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315화 (315/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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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타로카드의 뜻을 서주환의 과거, 현재, 아직 나오지 않은 작 중 미래와 연결 시키려니 여간 빡센 게 아니네요.

야매로 했는데도 어려워.......

앞으로 타로점이 이번처럼 자세하게 나올 일은 없을 듯합니다.

*

꿈꾸는정원사 님, wadize 님, mellow~ 님, 구자드니 님, 별치기 님, 창천을 님, 라미르 님 원고료쿠폰 감사합니다!

*

독자님들 모두 건강하고 즐거운 주말 되시기를 바랍니다 :D

이태원 데이트

창틈으로 불어온 바람에 흩날린 카드.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개입하기라도 한 듯 덮어씌워진 점괘.

“점은 여기까지만 볼게요. 그럼 수고하세요.”

좀 전까지만 해도 제 말에 홀린 듯 대답하던 남자였건만 막상 지금은 한 치의 미련도 없이 몸을 돌린다.

가브리엘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급히 소리쳤다.

“잠깐! 당신, 정말 이대로 갈 셈이야?”

“아.”

짤막한 소리와 함께 등을 돌렸던 남자가 그녀에게로 돌아온다. 그에 가브리엘라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럼 그렇지. 메디치 가문의 후계후보를 이대로 무시할 리가 없다. 아니, 가문의 후광이나 후계후보라는 위치를 제하더라도 그렇다. 지금까지 그녀에게 고백한 재계의 인사와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들이 몇이던가. 그녀는 외견 하나만 보더라도 뭇 남자들의 마음을 홀릴만한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평범한 동양인 남자에게 결혼을 하자며 먼저 손을 내민 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남자가 한 말은 그녀의 예상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여기 이거, 실수로 가져갈 뻔했네요. 아, 다른 점은 필요 없어요. 그럼.”

“…What?”

남자가 내민 것은 타로 카드 한 장이었다. 바람결에 흩날린 카드가 그의 옷에 붙었던 모양.

“가희야, 가자.”

“응, 오빠!”

남자는 함께 왔던 여자와 다정하게 손을 잡고 카페 밖으로 나갔다.

이내 가브리엘라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Fuck!”

남자가 내민 카드는 The sun, 역위치.

뜻은 연기(延期), 실패.

“Maledizione! Mi tratti come un idiota?(젠장! 날 바보 취급 해?)”

가브리엘라는 카드를 내팽개치며 소리쳤다.

‘저 남잔 대체 뭐야!’

이런 식으로 점괘가 뒤집어진 적은 처음이었다. 난데없이 불어온 바람에 뒤집어진 카드가 여보란 듯 스프레드로 끼어드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남자의 반응이었다.

‘저 남잔 세 장의 카드에서 뭘 본 거지?’

덧씌워진 카드는 세 장.

The Hermit의 역위치, 탐욕.

The Lovers 정위치, 연애와 쾌락.

The Devil 역위치, 악순환으로부터의 각성.

카드의 뜻도 뜻이지만 남자는 카드 너머로 무언가 다른 걸 보고 있는 듯했다.

그때 카페 구석의 방문이 열리며 한 명의 남자가 걸어 나왔다. 정장 차림의 올백머리 백인 남자, 마르코 마르키오니가 말한다.

“흐음. 가브리엘라 아가씨, 저 남자가 맞습니까?”

가브리엘라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남자야.”

가브리엘라가 한국에 온 것은 카드의 예언을 따라 반려를 찾기 위해서였다. 타로 카드가 점지해준 남자를 붙잡아야만 그녀가 사람으로서 사는 게 가능했다.

그러나 마르코로서는 서주환이 예언의 그 남자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난번에 본 점괘와는 다르지 않습니까? 저 남잔 지나치게 평범해 보입니다.”

상당히 잘생기긴 했지만 그게 끝. 무언가 더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반면 카드가 점지해준 남자는 과연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엄청난 인물이다. 문화와 예술에 관련된 일이라면 관여하지 않는 곳이 없고, 다른 분야의 어떤 일이라도 탑 클래스의 능력을 발휘한다. 또 개인의 능력만으로 메디치 가문 이상의 부(富)를 쌓기까지.

그러하니 좀 전의 그 남자를 해당 점괘의 인물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가브리엘라는 확신에 찬 어조로 다시 말했다.

“저 남자야.”

“음. 그저 좀 훤칠한 것 빼곤 평범해 보이는 남자일 뿐인데 지나치게 자신하시는 건 아닌지. 아, 설마 반하신 건 아니겠지요?”

“…뭐?”

가브리엘라가 굳은 얼굴로 돌아봤다.

그러나 마르코는 여전히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능청을 떨었다.

“큭큭. 나름 괜찮게 생긴 얼굴이었잖습니까. 물론 작디작은 동쪽 나라의 원숭이일 뿐이지만… 그래서 더 끌리는 걸지도 모르지요? 아가씨의 모친이 분명 아시아인이었지요?”

“…….”

“하하하. 농담입니다. 아가씨께서 동양인 따위에게 관심을 가질 리 없지요. 혹시라도 남자가 필요하면 차라리 저를 부르시… 커억?!”

짜아악!

마르코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가 뺨을 감싸쥔 채 당황한 얼굴로 말한다.

“지, 지금 저를 때린 겁니까? 제 뺨을?”

“닥쳐. 입 냄새나니까.”

“이, 이 창녀(Gook:동남아인 멸칭)가!”

버럭 소리친 마르코의 손이 가브리엘라를 당장에라도 내려칠 듯 올라갔다. 하지만 뒤에서 그를 잡는 두터운 손이 있었다.

“파비오, 때려눕혀.”

“Ok.”

빠악! 쿠당탕탕!

거대한 주먹에 맞은 마르코는 순식간에 곤죽이 되어 바닥을 굴렀다.

가브리엘라는 쓰러진 마르코에게 다가가 구두 굽으로 뺨을 지그시 눌렀다.

“뺨에 구멍 하나 뚫어줄까?”

“나, 나를 이렇게 대해도 될 거라고 생각합니까?! 난 당신의 감시역입니다! 이를 내 상사에게 보고하면…!”

콰직!

“끄아아악!”

“구멍도 안 났는데 엄살은. 으, 더러워.”

가브리엘라는 피가 묻은 구두를 벗어던졌다. 그리고 파비오가 가져온 새 구두를 꺼내 신으며 말한다.

“네가 보고한다고 뭐가 될 것 같아? 애초에 널 뽑은 게 나인 건 아니?”

“끄흑, 그게 무슨…….”

“내가 널 뽑았다고. 어차피 붙을 감시역, 멍청한 놈이 편하거든.”

“…그래도 내가 보고 하면…….”

“풋. 그럼 네 목이 날아가겠지. 난 후계자가 되지 못해도 가문에 꼭 필요한 존재거든. 나랑 척을 지고 싶은 놈은 한 명도 없을 걸?”

“그, 그런…….”

“멍청한 놈. 내 점술은 애들 장난이 아니야. 처음부터 네가 보고를 하든 말든 상관없었어.”

싸늘하게 뱉어진 말에 마르코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그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브리엘라의 타로점을 철없는 공주님의 놀이라고 여겼으나, 실상은 가문 내의 중대사를 처리할 때도 관여하는 것이 바로 그녀의 타로점이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라면…….

‘힘이 점점 약해지고 있어.’

언젠가 큰 열병을 앓고 난 이후부터 해가 지날수록 점술의 힘이 약해지고 있었다.

‘힘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 남자를 잡아야 해.’

생각처럼 되진 않았다고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마르코를 속박하고 있는 파비오를 불렀다.

“파비오..”

“예, 아가씨.”

“아까 그 남자에 대해서 조사해. 이름이 분명… 서주환이라고 했어.”

“알겠습니다.”

가브리엘라는 어질러진 타로 카드를 케이스에 챙겼다. 더 이상 이 카페에 볼 일은 없었다.

“사장, 그동안 신세졌어. 난 이만 가볼게.”

“네, 네? 벌써요? 그, 그럼 돈은…?”

사장은 당황한 얼굴로 되물었다. 손님들을 상대로 하루가 멀다 하고 트러블을 일으키는 가브리엘라가 나간다는 건 환영이었지만, 오늘 막 입급 받은 1억을 토해내야 하는 건 아닌가 했기 때문이다.

가브리엘라는 알만하다는 듯 픽 웃음을 흘렸다.

“그 돈은 당신 거야.”

“가, 감사합니다.”

그렇게 카페를 나서려던 가브리엘라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다시 돌아와 마르코의 등을 구두 굽으로 짓이겼다.

“끄어어억!”

“어이, 마르코. 난 Gook(창녀)가 아니야. 아직 처녀라고.”

“끄악! 끄아아악! 아, 알겠… 크아악!”

“내 어머니도 동남아인이 아니라 한국인이야. 알겠어? 대답.”

“아, 알겠습니… 꺼어어어억…….”

“흥.”

*

민가희는 분한 듯 소리쳤다.

“그 여자 이상해요! 그쵸, 오빠? 막 멋대로 손을 잡기나 하고! 이상한 점술로 오빠가 죽는다는 둥 이별할 거라는 둥!”

“에이, 신경 꺼. 그런 여자 말.”

“치이. 오빠는 화도 안 나요? 아, 알았다. 금발 서양인이 먼저 꼬시니까 좋았죠? 오빠는 바람둥이니까!”

“그런 거 아니래도. 가희 네가 옆에 있는데 그럴 리가 없잖아.”

“옆에 없었으면요?”

그야 당연히 어떻게든 꼬셔서 따먹었겠지. S급 재능 조각을 위해서라도.

하지만 생각과 달리 서주환은 철판을 깔았다.

“그래도 똑같았을 걸? 나 눈 엄청 높거든.”

“그 여자도 엄청 예뻤잖아요.”

“네가 더 예뻐.”

서주환은 주저하지 않고 확고하게 말했다. 일부러 대화의 흐름을 이쪽으로 유도했기에 망설임이 없었다.

민가희는 고작 그걸로 기분이 풀린 모양이었다.

“…내가 그러면 기분좋아할 줄 알고요?”

누가 들어도 명백하게 기분이 좋아진 목소리였다. 하여간 순진해 빠져가지고 어디 가서 사기 당하기 딱 좋은 여자다.

‘가희도 알면서 적당히 넘어가주는 거겠지만.’

민가희는 기본적으로 좀 둔해도 멍청한 여자는 아니었다. 애초에 멍청했으면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대라는 한국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을 리가 없다.

서주환은 그녀를 데리고 저녁 식사를 하러 가게에 들어갔다. 슬슬 해가 져서 사위가 어둑해지고 있었다.

“친구들이 8시쯤 버스킹한다고 했었지?”

“네. 슬슬 가야돼요.”

“그럼 가자.”

“넹.”

두 사람은 이태원 거리에 있는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먼저 와서 준비하고 있던 민가희의 친구들이 두 사람을 반겼다.

“가희야, 여기!”

“생각보다 빨리 왔네? 지금 앰프랑 미디 준비 중이야.”

“오, 주환 오빠! 오랜만!”

친구들 사이에 익숙한 얼굴도 보였다. 군대 맞후임이자 친한 형인 이정훈의 여자친구 윤슬기다.

그녀는 빠르게 달려와서 어깨를 팡 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히히. 가희랑 좋은 시간 보냈어요?”

“응? 뭐, 그냥.”

“에이, 그게 뭐예요. 둘이 대체 언제 사귀려고요?”

“하하……. 난 연애 할 생각 없다니까.”

“우씨. 그럼 우리 가희 갖고 노는 거예요? 가희가 좋다니까 별 말은 안 하겠지만… 우리 애 울리면 가만 안 둘 거예요?”

위협적으로 조막만한 주먹을 흔들어 보이는 윤슬기.

서주환은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정훈이 형이랑은 어때? 잘 만나고 있어?”

“우리 오빠요? 그야 당연히 언제나 러브러브하죠. 이히히.”

윤슬기는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며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이러다 나중에 정말 둘이서 결혼이라도 하는 건가 싶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좀 시무룩한 얼굴로 말했다.

“그런데 요즘은 잘 못 만나요.”

“어? 왜? 무슨 일 있어?”

“바빠서요.”

“방학인데도?”

“우리 오빠가 너무 유능하거든요. 어휴. 자기가 없으면 게임 개발이 안 돌아간다나? 총괄 디렉터 겸 프로그램까지 짜니까 많이 힘든가 봐요.”

결국은 남자친구 자랑인가.

서주환은 윤슬기에게 신경을 끄기로 했다. 그녀도 곧 친구들을 돕기 위해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그는 분주하게 준비하는 민가희와 친구들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점괘의 내용… 뒤집어지긴 했지만 조심해야 할 것 같은데.’

특히 역위치로 나왔던 죽음(Death) 카드가 마음에 걸린다. 분명 뜻이 격변과 이별이라고 했던가. 근미래에 일어날 일이라고 했는데, 근미래란 게 정확히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세기 단위로 따지면 수십 년을 말하는 건데… 사람의 인생으로 따지면 얼마나 되는 거지? 십 년? 일 년? 수개 월?’

아니면 아주 가까운 며칠 이내를 말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는 가브리엘라의 말처럼 인간관계를 소중히 생각하고 있었기에 계속 신경이 쓰였다.

그럼에도 더 확실한 대답을 듣지 않고 나온 것은 거의 본능에 가까운 판단이었다.

‘어차피 그 여자는 다시 날 찾아 올 거야. 서두를 거 없어.’

결혼하자고까지 말한 여자가 아니던가. 쉽게 포기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욕망퀘스트에 따르면 가브리엘라는 그에게 바라는 것이 있었다. 그런만큼 괜히 이쪽에서 조급할 필요가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한편 민가희는 친구들에게 시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가희야, 저 분 누구야? 네 남자친구?”

“어, 어? 그, 그냥 친한 오빠야.”

민가희는 차마 당당하게 남자친구라고 말하지 못했다. 실상 사귀는 사이와 크게 다를 바 없었고, 마음 같아서는 남자친구라고 소개하고 싶었지만, 지인들에게 말을 잘못하면 서주환이 곤란해질 것 같았다.

그런 애매한 소개 때문일까. 여자들이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

“정말? 사귀는 사이 아니면 나 소개 해주면 안 돼? 저 오빠 딱 내 타입인데.”

“이 년 보게? 네 타입이 아니라 그냥 키 크고 잘생겨서 좋은 거겠지. 저런 남자 타입 아닌 사람이 어디 있니?”

“그러니까 내 타입이라고. 내가 제일 먼저 말했다, 가희야? 응?”

“미, 미안! 오빠는 지금 연애 할 생각 없대.”

“에엥?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인사라도 시켜줘.”

“인사하는 거면 나도! 친구들도 잘 생겼겠지? 원래 끼리끼리 논다잖아.”

“…알았어.”

결국 민가희는 서주환과 친구들을 인사시켜줬다.

흑심 가득 떠들던 친구들은 서주환에게 다소곳한 모습으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오빠. 가희가 오빠라고 부르던데 저도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

“네? 하하, 편한대로 부르세요.”

“오빠도 그럼 말 편하게 하세요!”

“음. 그럼 그럴까? 너희 오늘 버스킹 한다면서? 기대하고 있을게. 나 노래 듣는 거 좋아하거든.”

“그래요? 마침 제가 보컬인데, 노래 잘 부르는 여자 어때요?”

“하하…….”

지켜보는 민가희의 입술이 댓발 튀어나왔음은 물론이었다.

‘주환 오빠, 바보!’

*

버스킹이 성황리에 끝났다.

과연 서울 굴지의 명문대학교의 음과 학생들이어서 그런지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 불렀다. 피아노와 기타를 오가는 윤슬기의 연주도 대단했고, 직접 작곡한 곡을 부르는 민가희의 목소리도 생각보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가희야, 너 노래 더 잘 불러진 것 같더라?”

“헤헤. 그래요?”

“어. 직접 작곡한 곡이라서 그런가? 음원으로 발매해도 되겠던데?”

“안 그래도 친구들이랑 발매하기로 했어요. 돈은 별로 안 될 것 같지만.”

“아니, 진짜 잘 될 것 같아. 이러다 가수 데뷔 하는 거 아닌가 모를 정도로.”

빈 말이 아니었다. 민가희의 노래 재능은 B랭크에 불과했지만, 본인의 목소리와 창법 등에 최적화된 곡을 직접 작곡해서 그런지 아직까지 노랫말이 귓가를 맴도는 듯했다.

“흐흥. 그러는 오빠도 노래 잘 부르던데요.”

“아, 괜찮았어?”

“네! 그 정도면 거의 프로죠. 솔직히 오빠가 저보다 잘 불렀어요.”

서주환도 버스킹 중간에 노래를 한 곡 뽑았다. 가만히 듣고만 있으려니 근질근질해서 나선 것이다. 어느덧 어렸을 적의 활발했던 성격을 거의 되찾은 그는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에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좀 관종 기질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하도 은둔형 외톨이로 지낸 세월이 길어서 그런지 다른 사람의 이목이 집중되면 묘한 쾌감마저 느껴졌다.

“얘들아, 잘 가!”

“오빠, 나중에 또 봐요!”

“가희야, 조심해서 들어가!”

버스킹 친구들과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은 다시 이태원 거리를 걸었다.

“와, 낮이랑은 좀 다르네요.”

“그러게.”

낮과 달리 밤의 이태원 거리는 조금 화려한 모습이었다. 외국인들도 훨씬 많이 돌아다니고 호객 행위도 제법 많이 보인다. 대부분은 외국의 바나 클럽 등이었지만 말이다.

서주환은 함께 거리를 걷는 중 슬쩍 민가희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슬슬 추워지는데 우리도 어디 들어갈까?”

은근한 스킨십과 유혹.

오랜만에 만났으니 밤새 뜨거운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하필 이때 민가희의 엉뚱한 기질이 발동했다.

“오빠네 집으로 가도 돼요?”

“응? 우리 집?”

“네, 오빠 집 궁금해요.”

“저번에 와본 적 있지 않아? 정훈이 형이랑 슬기랑 같이.”

“그때는 밤에 가서 제대로 구경도 못했잖아요.”

서주환은 떨떠름한 기색으로 눈꼬리를 긁적였다. 솔직한 마음으론 가까운 호텔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리고 집에서 일을 치르기엔 조금 걸리는 부분도 있었다.

‘갑자기 애들이 처들어오면 좀 그런데.’

대학 친구들과의 사이가 깊어진 이후로 그의 집은 거의 공공재나 마찬가지인 신세가 됐다. 이석찬은 시도 때도 없이 심심하다며 연락도 없이 찾아왔고, 유지경은 간혹 밤중에 그를 덮치러 올 때도 있었다.

‘음. 그래도 오늘은 약속 있어서 안 들어간다고 말해뒀으니까.’

적어도 그가 자리를 비웠을 때 마음대로 집을 사용 할 친구들은 아니었다. 미리 말까지 해뒀으니 오늘은 찾아오지 않을 터.

서주환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 집으로 가자.”

*

뭔데, 왜 축복 발동 안 하는 건데.

“하이. 이석찬이라고 함. 이 녀석 베프임.”

“…나도 주환이랑 동갑이야. 친하게 지내자, 가희야.”

“장덕훈임다. 스물 한 살입니다.”

“나도 덕훈이랑 동갑. 가희 언니라고 불러도 돼요?”

안양역에서 딱 마주친 일행들이 함께 집으로 들어왔다.

“이 새끼 친동생이에요, 언니. 서주희라고 해요.”

“저는 한수아에요. 언니가 오빠 소설 브금 만들어준 사람 맞죠? GH작곡가님이죠? 저 팬이에요!”

심지어 한수아와 서주희까지 있었다.

모두가 밝은 분위기에서 서주환은 가시방석에 앉은 마음으로 여자들의 시선을 피했다.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말아줘…….’

싸늘한 눈빛의 정하연과 나중에 두고 보자고 말하는 너구리. 쓰레기를 보는 친동생 서주희와 마냥 밝은가 싶다가도 저를 꼬집는 한수아.

마지막으로 그의 여자들을 처음 보고 울먹이는 민가희까지.

‘혹시 이게 격변인가? 이제 나 이별하는 거야?’

숨통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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