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289화 (289/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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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서주환 배우 데뷔?!

*

설 잘 지내셨나요?

누군가에게는 고통스러운 자리였을 수도 있었겠네요.

부디 남은 연휴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D

*

당근왕검 님, jandori 님, 가평방위각 님, 롸이 님 원고료쿠폰 감사합니다!

*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확장되는 일상

촬영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술렁였다.

“지금 캐스팅 제의 하는 거야?”

“와. 나 이런 거 처음 봐.”

“그런데 방금 리액트 엔터라고 하지 않았어?”

“리액트면 거기 맞지? 왜, 지금 유명한 드라마 주인공 있잖아. 그 사람이 리액트 엔터 소속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리액트 엔터는 연예계에 관심 없는 일반인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기획사다. 대한민국의 4대 엔터테인먼트 중에서도 유명 가수와 배우가 가장 많이 소속되어 있었으니 모르기가 힘들었다.

한데, 그런 엔터에서 길거리 캐스팅을 하고 있었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한편 서주환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

“배우요?”

그도 리액트 엔터의 이름을 알고는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제의에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피팅 모델을 하러 왔다가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명함을 내민 남자, 배성근은 확신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조금 전 촬영을 보고 확신했습니다. 그냥 피팅 모델만 하기에는 아까운 분이시라고요! 분명 배우로 대성할 수 있을 겁니다! 아, 함께 촬영하셨던 여성분도요! 꼭 저희 엔터로 모시고 싶습니다!”

“네, 네? 저도요?”

옆에 있던 정하연이 깜짝 놀란 기색으로 되물었다.

“예! 두 분 다 연기지도를 조금만 받으시면 금방 데뷔하실 수 있을 거예요!”

배성근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뻗어왔는데, 정하연보단 서주환에게 더 관심이 있는지 그의 손을 붙잡으려했다.

서주환은 자연스럽게 손을 피했다. 그에 배성근은 민망한 웃음을 지었지만 금세 표정을 정돈하고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때 한 사람이 끼어들었다.

“성근이 형, 오랜만이네.”

“누구… 어? 석찬이?”

배성근은 이석찬을 알아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인사했다.

“이석찬! 네가 여기 왜 있어? 아무튼 오랜만이다!”

“엉. 거의 삼 년만인가?”

“그래, 인마. 연락 좀 하고 살아! 아, 그런데 잠깐만. 나 지금 중요한 볼 일이… 나중에 이야기 하자.”

“아니, 그럴 필요 없음.”

“뭐?”

이석찬은 한 걸음 다가와 서주환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어깨동무를 한 그가 낄낄 웃으며 말했다.

“얘는 형이랑 계약 안 할 거거든. 아, 쟤도 마찬가지.”

이석찬이 중지를 들어 정하연을 가리켰다.

“야, 손가락 안 치워?”

제 맘대로 결정하는 그 태도에 정하연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애당초 배우에 관심이 없었기에 별 말을 하지는 않았다.

배성근은 세 사람을 돌아보다가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벌써 운성이랑 계약한 분들이었어? 어? 그런데 잠깐만. 운성이 엔터 쪽을?”

“놉. 운성은 엔터 안 함.”

“그런데 왜?”

“일단 쟤는 형도 알 걸? 정하연.”

“정하연? 정하연이면… 아!”

배성근은 떠오르는 게 있는지 놀란 눈으로 정하연을 돌아봤다. 그에 정하연은 인상을 구겼다. 이석찬과 친하면서 자신을 아는 걸 보아하니 짐작 가는 바가 있어서였다.

‘한명고 출신인가 보네.’

한명고등학교는 있는 집안 자제들이 다니는 사립 고등학교다. 정하연은 15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운성전자의 사장인 아버지의 밑으로 들어간 후 한명고등학교로 진학했었다.

‘별로 얽히고 싶지 않은데.’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에 그리 좋은 추억이 없었다. 오히려 나쁜 기억들이 만연했다.

배성근은 그녀의 기색을 알아채고 바로 사과했다.

“그, 미안해요, 하연 씨. 인상이 너무 달라져서 못 알아봤네요.”

“…괜찮아요. 그런데 저희 아는 사인가요? 죄송하지만 기억이 안 나는데…….”

“기억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에요. 석찬이보다 제가 이 년 선배였거든요. 아마 몇 번 스쳐지나가며 본 게 다일 거예요.”

“아, 네.”

“하하…….”

정하연의 간결한 대답에 배성근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정하연을 둘러싼 소문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반응을 이해했다.

‘동창회에도 전혀 안 나왔었지. 하긴 나라도 나오기 싫었을 테니까.’

한명고에 다니는 학생들은 대부분 한 끗발 하는 집안의 자제들이다. 다시 말해 인맥을 다지기 좋은 환경이란 뜻이었다. 덕분에 동창회는 졸업하는 순간부터 매년 있었다.

하지만 이석찬과 정하연은 그런 동창회에 전혀 나오지 않았다. 사실 운성그룹 정도 되면 나올 필요가 없기도 했지만, 두 사람이 동창회에 나오지 않은 이유가 비단 귀찮아서 뿐만은 아닐 터였다. 그도 작년부터는 집안만 믿고 막장으로 노는 일부 망나니들의 행태에 질려서 발길을 끊었었다.

‘그나저나 인상이 엄청 달라졌네.’

지금에야 당시의 얼굴이 겹쳐보였지만 이름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 나름 사람을 잘 기억하는 편임에도 그랬다. 그만큼 정하연의 인상은 고등학교 시절과 비교해 많이 달라져있었다.

배성근은 다시 이석찬에게 고개를 돌렸다.

“하연 씨는 알겠어. 그런데 이쪽…”

“서주환.”

“그래, 서주환 씨는 왜? 운성에 소속되어 있는 것도 아니라면서?”

“그건…….”

이석찬은 말끝을 흐리고 주변을 돌아봤다. 자세한 얘기를 이어가기에는 듣는 귀가 많았다.

“나중에 만나서 다시 얘기하자. 오늘은 선약이 있으니까 내일 저녁에 어때?”

“…알았어. 약속 잊으면 안 된다.”

“어어. 나중에 봐.”

이석찬이 손을 흔들고, 배성근은 서주환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멀어졌다.

서주환은 눈꼬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내 의견은 어디?”

*

다음 날, 서주환은 이석찬과 함께 배성근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서주환 씨. 다시 인사드립니다. 리액트 엔터의 배성근 대리라고 합니다.”

“아, 예. 석찬이 친구 서주환입니다. 석찬이한테 얘기 들었어요. 친한 형이라고.”

서주환은 여전히 깍듯하게 인사해오는 그에게 마주 인사했다.

“친한 형이요? 석찬이가 그렇게 얘기했어요?”

“네. 아닌가요?”

“아, 아뇨. 하하. 친한 형 맞죠. 네.”

배성근은 어쩐지 기분이 좋아보였다.

반면 이석찬은 혼자 들어온 배성근을 보고 투덜댔다.

“뭐임. 왜 혼자야?”

“어? 누구 또 오기로 했어?”

“그건 아닌데, 형 아버지가 연예 기획사 사장이잖아. 같이 온 연예인 없음? 예쁜 배우들은?”

배성근이 헛웃음을 쳤다.

“우리 배우들을 여기 왜 데리고 와.”

“그럼 가수는?”

“허 참. 이 녀석 못 본 새 더 또라이가 됐네.”

“석찬아, 좀 닥쳐봐. 내가 다 쪽팔린다…….”

이석찬은 농담이었다면서 낄낄댔다.

“걍 해본 말임. 그리고 쭈환, 솔직히 너도 좀 기대했잖슴.”

“생사람 잡지 마라.”

서주환은 그리 말하면서도 내심 뜨끔한 마음이었다. 큰 기대를 한 건 아니었지만 솔직히 연예인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조금 하긴 했었다.

배성근은 그의 반응을 보고 은근하게 말문을 열었다.

“좋아하는 연예인 있으세요?”

“뭐 특정 연예인이 있는 건 아니고… 가수보단 배우들을 더 좋아하는 편이에요. 영화랑 드라마를 좋아해서.”

“오, 정말 딱이네요.”

“딱이라니 뭐가요?”

“저희 기획사가 가수보다 배우 팀이 더 크거든요. 혹시 이채희 아세요?”

“이채희요? 당연히 알죠!”

서주환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채희를 모를 리가 있겠는가. 이채희는 조금이라도 영화나 드라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유명한 여배우였다.

“그 분 지금 핫한 사극 드라마 여주잖아요. 달빛을 그리는 여인 맞죠?”

“역시 아시는군요. 그럼 지금 통화 시켜드릴까요?”

“네? 정말요?”

“잠시만요.”

배성근은 갑자기 폰을 두드리더니 연락을 걸었다. 그가 설마 싶은 마음에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사이 통화가 연결 되었다.

“채희 누님.”

- 어, 성근아, 왜? 나 지금 바쁜데.

정말로 이채희의 목소리였다. 티비에서 듣던 것과는 약간 차이가 있었지만 충분히 그녀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유명한 여배우와 전화통화를 할 기회라니 심장이 빠르게 뛰는 듯했다.

“바쁘다뇨? 오늘 스케줄 없지 않아요?”

- 쉬느라 바쁘다고. 나 지금 생리 중이라 예민하니까 용건만 간단히 할래?

“누, 누님! 쉿! 지금 스피커폰이에요!”

- 뭐? 야! 그걸 먼저 말했어야지!

톤 높은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서주환은 갑자기 빠르게 뛰던 심장이 진정되는 듯했다. 그 이채희가 저런 말투를 구사하다니?

‘아, 원래 저런 성격이었던가?’

생각해보면 여배우 이채희는 방송매체에서도 가식이 없는 사람이었다. 솔직히, 좋게 말해 가식이 없다는 것이지 똘끼가 다분히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녀와 관련된 구설수가 몇 개고 염문설은 또 몇 개이던가. 시장통 아줌마 같이 괄괄한 성격 탓에 붙은 별명이 ‘왕언니’였다.

어느덧 스피커모드를 끈 배성근은 어색한 얼굴로 그에게 양해를 구하고 방을 급하게 나갔다.

이석찬은 배성근의 뒷모습을 보고 폭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핳! 아, 웃겨 죽겠네. 저 누님 여전한 거 보소.”

“뭐야, 너도 아는 분이야?”

“큭큭. 알지. 빽으로 촬영 구경 갔다가 몇 번 본 적 있어. 좀 오래되긴 했지만. 중딩 때였으니까 한 9년 됐나?”

“9년 전에도 저러셨어?”

“어. 저 누님은 이십 대 초반에도 똑같았음.”

그렇게 이석찬과 대화하고 있는 동안 배성근은 어찌저찌 통화를 마치고 돌아왔다. 어째 짧은 시간 동안 폭삭 늙어버린 듯한 그가 전화기를 내밀었다.

“주환 씨, 여기요…….”

“아, 네.”

서주환은 어색하게 웃으며 전화기를 받았다. 그런데 뭐라고 말해야 하지? 일단 인사부터 하자.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문을 열었다.

“저, 안녕하세요, 이채희 배우님. 이번에 찍으신 드라마 정말 잘 보고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팬이었어요.”

- 어머, 고마워요. 그런데 자기 목소리 좋다.

“네? 아, 칭찬 감사합니다.

- 아이고. 아줌마가 자기라고 하면 싫은가? 미안해라.

“아, 아뇨. 이채희 배우님이 아줌마라뇨? 제 친구라고 해도 믿을 동안이신데요.”

- 푸흡. 그걸 어떻게 알아요? 그리고 자기 몇 살인데요?

“그야 티비에서 많이 봤으니까……. 아, 전 스물 셋입니다.”

- 스물 셋이랑 내가 친구? 푸후후. 티비에서 본 건 다 믿으면 안 돼요. 화장빨에 조명빨이 엄청나거든. 얼굴이랑 몸매 품평하려면 실물로 봐야지.

“푸, 품평? 전 그런 의도로 드린 말이 아닌데…….”

대화의 흐름이 어질어질 했다. 이게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 중 하나로 손꼽히는 여자와의 대화? 얼굴도 보지 못한 사이라 단어선택에 조심을 하는데 상대는 훅 치고 들어왔다.

서주환이 당황하는 사이에도 말을 계속 이어졌다.

- 아무튼, 동안으로 봐준다니까 고맙긴 하다. 그런데 직접 보고 말해주면 더 좋겠는데요?

“어… 그러니까 지금 여기로 오시겠다는?”

- 에이, 아쉽지만 나 생리통이 심해서 못 나가요.

“컥.”

- 아하하. 자기 반응 귀엽다. 아까도 다 들었으면서 뭘 그래요? 내가 이제 와서 내숭 떠는 게 더 웃기지 않나?

“하하…….”

- 됐고, 그 전화기나 귀에서 떼 봐요. 얼굴 좀 보게.

“얼굴이요?”

그 말과 함께 우웅 하고 스마트폰이 작게 진동했다.

- 상대방이 영상통화를 걸었습니다. 영상통화 하시겠습니까?

서주환은 헛웃음을 흘렸다. 직접 보고 말해주면 좋겠다더니 영상통화를 걸 줄이야. 그는 힐끗 배성근의 눈치를 보고 버튼을 눌렀다. 솔직히 이 재밌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 띠링.

- 안녕하세요. 배우 이채희에요~.

스마트폰 화면 너머에서 이채희가 한 쪽 눈을 찡긋하며 손을 흔들었다.

‘와, 이게 여배우인가?’

흐트러진 머릿결에 화장기 없는 얼굴이었음에도 미색이 빛바래지 않았다. 차림새조차 대충 걸쳐 입은 저지에 나시 차림이었음에도 그랬다.

인사하던 이채희가 그를 보더니 놀란 듯 눈을 깜빡이며 말한다.

- 어머, 자기 생각보다 더 잘생겼네?

“하하. 감사합니다. 전 서주환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역시 동안 맞으시네요.”

- 음… 합격!

“네?”

- 성근이가 꼬셔달라고 한 이유가 있었네. 목소리도 좋고 마스크도 괜찮아. 왠지 발성도 잡혀 있는 것 같고, 특히 분위기가… 흠, 자기 딱 보니까 배우 체질이다. 우리 엔터로 와. 내가 잘해 줄게.

“…….”

- 그보다 자기 얼굴 보니까 갑자기 나가고 싶어지네? 어디야? 지금 찾아갈까? 주소 찍어봐봐.

“하하…….”

서주환은 어색하게 웃음을 흘렸다.

‘이 누님 쉽지 않네.’

최근에는 항상 휘두르기만 했던지라 상대 페이스에 휘말리는 건 꽤 오랜만이었다.

그는 씩 웃으며 말했다.

“저 진짜 주소 찍습니다? 오시기로 약속한 거예요?”

- 엄메?

예상과 다른 답이었던 듯 눈을 동그랗게 뜨는 모습이 꽤 볼만했다.

*

한 차례 폭풍 같은 전화 타임이 지나가고 술자리가 진행됐다. 배성근은 좀 전의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 서주환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환심을 사려했다.

서주환은 이쯤 되니 계속 듣고 있기도 미안해졌다. 그는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애매한 표정과 달리 명백한 거절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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