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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쉬운 여자 양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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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라이니 님, 천락의검 님, 표버미 님, 천락의검 님, 환희voice 님, wadize 님, 달현 님 원고료쿠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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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D
미안해, 주환아
[페티시, ‘Agoraphilia(中)’를 수집하여 5,000LP가 지급됩니다.]
[업적, ‘최단 시간 합체’를 달성하여 3,000LP가 지급됩니다.]
[업적, ‘공용 화장실에서 합체’를 달성하여 5,000LP가 지급됩니다.]
[업적, ‘가끔은 인스턴트가 별미’를 달성하여 1,000LP가 지급됩니다.]
[양혜지가 지닌 상위 세 가지 재능 중 하나를 무작위로 습득합니다.]
[잠재등급A+, ‘일러스트레이터’를 습득했습니다.]
메시지를 확인한 서주환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3분의 1확률이라 다른 게 나오면 어쩌나 했는데 원하는 재능이 나온 것이다.
‘나이스! 이제 내 소설 삽화는 내가 뽑는다!’
양혜지와 즉석에서 떡을 친 목적을 달성했다. 앞으로 직접 일러스트를 그릴 수 있게 됐다는 생각에 다른 메시지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얼마나 기쁜지 문득 양혜지가 예뻐 보일 지경이었다.
반면 양혜지는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정액을 느끼고 울상을 짓는 중이었다. 잘못하면 정액이 팬티 아래로 흘러버릴 것만 같았다.
“대체 얼마나 싼 거야? 혹시 생기면 어쩌려고 그래!”
“위험 일이야?”
“그건 아니지만…….”
“걱정하지 마. 임신 안 해.”
“그걸 어떻게 알아? 완벽한 안전일은 없다고!”
화장실에서도 느꼈지만 양혜지는 의외로 제대로 박힌 성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공중화장실에서 한 것부터가 정상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에게 들킬 법한 상황에서 더 흥분하는 걸 보면 변태 기질이 다분한 여자였다. 애초에 만난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바로 관계를 가진 것만 해도 그랬다.
‘상관없지 뭐.’
변태 기질로는 남 말 할 입장이 아니다. 이미 양혜지보다 더 한 사람들을 만나보기도 했고, 시원하게 뺏으니 만족할 뿐이었다.
“읏. 아직도 흘러나와. 진짜 많이도 쌌네. 엄청 좋았나봐?”
“…….”
“주환아, 우리 지금부터 1일 맞지? 응?”
다만 옆에서 쫑알거리는 걸 들어주기란 꽤 고역이었다. 상대가 정하연이나 유지경이었으면 귀엽고 예쁘게만 보였을 텐데 사람에 따라 느껴지는 감정이 이토록 달랐다.
서주환은 혀를 차며 말했다.
“1일은 무슨.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뭐야, 그럼 따먹고 버리겠다고?”
“헛소리 그만해. 나만 재미 봤냐? 지가 더 즐겨놓고.”
서주환은 매몰차게 말했다. 그와 깊이 관계를 맺은 다른 여자들이 봤으면 놀랄만한 태도였으나, 사실 그는 사람을 꽤 가리는 타입이었다. 기본적으로 선량하지만 상대에 따라 얼마든지 냉정해질 수 있다.
“…칫.”
양혜지는 더 따지지 않았다. 애초에 진심으로 한 말도 아니었다. 어떤 무드도 없이 관계만 가진 상황 아니던가. 더불어 시종일관 거칠었던 서주환의 태도를 보고 사귀는 건 포기한지 오래였다. 다만 못 먹을 감 찔러나 보자는 심정이었는데, 생각보다 더 매몰찬 태도에 마음이 조금 상했다.
‘그래도 엄청 기분 좋았으니까 됐나?’
짧은 시간에 치른 섹스는 지금껏 오르가즘이란 개념을 잘못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만큼 좋았다. 또 이만큼 잘생긴 남자와 언제 관계를 가져보겠는가? 임신만 하지 않는다면 손해 볼 건 없었다.
‘아예 임신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그럼 책임지라고 해야지, 라며 서주환이 알면 섬뜩한 생각을 하는 양혜지였다.
“양혜지.”
“응? 왜, 자기?”
“씹. 욕 나오게 하지 마라.”
“아, 알았어. 뭔데?”
서주환은 진심으로 화를 내려다가 간신히 참았다.
“문규석 그 새끼 말인데.”
“규석이? 걔가 왜?”
“오늘 왜 온 거야? 지금까진 동창회 참석 안 했다면서. 넌 친하니까 알지?”
“아, 그거~.”
양혜지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걔 유 쌤 좋아하거든. 중학생 때부터 쭉.”
“…지금까지?”
“어. 한 번은 고백도 했을 걸?”
“허 참.”
서주환은 어쩐지 황당한 기분이 들어 헛웃음을 지었다. 중학생 때부터라면 거의 10년에 이르는 세월 아닌가. 그 양아치 새끼가 그런 순정을 갖고 있을 줄은 몰랐다.
“유 쌤이 결혼하시고 나서는 포기한 것 같았는데 말이지.”
“결혼? 유 쌤 결혼하셨었어?”
“응? 아, 주환이 넌 몰랐겠구나. 3년 전에 하셨어. 지금까지 연락됐던 동창들은 다 알아.”
“그, 그렇구나.”
서주환은 중학교 시절 딱히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었기에 연락을 단절하고 살았다. 번호를 바꾸는 건 물론 부모님에게도 당부를 했던 터라 상대방 쪽에서 그에게 연락을 할 수단이 없었다.
“뭐 지금은 이혼하셨지만. 작년에 이혼했던가?”
“…….”
서주환은 뭔가 애매한 기분에 입을 다물었다. 결혼 소식과 이혼 소식을 한꺼번에 듣게 되다니 이게 무슨 경우인지.
양혜지는 계속 재잘거렸다.
“어쨌든 문규석이 이번 동창회에 나온 건 유 쌤 이혼 소식을 듣고서다~ 이 말이지.”
“참나. 쌤 이혼이 지랑 뭔 상관이라고.”
“그러게 말이야. 성인 되고도 양아치처럼 굴면서 유 쌤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나? 아차, 걔 유 쌤 앞에서는 모범생이었지.”
유민서가 괜히 문규석을 평범한 학생으로 대하는 게 아니었다. 문규석은 앞과 뒤를 확실히 구분했다. 오히려 나름 높은 성적과 성실한 태도로 선생님들의 예쁨을 샀으니, 유민서도 그를 머리색이 좀 요란한 모범생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양혜지.”
“응?”
“너 문규석이랑 친하지 않았냐? 그렇게 뒷담해도 돼?”
“풉. 언제 적 얘기를 하는 거야. 난 문규석 싫거든? 나이 먹고도 하는 꼬라지가 똑같잖아.”
“아까 식당 안에선 친해 보이던데?”
분명 남소가 어쩌고 하는 걸 들었다. 그렇다면 최근까지 연락했다는 소리일 터.
하지만 양혜지는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앞에서 뭐라고 해? 걔 성격 아니까 그냥 분위기 맞춘 거지. 난 중학교 졸업하자마자 손절하고 싶었는데 계속 연락 와서 오히려 짜증이라고. 그렇다고 씹자니 찾아와서 지랄할까봐 무섭고.”
“흐음. 그래?”
이건 또 예상치 못한 대답이다. 그냥 자신한테 잘 보이기 위해 둘러대는 거라고 생각하기엔 진심으로 질색하는 표정이었다.
“아, 좋은 생각났다. 주환이 너가 문규석한테 나 여친이라고 말해주면 안 돼? 그럼 걔가 나한테 더 연락 안 할 거잖아. 네가 더 세니까. 맞지?”
아주 명안이라는 듯 히죽 웃으며 말하는 양혜지.
서주환은 헛웃음을 치며 그녀의 머리 위로 묵직한 꿀밤을 날렸다.
“악! 너 여자도 때려?”
“계속 헛소리 하니까 그렇지. 그리고 너 양심 있냐? 그런 부탁하기 전에 나한테 할 말 없어?”
“어, 어? 그게… 난 다 풀린 줄 알았는데.”
양혜지는 꽤 당황한 표정이었다. 섹스까지 했으니 모두 없던 일이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떡해. 그냥 내 착각이었나 봐.’
생각해보면 아직까지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조차 하지 않았다.
양혜지는 이내 시무룩한 기색으로 말했다.
“…미안해, 주환아. 그때는 그런 게 멋있는 건 줄 알고… 말도 안 되는 변명이지. 진짜 미안해.”
“…….”
“그, 안 믿을지도 모르지만 진심이야. 사실 다른 애들한테는 벌써 사과했거든.”
이것 또한 의외다. 그러고 보니 다른 동창들이 문규석 패거리를 대하는 태도와 양혜지를 대하는 태도가 달랐던 것 같다. 다 이유가 있는 태도였다.
서주환은 고개 숙인 양혜지를 보며 눈꼬리를 긁적였다.
‘진짜 사과 받으려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그저 계속 달라붙어오는 양혜지를 떼어놓고자 한 말이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진지하게 사귀자고 고백할까봐서.
그는 괜히 어색해진 분위기를 풀고자 말했다.
“알겠으니까 고개 들어.”
“…용서해주는 거야?”
“그래, 이 년아. 내 너의 죄를 사하노라.”
“헤헤. 고마워. 그럼 이제 우리 친구지?”
“그렇다고 너무 친한 척은 하지 말고. 한 번만 더 자기라고 부르면 때려준다.”
“…우와, 개새끼.”
“차라리 그게 낫네.”
서주환은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꽤 익숙한 욕이었기 때문이다.
“너 앞으로 헛짓거리 하지 말고 그림이나 그려봐.”
“뭐? 뜬금없이 웬 그림?”
“거기 재능 있을 것 같거든.”
“내가 그림 그리는 거 본 적도 없으면서 그걸 어떻게 알아?”
그렇게 따져 물으면 할 말이 없다.
서주환은 귀찮아서 대충 넘어가기로 했다. 별로 양혜지의 재능을 살려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이 정도면 오히려 분에 넘치는 인생 조언을 해준 셈이다.
“시끄럽고, 이제 들어가자.”
그는 양혜지의 엉덩이를 찰싹 때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아악! 야, 그렇게 치면 다 흐른다고!”
“그건 네가 알아서 해야지.”
“이, 이 개새꺄!”
*
방 안으로 들어가자 김호진이 손을 들어 반겼다.
서주환은 마주 인사하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말했다.
“문규석 아직도 안 왔어?”
“너 없을 때 왔다가 좀 전에 다시 나갔어.”
“아, 엇갈렸나 보네. 그 새끼 찾느라 좀 헤맸거든.”
“주환아, 괜히 걔 신경 쓰지 말고 우리끼리 놀자. 너도 유 쌤한테 한 잔 받아야지.”
유민서는 꽤 술을 잘 마시는 듯 학생들과 연신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옛날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는 게 그야말로 동창회란 분위기였다.
서주환도 그 분위기에 어울려서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어색했던 동창들과 말을 텄다. 외모가 잘생겨져서인지, 아니면 과거에 미안한 감정 때문인지 동창들은 그에게 호의적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한창 마시던 중, 김호진이 말했다.
“주환아, 너 담배 피워? 나 한 대 피우러 갈 건데 같이 갈래?”
“담배? 좋… 아, 나 지금 금연 중이야.”
서주환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아쉬운 기색으로 다시 앉았다. 지난 추석, 친척 동생인 서정호와 금연 약속을 했다.
‘피워도 모르긴 하겠지만.’
이왕 금연을 시작한 김에 한 번 되는 데까지 이어가볼 생각이었다. 첫 날 담배를 안 피웠을 때 얼마나 힘들었던가. 한 번 피우기 시작하면 다시 도전하기 힘들 듯했다.
“아쉽네. 그럼 혼자 다녀오지 뭐.”
“어, 갔다 와.”
서주환은 다시 술잔을 들었다. 그리고 유민서와 잔을 부딪치며 손끝으로 살짝 그녀의 손을 건드렸다.
‘상태창.’
<유민서>
성별: 여성
나이: 34살
키: 160cm
몸무게: 52kg
호감도: C
현재성욕: C
페티시: Narratophilia(上), Masochism(中)
보유 재능: 살인(F/S), 축구(F/A), 학습(B/B+)
[Narratophilia(넬레토필리아)는 막말, 욕설, 선정적인 말 등에서 성적 흥분을 느끼는 증후군입니다.]
[Masochism(마조히즘)은 피학에서 오는 성욕으로 육체적, 정신적인 상처, 굴욕을 당할 때 흥분을 느끼는 증후군입니다.]
유민서의 상태창을 본 서주환은 눈을 부릅떴다.
‘양혜지랑 떡 칠 때가 아니었잖아?!’
예상치 못한 곳에서 S급 재능 보유자를 발견했다.
‘그런데 페티시 상태가 왜 이래?’
넬레토필리아에 마조히즘이라니. 그것도 전자는 성격이나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上) 등급이었다.
하지만 재능에 비하면 페티시 정도는 약과였다.
‘뭔 재능이…….’
그 착하고 순진한 선생한테 S랭크의 ‘살인’ 재능이 있다니. 어쩐지 등줄기에 한기가 올라오는 듯했다.
‘그나마 현 등급이 F라 다행이지.’
이 재능이 엄한 사람한테 갔으면 희대의 살인마가 탄생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가게 뒤쪽 흡연장에는 남자 세 명이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중이다. 벌써 몇 대를 피워댄 건지 연기가 자욱하게 번져갔다.
남자 한 명이 못 마땅한 기색으로 말한다.
“야, 규석아. 서주환 그 새끼 그냥 둘 거야?”
다른 남자 한 명도 동조했다.
“그래. 그 새끼 와꾸 좀 괜찮아졌다고 지랄하는데 왜 가만히 있어?”
그 말에 문규석은 담배 필터를 씹으며 욕설을 내뱉었다.
“씹새들아, 나만 맞았냐? 그럼 니들은 처 맞고 왜 가만히 있는데?”
“그건…….”
“…….”
두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사실 그들도 이미 서주환에게 두어 대씩 맞은 뒤였기 때문이다.
담임선생이었던 유민서가 오기 전, 서주환의 정체를 알게 된 그들은 태도를 달리해 그를 위협했다. 학창 시절 찐따 취급하던 놈이 거들먹거리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그들은 뭔가 해보기도 전에 제압당하고 말았다.
‘시발, 그 새끼가 그렇게 셀 줄은 몰랐지.’
주먹을 날렸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막고선 뒤통수를 후려칠 때는 골이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후 목을 잡히니까 숨이 턱 막혀서 차마 저항할 수도 없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가 느껴졌다.
문규석은 벙어리가 된 그들을 보고 침을 탁 내뱉었다.
“걱정 마. 내가 그 새끼 가만히 두겠냐?”
“여, 역시. 그럼 어떡할 건데?”
“셋이서 밟을까? 그 새끼가 세 봤자 상대가 셋이면…….”
“아니. 니들은 그 새끼 제대로 싸우는 거 못 봐서 그래.”
문규석 혼자서도 상대할 수 있는 둘이다. 그런 둘이 합세한다고 해서 뭔가 달라질 것 같진 않았다. 서주환과 제대로 싸워본 그이기에 더 확신했다.
그는 다른 방도를 꺼내들었다.
“우리 아버지가 뭐하는지 알지? 기다려봐. 알아서 할 테니까. 내가 그 새끼 무릎 꿇리고 인생 종 치게 만들어준다.”
“아! 너희 아저씨들 부르게?”
“맞네. 규석이네 아버지 사채 하시잖아. 그럼 완전 전문가… 억!”
“사채가 아니라 대부업 이 새끼야.”
“어어. 대부업, 그래.”
그렇게 작당모의를 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부스럭, 하고 인기척이 느껴졌다.
세 사람은 화들짝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문규석은 상대의 얼굴을 알아보고 이름을 불렀다.
“…김호진?”
“어, 어? 하하. 마저 얘기해. 나는 다시 들어갈게.”
김호진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야, 너 일로 와봐.”
문규석의 얼굴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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