즉 알고 있었는데 헛돌기만 한 시간이 아까워 죽겠다.

그때 다신 한 번 알림음이 머릿속을 울렸다.

띠링.

[성(性)에 관한 강력한 행운이 개입합니다.]

동시에 가브리엘라의 몸이 멈칫 굳었다. 그리고 숨길 수 없는 당혹감이 그녀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뭐가 변한 거지?’

서주환은 빠르게 눈을 굴렸다. 조금 전의 알림음과 가브리엘라의 미묘한 당혹감. 그 사이에 어떤 연관점이 있는 걸까.

그는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가브리엘라의 상태창에 변화가 생겼다.

점술(A/S).

재능의 랭크가 떨어졌다. 분명 현재 등급이 A+였는데 A로 하락한 것이다.

그 순간 서주환은 자신이 가진 능력 한 가지를 떠올렸다.

‘성교사.’

교육(A/A+) 재능의 특수능력 성교사(性敎師).

성교사는 상대방에게 숙련도 버프를 최대 400%까지 중첩해서 부여한다. 이 능력을 사용한다면 가브리엘라의 떨어진 능력을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정확히는 버프를 이용해 능력의 하락치보다 상승치를 높여서 본래 상태로 복구하는 것이다.

생각을 정리한 서주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가브리엘라, 요즘 점술은 좀 어때?”

순간, 가브리엘라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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