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287화 (287/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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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민족 대명절 설날을 맞아 즐거운 휴재를 시작하겠....!

농담입니다.

설에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휴재는 없습니다.

제가 오롯이 독자일 적에 공휴일 날 연재가 쉬면 그렇게 화가 나더라고요.

쉬는 날이라 좀 맘 편히 보려는데 작가도 쉬어서 연재분이 없다니! 하면서요.

*

아따따따 님 원고료쿠폰 감사합니다!

*

독자님들 모두 건강하고 즐거운 연휴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D

피팅 모델

윤서라와 피팅 모델 계약을 진행한지도 2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날씨는 점점 더 추워졌고, 어느덧 12월이 되어 첫눈이 내렸다.

비교적 늦게 온 첫눈과 함께 피팅 촬영은 시작되었다.

윤서라가 스튜디오에 모인 서주환 일행에게 커피를 내주며 말했다.

“너희 지금 시험 공부해야 되는 거 아니야? 어쩐지 미안하네.”

대학생들은 12월 중순에 있을 시험을 대비해 한창 공부를 해야 할 시기였다. 더불어 출콘과의 1학년 마지막 시험은 실기과목 때문에 과제물로 대체하는 시험이 몇몇 있어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포트폴리오 수정을 거듭하는 중이었다.

그 말에 서주희가 히죽 웃었다.

“이히히. 난 이제 수능 끝나서 괜찮지롱.”

“헤헤. 나도 괜찮지롱!”

수능이 끝난 두 고3은 뒤에 있는 언니 오빠들을 돌아보며 약 올리듯 웃어보였다.

하지만 정작 그 말에 인상을 쓰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항상 학과 1등을 도맡아 하고 있는 정하연이 여유 넘치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난 공부 다 해놔서 괜찮아.”

유지경과 장덕훈도 따라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도 이번 학기는 평소에 공부 열심히 해놨어.”

“저도 괜찮습니다. 사실 실기과목은 제때 과제물 잘 제출했으면 크게 손 댈 거 없지 않습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해. 사실 지금 고생하는 애들은 과제물 대충 했던 애들이 대부분이지.”

그럼 남은 건 두 사람이다.

서주희와 한수아의 고개가 서주환과 이석찬에게로 돌아갔다. 그에 두 남자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시험 그런 거 대충 벼락치기 하면 되는 거 아님?”

“그치. 그리고 지금까지 점수 잘 나와서 기말 하나 정돈 적당히 해도 괜찮고.”

“애초에 난 성적 별로 신경 안 씀.”

“나도.”

서주환과 이석찬에게 대학 성적이 얼마나 중요하겠는가.

서주환은 굳이 대학이 아니더라도 월에 억대 수익을 올리는 스타 작가였고, 이석찬은 그냥 다이아 수저를 물고 태어난 재벌가 손자였다.

물론 이석찬은 후계자 자리 같은 건 내다버린 불량 도련님이었지만 그가 개인적으로 굴리는 돈만 해도 상당했으니 새삼 대학 성적 따위에 연연할 필요가 없었다.

“우와… 둘 다 왕재수.”

괜히 언니 오빠들을 놀려보려던 서주희는 본전도 찾지 못하고 침음을 흘렸다. 정말로 재수가 없는 건, 저리 말하는 두 사람조차도 과에서 5등 이내에 드는 상위권이란 사실이었다.

일행들을 보던 윤서라가 작게 웃었다.

“그렇게 말해주니 다행이다. 그럼 이제 슬슬 촬영 시작할 거니까 준비해.”

“넵.”

“알았어요, 언니.”

“우선은 내가 먼저 시범 보여줄 테니까 참고하면 돼.”

“응? 누나도 촬영해요?”

“아, 내가 안 말했었나? 나도 모델로 촬영할 거야. 쇼핑몰 사장이 예쁘면 효과가 좋거든.”

그리 말하며 찡긋 윙크를 한 윤서라는 카메라 앞으로 향했다. 어쩐지 함께 메이크업을 하더라니 본인 또한 직접 모델로 촬영을 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이석찬이 낄낄 웃음을 터뜨렸다.

“저 누나 자신감 좋네. 사장이 예쁘면 효과가 좋다니.”

“서라 누나 정도면 예쁘긴 하지.”

“그치. 사장이 예쁘면 매출에 효과가 있는 것도 사실이고.”

윤서라는 객관적으로 상당히 예쁜 편이다. 키는 165정도에 몸무게는 52kg정도로 적당히 날씬하고 볼륨감도 제법 좋다. 계란형 얼굴에 갸름한 선을 갖고 있어 어떤 스타일도 잘 어울리고, 메이크업이 잘 먹히는 외모였다.

“서라 언니, 포즈 취해주세요! 아, 좋아요. 좀 더 웃으시고. 표정 너무 예뻐요!”

윤서라는 생각보다 훨씬 능숙하게 표정과 자세를 취했다. 시범을 보인다고 하더니만 사진을 찍히는 게 익숙한 듯 자연스러운 표정과 동작을 취하는 게 일견 프로처럼 보일 정도였다.

“와, 서라 언니 멋있다.”

“진짜 모델 같아!”

“주희야, 찍고 있어?”

“응. 언니도 같이 찍어서 나중에 광고할 때 쓰자.”

여성 진이 촬영 중인 윤서라를 보고 감탄했다.

정하연과 유지경은 평소와 사뭇 다른 윤서라의 모습에 연신 감탄사를 발했고, 서주희는 집에서 가져온 카메라 한 대를 들고 피팅 촬영과는 다른 영상을 찍는 중이었다. 동시에 한수아는 미리 생각했던 광고영상을 어떤 식으로 수정할지 고민하는 듯 제법 진지한 기색이었다.

한편 장덕훈은 묘한 표정으로 윤서라를 바라보다가 서주환을 불렀다.

“주환 형님, 혹시 아시겠습니까?”

“엉? 뭐를?”

“서라 누님 말입니다. 이제 보니까 지엔의 윤설이랑 좀 닮은 것 같아서요.”

“지엔은 뭐고 윤설은 누군데?”

“모르십니까? 지엔은 유명한 아마추어 코스프레 팀이고 윤설은 거기 멤버입니다.”

“아, 들어보긴 했어. 서코랑 부코에서 항상 공연하는 그 팀 맞지?”

“예.”

GN은 게임 캐릭터를 위주로 코스프레 하는 국내 코스프레팀이다. 팀명은 GM에서 따왔다던가. 덕분에 가장 유명한 건 게임 코스프레였지만 만화나 애니메이션 쪽에서도 제법 유명한 팀이었다.

“난 멤버까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슴까? 음. 사실 저도 얼핏 떠올린 거지 정확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시 보니까 좀 다른 것도 같고…….”

“그냥 넘어가자. 밝히기 싫어할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겠군요. 알겠습니다.”

애초에 단순한 호기심이었기에 장덕훈은 금세 관심을 꺼버렸다.

반면 서주환은 내심 장덕훈의 눈썰미에 감탄했다.

‘자식, 날카롭네.’

아마 높은 확률로 장덕훈의 추측이 맞을 터였다. 회귀 전에도 윤서라를 두고 코스프레에 관한 소문이 있었다. 다만 지금보다 한참 후에나 떠돌던 소문이었는데, 소문의 대상인 윤서라가 직접 밝히지 않아서 결국 소문으로만 남았었다.

‘밝히지 않은 걸 먼저 아는 척하기도 좀 그렇지.’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덕질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덕질과 일상을 철저하게 분리하여 일코(일반인 코스프레)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말이다.

“얘들아, 다음은 너희 차례야. 누가 먼저 할래?”

윤서라가 서주환과 정하연을 보며 물었다. 그녀는 능숙한 솜씨로 컷을 뽑아내어 촬영을 일찍 끝마쳤다.

정하연이 앞으로 나섰다.

“제가 먼저 할게요.”

“그럴래?”

“네. 차라리 빨리 찍고 맘 편하게 구경하고 싶어서요. 주환아, 내가 먼저 해도 되지?”

“그래. 잘 하고 와.”

정하연은 고개를 끄덕이고 촬영장 앞에 섰다. 곧 플래시가 번쩍이며 그녀를 찍기 시작했다.

“어머, 하연 씨 몸매 너무 좋다. 원체 다리가 길어서 보정 할 필요도 없겠어. 아, 좀 더 생긋 웃어볼래요? 옳지.”

사진기사는 큰 목소리로 정하연의 기를 살려주며 촬영을 이어갔다. 윤서라 때보다는 다소 느린 템포였지만 처음임을 감안하면 무척이나 빠른 속도였다.

“자, 다음 옷으로 갈아입을게요!”

“하연아, 여기에 탈의실 있어. 내가 도와줄게.”

먼저 촬영을 끝낸 윤서라가 적극적으로 정하연을 도왔다.

정하연은 진청바지에 노란계열 반목폴라, 그 위로 부드러운 질감의 하얀 덤블자켓을 입고 나왔다.

‘역시 예쁘네.’

한동안 또 추리닝 차림만 보다가 꾸며 입은 모습을 보니 새삼 정하연의 외모가 눈에 들어왔다.

다소 창백하다 싶을 정도로 하얀 피부. 립을 바른 붉은 입술. 일견 사납게 느껴지는 눈매지만 한편으론 도도해 보이는 매력을 가진 고양이 눈.

정하연은 전형적인 겨울쿨톤의 색조를 가지고 있어 지금의 계절과 참 잘 어울렸다.

‘스킬 영향을 받고 더 예뻐졌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예쁜 외모가 ‘성스러운 씨주머니’의 효과를 받아 더욱 살아났다. 거기에 메이크업가지 받은 상태였으니…….

그때 사진기사의 목소리가 울렸다.

“하연 씨, 표정 좀 더 부드럽게 해줄 수 있을까? 지금도 좋긴 한데 너무 한 가지 표정만 나온다.”

“아, 네! 죄송합니다!”

“에이, 죄송할 게 뭐 있어. 긴장 안 해도 되니까 자연스럽게 해요, 자연스럽게.”

“네!”

사진기사의 말은 부드러웠다. 하지만 긴장하지 말라고 해서 그게 마음대로 되겠는가. 정하연의 표정은 오히려 더 어색해져만 갔다.

사진기사는 그런 정하연에게 뭐라고 하는 대신 윤서라와 이야기를 나눴다.

“서라 언니, 그냥 이대로 갈까요? 어차피 옷을 홍보해야 하는 거니까 몇 개는 얼굴 잘라내서 스틸 컷으로 살리면 괜찮을 것도 같은데.”

“으음. 그건 정 안 되면 하고, 일단은 조금만 쉬고 다시 해보자. 난 하연이 얼굴이 나왔으면 좋겠거든. 내가 만든 옷이랑 딱이잖아.”

“하긴. 사실 표정 조금 딱딱해도 상관없긴 할 거예요. 내가 너무 신경 쓰는 거지.”

“후후. 그런 꼼꼼함 때문에 너한테 부탁한 거잖아.”

이야기를 마친 윤서라는 밝은 얼굴로 정하연에게 손을 흔들었다.

“하연아, 잘했어! 조금 쉬었다가 다시 하자!”

“아, 네!”

정하연이 세트장에서 내려왔다. 일행들은 기다렸다는 듯 그녀에게 다가가 칭찬세례를 퍼부었다.

“누님, 멋있었습니다.”

“하연 언니, 완전 예뻐! 겨울 여신 같았어요!

“힉. 그러지 마, 수아야. 민망하게.”

“아니, 진짜 엄청 예뻤어요, 언니. 수아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라니까요? 그치 지경아?”

“응. 진짜 재수 없게 예쁘던데?”

“너구리 너…….”

“왜, 왜! 뭐! 칭찬한 거야!”

“풋. 고맙다고.”

이석찬은 낄낄대며 그녀를 놀렸다.

“찐따쉑. 표정 굳었죠? 석고상이죠? 인상 드럽죠? 사실 쉬는 거 아니고 답 없어서 긴급회의 들어간 거… 커억!”

“넌 좀 닥쳐. 그딴 말 할 거면 왜 따라온 거야, 미친놈이?”

“쿨럭. 사람은 있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성장하는 법이쥬?”

“야, 너 일로와!”

“뛰어서 땀나면 메이크업 지워지죠?!”

“이 개새…!”

이석찬은 명치를 한 대 맞고도 꿋꿋하게 놀려대며 도망갔다. 화가 난 정하연은 씩씩댔으나 그의 말대로 메이크업 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다.

서주환은 폭소하며 물을 가져다주었다.

“하연아, 여기 물 좀 마셔.”

“아, 고마워. 그런데 고마운 김에 이석찬 저 새끼 좀 잡아와주면 안 될까?”

“나도 메이크업 했는데?”

“쳇.”

정하연은 나중에 패야지 하고 중얼거리며 물을 마셨다.

서주환은 그런 정하연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하연아.”

“?”

“오늘 밤에 너희 집 갈게.”

“?! 콜록, 콜록!”

“나 벌써 꼴릴라 그래.”

“미, 미친놈아! 애들 있는 곳에서 무슨 말을…!”

정하연은 다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 일행 모두는 사진기사에게 가서 지금까지 촬영한 사진을 보는 중이었다.

서주환은 낄낄거리며 그녀에게 말했다.

“지금 표정으로 사진 찍으면 딱일 것 같은데?”

“다, 닥쳐, 또라이 새끼야!”

정하연은 화가 나거나 부끄러우면 욕을 한다. 당황해도 마찬가지. 그를 따라 담배는 끊었어도 욕은 감정이 격할 때 툭툭 튀어나오곤 했다.

“하연아, 다시 시작할게! 올라와!”

윤서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주환은 얼른 가라고 말하면서 보이지 않는 각도에서 정하연의 엉덩이를 슬쩍 한 번 주물렀다.

“이, 이 미친놈이…!”

“하연아!”

“아, 네! 언니, 올라갈게요! 서주환, 넌 나중에 보자. 죽었어.”

사나운 표정으로 노려보며 말하는 정하연.

하지만 서주환은 느물느물 웃을 뿐이었다. 이제 와서 저런 귀여운 협박에 쫄 리가 없지 않은가.

“어떻게 죽여줄 건데? 기대하고 있을게. 어어? 빨리 안 올라가고 뭐해? 기다리잖아.”

“…씨이!”

정하연이 촬영장으로 올라갔다.

“어머? 갑자기 표정이 좋아졌네?”

카메라를 통해 정하연을 바라본 사진기사는 놀라울 정도로 달라진 그녀의 표정에 감탄을 흘렸다. 다소 딱딱하게 굳어 부자연스러웠던 표정이 부드럽게 풀려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신이 나서 소리쳤다.

“하연 씨, 자세만 계속 바꿔주세요! 옷깃 살짝 잡고. 그렇지. 들기도 해보고, 하고 싶은 포즈 다 해줘요!”

그녀는 일부러 표정을 언급하지 않았다. 의식하는 순간 지금의 좋은 표정이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저 차가워 보이는 얼굴에서 이런 부드러운 표정도 나올 수 있다니.

‘아참, 인물사진이 아니지.’

저도 모르게 정하연에게 집중하던 그녀는 정신을 다잡았다. 인물이 좋으니 포커스가 자꾸 옷에서 사람으로 넘어가려 했다. 그녀는 프로 정신을 발휘해서 옷이 돋보이도록 노력했다.

반면 서주환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촬영 현장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안정의 손길이 효과가 좋긴 좋아. 아, 눈 마주쳤다.’

촬영장 바깥에서 정하연과 눈을 마주친 그는 씩 웃으며 입모양으로 말을 걸었다.

‘오늘 밤에 죽여주기로 약속한 거다?’

말이 전해졌을까? 정하연은 얼굴을 붉게 물들이더니 이내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찰칵!

“방금 너무 좋았어요! 아이고, 그런데 이건 못 쓰겠다. 옷이 아니라 하연 씨한테 포커스가 잡혀버렸어.”

서주환은 나중에 꼭 저 사진을 받아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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