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305화 (305/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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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솔직히 전 글 쓸 때 문체 신경 그리 못 씁니다.

당연히 소설적 과장입니다ㅎㅎ...

악마 포식자에 대한 내용을 한 3천자 정도 썼다가 1천자 정도로 줄였습니다.

쓰다 보니까 문득 소설 안에서 다른 소설에 대한 내용이 상세하게 나오는 건 오히려 독자님들이 싫어할 수도 있겠다 싶더군요ㅎㅎ;;

*

e댕댕 님 원고료쿠폰 감사합니다!

*

독자님들 모두 건강하고 즐거운 주말 되시기를 바랍니다 :D

크리스마스

서주환의 집으로 친구들이 모였다.

“완결 축하해, 주환아.”

“형님, 완결 축하드립니다!”

정하연과 장덕훈이 축하인사를 건넸다.

“아악. 후일담 빨리 내놔, 오빠. 후일다암!”

반면 유지경은 오자마자 글부터 읽더니 다음 편을 내놓으라며 앵기고 있었다.

“나도 좀 쉬자, 건방진 너구리년아.”

“다음펴언!”

“확 삶아 먹어버린다.”

“그거 동물 학대야!”

아무래도 슬슬 자기가 진짜 너구리인 줄 아는 게 아닐까.

서주환은 유지경의 정수리에 꿀밤을 날렸다.

“악! 왜 때려!”

“몰라서 물어?”

그는 입술을 삐죽거리는 너구리를 무시하고 술잔을 채웠다.

“아무튼 다들 고마워. 어쩌다보니 크리스마스 이브 전에 모였네. 내일 저녁에 모였어야 됐는데.”

“내일도 모이면 되지.”

“그래, 인마. 삼 일 동안 술 마실 거라니까.”

“형님, 저 시간 많습니다.”

그들은 새벽 내도록 부어라 마셔라하며 술을 들이켰다.

그렇게 모두가 떡이 되어 뻗은 새벽녘이었다.

서주환은 자리에 누우려다가 머리를 벅벅 긁적였다.

“아, 담배 마렵네…….”

사촌동생인 서정호와 약속을 한 뒤로 끊고 있는 담배. 벌써 몇 달이 지났음에도 이따금씩 흡연욕구가 치밀고는 했다.

‘괜히 약속했나?’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젓는다. 애초에 서정호가 아니어도 언젠가는 끊어야지 생각했었고, 이제 와서는 약속보다도 지금까지 참아온 시간이 아까워졌다.

‘바람이나 쐬어야지.’

서주환은 문을 열고 베란다로 나갔다. 차가운 밤바람이라도 맞으면 담배 생각이 달아날까 싶어서였다.

그때 뒤에서 들여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안 자고 뭐해?”

뒷정리를 마치고 잠들었던 정하연이다. 그녀는 막 잠에서 깼는지 눈을 비비며 다가왔다.

“그냥 바람 좀 쐬고 있었어. 넌? 담배 피우러?”

“아니, 그냥 눈이 떠져서. 그리고 나도 담배 끊었다고 했잖아.”

“오, 아직도 안 피우고 있었어? 금방 실패할 줄 알았는데.”

“이게 사람을 뭐로 보고. 지경이도 끊으려고 하는 건 알아?”

처음 듣는 소리다. 유지경은 따로 담배를 끊겠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지경이가?”

“응. 좀 힘들어하긴 하는데 그래도 많이 줄였더라. 조만간 완전히 끊을 것 같아.”

그러고 보니 최근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냥 바빠서 못 봤겠구나 싶었는데 설마 금연과의 싸움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서주환은 새삼스레 두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필시 두 사람이 금연을 하려고 하는 건 그를 배려해서이리라.

그때 정하연이 어깨를 움츠렸다.

“으, 추워. 겨울바람이 차네.”

“그러게 왜 그러고 와, 춥게.”

서주환은 걸치고 있던 외투를 정하연에게 덮어주었다.

“이거 입어.”

“괜찮아. 너도 춥잖아.”

“어쭈. 괜히 튕기지 말고 줄 때 입으셔.”

“씨. 말 좀 예쁘게 하면 어디 덧 나냐?”

툴툴 거리는 정하연.

서주환은 픽 웃음을 흘리며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매만졌다.

“그러는 넌 말하는 게 많이 예뻐졌네.”

학기 초의 걸걸한 욕설을 달고 살던 정하연과 비교하면 다른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남자처럼 굴던 말씨가 무척 부드러워졌다.

정하연은 민망한 듯 시선을 피하며 툭 쏘았다.

“뭐래, 닥쳐. 셧업.”

“부끄러워하긴.”

“…너 존나 재수 없어졌어. 능글맞아진 게 짜증나.”

“너무 좋다고? 나도 알아.”

“야 이, 사람 말을 좀…?!”

서주환은 쌍심지를 켜고 돌아본 정하연에게 기습적으로 입을 맞췄다. 그는 이내 가벼운 버드키스를 마치고 쪽, 소리를 내며 입술을 핥았다.

“금연 잘 하고 있는 모양이네. 담배 맛이 안 나는 걸 보면.”

정하연은 어딘가 분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봤다.

“…짜증나.”

“응. 나도 좋아해.”

“…….”

입을 다문 그녀를 보고 서주환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할 말이 많은 듯 입술을 우물거리지만 당해내질 못할 걸 알기에 삭히는 모습이 귀여워보였다.

그는 정하연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말했다.

“하연아, 잠깐 기다리고 있어봐.”

“뭐? 어디가?”

“금방 올게.”

서주환은 방에 들어가서 조그만 상자 하나를 가져왔다. 상자는 곱게 포장이 되어 있었는데, 겉면에 ‘정하연’이라는 이름 석자가 쓰여 있었다.

그는 정하연에게 상자를 건넸다.

“원래 크리스마스에 주려고 했는데 지금 주는 게 좋을 것 같네.”

“…이게 뭔데?”

“열어봐.”

정하연은 내심 기쁜 마음에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간신히 다잡으며 포장을 뜯었다. 이내 개봉한 상자 안에는 반지 하나가 들어있었다.

서주환은 반지를 직접 그녀의 약지에다 끼워주었다.

“어때, 마음에 들어?”

“…응. 고마워.”

정하연이 작게 웃으며 고마움을 전했다.

서주환은 씩 장난스런 미소를 띠고 입술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고마우면 뽀뽀.”

“…방금 했잖아.”

“그건 내가 한 거고. 빨리.”

“…….”

정하연은 입을 꾹 다물더니 뒤를 돌아봤다. 혹시나 다른 애들이 나오지는 않았나 살펴본 그녀가 재빨리 입을 맞춘다.

쪽.

부드럽게 맞닿았다가 아쉽도록 금방 사라지는 감촉.

서주환은 큭큭 웃음을 흘리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두르곤 말했다.

“금연 힘들면 굳이 끊지 않아도 괜찮아. 난 너 담배 피우는 것도 좋아하거든.”

“치. 담배 피우는 여자 좋아한다는 사람은 또 처음 보네.”

“뭐, 우리 첫 키스가 담배 맛이어서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고 보니 너 담배 키스할 때 존나 섹시했는데.”

“풋. 이유가 그게 뭐야.”

1학기 MT 당시 고백 후 바로 입 맞췄던 추억.

엊그제 있었던 일 같이 선명한데 어느덧 올 한 해가 다 끝나가고 있었다.

‘사귀고, 헤어지고, 다시 확인하고. 복잡하게도 돌아갔네.’

정하연과 그는 정식으로 다시 사귀진 않았으나 실상은 사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사이였다. 문제라면 그런 관계가 그녀 하나만이 아니라는 것일까.

정하연이 살며시 고개를 기대며 묻는다.

“선물 내 것만 챙긴 건 아니지? 그럼 지경이랑 수아가 서운해 할 텐데.”

“…뭘 그런 걸 묻고 그러냐. 배려심도 넘치네.”

굳이 말하진 않았지만 당연히 유지경과 한수아의 선물도 챙겼다. 그녀가 본 적 없는 민가희와 최미화의 선물도 챙겼음은 물론이다.

서주환은 정하연의 머리를 매만지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해.”

“…어?”

“미안하다고.”

“아니, 그러니까 왜? 갑자기 네가 사과를 왜 해. 선물까지 줘놓고.”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 그녀를 보며 서주환은 눈꼬리를 긁적였다. 곤란하거나 어색할 때면 나오는 습관이다.

“너만 아껴주지 못해서.”

“…뭘 새삼스레 그래. 다 알고 있는데.”

“그래도 이게 정상적인 관계는 아니잖아. 곧 크리스마스인데 단둘이 보내지도 못하고, 내가 선물을 주면 다른 사람까지 떠올리게 되니까.”

크리스마스. 예수님 태어나신 날이라는 종교적인 의미가 담긴 날이지만 실상은 연인들의 행사가 이어지는 날이다.

하지만 서주환은 사정 상 특정 누군가와 보내기가 여의치 않았다. 그가 깊이 관계를 맺고 있는 여성만 몇 명이던가. 그런 상황에서 누구와는 단둘이 보내고, 누구는 만나지 못하고 하는 건 영 못할 짓이었다.

‘하렘 소설 보면 잘만 하던데.’

소설과 현실은 미묘한 차이가 있다. 작중에서 스킵 된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고 해야 할까.

누군가는 이제 와서 웬 착한척이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사람인 이상 미안한 감정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하연은 그런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돌연 팔꿈치로 옆구리를 쿡 찌르며 쏘아붙였다.

“쪼다새끼.”

“윽. 갑자기 뭐 하는 짓이야?”

“너야말로 뭐라고 하는 건데, 멍청아. 너, 사람 우습게 보지 마.”

“아니, 내가 언제 우습게 봤다고…….”

“지금 말하는 게 그렇잖아. 서주환 너, 잘 들어.”

정하연은 붉어진 얼굴로 서주환의 앞섶을 잡아채곤 말을 이었다.

“너랑 이런 관계가 된 건 내가 선택한 거야. 네가 사정을 숨기고 속인 거면 모를까, 다 알고서 내가 선택한 거라고.”

“…….”

“다 알면서도 내린 결정이니까 후회 안 해. 그리고 네가 그렇게 말하면 오히려 불안하다고.”

“뭐?”

“나는 너한테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미안한 사람이야? 계속 미안하다 그러니까 내가 뭐라고 한 것 같고, 막 매달려서 네가 억지로 만나주는 것 같잖아.”

“미친. 그게 무슨 말이야? 난 그런 생각 한 번도…!”

“알아. 그런 뜻 아닌 거.”

정하연은 또렷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바람둥이에 여러 여자를 만나는 쓰레기였지만, 그래도 사람 마음을 가지고 노는 개새끼는 아니었다. 애초에 서주환이 그런 사람이라면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감추려는 듯 서주환의 가슴팍에 고개를 툭 떨구었다.

“그러니까 미안하다느니 그딴 소리 그만하고 제대로 확신을 주란 말이야. 우리 엄마한테 약속했던 것처럼.”

“…….”

그가 잠시 말없이 있자 가슴팍으로 퍽, 하고 주먹이 날아왔다.

“빨리 대답 안 해? 혹시 잊었다고 하면 진짜 죽여버린다.”

“…흐.”

서주환은 작게 웃음을 흘렸다.

작게 물기 어린 눈으로 올려다보는 시선이 왜 이리도 사랑스러운 걸까. 머리카락 사이로 빨개진 귓불은 심각한 분위기에도 장난기를 부추긴다.

그는 정하연을 꽉 끌어안았다.

“당연히 기억하지. 계속 하연이 네 옆에 있겠다고 했잖아. 도망가도 붙잡아다가 옆에 둘 거라고.”

“알았으면 앞으로…….”

“그런데 네 대답은 잘 기억이 안 나네?”

“…뭐?”

서주환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아니 뭐, 내가 그때 약속을 하긴 했는데 어머니하고만 했지 네 대답은 못 들었잖아. 너는 분명 어물쩍 넘어갔었지?”

“너, 너…….”

황당함에 입술을 바르르 떠는 정하연.

하지만 서주환의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의 쓰레기 선언을 들은 당일, 정하연은 그와 다시 몸을 섞고 진득한 시간을 보냈지만, 입으로는 타박하는 말만 잔뜩 했었다.

서주환이 빙글거리며 말한다.

“사실 그건 약속이라기보단 선언이잖아? 그러니 그 약속 지금 다시 하고 싶어.”

“…그래서 뭐 어떡하라고?”

“사랑한다고 말해줘. 그걸로 대답 들은 걸로 할게.”

“…….”

“아, 갑자기 무슨 약속이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나는 것 같기도?”

“이 쓰레기가…….”

정하연은 조금 후회했다. 그냥 미안해하게 내버려 둘 걸. 그세 기고만장해져선 사람을 놀려먹는 꼴이라니. 확 바닥에 메쳐버릴까도 싶었다.

“푸흐하핳.”

서주환은 이내 농담이었다며 그녀를 끌어안고 속삭였다.

“하연이 네가 매달린 거 아니고, 사실 내가 매달린 거야. 그럴듯하게 말해서 붙잡아두고 싶을 만큼 좋아하니까. 그래서 자꾸 미안해하는 거고.”

“…….”

“사랑해. 알겠지?”

“…도…해.”

“응?”

이내 고개를 든 정하연이 눈을 똑바로 마주보고 말했다.

“나도… 사랑한다고.”

“응, 알아.”

서주환은 씩 웃었다. 하여간 부끄럼쟁이의 사랑 고백은 참 듣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더 진심이 와 닿았지만 말이다.

*

정하연까지 잠에 든 새벽.

서주환도 막 잠에 빠지려는 찰나, 돌연 위에 올라온 한 마리 너구리가 멱살을 잡고 말했다.

“아니? 난 미안했으면 좋겠는데? 빨리 나한테 미안하다고 말해, 나쁜 새끼야!”

“켁. 너구리 너, 이건 좀 놓고… 으악, 술 냄새! 케헥!”

“이씨. 나만 빼놓고 언니랑 알콩달콩하니까 재밌냐? 어? 빨리 나한테 미안하다고 해!”

“켁, 미안해, 미안하다고, 너굴아.”

“누가 너구리야, 누가! 이게 좋다고 너굴너굴 해주니까 사람을 뭐로 보고!”

새벽녘 화장실에 가려고 깨어났다가 서주환과 정하연의 이야기를 엿들은 유지경.

그녀는 정하연이 잠에 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서주환의 위로 올라가서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드는 중이었다.

“나한테 미안하다고 해! 나쁜 새끼! 쓰레기 새끼! 왜 나랑 언니 대하는 태도가 달라! 죽어버려!”

역시 하연 언니만 특별한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았으면 왜 선물을 언니한테만 몰래 주었겠는가. 요 두 달 동안 되지도 않는 손재주로 머플러를 만들겠답시고 죽어라 뜨개질을 한 게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아니, 언니도 만들긴 했지만! 그것도 제일 어려운 스웨터이긴 하지만!’

정하연은 스웨터를, 한수아는 벙어리 장갑을, 그리고 자신은 머플러를 만들어 크리스마스에 선물하기로 했다. 그래서 열심히 준비 중이었는데, 이 인간은 치사하게 하연 언니만 특별 취급이다.

“문다! 물어버린다!”

좋아. 이 못된 놈을 오늘에야말로 물어버리고 만다. 술기운과 분노로 돌아버린 지금이라면 할 수 있다!

그렇게 이를 드러내며 캬악 하고 입을 벌렸을 때였다.

“…너구리, 동작 그만.”

싸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유지경은 순간 저도 모르게 몸을 우뚝 멈췄다. 지난 시간동안 학습된 경험이 그녀를 멈추게 만들었다.

“뭐, 뭐…! 내가 그런다고…….”

“입 다물어. 어딜 짐승 새끼가.”

“…….”

차가운 것은 목소리 톤뿐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날카롭게 떠진 눈이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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