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이상하게 수능 날은 모두 추웠음ㄹㅇ
*
전죄전랑 님, 리바이버s 님, 제이워터 님, 샤이어드류이드 님, 청과세탁 님, asdahfuoho 님, 아래스 님 원고료쿠폰 감사합니다!
*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수능 끝, 적셔!
희끄무레한 달빛이 비추는 새벽.
한수아는 어두운 방 안에서 눈을 떴다.
‘목말라.’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갈증이었다. 저녁 늦게까지 마신 술 때문인지 입안이 바싹 말라서 건조했다.
한수아는 몸을 뒤척이며 항상 머리맡에 놓아두는 물병을 찾았다.
물컹.
하지만 손에 느껴진 것은 플라스틱의 딱딱한 촉감이 아닌 부드럽고 말랑한 살결이었다. 그에 한수아는 간신히 고개를 돌려 손에 잡힌 물체를 확인했다.
‘주희 가슴이었구낭.’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말랑말랑한 촉감에 서주희의 가슴을 몇 번 더 조몰락거렸다.
‘그런데 주희가 왜 우리 집에 있는 거지?’
한수아는 의아함에 눈을 깜빡이다가 앗, 하고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 보니 술을 먹은 건 그녀의 집이 아니라 서주환의 자취방이었다.
‘언니 오빠들이랑 놀다가… 다들 먼저 집으로 돌아갔었지.’
다들 자취방이 따로 있어서 본인들의 집으로 돌아갔다. 유일하게 자취를 하지 않는 장덕훈은 애초에 안양에 본가가 있다고 했고.
그렇게 한수아 자신과 서주희만 서주환의 자취방에 남았다. 술에 잔뜩 취하는 바람에 그가 품에 앉아서 옮겨준 것까지 기억이 났다.
‘아으. 환이 오빠한테 또 민폐 끼쳤어. 나 안 무거웠을까…….’
한수아는 비틀비틀 방을 나와서 물을 찾았다.
“푸아! 시원해……!”
메마른 목을 축이자 청량감이 느껴졌다. 몽롱했던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 물맛에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후아. 이게 무슨 물이지? 상표도 없네?”
혹시 말로만 듣던 에비x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물맛이 좋았다.
“읏.”
물병을 둘러보던 한수아는 다리를 움츠렸다. 갈증을 해결하고 나니까 소변이 보고 싶어진 것이다.
‘화장실, 화장실!’
몇 번 와본 적이 있기에 다행히 화장실의 위치는 알고 있었다.
쏴아아~.
소변을 본 한수아는 다시 자기 위해 방으로 향했다.
“응? 저긴 환이 오빠 방인데.”
그러던 중 서주환의 방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걸 발견했다. 그녀는 살며시 방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봤다.
“앗, 환이 오빠 안 자고 있었… 흡.”
반갑게 서주환을 부르던 한수아는 재빨리 자신의 입을 막았다. 그가 전에 없이 진지한 얼굴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타다다닥, 타닥, 타다닥.
서주환은 이어폰을 꽂은 채 쉴 새 없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럴 때마다 모니터 위에 켜진 한글 파일의 백지가 까만 글줄로 채워졌다.
한수아는 조금 망설이다가 살며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끼익, 소리가 들리지 않게 조용히 문을 닫고 그의 뒤에 자리를 잡았다.
‘우와. 오빠 이런 얼굴 엄청 오랜만에 본다.’
최근 십 년 정도는 보지 못한 얼굴이었다. 마치 어렸을 적 무언가에 단단히 빠진 서주환을 보는 듯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한 가지에 빠지면 주위를 다 잊을 정도로 하나에 집중하곤 했었다.
‘우리 오빠 멋지당…….’
한수아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헤실헤실 웃으며 그를 지켜봤다. 글을 쓸 때는 이런 얼굴을 하는구나. 세상 진지한 기색으로 글을 썼다가 지웠다하며 집중하는 모습이 무척 멋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서있자니 슬슬 다리가 저려올 즘이었다. 서주환이 돌연 의자를 뒤로 재끼며 크게 기지개를 켰다.
“으아아아~!”
“흐익?!”
“엉? 수아?”
서주환은 옆에 있는 사람을 보고 눈을 끔뻑였다. 놀란 얼굴의 한수아가 히끅, 딸꾹질을 하고 있었다. 축복을 사용해 집중한 탓에 누가 온 줄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 왔어? 왜 자지 않고.”
“히끅. 잠깐 나왔다가, 히끅, 오빠가 일어나 있는 것 같아서, 히끅. 으에에, 딸꾹질이 안 멈춰. 히끅!”
“나 때문에 놀랐구나? 거실로 나가자.”
“응… 히끅!”
“푸하하핳!”
“아앙. 웃지 마아! 히끅!”
서주환은 그녀의 귀여운 딸꾹질에 폭소하며 거실로 나갔다. 웃지 말라며 뾰로통해진 볼을 콕콕 눌러 공기를 빼주면서였다.
그는 냉장고에서 음료를 꺼내왔다.
“자, 이거 마셔. 딸기우유 좋아하지?”
“응! 딸기 맛이 제일 맛있… 히끅!”
“큭큭. 얼른 마셔.”
“또 웃어…….”
한수아는 자꾸만 낄낄대는 그를 뾰족하게 쳐다보다가 우유를 마셨다. 꼴깍, 달콤한 딸기 맛이 입안에 퍼진다. 그녀는 기분이 좋아져서 삐진 것도 잊어버리고 헤헤 웃었다.
서주환은 맛있게 딸기우유를 꼴깍이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작게 웃었다. 문득 장난기 넘치는 너구리가 떠올라서였다.
“너구리는 초코우유. 멍멍이는 딸기우유.”
“우응?”
“아냐, 아무것도.”
“?”
“푸흐흐.”
머리 위로 물음표를 동동 띄우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나왔다. 그는 귀엽다는 듯 한수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헤헤.”
한수아는 자신의 머리를 어루만져주는 손길에 헤실 웃음을 흘렸다.
남들보다 훨씬 커다란 손. 그래서 더 따듯한 손.
어렸을 적부터 머리를 어루만져주던 이 손길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그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어쩐지 마음에 안정이 찾아왔다. 어쩌면 아빠보다 더 익숙한 손길일지도 모른다.
‘앗, 아빠 미안해!’
한수아는 문득 떠올린 생각에 속으로 사과를 읊조렸다. 아빠가 알면 무척 서운해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다시 입가에 미소를 짓고 만다. 어쩌겠는가. 스윽 머리칼을 만져주는 그의 손길이 너무 좋은 것을.
한수아는 눈을 감은 채 그 손길을 만끽하다가 이내 손이 멀어져가는 것을 느끼고 아쉬운 표정으로 눈을 떴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져서 그를 불러본다.
“환이 오빠.”
“응?”
“이거 다른 사람들한테도 해주지?”
“뭐를?”
“머리 쓰다듬어주는 거. 음, 그러니까, 지경이랑 하연 언니한테도 하지?”
“어… 그렇지? 아무래도 습관이 들어서.”
그가 머리를 쓰다듬는 건 일종의 손버릇이었다. 다름 아닌 한수아로 인해 생긴 습관이다.
“치이.”
한수아는 감출 수 없는 서운함에 뾰로통하게 볼을 부풀렸다. 어쩐지 제 것을 빼앗긴 기분이 들었다.
서주환은 검지로 한수아의 볼을 꾸욱 눌러서 바람을 뺐다.
“삐졌어?”
“삐졌어!”
“서운해?”
“서운해!”
“미워?”
“미…입지는 않아.”
입술을 삐죽거리면서도 결국은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 한수아.
서주환은 피식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그녀를 바라봤다.
‘참 밝단 말이야.’
한수아는 천성이 밝은 아이다. 오죽하면 재능에 명기(明氣)가 표기되어 있을까.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밝은 기운을 나눠주는 한수아이기에 예전부터 그녀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 스스로도 사람을 미워하는 법을 모르는 듯 누구와도 잘 어울렸고 말이다.
하지만 정말 아무렇지도 않을까? 지금 그의 여자관계는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마음씨 좋은 사람이라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형태였다.
폴리아모리(polyamory). 두 사람 이상을 동시에 사랑하는 다자간의 사랑.
다른 이성과 관계를 맺지만, 상대에게 동의를 구한다는 점에서 바람과는 구별된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관과 정서에 위반되기에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바람과 다를 바 없었다.
‘따지고 보면 난 폴리아모리도 아니지.’
폴리아모리란 성관계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서주환은 경우에 따라 성관계만을 목적으로 두기도 한다. 물론 그 이면에는 재능과 포인트에 대한 탐욕이 깔려 있었지만, 시스템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그저 지조도 없이 섹스에 미친놈일 뿐이었다. 실제로도 어느 정도는 미쳐있었고 말이다.
“수아야.”
“으응?”
“밉지 않다는 건 누구를 말하는 거야? 나?”
“그야 당연하지. 환이 오빠는… 응, 환이 오빠니까.”
한수아는 볼을 붉게 물들이며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큰 고백이라도 한 듯한 표정이었다. 그녀에게 서주환은 서주환이라서 사랑하는 존재였으므로.
“지경이나 하연이는?”
“…지경이랑 하연 언니?”
“두 사람도 안 미워? 어떻게 보면 수아는 날 빼앗긴 거잖아.”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짓궂은 질문이다. 괜히 건드려봐야 썩 유쾌하지 못한 화제였다.
하지만 서주환은 한 번쯤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이미 다 아는 관계라지만 대충 뭉개고 넘어간다면 알지 못하는 사이 감정이 쌓일 테니까 말이다.
‘다 잘 지냈으면 좋겠어.’
정하연과 유지경은 물론 이 자리에 없는 다른 여자들도 말이다. 과한 욕심임을 알면서도 그런 바람이 들었다.
한수아는 서주환의 질문에 입가를 우물거리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지경이랑 언니는… 안 미워해.”
“정말?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은데.”
“진짜야. 둘 다 좋은 사람들인 걸. 그래도 질투는 하지만…….”
그리 말하던 한수아는 돌연 고개를 번쩍 들고 서주환을 노려봤다.
“그, 그러니까 환이 오빤 나한테 좀 더 잘해주란 말이야! 지금은 둘 다 좋아하지만, 질투가 커지면 미워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나? 나야 수아한테 항상 잘해주지. 언제나 수아 생각하는 걸.”
“…거짓말쟁이.”
“거짓말 아닌데. 나 잘하지 않았나? 오늘 수능장에 응원도 하러 갔잖아. 응?”
“그, 그건 잘해준 게 맞지만… 우씨. 한참 부족하다구!”
억울한 얼굴로 노려보는 한수아.
서주환은 어색한 표정으로 눈꼬리를 긁적였다. 여기서 얼마나 더 잘해줘야 하는 거지? 뭐, 이 어리광이 귀여운 거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이어진 한수아의 말에 깨끗이 사라지고 말았다.
“분명 나 보러 자주 온다고 했으면서 방학 끝나고 한 번도 안 왔잖아.”
“아…….”
“전화도 거의 나만 먼저 했어. 그나마 게임도 내가 먼저 연락해야 같이 해주고.”
“미안, 수아야. 그건 바빠서…….”
“나도 알아. 바빠서 그런 거. 오빠는 학교 다니면서 글도 쓰니까. 그래서 지금까지 말 안 했던 거라구. 그런데 환이 오빤 계속 짓궂은 소리만 하잖아. 내가, 어떻게 지경이랑 하연 언니를 싫어해?”
말하다보니 감정이 북받친 걸까.
한수아는 어느새 촉촉해진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경이랑 언니한테 오빠를 빼앗겼다고? 맞아, 당연히 그런 기분 느꼈어. 하지만 그건 두 사람도 마찬가지잖아. 먼저 오빠랑 했던 건 둘이니까… 두 사람한테는 내가 굴러들어온 돌인 거잖아.”
“…….”
“오히려 지경이는 나한테 다 말해줬어. 내가 오빠한테 가는 걸 허락해줬다구. 하연 언니도 마찬가지야. 분명 싫었을 텐데 공부 열심히 하라면서 응원해주고…….”
“…….”
“그런데 막상 오빠는 나를 어린애로만 보는 것 같아. 나만 오빠를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혹시 억지로 받아준 건 아닐까 걱정된단 말이야…….”
서주환은 자신이 잘못 생각했음을 깨달았다. 한수아가 보이는 감정은 어리광이 아니라 서운함과 불안함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동생으로만 봐와서일까. 그녀는 명백한 성인이고, 심지어 몸까지 섞은 사이었음에도 어리게만 대하고 말았다. 키가 작고 귀여운 외모라도 그 속까지 어리기만 한 것은 아닐진대.
‘너무 거만했던 걸지도.’
시스템을 얻고 많은 변화를 겪었다.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던 과거를 청산했고, 누구도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편견에서 벗어났다. 여러 능력을 얻었음은 물론 외모 또한 연예인에 비견될 정도로 잘생겨졌다. 그리고 많은 여자들이 자신을 좋아해준다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래서일까.
감정을 받기만 하고 제대로 돌려주지는 못한 걸지도 모르겠다.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을 이해해주는 만큼 더 확신을 줘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가까이 있지 않았다는 건 변명이 안 돼.’
한수아는 정하연이나 유지경처럼 함께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늘 붙어있지 않아서 소홀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한수아와는 불과 1시간 채 되지 않는 거리에 있었다. 하다못해 전화라도 자주 해줄 수 있었을 텐데,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하고 말았다. 하루에 몇 분만이라도 연락을 했다면 이처럼 불안해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이 와중에도 한수아는 그의 눈치를 봤다.
“오, 오빠, 미안. 갑자기 막 뭐라고 해서. 난 그냥… 이런 체형이라서 오빠랑 제대로 하지도 못하니까, 내가 싫어진 걸까봐 그랬어. 미안해. 나 싫어하지 마…….”
그 말이 결정적이었다.
‘여의봉 스킬을 얻어놓고도…….’
성기 사이즈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여의봉’ 스킬. 이를 이용하면 체구가 작은 한수아라도 문제없이 관계를 가질 수 있었다.
한데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 때까지 차일피일 미루고 말았으니.
“…오빠?”
서주환은 한수아를 품에 끌어안았다. 작고 여린 체구가 품 안에 쏙 들어왔다. 그녀는 이내 그의 가슴에 고개를 묻고 그를 단단히 끌어안았다. 허리를 꽉 부여잡는 손길에서 감출 수 없는 마음이 전해진다.
일전, 여름방학을 기점으로 한수아는 자신의 마음을 숨김없이 전해왔다. 그녀는 튕긴다거나 떠본다거나 그런 밀당의 개념이 없었다. 다만 크나큰 애정을 오롯하게 정면에서 부딪혔다.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자.’
한수아가 자신을 좋아하는 감정을 너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마음을 나눈 여자들에게는 그래선 안 되었다.
서주환은 그녀를 품에서 떼어냈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 당혹스러운 얼굴.
그는 작은 뺨에 손을 올리며 입술을 맞췄다. 아이가 아닌 여자의 얼굴을 한 그녀가 사르르 눈을 감고 입맞춤을 받아들였다.
“미안해, 수아야.”
“으응. 그냥 투정부린 것뿐인데.”
“사랑해.”
“…어?”
“사랑한다고.”
“어, 나, 나도 사랑해. 응. 엄청 사랑해.”
당황하던 한수아의 얼굴이 활짝 밝아졌다. 특유의 헤실거리는 듯한 웃음을 머금은 그녀가 목을 끌어안고 뺨을 부벼왔다.
서주환은 그런 한수아의 귓가에다 속삭였다.
“수아야.”
“응!”
“지금 할까?”
“응! …응?”
한수아는 그의 말뜻을 깨닫고 흠칫 눈을 크게 떴다. 조금 물러나 그의 얼굴을 바라보니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는 게 보였다.
“지, 지금? 저쪽 방에 주희도 있는데…….”
“싫어?”
“아, 아니이, 싫은 게 아니라아…….”
“그럼 좋아?”
“…조, 좋아.”
끄덕끄덕.
한수아가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