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271화 (27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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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수요일 연재분을 정상적으로 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장례식에 갈 일이 생겨서 예약을 걸어두고 급히 대전으로 가는 길입니다...

가능한 연재에 차질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모두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D

야매 성(性) 상담 치료사

기사가 나오기까지는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았다.

[(사회) 조폭 패싸움. ‘혈흔 낭자’한 도박장.]

[강남 불법 도박 하우스. 조직폭력배 ‘31명’ 검거.]

[불법 도박 하우스에서 ‘권총’ 발견. 총기 밀수입 조사 착수.]

[조직폭력배 문규석, 도박사기 및 폭력사주에 이은 강간까지. 각종 혐의와 증인 다수 나와.]

인터넷 기사부터 각종 뉴스매체를 비롯한 언론이 수십, 수백 개의 기사를 쏟아냈다. 문규석의 이름은 직접적으로 언급되어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고, 그간 보복이 두려워 숨죽이고 있던 피해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러한 와중 서주환과 백강호가 하우스에서 벌인 일들은 조직폭력배 끼리의 싸움으로 둔갑되었다. 언론 어디에도 서주환의 이름이 나오는 일 따윈 없었다.

“어제 벌어진 일인데 벌써 이렇게 된다고? 소름 돋네.”

서주환은 조금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에 이석찬이 술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운성이 대한민국에 뿌리박은 지가 70년이 한참 넘었음. 살짝 비틀어서 언론에 퍼뜨리는 정도야 일도 아니지.”

“그리고 넌, 그 운성의 일원이고?”

“그렇긴 한데… 그냥 돈 많은 일반인이라고 생각하셈. 운성이 대단한 거지 내가 대단한 건 아니거든.”

이석찬은 드물게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후계 자리를 포기하고 독립하려는 입장에서 운성을 자랑스럽게 말하기가 민망했던 것이다.

서주환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그의 빈 잔을 채워주었다.

“아무려면 어떠냐. 그런 거 알고 너랑 친구 먹은 것도 아니고. 너나 하연이나 그냥 같이 있으면 재밌으니까 친구하는 거지.”

“으. 이 새낀 하여간… 넌 오글거린다는 자각이 없음?”

이석찬이 질색하는 기색으로 술을 받았다.

서주환은 억울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신경 쓰는 것 같길래 풀어서 말해줬더니 그걸 오글거린다고 하면 어쩌잔 말인가.

그는 뚱한 얼굴이 되어 내뱉었다.

“오글거린다는 단어 만든 사람 줘 패고 싶네……. 낭만이 없어요, 낭만이.”

“으웩. 낭만충 쉑. 아무리 작가라도 소설이랑 현실은 구분 좀.”

‘확 살기 써버릴까…….’

서주환은 잠시 고민하다가 픽 웃어버렸다. 그리고 맞은편에 앉은 백강호에게도 술을 따라주었다.

“형님, 어제도 말했지만 정말 감사했어요. 덕분에 두 다리 뻗고 편하게 잤습니다.”

짐짓 공손한 태도로 술잔을 채우자 백강호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짜식이, 새삼스레 예의를 차리고 그러냐.”

“전 언제나 깎듯했는데요? 석찬이 놈처럼 싸가지 없지 않습니다.”

“난 왜 걸고 넘어짐?”

“시꺼. 형님이랑 말하는 중이잖아.”

“와, 이 새끼 봐라…….”

“푸하하하!”

백강호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석찬을 대하는 서주환의 태도가 기꺼워서다.

보통은 아무리 친하더라도 이석찬의 가족내력을 알거나 이런 저런 일을 경험하면 은연중에 태도가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한데 서주환은 그런 모습이 전혀 없었다. 어떤 편견이나 태도의 변화 없이 이석찬을 온전히 친구로 대하고 있었다.

‘그런 걸 신경 안 쓰는 성격인 건지, 아니면…….’

운성그룹조차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자신감이 있는 건지.

백강호는 픽 웃으며 말했다.

“석찬이 이 놈이 널 왜 좋아하는지 알겠다.”

“아, 형. 저 게이 아님.”

“큭큭. 새끼 부끄러워하긴. 자, 짠 한 번 해야지?”

세 사람은 술잔을 부딪치고 넘겼다. 독한 위스키가 몸을 따뜻하게 달구었다.

백강호는 한창 술을 마시다가 서주환을 바라봤다.

‘역시 특별한 점은 없었지.’

지난 밤, 혹시 놓친 것이 있을까 싶어 서주환에 대해 다시 한 번 조사를 해봤다. 그러나 여전히 특별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백강호는 마지막 확인을 위해 서주환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주환아.”

“네, 형.”

“너 혹시…….”

“? 말씀하세요.”

서주환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마주봤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하기에 이리 뜸을 들인단 말인가? 그것도 사뭇 진지한 기색으로 말이다.

백강호가 특유의 호랑이 같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사람 죽여본 적 있냐?”

“…네, 네?”

서주환은 순간 깜짝 놀라서 말을 더듬었다.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냐니. 무슨 말을 할까 싶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이 날아든 것이다.

한편 놀란 것은 함께 있던 이석찬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그가 서주환보다도 대경실색해서 되물었다.

“형,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

그러나 백강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주환을 응시했다. 대답을 들어야겠다는 태도였다.

서주환은 잠시 당황했지만 금세 평정을 되찾았다. 백강호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짐작 가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살기 때문이구나.’

추측컨대 백강호는 범상치 않은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그가 특수능력을 통해 발현한 살기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수 있다. 살기는 이능이 아니었으므로.

서주환은 이내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아니요. 사람은 고사하고 동물도 죽여본 적 없어요. 모기는 많이 때려잡아봤지만.”

“…흐. 푸하하하.”

농담 섞인 대꾸에 백강호는 일순간 진지했던 기색을 풀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모기는 잡아야지. 흐흐.”

“…뭐야, 나만 이 대화 이상해?”

이석찬은 미간을 찌푸린 채 두 사람을 번갈아봤다. 살기를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그는 대화의 흐름을 쫓아갈 수가 없었다. 뜬금없이 사람을 죽여봤냐는 질문하며 그에 진담 같은 농담으로 받아치는 서주환 또한 이상해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백강호는 그런 이석찬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하긴, 애초에 감 좋은 이석찬이 문제 있는 사람을 저리 가까이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도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만의 하나를 생각해서 괜히 해본 질문에 불과했다.

그는 이내 서주환에게 사과했다.

“이상한 질문해서 미안하다. 그냥 어제 본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물어봤어.”

“네. 저도 어제는 좀 과했다고 생각해요.”

“과하다라… 내가 안 말렸으면 어떻게 됐을 것 같은데?”

그 질문에 서주환은 입가로 가져가던 술잔을 멈칫했다. 이가 부러지고 안면이 함몰된 문규석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새삼 죄책감이 느껴지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스스로도 느꼈던 바가 있었기에 어제 있었던 일을 되새겼다.

‘확실히 어제는 평소보다 과격했지.’

변명거리는 있다. 주먹과 발길질은 물론 각종 연장과 칼까지 날아드는 상황이었다. 괜히 망설였으면 어디 한 군데 크게 다쳤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박투’와 ‘살인’ 재능이 이끄는 본능에 몸을 맡긴 것이다.

하지만 과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평소와 달리 격양된 상태라지만 사람을 반죽음에 가까운 상태로 만들었다. 거기서 문규석을 내키는 대로 팼으면 정말로 죽었을 가능성이 충분했다.

그러나 서주환은 고개를 저었다.

“알아서 멈췄을 거예요. 전 사람 죽일 정도로 담이 크지 않거든요.”

“그래?”

“예.”

서주환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심으로는 굳게 다짐을 하면서였다.

‘재능에 휘둘리지 않아.’

재능은 그가 다루는 것이지 휘둘리는 힘이 아니다. ‘살인’ 재능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을 잘 죽일 수 있는 재능이지 그에게 살심을 느끼게 하는 요소가 아니었으니.

‘문규석은 팰만해서 팬 거고.’

만에 하나, 아니, 억에 하나 사람을 죽이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아무나 죽이는 살인마가 되지는 않으리라. 더불어 재능에 휘둘려서가 아닌 그의 선택으로 벌어진 일일 것이다.

백강호는 그런 서주환을 보며 술을 들이켰다. 속으로는 헛웃음을 흘리면서였다.

‘담이 작긴.’

담이 작은 사람은 애초에 어제 같은 일을 벌이지 못한다. 아무리 화가 난다 하더라도 어느 일반인이 조폭들을 직접 때려잡으러 간단 말인가. 그가 보기에 서주환은 쓸데없이 강한 담력과 전투능력을 타고났다.

백강호는 이내 서주환에게 말했다.

“주환아,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죽지 않지만, 생각보다 쉽게 죽기도 한다.”

“…멈췄을 겁니다. 정말로요.”

“알아, 인마. 그 말을 하는 게 아니야.”

“그럼요?”

“네가 의도하지 않아도 상대가 죽을 수도 있다는 소리다. 툭 쳤는데 억 하고 죽을 수도 있다고.”

백강호는 아직도 어제 서주환이 싸우던 모습이 선명했다.

본능적으로 사람의 급소를 노리고 치던 움직임.

서주환의 동작은 어딘가 이상했다. 어디서 무술을 배우지 않았다는 소리가 사실인 듯 어설퍼 보이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이상하게 무척 숙련된 몇 가지 동작들이 있었다. 그리고 정말 위험한 공격은 숙련된 동작이 아닌 어설픈 움직임에서 나왔다.

“너 어렸을 때 태권도 말고는 배운 거 없다고 했지? 진짜냐?”

“그렇다니… 아, 생각해보니까 아는 사람한테 기술 몇 개 배운 적은 있어요. 그냥 원투랑 로우 킥 같은 거요. 그 외 관절기 몇 개 정도? 그런데 며칠 안 배웠어요.”

일전에 장덕자를 꼬실 때 잠깐 배운 것이다. 체육관에서도 몇 가지 기술을 겉핥기로 배우긴 했다.

백강호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서주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이내 다시 헛웃음을 흘렸다. 어이가 없어서였다.

‘며칠 배운 게 그 정도라고?’

가르침을 받았다니 어느 정도 납득이 되긴 했지만, 이쯤 되니 길을 잘못 든 게 아닌가 싶다. 이 녀석은 작가가 아니라 격투기 대회에 나가야 할 놈이었다. 물론 그러한 생각은 그가 서주환의 지닌 다른 재능을 모르기에 든 생각일 뿐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백강호는 서주환에게 충고했다.

“차라리 제대로 배워봐라.”

“네?”

“말했잖냐. 툭 치면 억이라니까? 차라리 제대로 알고 치는 게 낫다. 원래 사람 안 죽게 잘 패는 것도 배운 사람이 잘해.”

“…생각해볼게요.”

“알았다. 아무튼 사람 칠 때는 힘 조절 잘해라.

“예.”

“말이 길었네. 이 건에 대해서는 더 말 안 하마. 꼰대가 쓸데없이 참견해서 미안하다.”

“에이, 미안하긴요. 걱정해서 조언해준 거잖아요. 오히려 고맙죠, 형.”

서주환은 씩 웃으며 답했다. 아무려면 걱정 어린 조언을 꼰대의 잔소리로 들을 만큼 막 되먹진 않았다. 덕분에 새삼 느끼는 바도 있었고 말이다.

“으. 야만적인 인간들. 사람이 죽느니 어쩌니. 술 맛 떨어지게, 진짜.”

병풍처럼 혼자서 술을 홀짝이던 이석찬이 투덜댔다. 그는 과장되게 몸서리를 치며 술병을 들었다.

“그런 얘기 그만하고 술이나 마셔. 비싼 술 앞에 두고 뭐하는 거임? 형도 아직 젊으면서 왜 아저씨처럼 굴어.”

이석찬은 백강호의 잔에 위스키를 들이부었다. 일견 버릇없어 보이는 태도에도 백강호는 끌끌 웃음을 흘렸다.

“인마, 내 나이면 아저씨지.”

“요즘 백세 시대인 거 모름? 삼십대면 청춘임.”

“그건 저도 동의. 형 수염만 깎아도 열 살은 어려보일 걸요?”

“혜리가 수염 있는 게 좋다고 했다. 절대 안 깎아.”

“아내 사랑이 지극하시네요.”

“그럼. 우리 혜리 같은 여자 또 없다. 으하하.”

백강호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사정을 아는 이석찬만이 낮게 혀를 차며 안타까워할 뿐이었다.

*

“그럼 들어가세요, 형님. 나중에 또 봬요!”

“형수님한테 안부 전해줘, 형.”

“그래, 둘 다 잘 들어가라.”

백강호는 귀여운 동생들의 인사에 끌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술도 깰 겸 밤바람을 쐬며 집으로 걸어갔다. 건들건들 걸어가는 그의 손에는 박스 하나가 달랑거리고 있었다. 서주환이 감사선물이라며 건네준 박스였다.

그는 문득 박스를 보고 픽 미소 지었다.

“주환이 녀석, 형들한테 예쁨 받겠구만.”

저리 사교성 좋은 녀석이 학창시절 친구 한 명 없이 지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알아본 바에 의하면 군대에서부터 많은 변화를 겪었다던데, 거기서 좋은 인연을 만든 모양이었다.

백강호는 담배 냄새를 최대한 지우고 집으로 들어갔다.

“혜리야, 나 다녀왔어.”

“아, 여보. 어서와. 찌개 해놓은 거 있는데 밥 줄까?”

“괜찮아. 밖에서 애들이랑 잘 먹고 왔어.”

“석찬이랑 주환이 만났다고 했지?”

“어. 석찬이가 안부 전해달라더라. 주환이 녀석도.”

“후후. 둘 다 고맙네.”

이혜리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정말 고맙기도 했지만, 백강호가 두 사람을 좋아하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백강호에게 가볍게 키스하며 물었다.

“씻고 바로 잘 거야?”

“어어. 오늘은 술 먹었으니까 잠만…….”

“알았어. 여보 편할 때 해. 난 언제든 괜찮아.”

싱긋 웃으며 부드럽게 말하는 이혜리.

백강호가 발기부전에 걸린 뒤로 그녀는 모든 잠자리를 그에게 맞춰주고 있었다.

“…고마워.”

백강호는 쓰게 웃으며 욕실로 들어갔다. 아내의 배려가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 자괴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슬슬 아이를 가져야 할 나이임에 미안함도 커져만 갔다.

‘혜리가 제대로 느끼기만 해도 좋을 텐데…….’

백강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자. 마음의 안정을 취하다보면 괜찮아질 것이다. 의사도 신체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명상이라도 해서 심신의 안정을 찾아야한다.

‘주철 형님이 배려까지 해줬는데 잘해봐야지.’

그가 이석찬의 아버지인 이주철의 곁을 떠나 쉬게 된 것은 일종의 배려였다. 그가 지쳤다고 판단해서 유급휴가를 준 것이다.

“후우. 개운하네.”

씻고 나온 백강호는 냉장고 문을 열고 냉수를 꺼냈다. 그러다 문득, 식탁 위에 놓인 박스를 발견했다. 서주환이 준 선물이었다.

“아, 자기 전에 먹으라고 했었지.”

남자 몸에 좋은 영양제라던가. 그는 곱게 포장되어 있는 박스를 뜯고 영양제를 복용했다.

그리고.

“음…? 으, 음? 오오오?!”

백강호의 눈이 점점 놀람으로 물들더니 찢어질 듯 크게 뜨였다. 그는 이내 입을 함지박만하게 벌리고 안방으로 향하는 문을 부술 듯 세게 열었다.

벌컥!

“꺅?! 여, 여보? 왜 그래?”

잘 준비를 하던 이혜리가 화들짝 놀라서 그를 돌아봤다.

백강호는 그녀를 보며 아래를 가리켰다.

“혜, 혜리야, 이거 봐봐…….”

“응? 뭐를… 어머? 여, 여보 그거!”

백강호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 섰어! 드디어 섰다고!”

잠들어있던 소중이가 대략 일 년 만에 벌떡 일어선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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