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309화 (309/501)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음. 어제 한글 파일 기준으로 7,200자 넘고

오늘은 8,200자가 넘는데

저희 연참한 걸로 합의 보면 안 될까요...?

*

choikim1371 님, 킹던 님, 霧(무) 님 원고료쿠폰 감사합니다!

*

독자님들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크리스마스

25일 크리스마스 당일.

해가 저물어갈 무렵 서주환의 집으로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이석찬부터 정하연을 비롯한 대학친구들과 한수와 서주희 등 대안대학교 예비 학생까지 넓은 집안을 꽉 채웠다.

“그런데 넌 왜 왔냐?”

서주환은 떨떠름한 얼굴로 친동생인 서주희를 보고 물었다. 그에 서주희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왜, 동생이 집에 좀 놀러올 수도 있지. 꼽냐?”

“이 년이 오빠한테 말하는 싸가지가. 팍 씨.”

“오빠가 먼저 시비 걸었잖아! 그치, 오빠?”

서주희가 옆에 있는 장덕훈을 툭 치며 공감을 구했다. 하지만 서주환의 제자를 자처하는 장덕훈으로선 그저 어색한 얼굴로 웃을 뿐이었다.

서주희는 그런 장덕훈을 툭툭 건드리며 장난을 쳐댔다.

“오빠가 뭐라고 좀 해봐. 계속 나 괴롭히잖아.”

“내가 어떻게 형님한테…….”

“칫. 그럼 나 그냥 집에 가?”

“아니, 그게 아니라…….”

장덕훈은 서주환과 서주희 남매 사이에 껴서 쩔쩔맸다. 차마 스승이자 세 살 형인 서주환에게 뭐라 하지는 못하겠고, 그렇다고 서주희에게 집으로 가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서주환은 쩔쩔매고 있는 장덕훈을 보며 깔깔대는 서주희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악! 왜 때려!”

“덕훈이 좀 그만 괴롭혀라, 이 기지배야.”

“혀, 형님, 그래도 폭력은 좀…….”

“뭐? 폭력? 이게?”

서주환은 어쭈, 하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장덕훈을 쳐다봤다. 다른 사람 꿀밤 놓을 때는 아무 말도 않던 녀석이 서주희를 건드리자마자 반응하는 걸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어색한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적이는 장덕훈.

그는 둘을 번갈아보다가 장덕훈에게 툭 말했다.

“너희 사귀냐? 걍 둘이 나가서 따로 놀래?”

농담처럼 던진 두 마디.

장덕훈이 기겁한 얼굴로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

“그, 그런 거 아닙니다! 저랑 주희는 그냥 친구입니다, 친구. 만화, 애니 좋아하는 씹덕 친구요. 사귈 리가 없죠.”

얼마나 당황했는지 평소에 꺼리던 ‘씹덕’이란 단어를 꺼내드는 장덕훈이다. 그에 서주희가 못마땅한 표정이 되어 툴툴댄다.

“한 번만 하면 되지 몇 번이나 부정하는 거야? 내가 그렇게 싫어?”

“어? 아니, 그게 아니라…….”

“아, 됐어. 나도 오빠 싫거든? 석찬 오빠랑 놀지 뭐.”

그 말에 귀엽게들 논다 하고 바라보던 이석찬이 냉큼 손짓했다.

“오, 쭈희! 이리 와. 나도 애니 좋아하거든. 요즘 재밌는 거 뭐 있음?”

“주희야, 그 형은 안 돼!”

“뭐 임마? 얌마, 덕후. 그거 무슨 뜻임?”

“푸흐하하핳!”

서주환은 웃음을 터뜨렸다. 틱틱대는 서주희와 옆에서 한 손 거드는 이석찬. 놀리는 것도 모르고 기겁하는 장덕훈까지. 마치 한 편의 시트콤을 보는 듯했다.

서주환은 한참을 낄낄대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새끼, 오래 걸리겠네. 사귀어도 꽉 붙잡히겠어.’

친동생이 저러는 게 좀 역겹긴 하지만 장덕훈을 구경하는 맛이 제법 쏠쏠했다. 만약 상대 남자가 장덕훈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으면 마냥 웃지만은 못했겠지만 말이다.

그때 한편에 있던 유지경이 제 키만한 트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오빠, 이거 트리 얼마 주고 샀어? 엄청 크다.”

“한 이십 줬었나?”

“히익! 비싸!”

유지경이 화들짝 놀라며 기겁했다. 반면 옆에 있던 정하연은 뭔가 말하고 싶은 듯 그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왜 쓸데없는 곳에 돈을 쓰냐고 잔소리를 하려다가 그의 벌이를 떠올리고 포기한 모양이었다.

‘생긴 건 어디 귀족처럼 생겨놓고선 짠순이란 말이야.’

새하얀 피부와 도도해 보이는 눈매만 보면 어디 유럽 귀족가의 공주님이 연상되는 정하연이다. 하지만 실상은 일행 중 근검절약과 검소함을 가장 잘 실천하는 사람이었으니.

그때 한수아가 도도도 달려와서 옷소매를 잡고 흔들었다.

“환이 오빠! 우리 트리 꾸미자! 빨리빨리!”

“그래. 아, 너 잠깐 방송 켜고 꾸며. 시청자들이 왜 크리스마스에 휴방하냐고 난리라면서.”

여자 인터넷 방송인의 경우 크리스마스 같은 날 휴방을 하면 난리를 치는 시청자들이 있다. 남자친구 만나러 가는 게 아니냐면서 과몰입을 하는 것이다. 한수아는 게임 전문 스트리머이지만 귀엽고 예쁘장한 외모로 어느 정도 여캠 취급을 받고 있었다.

“앗, 방송 켜도 돼?”

“잠깐은 괜찮지. 대신 애들한테 허락 먼저 받고.”

“응응! 언니, 오빠들! 지경아, 덕훈아!”

한수아가 쪼르르 달려가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그들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얼굴 공개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애초에 서주희는 이전에 얼굴을 공개한 적 있고, 다른 사람들도 피팅 촬영을 할 때 얼핏 얼굴을 드러냈었다.

방송이 켜지자 시청자들이 순식간에 급증했다.

- 뭐임? 오늘 휴뱅아니었음?

- 한고미 x마스 휴방 해명해, 한고미 x마스 휴방 해명해, 한고미 x마스 휴방 해명해, 한고미 x마스 휴방 해명해, 한고미 x마스 휴방 해명해, 한고미 x마스 휴방 해명해.

- 방장 남자한테 퇴짜 맞았나봄 엌ㅋㅋㅋㅋㅋ

“우쒸! 퇴짜 맞은 적 없거든요? 오늘 환이 오빠네서 친구들이랑 놀려고 휴방하는 거라고 말했잖아요!”

- 그러고 보니 방이 다르네.

- 오, 뭐임. 여기 솔저 형네 집임? 자취한다더니 원룸이 아니네?

솔저란 서주환이 방송에서 불리는 별명이다. 말년병장 때 군인신분으로 살인범을 잡은 활약과 싸이킥 워치에서 솔저 캐릭터를 자주 써서 그리 불리게 되었다.

- 와씨, 트리 뭔데ㅋㅋㅋ 존나 컼ㅋㅋㅋㅋ

- 으악! 인싸 냄새! 엄마, 나 숨 막혀!

“오늘은 잠깐 급하게 켠 거라서 짧방이에요. 방송 안 하는 친구들 많으니까 예쁜 말만 써주세요! 평소대로!”

- 엌ㅋㅋㅋ 크수만 믿으라고(대충 엄지 척)

- 평소대로? 평소대로 하면 방송 터질 텐데ㅋㅋㅋㅋㅋ

- 게스트 누구야! 얼굴 보여줘! 남자야, 여자야!

“어어? 나쁜 말 쓰면 바로 방송 꺼버릴 거예요? 오늘 여러분이 보고 싶다던 언니도 있는데 방송 꺼요?

- 우리가 보고 싶다던?

- 설마?

- 마사카?

- 다들 손가락 멈춰! 키보드에서 손 떼!

한수아는 이전과 달리 능숙하게 토크를 이어갔다. 순식간에 시청자들을 조용히 만든 그녀는 크리스마스 트리에 캠을 비추며 말했다.

“자, 오늘 할 콘텐츠! 크리스마스트리 꾸미기! 함께 트리를 꾸밀 첫 번째 게스트는 우리 편집자이자 방송 매니저, 주맴!”

- 주맴 ㅎㅇ

- 으악!

- 매주 ㅎㅇ

- 으악!

- 메주 ㅎㅇ

- 얼굴 치워 으악!

“뭐가 으악이야! 너희 다 벤 때린다!”

- ㅎㅎ;; ㅈㅅ

- 주맴 예쁘다!

- 매주 예쁘다!

- 주맴 메주다!

“씨. 방금 메주라고 한 놈 채금 먹일 거야.”

서주희는 말로만 하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방송에 접속해서 매니저 권한으로 시청자 한 명에게 ‘5분간 채팅금지’를 걸어버렸다.

- 독재다, 독재!

- 이거 크수 탄압이야!

- 메주가 얼마나 맛있는데…….

“자자, 다들 조용하시고. 두 번째 게스트는~!”

- 두구두구두구!

- 여자냐, 남자냐!

- 저번에 새로 들어온 편집자 있지 않음?

- 오, 맞네. 그 사람 편집 잘하던데.

- 그래서 여자임? 남자임?

“우리 두 번째 편집자~ 구리구리~ 너구리! 인사해주세요, 너구리 편집자!”

“아, 안녕하세요. 고미TV 편집자 너구리예요.”

유지경은 평소답지 않게 긴장한 듯 어색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방송체질이 아니라더니 카메라 앞에 서면 긴장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녀를 본 시청자들의 채팅이 빠르게 올라갔다.

- 와, 뭐임. 겁나 예뻐.

- ㄹㅇ어지간한 여캠보다 예쁘신데?

- 역시 예쁜 애들은 예쁜 애들끼리 노네.

시청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서주환과의 관계를 통해 매력수치가 상승한 유지경은 여캠이 아니라 어지간한 아이돌에게 비빌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서주희가 초라해 보였던 걸까.

- 주맴이 진짜 매주가 됐어…….

- ㄴㄴ매주가 아니라 메주였던 거임…….

몇몇 시청자들의 채팅에 서주희가 발작했다.

“당신들 닉네임 다 기억했어!”

물론 그 말을 신경 쓰는 시청자는 없었다.

- 너굴 님 왜 편집자 함? 여캠하면 월 천 씹가능.

- 방송해라, 방송! 바로 고미TV 구독 취소하고 옮겨 탄다!

- ㄹㅇㅋㅋ

- ㄹㅇㅋㅋ

유지경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 방송하는 것보단 보는 게 좋아요. 카메라 있으면 어색해서 말도 못하겠고…….”

그때 채팅 하나가 올라왔다.

- 와씨 육덕 너구리 골반 봐라. 떡감 지리겠노.

유지경은 채팅을 보지 못한 것처럼 덤덤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방송에 익숙한 한수아와 서주희는 바로 채팅을 발견하고 표정을 굳혔다.

서주희는 당장 매니저 권한으로 시청자에게 벤을 먹이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보다 먼저 움직인 사람들이 있었다.

- ㅁㅊ 저거 쳐내!

- 위로 올려!

- 영

- 차

- 영

- 차

- 방송 끄면 안 돼!

- [○○○님이 블랙 당하셨습니다]

채팅을 본 유지경이 고개를 갸웃했다.

“응? 누가 강퇴 당하셨네? 무슨 일 있었어요?”

- 몰?루

- 몰?루

- 나니모… 나캇타…!

- 아무 일도… 없었다…!

시청자들이 일치단결해서 모르쇠를 시전했다. 그들이 아는 한수아라면 정말 방송을 끌 수도 있었기에 방송을 계속 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한편 한수아에게 캠을 넘긴 유지경은 서주환에게 다가와서 속삭였다.

“오빠, 어떤 사람이 나보고 육덕 너구리래. 나 살 많이 쪘어?”

서주환은 그 질문에 헛웃음을 흘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더니만 사실 모르는 척 한 것이었다. 그는 유지경의 머리를 토닥이며 말했다.

“안 쪘으니까 걱정 마. 그거 칭찬이야.”

“그래? 흐흫.”

사실 좀 쪘다. 뚱뚱은 아니지만 한참 다이어트를 하던 때에 비해 통통해진 느낌이 있었다. 유지경은 몇 달 간격으로 체중이 들쭉날쭉하게 오르내리는 편이었다.

하지만 서주환은 결코 그녀가 살 쪘음을 티 내지 않았다.

“어, 그러니까 괜히 또 다이어트 하겠답시고 굶지 마.”

다이어트도 제대로 해야 유지가 되는 법이다. 유지경처럼 운동 없이 대충 굶고 건강하지 못한 식단으로 빼면 건강에 이상이 오기 마련이었다.

한수아는 다음으로 서주환을 비췄다.

“환이 오빠, 오랜만에 시청자들한테 인사해줘!”

“오, 안녕하세요. 진짜 오랜만이네요.”

- ? 누구세요?

- ㅁㅊ목소리가 솔저 형인데?

- 아니, ㄹㅇ임? 진짜 솔저 형임?

- 이 분이 고미 님이 말하던 그 환이 오빠임? ㅈㄴ잘생겼네ㅅㅂ

- 갑자기 개빡칠라 하네. 악플 마렵네.

“지금 놀라는 분들은 위튜브에서 고미TV 안 챙겨보신 분들인가 보네요. 저번에 스완 피팅촬영 때 얼굴 공개 했었는데. 뉴비 분들도 있는 것 같고.”

서주환은 몇 번인가 한수아의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다. 그녀의 방송 초창기에 한 번, 살이 좀 빠진 후 한 번, 가장 최근에는 지난 피팅 촬영 후 위튜브에서 한 번이었다. 덕분에 한수아의 방송을 챙겨본 시청자들은 그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 엌ㅋㅋㅋ 검문소ON

- 광고라고 안 챙겨 본 거 딱 걸렸자너ㅋㅋㅋㅋ

- 아니, 이 형 옛날에 한 번 봤었는데 너무 잘생겨졌자너. 얼굴 무슨 일임.

- 오빠, 잘생겼어요!

- 환 님 목소리만 좋은 줄 알았는데 외모 미쳤다!

- 환 님도 방송 해주세요! 가끔씩만 나오니까 아쉬워요ㅠㅠ

적지 않은 수의 여청자들이 채팅을 치는 게 보였다. 가끔 한수아와 게임 합방을 하는 동안 그의 목소리를 듣고 팬을 자처하는 여성 시청자들이었다.

서주환은 그래도 몇 번 카메라를 대해봤다고 능숙하게 대화를 이끌었다.

“저는 몇 번 봤으니까 다른 사람 소개할게요. 야, 썩. 와서 소개해.”

“미친놈아, 썩이라고 하면 이상하잖아. 그런데 어디 보면 되냐?”

“여기.”

이석찬은 신기하다는 듯 카메라를 보고 손을 들어 올렸다.

“오, 이 안에 사람이 있단 말이지? 하이, 대충 썩이라고 부르면 돼요. 이 자식 친구임다.”

- 헐, 이 오빠도 대박 잘생겼어.

- ㄹㅇ환 님이랑 다른 타입의 잘생김이다.

- 꺄악~ 미소년 느낌 낭낭한 거 봐.

이석찬이 인사하자 여성 시청자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 크줌마들 주접 그만 떨어ㅁㅊ

- 보기 좀 역하네.

- 원래 여청자 비율 이렇게 많았나?

- ㅇㅇ원래 고미 방송 여청자 좀 많았음. 평소에 남자 같이 채팅 쳐서 모른 듯.

이석찬은 대충 몇 마디 떠들다가 금방 질린 듯 장덕훈에게로 캠을 돌렸다.

“야, 덕후야, 소개해라.”

“예? 어… 저는 덕후라고 부르면 됩니다. 주환이 형이랑 친한 동생입니다. 고미랑 동갑이에요.”

- 와, 등빨 보소. 키 몇임?

“187입니다.”

- 시발 5센티만요.

- 삼대 몇 침?

- 이 분도 남자답게 잘생겼네. 짜증나게.

- 인싸파티 거북하네. 엄마, 나 속이 안 좋아요.

“삼대는 500 좀 안 나옵니다. 잘생겼다는 말 별로 못 들어봤는데 감사합니다. 인싸 아닐 걸요? 저도 여러분처럼 만화랑 애니 좋아해요. 인방도 크위치 많이 보고요.”

- 와, 헬창 씹덕!

- 그런데 인싸…….

- 나도 씹덕인데 이 차이는 뭐지?

- 씹덕이면 증명해봐ㅅㅂ

- 또 원나블 같은 대중 픽만 보면서 씹덕 코스프레 하는 거겠지. 기만자들…….

이석찬에게서 장덕훈으로 넘어가자 어째 채팅창 분위기가 안 좋아졌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만 나오다보니 어쩐지 화가 많아진 느낌이다.

하지만 곧 신나서 애니를 얘기를 하는 장덕훈의 말 덕분에 분위기가 반전됐다.

“전 페x트 좋아합니다. 시리즈 다 봤고 게임도 하고 있는데 얼마 전에 픽업으로 천장 찍고 5성…….”

- 엄마, 나 한 쪽 귀가 안 들려요…….

- 뭐라는 거야, 이 씹덕은?

- 왜 덕후라고 부르나 했더니…….

- 호감 씹덕 덕후쨩!

- 살려줘, 방장!

“더, 덕후야, 이제 줘!”

“응? 아직 얘기할 게 많은데…….”

한수아는 캠을 가져오려고 폴짝폴짝 뛰었지만 장덕훈과의 키 차이를 극복할 수는 없었다. 결국 그녀는 서주희를 불렀다.

“주매애애앰!”

“덕후 오빠, 이리 와!”

“어어.”

서주희에게 붙들린 장덕훈이 질질 끌려갔다.

캠을 되찾은 한수아는 정하연의 발밑으로 화면을 조정했다.

“마지막은 여러분이 기대하시던 화제의 그 언니입니다!”

- 기다려따!

- 여신님 나와 주세요!

- 벌써 예뻐! 발만 봐도 예뻐!

- 변태새끼 쳐내!

발밑에서부터 서서히 올라간 캠이 정하연을 비췄다.

정하연은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어, 안녕하세요. 정하연이에요.”

“앗, 언니! 이름!”

정하연은 아차 한 표정으로 입을 가렸다. 실수로 이름을 말해버렸다.

“아, 이름 말하면 안 되는구나.”

“아니, 그, 언니만 괜찮으면 상관없긴 한데…….”

“으음. 뭐 어때. 이름 좀 밝힌다고 무슨 문제가…….”

채팅창이 날뛰었다.

- 하연아, 사랑해. 하연아, 사랑해. 하연아, 사랑해. 하연아, 사랑해. 하연아, 사랑해. 하연아, 사랑해. 하연아, 사랑해. 하연아, 사랑해. 하연아, 사랑해. 하연아, 사랑해. 하연아, 사랑해. 하연아, 사랑해. 하연아, 사랑해. 하연아, 사랑해. 하연아, 사랑해. 하연아, 사랑해. 하연아, 사랑해.

- 언니 예뻐요! 미쳤다! 여신이다!

- 여왕님, 밟아주세요. 욕 해주세요. 노려봐주세요. 경멸해주세요. 침 뱉어주세요. 포상 주세요.

- 나 이 사람 알아! 안양 당구장 여신 아님? 여름에 존나 유명했었는데.

- 와 씨, 나도 같이 놀게 해줘!

- 언니, 팬이에요!

- 왜, 너희만 행복해?

- 인싸들 죽어, 인싸들 죽어, 인싸들 죽어, 인싸들 죽어, 인싸들 죽어, 인싸들 죽어, 인싸들 죽어, 인싸들 죽어, 인싸들 죽어, 인싸들 죽어, 인싸들 죽어, 인싸들 죽어.

정하연의 인기는 생각보다 엄청났다. 남자뿐만 아니라 여성 팬도 많았는데, 그녀의 피팅 촬영 영상과 온라인 스완 쇼핑몰에 메인으로 걸린 사진을 보고 유입된 팬들이었다.

정하연은 쉴 새 없이 올라가는 채팅창을 보고 어색하게 웃었다.

“문제가… 생길지도? 아하하…….”

“히이익! 여러분, 오늘 방송은 이만 종료할게요! 트리 장식은 위튜브에서 봐요!”

한수아는 급히 방송을 종료했다. 평소라면 매니저들이 알아서 채팅을 관리했을 테지만 오늘은 급하게 켜느라 관리할 매니저가 없어서 채팅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

[게시글: 한고미 인싸파티JPG.]

- 크리스마스에 방구석에서 인싸파티 보니까 막 부럽고, 외롭고, 공허하고, 짜증나는데 인싸들은 어떻게 놀까 궁금해서 방송은 보고 싶고 이율배반적인 감정에 혼란스러운 와중 방송 종료됨ㅅㅂ. 친구들 와꾸 하나 같이 하나 같이 잘생기고 예쁜 거 실화냐? 인생 개 ㅈ같은 거 씨부레.

└ ‘인싸들은 어떻게 놀까 궁금해서’ㅋㅋㅋㅋㅋㅋㅋㅋ

└ ㅅㅂ이게 웃겨?

└ 덕후는 걍 평범하게 생겼던데.

└ 저 사이에 껴 있어서 그렇지 그 정도면 잘 생긴 편이지. 거울 보고 다시 봐보셈.

└ ㅅㅂ롬아…….

└ 개추하고 간다. 제일 빡치는 건 크리스마스 날 남의 크리스마스 파티 궁금해서 위튜브 빨리 업로드 되길 바라고 있는 나 자신임…….

└ 울면서 추천 눌렀다ㅠㅠ

└ 이거 주작 아님. 내가 추천 백 번 누름.

그 날 고미TV의 팬 카페는 방문을 열라는 게시글로 도배되다 못해 트래픽 허용량을 넘어섰다.

쉽게 말해, 사이트가 터졌다는 소리다.

*

크리스마스트리를 다 꾸몄다.

해가 저문 밤, 그들은 배달음식을 한가득 시켜서 세팅하고 술잔을 부딪쳤다.

술을 마시는 중 이석찬이 말했다.

“아까 채팅 좀 무섭더라. 좀 광기가 느껴졌음.”

서주희가 깔깔거리며 손을 흔들었다.

“에이, 오빠, 그거 다 방송 재밌으라고 시청자들이 컨셉 잡고 노는 거야. 그런 게 좀 과할 때가 있어서 매니저들이 채팅 관리하는 거고.”

“아, 그런 거임? 하긴, 진짜로 그런 거면 좀 소름 돋긴 해.”

두 사람의 대화에 서주환은 떨떠름히 웃었다.

‘그거 컨셉 아닌 사람들도 많을 걸.’

그의 친동생과 이석찬은 타고나길 활발하고 누구나와 금방 친해지는 부류의 사람이다. 지금이야 만화, 애니를 좋아하는 씹덕이라지만 흔히 말하는 ‘진짜’들과는 결이 다르다. 암만 씹덕문화에 빠졌다지만 둘의 상식으로 진짜들을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때 서주희가 말했다.

“오빠랑 언니들은 자만추랑 인만추란 말 알아?”

“아, 그거 알지. 요즘 신조어잖아.”

“아는구나!”

“우리 아직 틀딱 아니다.”

“하연 언니는 자만추? 인만추? 하나 고르고 이유도 설명해주라. 요거 지금 핫한 키워드라서 조회수 잘 나오거든. 출연료 줄게!”

“그럴까? 음. 난 자만추. 이유는…….”

“잠깐, 잠깐! 수아야, 네가 물어봐야지. 고미TV에 올라갈 거니까.”

“으음. 주희가 나한테도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 시청자들 주맴도 좋아하잖아.”

“그럴까?”

서주희는 한 명씩 돌아가며 질문했다. 그리고 이석찬의 차례가 됐다.

이석찬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난 자만추.”

“어, 정말? 의외네. 썩 오빠는 인만추일 줄 알았는데. 참고로 클럽에서 만나고 이러는 건 인만추다?”

“나 자만추 맞다니까.”

“그래? 자만추 뜻을 알지, 오빠?”

거듭 물어보는 서주희에게 이석찬은 씩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자보고 만남 추진. 자만추.”

정하연이 종이컵을 집어던졌다.

“미친놈아!”

“오빠, 변태!”

“푸흐하하하핳!”

“꺄하하핳! 이 오빠 진짜 미친 것 같아!”

이 날 이석찬의 발언은 위튜브에 영상으로 박제됐다.

그리고 무수한 댓글이 달렸다.

- 더러운 인싸…….

- 자만추 뜻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 메모… 자보고… 만남… 추진…….

└ 님 메모해봐야 쓸 일 없잖아요.

└ 아닥하세요.

- 인싸를 죽인다. 오직 그것만을 위해 살아간다.

└ 이거 다 컨셉이죠?

└ 아닥하세요.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