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316화 (316/501)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오늘도 분량 대방출!

올해 여름이 지나가기 전에 완결 내는 게 목표입니다!

*

있지 님, 있지 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자클하게 님, 김민둥 님, 동방다객 님, 오하이요옹 님, J제이드 님, 혈적풍 님, 카오스래드 님, 카오스래드 님, 사래걸린드래곤 님, 성난아기곰 님, 펭귄한마리 님, 엘라이니 님, 깜뚝이 님, 당헤응 님, 뉴건담 님, sdnkn 님, 별치기 님, 표버미 님, e댕댕 님, 아래스 님, voge 님 원고료쿠폰 감사합니다!

*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이태원 데이트

서주환은 그야말로 방 안에 모인 여자들의 공공의 적이었다. 그가 입을 열려고 할 때마다 드문드문 싸늘한 눈초리가 날아와 박혔다.

‘으아, 불편해. 도망치고 싶다.’

하지만 어찌하리오. 이게 다 제 업보인 것을. 한두 명도 아니고 네댓 명의 여자들과 즐겁게 놀아났으니 그에 대한 책임도 본인이 지는 게 당연한 일이다.

“아, 안주 좀 만들어올게!”

그는 안주를 만들겠다는 핑계를 대고 주방으로 도망치듯 뛰어갔다.

“오, 오빠?!”

낯선 사람들 사이에 혼자 남게 된 민가희가 당황스런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하지만 이미 방문을 닫고 나간 그는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홀로 남은 그녀는 서주환 못지않게 좌불안석이 되어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다, 다들 엄청 예쁘다…….’

나름대로 외모에 자신이 있었는데 기가 죽을 지경이다. 심지어 스타일도 모두 제각각이라서 누가 더 우위인지 비교할 수도 없었다.

‘흐엉. 괜히 집으로 왔어.’

설마 안양역에 도착하자마자 서주환의 친구들을 만날 줄이야. 심지어 그의 여자들을!

‘역시 이 사람들도 주환 오빠랑…….’

민가희는 이 여자들이 서주환과 단순히 지인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리고 상대방도 자신과 서주환의 사이를 알아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몸을 섞은 사람들만이 공유하는 직감이었다.

‘어, 어떡하지…….’

가장 큰 문제는 이 여자들이 서로 잘 아는 사이라는 것이었다. 이미 유대관계가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는 듯 보이는 여자들. 그 사이에 일면식도 없는 자신이 꼈으니 괴롭힘을 당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물론 서주환과 다른 남자들이 있으니 대놓고 괴롭히지는 않겠지만… 본디 여자들의 괴롭힘이란 은근하고 간접적이기에 더욱 무서운 것이었다.

그때 여자들 중 한 명이 술병을 들었다. 타로 카페에서 본 가브리엘라처럼 피부가 새하얗고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여자. 자신을 서주환과 동갑내기 친구 정하연이라며 소개한 여자였다.

“한 잔 할래?”

“네, 네?”

“억지로 마실 필요는 없어.”

“아, 아니에요! 주세요. 저도 따라드릴게요!”

민가희는 잔뜩 긴장한 태도로 술잔을 받았다. 정하연의 날카로운 눈매가 자신을 중학교 시절 괴롭히던 일진과 닮아서 무서웠다.

이내 잔을 받은 그녀는 정하연에게도 술을 따랐다. 그런데 너무 긴장해서일까. 덜덜 떨리는 손이 술병을 놓치고 말았다.

탱, 촤악! 쨍그랑! 탱그르르르!

“흐이익!?”

술이 튀고 초록 유리병이 바닥을 구른다. 손에서 떨어진 술잔이 깨졌다.

“죄, 죄송해요! 괜찮으세요?”

“아, 괜찮아. 손 다치니까 만지지 마.”

“무슨 일이야?!”

주방에 있던 서주환이 달려와 방문을 벌컥 열며 묻는다. 그는 무언가 깨지는 소리를 듣는 순간 민가희를 낯선 사람들 사이에 혼자 두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하연은 혀를 차며 그에게 나가라고 손짓했다.

“괜찮아. 내가 알아서 치울게.”

“다치진 않았지?”

“흐응. 누구한테 묻는 거?”

힐끔 돌아본 정하연이 가늘게 뜬 눈으로 묻는다.

서주환은 순간 말문이 막히는 듯했다.

“어, 어? 당연히 너희 전부지.”

“흥, 알았어. 아, 네 옷 하나 빌려 입는다? 다 젖었거든.”

“어어.”

서주환을 밖으로 내보내려는 정하연.

다른 여자들도 그녀를 지원했다.

“안주 멀었어? 나 배고픈데.”

“환이 오빠, 맛있는 거 기대할게.”

“야, 바보 오빠, 고기 내놔, 고기!”

서주환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 유지경이랑 한수아는 그렇다 치고 이때가 기회다 싶어서 막말을 하는 서주희가 참 얄미웠다.

다시 방문이 닫히고, 정하연은 덜덜 떨고 있는 민가희를 보고는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가희야.”

“네, 네?!”

“미안한데 나 옷 갈아입는 것 좀 도와줄래?”

“네엡!”

울 듯한 얼굴로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인 민가희. 그녀는 이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정하연을 따라 일어섰다.

방을 나서려던 정하연이 뒤를 돌아보며 말한다.

“야, 이석찬. 깨진 건 네가 좀 치워줘.”

“아, 뭐임. 네가 치운다면서.”

“…….”

“…내가 치움. 나 청소 좋아함.”

이석찬은 눈을 깔았다.

*

정하연은 익숙한 동작으로 서주환의 서랍을 뒤적여 큼직한 반팔을 꺼내 입었다.

민가희는 움츠러든 자세로 물었다.

“제가 뭘 도와주면 돼요?”

“…응? 도와줘?”

“네? 아니, 그, 옷 갈아입는 거 도와달라고…….”

“뭐? 푸훗.”

정하연은 작게 웃음을 흘렸다. 정말로 옷 갈아입는 걸 도와달라고 불렀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한편 민가희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왜 웃지? 그런데 예쁘다. 헉, 그러고 보니 이 사람 주환 오빠 전 여자친구잖아?’

언젠가 서주환의 까톡 프로필에서 봤던 여자. 민가희는 그제야 정하연의 얼굴이 생각났다.

정하연은 그런 민가희를 보고 쿡쿡거리다가 물었다.

“가희야, 너 주환이랑 많이 친해?”

“네? 네에. 친하다고 생각하는데요오…….”

“그럼 많이 좋아해?”

“그, 그건…….”

민가희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눈동자에 다시금 몸을 움츠렸다.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매섭게 생긴 눈매는 여전히 무서웠다.

하지만 여기서 아니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말하면 어쩐지 지는 기분이… 아니, 서주환을 좋아하는 마음이 고작 그것밖에 안 되는 기분이 들 것 같았으니까.

“좋아해요. 엄청.”

민가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일단 내뱉긴 했지만 이 무서워 보이는 언니가 때리면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그래도 밖에 오빠가 있는데 때리진 않겠지?’

그리 생각하며 슬쩍 눈을 떴을 때였다.

“…그렇구나.”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정하연이 보였다. 그녀는 작게 웃으며 손가락을 들어 무언가를 가리켰다.

“그 반지, 주환이가 준 거지?”

정하연이 가리킨 것은 저녁 식사 후 서주환이 직접 약지에 끼워준 반지였다.

민가희는 깜짝 놀라서 그녀를 바라봤다.

“네? 그걸 어떻게… 어? 그 반지도?”

정하연의 약지에도 반지가 있었다. 모양도 색감도 달랐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먼저 반지 얘기를 꺼낸 걸 생각하면 분명했다.

정하연은 마주 고개를 끄덕이며 씁쓸하게 웃었다.

“역시 주환이가 준 거였구나. 그럼 너도 가볍게 만나는 사람은 아닌가 보네.”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냥 뭐… 내 생각일 뿐이지만, 걔가 아무리 호구에 우유부단해도 반지를 아무한테나 선물할 것 같진 않거든.”

적어도 하루 이틀 가볍게 만나는 사이에 반지까지 선물하진 않았을 것이다. 즉, 민가희도 자신이나 유지경, 한수아와 같이 특별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는 뜻.

정하연은 그 사실을 짐작하고서 민가희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데려온 것이었다. 아무래도 이석찬과 장덕훈, 서주희가 있는 곳에서 얘기를 하기는 무리였으니까.

‘이석찬이랑 주희는 대충 짐작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특히나 눈치 빠른 이석찬이라면 짐작이 아니라 확신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일행 중 아무것도 모르는 건 이런 문제에 둔해빠진 장덕훈이 유일하지 않을까.

정하연은 길게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가희 너는 어쩌다 저런 쓰레기 새끼를 좋아하게 돼서…….”

“쓰레기라뇨!? 오빠는 제 은인이에요!”

“…얘 봐라? 조금 전까진 잔뜩 쫄아있더니.”

“히익!”

눈에 힘을 주고 노려보자 겁먹는 민가희.

그 반응에 정하연은 풋 웃음을 흘렸다. 딱 보니 순진하고 어수룩한 애가 아닌가. 동시에 겁먹은 상태에서도 서주환을 변호할 정도로 착해빠졌다.

‘어쩌지. 난 착한 애들한테 약한데.’

그렇다고 화가 나지 않는 건 아니다. 이미 납득하기로 했으니까 눌러 삼킬 뿐. 애초에 다 알고 시작한 거였으니까. 평생 곁에 있을 거라고 약속 받았으니까.

‘배신하면 죽여버릴 거야.’

정하연은 그리 생각하며 민가희에게 폰을 내밀었다.

“번호 찍어.”

“저, 저 돈 없는데요.”

“에휴. 그게 아니라 번호 교환하자고. 너도 여자들 톡방에 들어와.”

“…여자들 톡방이요?”

“저 쓰레기 새끼한테 당한 애들 모임이야. 오늘처럼 둘이 집에 왔는데 갑자기 누가 찾아오면 좀 그렇잖아?”

“아…….”

서주환이 모르는 사이 여자들은 나름대로의 규칙을 만들고 있었다.

*

한수아가 폴짝폴짝 뛸 기세로 만세를 불렀다.

“우와! 우와! 가희 언니, 정말로 이 브금들 방송할 때 써도 돼요? 정말로?”

“으응. 사실 나 수아 너 알거든. 가끔 방송도 봤어. 고미 티비 맞지?”

“헉! 혹시 나 엄청 유명인?!”

“어… 수아 너 정도면 유명인이 맞지? 난 오빠 소설 때문에 보게 된 거지만.”

“엥? 오빠 소설이요?”

“응. 방송에서 빙의사부랑 악마 포식자 얘기한 적 있었잖아.”

“아하.”

캬릉대던 너구리는 민가희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언니.”

“으, 응?”

“언니, 나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

“가슴 만져 봐도 돼?”

“가슴을? 그래.”

“정말?!”

“응. 내 친구들도 그런 소리 많이 하거… 흐익?!”

“우와아. 이거 뭐야. 나 이런 거 처음 만져봐. 우와, 히야아. 수아야, 주희야, 너희도 만져봐. 이거 죽인다. 하연 언니보다도 훨씬 커.”

“지경이 너 무슨 소리하는 거야!”

“난 만져 볼래!”

“힉?”

“나도! 어디, 어디?

“흥악!?”

민가희는 마구 주물러졌다.

한편 정하연은 조용히 민가희에게 술을 따라주고 잔을 내밀고를 반복했다.

“여, 여기요, 언니.”

“응, 너도 한 잔 받아.”

“감사합니다아…….”

깍듯한 태도로 잔을 따르고 받는 민가희.

그런 모습을 보고 남은 세 여동생들이 다 들리도록 쑥덕댄다.

“오올, 하연 언니 센 척하는 거 봐.”

“이번엔 제대로 기선제압 했나보다.”

“하긴, 수아랑 나도 저 언니 처음 봤을 땐 좀 무서웠으니까.”

“그래봤자 금방 찐… 이 아니라 착해빠진 거 다 뽀록날 걸?”

“지경이 너! 방금 찐따라고 할라 그랬지!”

“아니야! 그거 수아가 말한 거야!”

“내, 내가 언제?!”

민가희에게 관심을 보이는 건 여자들뿐만이 아니었다.

이석찬은 그녀의 기타를 보더니 물었다.

“음악 함?”

“아, 네.”

“기타 전공?”

“아, 아뇨. 원래는 보컬이었는데 작곡으로 바꿨어요. 주환 오빠 덕분에.”

“엉? 서주환 덕에? 아, 그러고 보니 아까 GH라고 했지? 설마 네가 저 놈 BGM만들어준 사람임?”

“네, 맞아요.”

“오… 혹시 나랑 일 안 해볼래? 내가 사이트를 하나 만들고 있는데 거기에 브금 팔아볼 생각 없어? 꼭 엄청난 작업물이 아니더라도 대충 2, 30초 정도 반복되는 멜로디 만들어다가… 수익은 노래 길이에 따라…….”

무언가 사업적 영감이 떠올랐는지 눈을 빛내는 이석찬.

그때 비교적 조용히 있던 장덕훈은 민가희가 서주환의 소설 삽입곡을 만들어주었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흥분했다.

“누님! 누님이 그 브금 마술사입니까?!”

“누, 누님이요? 마술사?”

“제가 한 살 어리니까 말 편하게 해주십쇼, 누님.”

“네, 네에. 아니, 으응.”

“그보다 혹시 저에게도 브금을 하사해주실 수는 없을런지……!”

장덕훈은 최근 무료로 연재하던 라이트노벨을 완결 내고 이석찬이 만든 회사와 유료계약을 맺은 상태였다. 그렇게 지인 특가로 일부 선입금을 받은 덕에 학비를 벌기 위해 하던 알바도 때려치우고 차기작을 준비 중이었는데, 최근에는 서주환의 소설에 삽입된 BGM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한편 안주를 만들어온 서주환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을 끔뻑이다가 헛웃음을 흘렸다.

“안주 만들어오라더니 벌써 얼마나 마신 거야?”

고작 20분도 안 걸렸건만 과자가 방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휴우. 아무튼 친해진 것 같아서 다행이다.’

어찌된 건지는 몰라도 무사히 넘어간 듯했다.

*

술자리는 의외로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일행들은 새벽 1시가 되자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가려했다.

서주환은 함께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데려다줄게.”

그리고 단번에 거절당했다.

“됐네요. 너 지금 되게 꼴 보기 싫거든.”

이건 흥 하고 콧방귀를 뀐 정하연의 말.

“너구르르르. 캬악!”

“어억! 야, 아파! 악!”

“퉤. 밤 잠 조심해라, 집사 새끼야.”

뭐지, 덮치러 오겠다는 선전포고인가.

너구리의 으름장 다음은 한수아였다.

“환이 오빠.”

“어, 수아야.”

“헤헤. 오늘도 얼굴 봐서 좋았어.”

“수아야…….”

역시 한수아는 밝다. 그리고 맑다. 해맑다. 그저 해바라기 같은 여자다.

그때 돌연 한수아가 싸늘하게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이 쓰레기 새끼.”

“?!”

너무 놀라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순진하고 해맑음의 대명사인 한수아가 세상 차가운 얼굴로 욕설을 내뱉은 것은 그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그때 한수아가 혀를 쏙 내밀며 말을 잇는다.

“…라고 할 뻔~!”

“수, 수아야?”

“놀랐어? 놀랐지? 주희가 재밌을 거라고 시킨 거지롱!”

“…깜짝이야. 엄청 놀랐잖아.”

“그래도 자꾸 늘어나면 진심으로 그렇게 말해버릴지도 몰라. 주희가 시켜서 한 것만은 아니거등?”

“응, 미안해.”

“으으응. 그거 말고.”

“사랑해.”

“히히. 나두. 가희 언니도 안녕.”

“으, 으응. 수아야, 조심해서 들어가.”

“호옹? 언니는 안 들어가려고?”

“나, 나? 나도 집에 가야지.”

“거짓말쟁이! 거짓말하면 가슴 작아질 거야!”

“안 작아지던데?”

“…….”

한수아의 얼굴이 정말로 심통 난 표정으로 변해갔다.

그때 이미 1층으로 내려간 일행들이 소리쳤다.

“야, 이것들아! 빨리 내려와!”

서주환은 민가희를 돌아봤다.

“그, 일단 정류장 근처까지 갈까?”

“…어, 저 집에 가요?”

“아니, 산책.”

아무리 대부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구색은 갖춰야 하지 않겠는가. 결국 눈 가리고 아웅이나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