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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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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이태원 데이트
가브리엘라의 S급 재능을 확인한 서주환은 고민에 잠겼다.
‘S급 재능을 하나 만드는 데 필요한 조각은 총 10개.’
한편 지금까지 그가 얻은 조각은 5개다.
조각을 모아 S급 재능석을 만들기 위해서는 앞으로 5개를 더 모아야 했다.
‘하지만 가희 앞에서 다른 여자한테 작업을 치는 건 좀…….’
한창 데이트를 하고 있는 와중이 아니던가. 물론 민가희 또한 그에게 다른 여자가 여럿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지만 본인 앞에서 다른 여자에게 수작부리는 모습을 보이는 건 그녀를 개무시하는 처사였다.
서주환은 짧은 고민을 마치고 고개를 내저었다.
‘안 그래도 불안해하는데 더 신경 쓰이게 하면 안 되지.’
적어도 함께 있는 동안은 그 여자를 제일 사랑하자. 그게 자신을 좋아해주는 여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다음에 혼자 다시 방문해보자.’
물론 그게 포기하겠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
먼저 돌아온 민가희와 가브리엘라가 서주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자리에 앉자 민가희가 말했다.
“오빠, 서비스로 사주도 봐준대요.”
“사주를?”
서주환은 의아한 표정으로 가브리엘라를 바라봤다. 어느모로 봐도 서양인인 그녀가 사주를 봐준다니 신기했기 때문이다.
가브리엘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동양의 점술도 재밌거든. 사주는 값을 받지 않을게.”
“저희야 서비스로 해준다는데 좋죠.”
“Ok. 그럼 태어난 날짜와 시간을 말해.”
그 말에 민가희가 앗 하고 놀란 소리를 냈다.
“나 시간은 모르는데. 오빠는 알아요?”
“나? 난 알아. 옛날에 조금 관심을 가진 적이 있어서.”
회귀 전 웹소설판에서 아주 잠깐이지만 사주와 타로 등 점술 관련 소재가 유행한 적이 있다. 그때 흥미를 느끼고 찾아보다가 문득 태어난 생년월일이 궁금해서 부모님께 물어보았었다.
민가희의 반응에 가브리엘라가 곤란하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태어난 시간을 모르면 안 돼. 그럼 사주는 남자만.”
“음. 괜찮아, 가희야?”
“넹. 어차피 타로점 보러 온 거였으니까요. 사주는 오빠만 보세요.”
“그래. 저는 95년 4월 11일 03시 13분에 태어났어요.”
“Okay. 잠시만 기다려.”
그리 말한 가브리엘라는 명리학 책을 참고하여 서주환의 사주는 살펴봤다.
그는 신기한 눈으로 가브리엘라를 쳐다봤다. 백금발의 보랏빛 눈동자를 가진 여자가 명리학 책을 보고 있는 모습은 참 이질적이었다.
이내 가브리엘라가 입을 열었다.
“The force of the water.”
“물의 기운을 타고났어. 그것도 아주 많이.”
“보통 물의 기운은 생명과 이어져. 그래서 장수하거나 아이를 많이 낳는 사람들이 많아. 특히 기운이 강한 경우에는 이해심이 깊고 포용력이 강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타입이 되기도 하고,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탁월해서 부를 축적하고 살 수도 있어.”
“하지만 물은 형태가 일정하지 않아서 담기는 용기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게 돼. 이게 무슨 뜻이냐면 주변 환경에 따라 쉽게 동화된다는 소리야. 즉, 사람을 잘 사귀어야 한다는 거지.”
조금 딱딱하긴 하지만 듣기 좋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는 가브리엘라.
하지만 이야기를 듣던 서주환은 점점 흥미를 잃어갔다.
‘역시 이런 거구나. 그래도 점술가 잠재등급이 S라서 좀 기대했는데.’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사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점점 의미 없는 일이란 확신이 들었다. 사주나 타로 등을 재미로만 보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대충 가져다 붙이면 그럴듯하게 들리는 말.’
이런 화법은 일상에서도 많이 쓰인다. 특히 MBTI와 같은 성격유형검사 등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방법인데, 결과지에 누가 읽어도 ‘이거 내 얘기 맞는 것 같네’ 싶은 소리들만 써 놓는 것을 말함이다.
예를 들어 INFP성향의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INFP에 해당되는 특징들을 보고 ‘오, 이거 좀 정확한 듯?’ 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ESTJ’와 같이 정반대의 성향 결과를 봐도 ‘어? 나랑 꽤 맞는데?’ 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정도에 따른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실험대상자는 INFP인지 혹은 ESTJ인지 성향을 알려주지 않고 이게 당신의 결과지라며 가져다준다면 무엇을 받아도 그럴 듯하다고 느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확증편향’의 맹점이다. 인간이란 생물은 기본적으로 어떠한 정보를 받아들일 때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적당히 맞장구 치고 끝내자.’
서주환은 시큰둥한 속내를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적당히 이야기를 걸러들었다.
하지만 사주를 풀어가던 가브리엘라의 말이 점점 달라짐에 따라 그도 귀를 쫑긋 세울 수밖에 없었다.
“으음. 아까도 말했지만 너는 물의 기운이 아주 많아. 그냥 많은 게 아니라 과할 정도로 많아서 보통 물의 기운을 타고난 사람들이 누리는 축복이 결여돼 있어. 그리고 누구에게나 있는 운도 너무 없고.”
“…그래요?”
운이 없다는 말에는 그도 흥미가 보일 수밖에 없었다.
회귀 전의 그가 어떠했던가.
명계의 실수로 그는 온갖 불운에 시달렸다. 덕분에 타고나길 활발했던 성격이 소심하고 어둡게 바뀐 것은 물론 인간관계를 단절하고 방에 틀어박히기에 이르렀다.
한데, 이어지는 가브리엘라의 말이 핵심을 찔렀다.
“물의 기운이 많은 사람은 주변에 융화되기 쉬운 만큼 자신의 본래 모습이나 성격과 다른 삶을 살기 쉬워. 그리고 기본적인 자신의 성정을 잃으면 한평생 음습한 삶을 살 수도 있지.”
어찌 보면 별 것 아닌 걸로 받아들일 수 있는 두루뭉술한 말이었다. 하지만 이미 그러한 삶을 겪어본 적이 있는 서주환으로서는 흠칫하게 되는 말이기도 했다.
가브리엘라는 표정을 찌푸리며 귀밑머리를 뒤로 넘기더니 떨떠름한 얼굴로 서주환을 바라봤다.
“당신, 사주가 이상해. 평생 혼자 산다는 사주와 복잡한 이성관계에 대한 사주가 동시에 있어. 그리고 욕망을 잘 다스리라는군.”
“욕망을 다스려라?”
“흐응. 여기까지 하지. 말했다시피 사주가 좀 이상하거든. 이런 적은 처음이야.”
가브리엘라는 갑자기 말을 끝내려고 했다.
이제야 흥미가 돋기 시작한 서주환은 호기심에 되물었다.
“어떻게 나왔기에 그래요? 대충이라도 말해주세요.”
“안 듣는 게 나을 텐데. 완전히 엉터리로 나왔거든. 지금까지 말한 걸 전부 잊어버려도 좋을 정도로.”
“괜찮아요.”
“Okay. 당신 선택을 존중하지.”
가브리엘라가 말했다.
“기운이 과해서 신체 밸런스가 깨졌어. 타고난 생명의 기운은 오염돼서 당신을 살찌울 거야. 또 이상할 정도로 강한 불운은 당신을 절망으로 끌고 가. 당신뿐만 아니라 함께 있는 주변 사람까지도. 여자는 물론이고 곁에 남는 사람 자체가 없군. 아니, 이 경우는 스스로가 밀어낸다고 해석해야 하나?”
“…….”
“그리고 결정적으로, 당신은 늦어도 10년 내로 죽게 돼.”
가브리엘라의 말이 이어질수록 서주환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갔다. 그는 등 뒤로 소름이 쭈뼛 돋는 것을 느끼며 책상 아래로 주먹을 꽉 쥐었다.
‘미친, 다 맞잖아. 회귀 전에 아무리 운동을 해도 살이 잘 안 빠졌던 것하며 타고난 불운이 주변사람에게까지 영향을 준 것까지. 심지어 죽는 시점도 비슷하게 맞췄어.’
이 정도면 사주라는 형식을 통해 운명을 읊어주는 수준이다.
‘그럼 앞에 했던 말들도? 아까 뭐라고 했었지?’
장수, 다산, 부의 축적, 환경에 동화, 사람을 잘 사귀어라, 욕망을 다스려라, 평생을 혼자, 난잡한 이성관계.
얼핏 들었던 말이 낱말 단위로 쪼개져서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그때 옆에 있던 민가희가 꿍한 표정으로 툴툴댔다.
“진짜 이상하게 나왔네요. 그쵸, 오빠?”
“어? 응?”
“그렇잖아요. 오빠는 살이 찌지도 않았고 불행하지도 않은 걸요. 또 주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긴 고사하고 도움을 주잖아요. 저도 오빠 덕분에 새로운 진로를 찾았고…….”
말끝을 흐린 민가희는 힐끗 그의 눈치를 보며 마저 말했다.
“그,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오빠가 죽긴 왜 죽어요? 10년 후라고 해봐야 서른 초중반인데!”
“…하하. 그러네? 고마워, 가희야.”
서주환은 턱 막혔던 무언가가 풀리는 느낌과 함께 웃음을 흘려버렸다. 잠시 홀린 듯 듣긴 했지만 민가희의 말처럼 지금 가브리엘라가 말해준 사주는 그에게 해당되지 않는 것이 더 많다.
‘운명은 변했어.’
더 이상 혼자도 아니고 불행도 없다. 살이 찌기는 고사하고 180을 넘는 키에 탄탄한 몸을 갖게 되었다. 앞으로 9년 후의 미래에 있었던 죽음도 마찬가지. 그가 차에 부딪쳐 죽는 미래 따윈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가브리엘라가 작게 한숨을 내쉬는 두 사람을 보고 귀엽다는 듯 웃으며 말한다.
“후후. 그러니까 말했잖아. 엉터리로 나온 것 같다고. 귀여운 손님들, 점을 너무 맹신하지 마.”
“하하…….”
서주환은 어색하게 웃음을 흘렸다. S급 ‘점술’ 재능을 가진 사람이 그리 말하니 참 설득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
가브리엘라는 내심 의아한 마음을 품었다.
‘이상하군. 해석에 틀린 점은 없을 텐데.’
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사주에 나온 바와는 전혀 다르다.
그는 주변에 사람이 없을 것 같지도 않고 겉보기에 살이 찌지도 않았다. 신체 밸런스가 무너지긴 고사하고 일반인보다 훨씬 체격이 좋은 편이다. 외모 또한 추하다기보단 잘생긴 쪽에 가까웠다. 물론 그녀에게 추파를 던지는 재계의 인무들과 연예인들에 비하면 손색이 있었지만 말이다.
‘불운도 느껴지지 않아. 오히려 굉장히 강한 행운을 타고난 것 같은데… 함께 있기만 해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어.’
사주풀이에 해당되는 부분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알 수 없는 이끌림에 기묘한 호감마저 일 정도였다. 모르는 남자를 상대로 이런 끌림을 느낀다니…….
‘설마 이 남자가?’
키가 크고 손이 두꺼운 검은 머리의 동양인.
이태원이라 불리는 곳의 타로카페에서 점을 보고 있으면 만날 거라는 한 쌍의 남녀.
점괘의 내용과 들어맞는 점이 많다.
하지만 속단은 이르다. 이 정도 조건을 충족한 사람은 근 한 달간 보아온 사람들 중에서도 여럿 있었다.
가브리엘은 마저 확인을 하기 위해 타로카드를 펼쳤다.
*
민가희가 보기로 한 타로점의 주제는 ‘사랑’과 ‘진로’에 관한 것이었다.
“질문이 구체적일수록 더 정확한 답을 얻어낼 수 있어. 참고해.”
일반적으로 타로점은 ‘예언’이 아니라 ‘조언’이다. 질문이 구체적일수록 좋고 애매모호한 질문을 하면 똑같이 애매한 답변이 돌아오기 마련이었다.
민가희는 옆에 앉은 서주환을 의식했기 때문인지 사랑운은 모호하게 질문했고 진로운은 구체적으로 질문했다.
“먼저 연애운은… 복잡하게 꼬여있네.”
“아, 안 좋은 건가요?”
“그건 아니야. 마음고생을 할 테지만 결과는 상대의 선택에 따라 더할 나위 없이 좋게 변할 수 있어. 그리고 상대가 당신에게 있어 귀인이네. 좌절했을 운명을 백팔십도 바꿔버렸어.”
“우, 우와. 맞아요! 그럼 좋은 거군요?”
“그것도 애매해. 전반적으로 좋긴 하지만 결국은 당신 마음에 달렸어. 마음고생이 심할 거라고 했잖아. 그 순간을 얼마나 현명하게 버텨내느냐가 관건이겠네.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다면… 글쎄, 이미 제 길을 찾았으니 일찍 헤어지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수도 있겠지.”
“아, 안 헤어질 거거든요!?”
“후후. 난 헤어지라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 결국은 본인의 선택이야.”
“우으으…….”
민가희는 기뻐해야 되는 건지 슬퍼해야 되는 건지 알 수 없다는 듯 알쏭달쏭한 기분이었다.
“그럼 진로운은요?”
“그건 구체적으로 말해줘서 좀 쉽네. 연애운과 조금 통하는 것도 있어.”
“통하는 거요?”
“귀인을 만나서 변한 점이 바로 진로에 대한 거니까. 당신도 이미 알고 있지 않아? 작년 쯤 진로를 바꿨을 것 같은데.”
“마, 맞아요. 그런 것도 알 수 있다니 신기하네요.”
“당신은 본래 가려던 길에 좌절했을 거야. 하지만 여기 반전(Reversal) 카드가 나왔지. 거기에 운명의 수레바퀴(Wheel of fortune). 귀인을 만나고 삶이 변했어. 그리고 이 카드는… 환경의 변화라. 하지만 아직 결정을 하지 못하고 갈등 중이야. 해외로 나갈 걸 고민 중인가?”
“헉!”
민가희가 놀란 숨을 들이켰다. 실제로 그녀는 지도교수이자 그녀의 스승인 유명 작곡가에게 유학을 권유받았었다. 그녀의 스승은 한국에서 썩기 아까운 재능이라며 그녀가 조금이라도 빨리 해외로 나가 경험을 쌓기를 바랐다.
서주환은 힐끗 민가희를 쳐다봤다. 그녀가 유학을 고민 중이라는 건 처음 듣는 소리였다.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붙잡으면 안 되는 거겠지…?’
이제 그는 완전히 가브리엘라의 타로점을 믿고 있었다. 그래서 순간 민가희가 유학을 고민 중이라는 말에 진지한 고민이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붙잡고 싶다. 하지만 그녀의 찬란한 재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였다. 전문가인 교수가 유학을 권했다면 보내줘야 하는 게 그녀를 위해서라도 맞는 게 아닐까.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하지만 가브리엘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좀 더 기다려.”
“…정말요? 그래도 돼요?”
“재능이 있는 만큼 기회는 여러 번 올 거야. 지금은 일러. 코리아에는 시기상조(時機尙早)라는 말이 있다지? 카드에 나온 바로는 현행 유지가 최선이야.”
“다행이다…….”
민가희는 진심으로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사실 유학을 가는 게 좋을 거라고 했어도 남기를 선택했을 것 같지만 이렇게 확답을 들으니 안심이 되었다.
그때 안심하던 민가희에게 툭 던져진 말이 있었다.
“조심해.”
“네?”
“좀 전에 말했듯 당신 운명은 귀인을 만나 변화했어. 원래의 운명과 달라졌다는 뜻이야. 그런데 그 귀인이 이상해.”
“이, 이상하다고요?”
“이걸 봐.”
가브리엘라의 손가락이 카드를 가리킨다.
산양의 뿔과 박쥐의 날개를 지닌 악마(The devil)가 그려진 카드.
“귀인과 악마라는 조합이 특이해. 그리고 여길 보면 천사가 있어. 귀인은 당신에게 큰 해가 될 수도 있고, 둘도 없는 행운이 될 수도 있다는 소리야.”
“…….”
“다시 말할게. 조심해. 그리고 멘탈을 관리해. 단단히 마음을 먹는다면 그 끝은 행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을 테니.”
“아, 알겠습니다…….”
극존대를 사용하며 꿀꺽 침을 삼키는 민가희.
처음부터 타로점에 대해 진심이던 그녀는 가브리엘라에게 완전히 홀린 것처럼 철썩같이 그 말을 믿었다.
‘이게 매혹 재능인가? 그리고 악마라니. 러스트나 루시를 가리키는 것 같은데… 소름 돋는군.’
단조롭게 말하는 가브리엘라의 화술은 결코 뛰어나다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는 어떤 힘이 있었다. 듣는 사람을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 말을 믿게 된다. 이국적인 백금발과 신비로운 자안도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 한 몫 단단히 차지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후후. 가희, 당신 점은 여기까지 보도록 하지.”
탁!
가브리엘라가 가볍게 웃으며 카드를 정리하자 기묘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풀어졌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운명은 언제든 바뀔 수 있고, 수만 가지 갈래가 있지. 가변적인 길을 확정 짓는 것은 사람의 의지이니, 심지를 굳건히 하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언젠가 좋은 결과가 있기 마련. 참고하도록 해.”
그야말로 점성술사.
어찌 보면 현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
“이제 당신 점을 보도록 하지.”
서주환의 차례가 됐다.
그는 미리 생각해둔 질문을 꺼내려고 했다.
“음. 저는 그럼…”
“Wait. 기다려. 당신 점은 내가 알아서 봐줄게.”
“예?”
“아까 엉터리 사주를 봤으니 제대로 서비스를 해주겠어. 헤이, 파비오.”
가브리엘라는 뒤로 손을 뻗으며 누군가를 불렀다. 그러자 예의 거구의 백인 남성이 척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케이스를 가져왔다.
케이스에 들어 있는 것은 여러 종류의 카드 뭉치.
그녀는 눈을 감은 채로 카드뭉치에 검지를 가져다대며 손가락을 옮겨갔다. 그러나 손가락은 좀처럼 카드를 정하지 못한다. 이내 그녀가 인상을 팍 구기며 서주환을 노려봤다.
“Oh, shit(이런 젠장). 당신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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