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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저는 클리셰를 꽤 좋아하는 편입니다.
작가 말고 독자로써요.
작가로써는 떡씬보다 전투씬 쓰는 걸 즐기는 편입니다.
이번엔 현대 일상물이라 제대로 된 전투씬이 없는 게 아쉽네요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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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프리 님, asdsms8777 님, 엘라이니 님 원고료쿠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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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가 되시기를 :D
미안해, 주환아
김호진의 돌발행동에 식당 안의 분위기가 침잠되었다. 즐겁게 떠들고 놀던 목소리가 가라앉고 사람들의 얼굴 위로 당황이 떠올랐다.
김호진은 눈물을 뚝뚝 떨구며 사과의 말을 읊조렸다.
“미안해, 주환아. 너한테 그랬으면 안 됐는데. 난 왕따 같은 데 동조나 했는데 너는… 크흑.”
“야, 얌마. 떨어져. 술 먹고 뭐하는 짓이야?”
서주환은 그리 말하면서도 김호진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사내자식이 울면서 안기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솔직히 불쾌하기보단 당황스럽고 고마웠다.
‘자식이 생각보다 엄청 여리네.’
학창시절 김호진이 그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준 일은 없었다. 다만 그와 말을 섞지 않았을 뿐이다. 문규석 패거리를 제외하면 이 자리의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별로 신경도 안 쓰는데.’
당시에는 몰라도 지금은 아무런 감정이 없다. 아직 미성숙한 학생 시절에는 주변 분위기를 따라가기 마련이고, 흉흉한 소문이 도는 문규석에게 반항하기란 쉽지 않을 일이었다.
“인마, 괜찮아. 다 지난 일인데 뭐.”
그는 픽 웃으며 김호진을 일으켰다. ‘안정의 손길’로 등을 토닥여주었더니 벅찼던 마음이 좀 가라앉은 듯 진정한 기색이다.
하지만 상황은 일단락되지 않았다. 김호진의 여자친구인 조혜윤도 사과를 해왔던 것이다.
“그, 주환아, 나도 미안해.”
“저기, 나도…….”
“사과도 안 하고 어물쩍 넘어갈 뻔했네. 미안해, 주환아.”
여러 동창들의 사과도 이어졌다. 술기운이 그들을 진솔하게 만들었다. 김호진으로 시작된 사과 때문에 회식 자리는 어느새 사죄의 장이 되어버렸다.
“아오. 괜찮다니까. 다들 그만해. 사람 민망하게…….”
서주환은 그리 말하면서도 작게 웃음이 나오는 걸 느꼈다. 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속에 자신도 모르는 응어리가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어쩐지 가슴 한편이 개운해지는 듯했다.
[업적, ‘용서하는 사람’을 달성하여 10,000LP가 지급됩니다.]
“푸핫!”
그는 갑작스러운 시스템 메시지에 웃음을 터뜨렸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그는 술병을 들고 친구들에게 한 잔씩 따라주며 말했다.
“아무튼 그만들 해. 다들 마시고 풀자. 더 하면 나 민망해서 가버릴 거야.”
앉은 자리에서 수십 명의 사과를 받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생전 처음 겪는 상황에 슬슬 닭살이 올라올 지경이었다.
“자, 잠깐만.”
그때 당황 가득한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주환이가 왕따를 당했었다니?”
목소리의 주인은 담임선생님이었던 유민서다. 그녀는 이 자리의 누구보다도 당혹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 그게…….”
서주환은 어색하게 눈꼬리를 긁적였다. 갑자기 받은 십수 명의 사과 때문에 잊고 있었는데, 이곳에는 왕따 사건에 대해 까맣게 모르는 유민서도 있었다.
*
동창회 자리가 파했다.
본래라면 유민서가 1차에서 자리를 비키고 남은 사람들끼리 2차를 갔을 테지만, 갑작스러운 사죄의 장 이후로 대부분이 주량을 넘겨버렸다. 불콰하게 취한 그들은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다들 잘 가!”
“연락해!”
“주환아, 다음에도 와야 돼!”
“그래. 다음에 또 보자.”
서주환은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인사불성이 된 김호진이 꼭 다시 연락해야 된다 말하며 여자친구인 조혜윤에게 끌려갔다.
“주환아, 나도 가끔 연락해도 돼?”
양혜지가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서주환은 그녀의 이마에 따악, 손가락을 튕겨주었다.
“동창회 때만 보자, 동창회 때만.”
“치이.”
“나 좋아하지 말고 다른 남자 찾으셔.”
그가 씩 웃으며 말하는 걸 본 양혜지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뭐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단 말인가. 몇 번이나 여자를 거절해본 적 있는 태도에 얼굴값 한다는 말이 새삼 와닿았다.
“우와, 재수 없어. 왕재수!”
“큭큭. 문규석은 너한테 연락하지 말라고 해놨으니까 걱정 말고.”
양혜지의 눈이 동그래졌다. 농담처럼 했던 말인데 그걸 벌써 해결해주었단 건가?
“어, 진짜? 정말이야?”
“오냐. 정말이시다. 아, 사귀자는 거 아니니까 오해 말고.”
“우씨. 그런 오해 안 하거든? 아무튼 고마워! 나도 이제 갈게!”
“어, 잘 가.”
“아참!”
양혜지는 떠나가기 전 귓가에 속삭였다.
“배에 아직도 네 거 남아있거든? 임신하면 책임져야 한다?”
“…….”
“히히. 나 진짜 갈게!”
서주환은 헛웃음을 지으며 멀어져가는 양혜지를 바라봤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조금 섬뜩했다.
‘백날 기다려봐라, 임신이 되나.’
아암. 어림도 없지. 혹시 나중에 다른 놈 애 가져서 오면 진짜로 혼내줄 것이다. 부디 정신 차리고 자기 재능을 찾아 가길 바랄 뿐이다.
‘그럼 이제…….’
서주환은 슬쩍 뒤를 돌아봤다. 모두가 돌아간 자리에 남아 있는 사람이 있었다. 마지막까지 남아 제자들을 배웅한 유민서였다.
‘이 선생님을 어떻게 꼬신다?’
마침 둘만 남게 되었는데 술이나 한 잔 더 하자고 찔러볼까. 근처에 괜찮은 바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방법을 궁리하고 있을 때였다.
유민서가 먼저 다가오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주환아, 술 많이 마셨던데 괜찮니?”
“아, 네. 술이 센 편이라 멀쩡해요.”
“다행이네. 너무 많이 마셔서 걱정했는데.”
“하하. 걱정 마세요. 취해도 금방 깨거든요.”
일부러 과장되게 으쓱하며 허세를 부리니 유민서가 작게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침울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선생님한테 시간 좀 내줄 수 있을까?”
“시간이요?”
“으응. 아까 그 이야기 때문에…….”
중학생 시절 왕따 사건을 말함이다.
처음 신고를 받고 둘을 화해를 시켜서 해결된 줄로만 알았던 사건. 이후에 이어진 보복이나 지속된 왕따에 대해선 까맣게 모르고 있던 사건.
서주환이 더 이상 분위기를 흐리기 싫다며 어물쩍 넘어갔지만, 얼핏 듣기로도 3년 내내 괴롭힘을 받았다고 하였다. 고작 1년뿐인 담임이었다지만 그녀는 선생으로서 자격 미달을 느꼈다.
‘나 때문이야. 내가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해서.’
당시 유민서가 서주환에게 신고를 받고 선택한 방법은 당사자들끼리 마주보게 하고 가해자에게 사과를 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아직 어린 학생들의 문제이니 그걸로 충분할 줄 알았다. 그 방법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건 시간이 좀 더 지난 후였다. 그리고 깨달은 후에도 그때 당시에는 아이들이 착한 덕에 무사히 넘어가서 다행이라고만 생각했다.
‘이미 지나간 일이라지만…….’
제대로 용서를 구해야한다.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어물쩍 섞여드는 사과로는 안 된다. 그녀는 어린애가 아닌 선생님이었으므로.
유민서는 책임감과 죄책감을 느꼈다.
‘나이스!’
한편 서주환은 쾌재를 부르는 중이었다.
[성(性)에 관한 강력한 행운이 개입합니다.]
김호진이 술에 취해 울면서 사과하는 게 왜 행운인가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다.
‘죄책감 때문에 이러는 거구나.’
동창들의 사과에 이어 간략하게 밝힌 당시의 사건.
그것이 유민서의 마음에 죄책감을 심어주었다. 그녀가 반 아이들을 진정으로 아끼고 참된 선생님이었기에 기회가 만들어졌다.
‘죄책감을 이용하는 건 좀 죄송하지만.’
S급 재능 조각이 눈앞에 있는데 약간의 양심 따위가 문제인가. 따지고 보면 이쪽은 피해자임이 확실하다. 그리고 유민서는 섣부른 판단으로 잘못된 결정을 내려 그를 더 힘든 상황에 빠트렸던 사람이다.
그렇게 정신무장을 마친 서주환은 짐짓 서글픈 표정을 만들었다.
‘경은 누나가 나한테 연기를 못한다고 했었지.’
리더십 캠프에서 만난 강사.
주경은은 그에게 연기가 어설프다고 말했었다.
그래서 서주환은 능력을 사용했다.
[특수능력, ‘성대모사’가 활성화됩니다.]
흉내 내는 대상은 최근에 본 사극 드라마의 주인공. 상황은 과거의 트라우마를 여주인공에게 애처롭게 털어놓는 장면.
서주환은 가슴 아픈 표정으로 유민서를 바라봤다. 그리고 고통이 담긴, 낮게 갈라져 물기가 배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이야기는, 말하는 게 좀 힘들어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힘들어서.”
“아…….”
서주환의 표정은 조금 어설펐지만, 목소리만큼은 가슴을 아리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감정이 짙게 담긴 목소리에 유민서는 안타까운 소리를 내며 눈꼬리를 늘어트렸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못난 선생님 때문에…….’
서주환의 표정과 목소리는 어디까지나 연기지만, 그 내용만큼은 더 없는 진실이었다. 어렴풋하게나마 그의 과거를 들었기에 유민서는 공감했다.
서주환은 울 것만 같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선생님께 이야기하고 싶어요. 저 선생님 많이 좋아했거든요.”
“으응. 선생님도 주환이 좋아했어. 책임감 강하고 착한 아이였거든.”
“한 번쯤은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어요. 그게 선생님이면 좋을 것 같아요. 선생님은 누구보다 우리를 아껴줬으니까. 저한테 유 쌤은 학창시절을 통틀어 제일 좋은 선생님이었어요.”
“주환아…….”
유민서는 자신의 제자를 올려다봤다.
왕따 문제를 해결해주지도 못한, 오히려 악화시킨 자신에게 좋은 선생님이라 말해주는 제자. 그렇기에 오히려 죄책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어느덧 장성한 제자가 말한다.
“맨 정신으로는 좀 힘든데… 술 한 잔 하실래요? 좀 취해야 될 것 같아서.”
“그래, 선생님이 사줄게.”
“하하. 그럼 오늘은 어리광 좀 부릴게요, 유 쌤.”
그리 말한 서주환은 자연스럽게 유민서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잠시 흠칫했지만, 손을 빼지는 않았다. 오히려 힘을 불어넣어주려는 듯 더욱 꽉 잡아왔다.
아픈 기억을 가진 제자가 어리광을 부리겠다고 하지 않던가. 참된 스승인 그녀가 거절할 리 없었다.
서주환은 그녀가 보이지 않는 각도에서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선생님, 저 그때 많이 힘들고 아팠어요. 진짜 미안하면 위로 좀 해주세요.’
이왕이면 몸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는 오늘도 한 걸음, 착실하게 개새끼로 거듭나고 있었다. 루시가 봤으면 과연 욕망시스템의 주인이라며 칭찬했을 모습이었다.
*
서주환과 유민서는 단 둘이서 대화하기 좋은 공간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트라우마에 가까운 내용이니만큼 방음이 잘 되는 곳이 좋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가게 안에 들어온 유민서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침을 꼴깍 삼켰다. 어쩌다보니 서주환에게 이끌려 들어오긴 했는데, 인테리어만 봐도 꽤 값이 나갈 것 같았다.
‘히익!’
아니나 다를까, 메뉴판을 보는데 금액 단위가 기본 몇 만원에서 수십을 호가했다. 교사 월급으로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액수였다.
‘으으. 내가 싫어지려고 한다.’
제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자리에서 돈부터 걱정하다니. 속물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현실이 너무 미웠다.
‘아니지. 용서를 구하는 게 아니야. 용서는 하는 사람의 마음이고, 나는 잘못을 비는 거야.’
용서를 하느냐 마느냐는 당사자의 몫이다. 진심어린 사과란 용서를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서주환의 트라우마 자체도 자신이 억지로 만든 화해 때문에 생긴 일 아니던가. 그녀는 마음가짐을 새로이 다잡았다.
드르륵.
그때 문이 열리고 화장실에 다녀온다던 서주환이 돌아왔다. 그는 화장실에서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온 참이었다.
‘아이템 풀 장착. 오늘 승부를 본다.’
쓸 일이 없어 인벤토리에 박아두었던 아이템을 여럿 사용했다. 그는 시력이 좋아진 이후로 거들떠보지도 않던 안경까지 착용한 채였다.
【슬픈 사연이 어린 은테 안경】
▶ 효과: 착용자의 눈에 우수에 찬 느낌을 불러온다.
【매력 상승 립밤】
▶ 효과1: 입술의 매력을 상승시켜준다. 여성이 보기에 키스를 하고 싶어지는 입술일지도?
▶ 효과2: 입술이 트는 걸 방지하고 이미 튼 입술을 재생시켜준다. 재생에는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
* 한 번 바르면 두 시간 동안 효과가 지속된다.
【편의성 만점 점안액】
▶ 효과: 일일이 직접 투여하지 않아도 원하는 순간 점안액이 분비된다.
유민서의 반이었던 만큼 그녀의 성격은 대충 알고 있었다. 그녀는 여리고 착한 심성 탓에 힘들고 아파하는 사람을 외면하지 못한다.
‘트라우마, 죄책감, 슬퍼하는 제자.’
컨셉은 이미 정해졌다.
서주환은 와인과 안주를 시켜 유민서와 잠시 잔을 나누다가 말했다.
“선생님, 그럼 슬슬…….”
“으응. 편하게 얘기해, 주환아.”
유민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웃어보였다. 트라우마에 대해 털어놓는 서주환을 안심시켜주기 위함이다. 어쩌다 보니 사과를 하는 게 아닌 상담에 가까운 자리가 되었지만, 이 또한 교사로서 해야 할 일이었다.
서주환은 와인으로 입술을 적시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때 선생님이 화해를 시키고 난 후… 들으셨다시피 문규석은 전혀 반성하지 않았어요. 선생님 앞에서만 사과했을 뿐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괴롭힘은 더 심해졌죠.”
“…….”
유민서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두 주먹을 꼭 모아 쥐며 말을 삼켰다. 지금은 서주환이 이야기하는 때다. 중간에 끊고서 미안하다고 말해봐야 얼마나 진정성이 있을까.
그때였다.
주륵, 제자의 눈에서 눈물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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